<중국혐오의 정치적 기원3> 중국혐오는 부메랑이 되어 파멸을 부른다
문재인의 인식과 현실의 천양지차 괴리
김희교 교수의 저작, 《짱깨주의의 탄생》을 중심으로 <중국혐오의 정치적 기원> 2탄이 나간 직후, 공교롭게도 문재인 전 대통령이 지난 6월 8일 페이스북에 《짱깨주의의 탄생》에 대한 짧은 추천사를 게시했다. 문재인은 페이스북에 다음과 같이 썼다.
오랫만에 책을 추천합니다. 김희교 교수의 <짱깨주의의 탄생>, 도발적인 제목에 매우 논쟁적입니다. 책 추천이 내용에 대한 동의나 지지가 아닙니다. 중국을 어떻게 볼 것이며 우리 외교가 가야할 방향이 무엇인지, 다양한 관점을 볼 수 있습니다. 다양한 관점 속에서 자신의관점을 가져야 합니다.
이념에 진실과 국익과 실용을 조화시키는 균형된 시각이 필요합니다. 언론이 전하는 것이 언제나 진실은 아닙니다. 세상사를 언론의 눈이 아니라 스스로 판단하는 눈을 가지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해줍니다.
전직 대통령이라는 사회적 위상으로 인해 이 책은 순위권 밖에 있다가 추천 이후 일주일 만에 주요 대형서점 문화역사분야 일약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반중 혐오가 극에 달한 지금, 김희교 교수의 이 저작이 대중들의 관심을 받게 된 것은 그 자체로는 환영할만한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더 나아가 문재인의 발언으로부터, 문재인 집권 시절의 중국관과 그 관(觀)과 비교되는 실제적인 현실의 하늘과 땅만큼(천양지차)의 괴리, 그 괴리의 원인, 그리고 문재인 정권과 대비되는 윤석열 정권의 중국관과 그것의 정세적 의미를 살펴보고 우리의 실천적, 정치적 과제에 대해 제시할 필요가 있다.
문재인이 말하는 “언론이 전하는 것이 언제나 진실은 아닙니다. 세상사를 언론의 눈이 아니라 스스로 판단하는 눈을 가지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해줍니다.”는 말은 (부르주아, 제국주의) 언론이 진실을 가리고, 대중들의 인식을 호도하는 현실에서 참으로 진실이다.
이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도 마찬가지고 중국관도 마찬가지다. 우리사회의 반북혐오는 반중혐오를 넘어 반러혐오로 극단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반북반중반러혐오는 반비례하여 그 혐오 조장자들에 대한 숭배로 나타나면서 미국에 대한 인식은 점점 더 높아지고 있다.
그 점에서 언론이 조장하는 여론과 달리 다양한 관점을 가져야 하고 이 속에서 자신의 관점을 가져야 한다는 문재인의 제언은 마치 초야 속에서 잊히기를 원하는 현자(賢者)의 발언처럼 통찰력 있게 들린다. 그러나 여기까지다. 박근혜 퇴진 촛불투쟁의 성과를 독차지해 권력을 잡고, 촛불투쟁에서 민중의 요구와 염원을 배반(아니면 그 정치적 본색의 표출)하며, 윤석열 정권을 탄생시켜 이 사회를 퇴보시킨 자가 초야 속에 묻혀 잊혀지기를 원하는 것이 위선이거나 그저 헛된 바람일 뿐이다. 문재인의 거처가 소박한 초야가 될 수 없는 것처럼…
문재인은 “이념에 진실과 국익과 실용을 조화시키는 균형된 시각이 필요합니다”라고 한다. 문재인의 진실은 무엇이고, 국익과 실용은 또 무엇이었나? 문재인의 진실이 무엇인지는 정확하게 알 수는 없으나 문재인 정권 5년은 바로 자신들이 내세웠던 과제, 공약, 정책이 이른바 ‘국익’과 ‘실용’ 앞에 난도질당하고 무너지는 과정이었다. 문재인의 진실과 국익과 실용은 절충주의 잡탕이 되면서 문재인 정권을 반노동자적, 반민중적, 반민주적, 반민족적, 반통일적 정권으로 만들었다.
문재인은 ‘촛불혁명정부’라 자칭하고는 기존 생산관계를 철폐하는 혁명의 본질과 정반대로 국내외 재벌들의 생산수단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시켰다. 문재인은 ‘적폐청산’를 내세우고는 촛불투쟁으로 구속된 재벌 총수 이재용을 석방, 사면시키고 박근혜를 석방시켰다. 반면 이석기 전 의원을 비롯한 국가보안법 양심수들은 단 한 명도 석방시키고 사면복권 시키지 않았을 뿐더러, 여전히 간첩조작을 일삼고 국가보안법을 내세워 구속자들을 만들어 냈다.
프랑스 대혁명 시기 취했던 최초의 조치가 바스티유 감옥을 무너뜨리고 수감됐던 정치범들을 석방시키던 조치였던 것을 봤을 때, 그 혁명적 조치에 상반되는 조치에 앞장선 것이다.
노동자에 대해서는 어떤가?
문재인은 노동존중을 내걸고는 노동말살 정책으로 일관했다. 문재인은 노동존중’을 내걸고는 극히 정치적인 방역조치를 내세워, 민주노총을 침탈하고 총연맹 위원장을 구속시키는 만행을 저질렀다. 민주노총 수석부위원장 구속 역시 문재인 정권 시절 체포영장 발부로 말미암은 것이었다. 문재인은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를 내걸고는 비정규직 확대 정책을 취했다. 문재인은 청와대에 실업자 실시간 통계 전광판을 내걸고 실업자 문제 해결을 최우선적 과제로 내걸었으나 청년실업을 포함해 실업이 만연한 사회가 되었다. 문재인은 최저임금 인상, 소득주도 성장을 내걸었으나 결국은 역대급 최저임금 인상과 노동자 전반의 최저한의 명목임금 인상(실질임금 인하)으로 소득을 감소시켰다. 문재인은 집값 하락 정책을 내걸었으나 역대급 아파트가 인상을 가져왔다.
사드와 남북관계는 어떤가?
문재인은 사드 폐기를 내걸고 당선됐으나, 사드 배치 완성을 위해 지난 5월 10일 윤석열이 대통령에 취임하는 날까지, 미군을 위해 110번째 길 닦기에 나서면서 소성리 주민들과 평화활동가들, 종교인들을 무참하게 짓밟았다.
2017년 평창올림픽에서 남북의 만남으로 감동적으로 출발한 남북 관계는 2018년 4.27판문점 선언과 9.19평양공동선언으로 남북 간 화해와 평화적 관계, 통일전망은 정점에 올랐다. 그러나 주지하듯, 문재인 정권은 사사건건 미국의 눈치를 보며 남북 자결을 깨고 한미군사동맹, 미일한 전쟁동맹을 추구했다. 파탄 난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임기 말에 종전선언을 외쳤으나 문재인은 뒤로는 대북제제에 앞장서는가 하면 한미군사훈련을 지속하고 참수부대 운영, 킬체인망, 전략포격 타격 등 전쟁책동을 지속했다.
문재인 정권은 2017년 40조 원이었던 국방예산을 5년 동안 36.9%나 증액시켜 2022년도 국방예산으로 55조2277억 원으로 역대급으로 증강했다. 이도 모자라 문재인 정권은 2022~26년 국방중기계획을 통해 5년 후에는 70조 원으로 국방예산을 증액하여 5년간 무려 315조 원에 달하는 예산이 국방비로 사용된다. 문재인 정권은 지난 9월 22일 유엔 총회 연설에서 ‘한반도 종전선언’을 제안한 직후인 10월 1일 국군의 날에는 F-35A 스텔스기, SLBM탑재가 가능한 잠수함 등을 동원한 합동상륙훈련을 진행하고 이어 11월 1일부터 5일간 한미 양국의 전투기 200여 대를 동원한 한미연합공중훈련을 진행했다.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 ‘균형외교’의 비균형과 파탄
문재인 정권은 중국과 관련해서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국익’과 ‘실용’을 조화시키는 노선을 취했으나 실제로는 사드 배치 같은 안보의 문제로 인해 중국의 경제보복을 당하는 등 자기모순적 상황에 처해졌다. 경제적 토대 위에 정치라는 상부구조가 위치에 있다는 사적유물론 테제를 굳이 갖다 대지 않아도 경제와 정치군사문제가 긴밀하게 연관돼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는 초보적인 상식이다. 그런데 문재인의 ‘진실’은 현실과 괴리되는 가상의 조건을 만들어 놓고 자기최면으로 이를 분리하는 것이었다. 문재인의 ‘균형외교’는 사실은 미제국주의 중심으로 한미동맹, 미일한 동맹을 숭배함으로써 전혀 균형적이지도 않고 자기모순적이고 이로써 지속될 수 없는 파탄적, 파멸적인 것이었다.
한중 경제 관계가 발전하면서 한미동맹 강화에 가장 큰 걸림돌이 ‘안미경중’ 사고였다. 즉 안보는 미국과 협력하고, 경제는 중국과 협력한다는 사고가 한미동맹의 발목을 잡았다. 한중 경제관계의 고리를 깨지 않으면 한미동맹은 강화하기 힘들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한국의 줄타기가 계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안미’ 즉 군사동맹은 지속적으로 강화되어 왔다. 문재인 정부에서 이같은 경향은 변하지 않았다. 대북 군사연습이 지속되었고 비록 ‘임시배치’라는 명목이었지만 사드 배치가 추진되었다. 지난 해 12월엔 한미작전계획을 최신화하는 것까지 합의했다. 대북정책 역시 한미동맹을 토대로 하는 정책협의체인 한미워킹그룹회의가 만들어짐으로써 우리 정부의 대북 정책은 한미동맹의 관리 하에 놓이게 되었다.(장창준 한신대학교 교수, ‘윤석열 정부의 대북, 대외정책과 남북통일과제’, 제5발제문, “6.15공동선언 22주년기념 국제학술토론회”, <신냉전시대와 남북통일의 길>, 2022년 6월 10일)
현재의 한미동맹과 한중관계의 발전은 대립관계에 있다. 이 양자 사이에서 줄타기는 지속될 수 없다. 이 양자 사이의 ‘균형’은 실제로는 미제국주의가 가진 패권, 미제국주의에 대한 문재인 정권의 일방적인 (물신)숭배로 인해 불균형적으로 되고 이 불균형적 줄타기는 줄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파탄날 수밖에 없었다. 이 파탄과 추락의 결정적인 계기에는 앞서 언급했던 사드 배치가 있다. 중국 측에서는 사드 배치를 어떻게 보고 있는가?
한국은 줄곧 “한미동맹을 바탕으로 중국과의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를 심화”한다고 강조해 왔다. 이 때문에 한중관계는 한미동맹의 구조적 한계를 돌파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드의 한국 배치는, 사실상 미국이 중한 간에 쐐기를 박은 것이다. 이로써 중한 간의 정치적 상호신뢰를 심각하게 떨어뜨렸고, 일련의 마찰을 가져왔다. 이뿐 아니라, 이는 한국을 미국의 미사일방어체계에 편입시키는 기회가 되었고, 나아가 중한 관계의 지속적 발전에 잠재된 근심거리가 되고 있다.(최명욱 산동대학교 동북아학원, ‘한미동맹을 바라보는 중국의 시각과 과체(축약 본)’, 제4발제문, “6.15공동선언 22주년기념 국제학술토론회”, <신냉전시대와 남북통일의 길>, 2022년 6월 10일)
문재인은 임시 배치라고 사기를 치고 있지만 문재인의 공약 사항이었던 사드 배치로 중국과의 신뢰는 깨지고 한중간의 관계는 결정적인 파탄 계기가 만들어졌다. 이 사드 배치는 향후 윤석열의 반중 조치의 강화와 함께 한중 파멸의 결정적 서곡이 될 것이며, 성주는 한반도 전쟁지대화의 거점이 될 것이다.
문재인정부를 친중정권으로 몰아가는 보수주의자들의 기획에 보수 유투버를 포함한 언론과 정치권만 가담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학계와 보수 시민단체들도 적극 가담했다. 윤석민 교수는 문재인정부의 균형외교에 대해 “미국과 동맹관계인 한국이 미중 사이에서 균형외교를 하겠다는 발상은 자기모순적일뿐더러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오판”이라고 주장했다. 윤덕민 교수에게 “21세기는 여전히 미국의 것”이다. 윤 교수는 “대륙의 힘을 빌려 자신의 세력을 강화하고자 했던 구한 말 지배층의 구태가 어떻게 귀결되었는지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경고를 날리며 “한미동맹을 굳건히 해야 중국도 우리를 무시하지 못한다”고 했다. 또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널뛰기하는 나라는 어느 한쪽으로부터도 신뢰를 얻을 수 없다”며 문재인정부에게 신식민주의체제에 대한 종속을 강조했다.(김희교, 《짱깨주의의 탄생》)
이는 문재인 정부의 대중정책에 대한 극우진영의 인식이다. “21세기는 여전히 미국의 것”이라며 “신식민주의체제에 대한 종속”에 빠져 있는 시대착오적 망상가들의 터무니없는 주장이기는 하지만, “미국과 동맹관계인 한국이 미중 사이에서 균형외교를 하겠다는 발상은 자기모순적일 뿐더러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오판”이라는 인식에서만은 일단의 진실을 담고 있다.
김희교 교수는 극우 진영을 보수진영으로 보고, 우익 문재인 정권을 ‘진보진영’의 일환으로 본다는 분명한 한계가 있는 책이지만, 이 책을 관통하는 큰 주제는 중국혐오를 넘어 중국을 객관적으로 있는 그대로 보자는 것이고, 중국혐오 배후에는 친미 숭배사상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반중 친미를 넘어 (신)식민지 체제를 깨고 한반도와 동북아에 평화체제를 건설하자는 것이다.
문재인 스스로 “성공한 대통령”이라고 자기최면을 불어넣는 위선도 있지만, 문재인, 문재인 정권, 민주당이라는 정치세력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무엇인가?
맑스는 프랑스대혁명에서 자유평등박애라는 부르주아의 ‘위대한’ 모토가 기병포병보병으로 전락해버렸다고 조소한 바 있는데, 문재인 정권의 기치도 마찬가지다.
왜 이런 일들이 벌어졌는가? 문재인은 ‘적폐청산’이라는 촛불의 염원을 시대적 요구로 받아 안고 집권을 시작했다. 그런데 적폐는 이 사회의 역사적, 구조적 모순을 말한다. 이 사회의 역사적 모순은 분단과 제국주의의 문제이다. 이 사회의 구조적 모순은 자본주의 모순이다. 역사적 모순과 구조적 모순은 깊게 연결되어 있다.
역사적 모순은 당면하게는 분단을 빌미로 국가보안법을 내세워 반민주 반공체제를 구축하고 노동자를 착취하고 민중을 수탈, 압살해온 백색테러 체제를 척결하는 것으로 해결된다. 궁극적으로는 외세를 축출하고 ‘자주적’으로 남과 북이 통일되는 것으로 해결된다. 그러나 문재인은 여전히 이 역사적 모순 속에 발을 깊게 담그고는 입으로만 ‘적폐청산’을 외쳤다. 문재인은 국가정보원, 검·경, 법원 같은 관료·폭력 기구에 발을 담그고는 검찰개혁 등 관료기구 개혁을 외쳤다.
이 사회의 경제는 자본의 독점과 축적을 무한대로 하는 착취와 수탈경제다. 국내외 거대 자본이 이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이 사회의 정치는 이 경제적 토대 위에서 국내외 독점자본의 이해에 복무하는 상부구조다. 문재인은 국내외 독점자본의 이해를 전적으로 대변하면서 ‘노동존중’을 외치는 자기모순에 빠져 있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문재인은 한미 동맹에 발을 담그고는 평화를 운운하고, 민족분열과 대북 적대시 정책에 발을 담그고는 민족단결과 남북 관계 개선을 추구했다.
“한미동맹을 바탕으로” 중국과의 관계를 개선한다!
“한미동맹을 바탕으로” 남북관계의 개선을 추구한다!
“한미동맹을 바탕으로” 평화를 추구한다!
“재벌과의 동맹을 바탕으로” 노동존중을 추구한다!
“최면을 바탕으로” 현실을 추구한다!
이러한 자기모순의 실제는 “윤석열을 바탕으로” 문재인을 추구한다!와 같은 것이었다.
한미동맹을 반대하는 것은 미국과의 모든 정치적, 외교적, 경제적 관계를 단절하고 오로지 중국과의 관계만을 가지라는 의미가 아니다. 진보적인, 심지어 사회주의 정부가 들어서도 대외관계를 단절하고 살 수는 없다. 이러한 정부는 민중의 이해에 확고하게 입각해서 국제관계에서 타국에 대해 평등과 평화, 우애의 관계를 가져간다.
문재인은 정반대로 행동했다. 문재인이 《짱깨주의의 탄생》을 추천했던 것은 윤석열 정권의 정책을 은근 비난하고 자기의 집권 시절 행보를 정당화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짱깨주의’는 문재인 정권 이전에 이미 탄생했고, 문재인 정권은 이 ‘짱깨주의’를 종식시키기는커녕 숙성시켰다. 문재인과 단절하여 윤석열이 등장한 것이 아니라, 문재인의 위선과 기만을 바탕으로 그 극단에서 윤석열이 등장한 것이다. 문과 윤은 하나의 연속선상에 있다. 윤은 문이 만들어 놓은 길을 따라 그 길을 가속화 하려 한다. 윤석열은 문재인이 못다 한, 문재인 정권의 유언집행인이다.
섶을 들고 불길로 뛰어드는 망동자(妄動子)
윤석열 정권은 문재인 정권이 안고 있는 자기모순과 파멸을 깨려고 한다. 윤석열 정권은 “미국과 동맹관계인 한국이 미중 사이에서 균형외교를 하겠다는 발상은 자기모순적일뿐더러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오판”이라며 이를 바로잡으려 한다. 윤석열의 바람은 “미국이 돌아온다”는 기치를 내걸고 쇠퇴하는 미국의 패권을 다잡아보려는 바이든의 바람에 부합하는 것이다.
나토정상회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정상들. 누구를 지옥의 길로 부르고 있는 것인가? |
이 점에서는 윤석열은 문재인과 다르다. 윤석열은 문재인이 가지고 딜레마가 없다. 거칠고 직설적이고 노골적이다.
노동존중을 내걸고 노동말살을 했던 문재인과 다르게 윤석열은 일관된 반노동자적 인식 속에서 반노동자 조치를 노골화 하고 있다. 대선 기간 동안 주 120시간 근로 발언으로 지탄을 받았던 윤석열은 주92시간 탄력근로와 노동유연화 기도를 하고 있다.
문재인 정권의 위선적인 남북 정책에 비해 윤석열 정권은 노골적인 ‘북한 주적’ 발언에 이어 ‘선제타격론’까지 내세우면서 대북 적대시 정책을 노골화 하고 있다. 문재인 정권이 북과 중국을 벗이라고 선언해놓고 실제로는 적으로 간주했다면, 윤석열은 중국을 적이라고 간주하고 적에게 공세를 취하고 교전을 준비해 들어가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미국에 대한 숭배감정을 대놓고 드러내려 하지 않는 반면에 윤석열 정권은 노골적으로 미국 숭배를 하고 있다.
앞에서 “21세기는 여전히 미국의 것”이라는 극우 인사의 인식처럼, 윤석열 정권에게는 미국의 세계 지배가 영원할 것이기에 미국 숭배는 종교적 물신숭배 수준이다. “일본이 그렇게 빨리 망할 줄은 몰랐다”는 인식 속에서 친일파들이 견마지로(犬馬之勞)하며 일제에 충성을 다 바쳤던 것처럼, 이들에게 미국의 영원한 번영과 패권에 대한 믿음은 근본주의 세계관의 기초이기 때문이다. 이 세계관 속에서 윤석열 정부의 모든 정책방향이 설정되고 표현되고 있다. 그런데 그 출발점에서 윤석열 정권은 딜레마가 없지만 결국 더 심각한 딜레마와 헤어나올 수 없는 파산 상태에 빠질 수밖에 없다. 21세기는 ‘여전히’ 미국의 것이지만, 앞으로도 미국의 것이라고 장담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장담은커녕 “21세기는 여전히 미국의 것”이라는 세계관의 기초가 근저에서 붕괴되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윤석열 정부는 문재인 정부의 모순적이고 좌충우돌하고 비틀거리는, 그리하여 종국에는 좌초하고만 ‘균형외교’를 종식시키려 한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한미 정상은 ‘안전하고 지속가능하며 회복력 있는 글로벌 공급망’을 구축하기로 합의했다. 한미 공급망동맹의 탄생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 윤석열 정부는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 참여를 공식화했다. IPEF는 중국이 주도하는 RCEF의 대항마로 2022년 2월 중순 미국이 출범을 예고한 경제협력체이다. 미국이 중국을 배제하고 대만을 참여시킬 구상을 갖고 있는데서 확인되듯이 대중국 경제포위망 구축을 목적으로 한다. 따라서 한미공급망동맹 구축에 이은 IPEF 참여는 한중경제관계의 폭력적 단절을 의미한다.
이에 대한 비판을 피하기 위한 장치가 ‘경제안보’라는 새로운 용어이다. 경제도 안보 영역에 해당되는 것이니만큼 중국 중심 경제 관계에 탈피하여 미국 중심 경제 관계를 구축해야만 한다는 논리이다. 공급망 동맹으로 불리든, 경제안보로 불리든 이제 중국 포위 봉쇄를 위한 미국의 대한정책은 아무런 장애를 받지 않고 일사천리로 진행될 수 있는 정치적, 경제적 발판을 마련한 셈이다. 이로 인한 모든 피해는 오롯이 한국 경제가 떠맡아야 할 부담이 될 것이다.
윤석열 정부는 이같은 흐름을 안미경세(안보는 미국과, 경제는 세계와)라고 표현하지만 사실상 안미경미 노선의 추구이다. 안보는 말할 것도 없고 경제 역시 미국 중심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장창준 한신대학교 교수, “윤석열 정부의 대북, 대외정책과 남북통일과제”)
현재 한국의 무역량 중 중국과의 관계가 차지하는 비율은 약 25%에 달한다. 미국은 현재 10% 내외로 미국과 일본을 다 합쳐도 중국과의 무역량에 미치지 못한다. 이런 상황에서 “한중경제관계의 폭력적 단절”은 한국경제를 파탄으로 몰아갈 수밖에 없다.
윤석열 정권은 이에 대해 “안보는 미국과 경제는 세계와”(안미경세)라고 표현하지만, 그 세계에는 북은 물론이고 중국과 러시아가 포함되어 있지 않다. 이미 전 세계적으로 미국 중심의 일극 체제가 쇠퇴하는 흐름이 도도하게 나타나고 있고, 이 일극 체제에 줄을 댔던 나라들, 심지어 인도, 사우디, 이스라엘조차도 러시아 제재에 참여하지 않았다. 미국의 요구에 의해 동참했던 러시아 제재가 도리어 부메랑이 되어 식량가격 폭등, 에너지가격 폭등으로 자국경제가 위기를 겪게 되자, 유럽연합 내에서도 균열이 생기고 있다.
미국은 이제 그 균열의 틈을 메우고 다시 약화되고 있는 미국의 패권을 영속화하기 위해 우크라이나에 이어 영원한 미국의 추종자들인 한국과 대만을 내세우려 하고 있다. 대만이 중국 반발로 IPEF 참여를 하지 못하게 되자 이번에는 ‘21세기 무역에 관한 미-대만 이니셔티브’를 논의하기 위한 첫 회의를 개최하여 대만을 대중국 포위의 전초기지이자 제2의 우크라이나로 삼으려 하고 있다. 중국은 이에 대해서 하나의 중국 원칙을 저버린 중국 포위 전략으로 간주했다. 가오펑(高峰) 중국 상무부 대변인은 이달 초 이니셔티브와 관련해 “중국은 중국의 일부인 대만과 다른 나라 간 어떤 형태의 공식적 교류도 항상 반대한다”고 반발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의 미국과의 가치동맹, 중국 포위 미국과의 동맹, ‘안미경미’ 노선은 경제 파탄은 물론이고 종국에는 전쟁의 참화를 부를 수 있다. 우크라이나 참화의 직접적 원인은 미제국주의와 나토의 반러 동맹, 여기에 영합한 젤렌스키 정권의 반러 서방 중심의 가치동맹, 나토 가입 시도에 있다. 러시아를 경제적으로 포위, 고립시키고, 군사적으로 위협하려던 시도가 우크라이나에서 전쟁 참화를 불렀다. 미국과 나토는 평화협정 체결을 거부하고 우크라이나인들의 참혹한 현실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이 전쟁을 지속시키려 하고 있다.
미국은 기본적으로 반쏘반공 입장을 견지하면서도 과거 독일 파쇼와 쏘련이 서로 치고 받다가 공멸하면 이득을 취하려 했던 것처럼, 우크라이나에서처럼 자국이 위험에 빠지지 않는 대리전으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도 같은 태도를 취하고 있다. 젤렌스키는 자국민들의 참혹한 현실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여기에 적극 화답하고 있다.
아시아판 나토는 아시아판 우크라이나, 아시아판 참화이다
미국의 모토는 영속 전쟁이다. 미국 본토가 전쟁에 휘말리지 않는 조건 속에서 국지적인 전쟁을 영속화 하여 미국의 군사적, 정치적 패권을 지속시키고 군산복합체를 비롯한 미국산업의 경제적 이익을 극대화 하려 하고 있다.
중국을 몰아내자. 보수주의자들은 지금 그런 싸움을 하고 있다. 중국을 몰아내자, 중국 없이도 세상은 잘 돌아간다. 그런 메시지를 보내는 유령이 떠돌고 있다.(김희교, 《짱깨주의의 탄생》)
중국을 끝없이 자극하고 심지어 몰아내자고 충동질하면서도 “21세기는 여전히 미국의 것”이라는 세계관이 맹동을 정당화 하고 있기 때문에 이들의 행동은 변함이 없다. 그러나 이 돈키호테적 맹동의 결과는 파멸이고 그 끝에는 전쟁과 같은 참화가 있다.
윤석열 정부의 대중 외교에서 또 하나 중요한 변수가 되는 것은 한미군사동맹에 대중국 요소가 포함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지난 해 12월 한미 국방부가 작전계획을 최신화하는 합의가 나온 이후 미국 국방, 외교 일각에서 한미 작전계획 최신화에는 중국 문제가 포함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대북 뿐 아니라 대중국 군사계획을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이같은 ‘조언’대로 한미 작전계획에 중국문제까지 포함된다면 한중 관계를 치명적으로(인) 상태로 전변될 것이다. 사드 배치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중국은 크게 반발할 것이다.
그 연장선에서 이번 한미정상 공동선언에서 또 하나 주목해야 할 표현이 있다. ‘한반도와 그 주변’이라는 표현이 그것이다. “한반도와 그 주변에서의 연합연습 및 훈련의 범위와 규모를 확대하기 위한 협의”를 개시하기로 했다. 유사한 표현이 확장억제전략협의체 회의에서도 논의되었다. “미전략자산의 한국 및 주변지역에 대한 순환배치”가 그것이다. 이들 문장을 종합하면 전략자산이 참여하는 한미군사연습을 한반도와 그 주변에서 하는 것이다. ‘그 주변’이 어디일지는 복잡한 계산을 요구하지 않는다. 남중국해, 동중국해, 대만해협인 것은 자명하다. ‘한반도와 그 주변’이라는 표현은 북한을 대상으로 하는 한미동맹에서 중국을 대상으로 하는 동맹으로 확대개편한다는 것을 암시한다.(장창준, 같은 글)
“나토는 그간 유럽을 넘어 중동·아프가니스탄으로 확장해 왔는데, 이번엔 아시아에서 루비콘 강을 건넜다”(포린폴리시(FP) 28일자, ‘우리는 글로벌 냉전 속에 있다’, 임선영 기자, “러시아 편들다 나토에 찍힌 중국…‘유럽이 화났다’”, 중앙일보, 2022.06.29.)는 서방언론의 분석까지 나오고 있다. 심지어 나토는 “서방과 민주주의 동맹국들은 중국·러시아·북한·벨라루스 등과 반대편에 서게 됐다”며 “이 새로운 전선은 수 세대에 걸쳐 지속될 수 있다”(같은 기사)고 하고 있다.
나토의 목에 올라탄 미국이 우크라이나를 방화한데 이어 아시아라는 폭약에 불을 당기려 하고 있다. 중국의 영자신문 글로벌 타임스 만평 |
최근 진행된 아시아 안보회의에서는 대만문제를 둘러싸고 ‘일전불사’라는 표현까지 등장했다. 우크라이나에 이어 대만에서의 전쟁을 불사하고, 대북 적대 전쟁광들이 한반도조차 수 세대에 걸쳐 지속될 수 있는 이 살기등등한 분쟁지대, 전쟁터로 만들려 획책하고 있는 것이다. 제국주의 전쟁체에 돈키호테 같은 몽상가 윤석열이 참여하여 호전적 언사를 내뱉고 있다. 나토가 우크라이나 전쟁을 부르고, 윤석열은 아시아판 나토에 참가하여 한국을 전쟁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미국과 유럽의 집단안보 체제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가 향후 10년 목표를 담은 ‘전략 개념’에서 중국을 직접 거론했다. 사상 처음이다. 미국과 함께 유럽까지 대(對)중국 압박에 나섰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나토가 시야를 중국과 인도태평양까지 넓히면서 글로벌 신냉전은 더 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나토가 중국을 주요 안보 도전으로 공식화한 것은 미국에 이어 유럽까지 동참했다는데 의미가 있다. 일부 유럽 국가들이 중국과 관계 강화를 추진해 왔음에도 미국의 전략 구상을 결국 받아들인 셈이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그동안 나토 동맹국들에게 대중 견제에 대한 공동 전선을 촉구해 왔다.
나토가 이번 전략 개념에 인도태평양의 중요성을 다룬 것도 중국 견제와 맞물려 있다. 나토는 “우리는 지역을 넘어서는 도전과 공통의 안보 이익을 다루기 위해 인도태평양의 새로운, 또 기존 파트너 국가들과 협력을 강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걸맞게 이번 정상회의에는 한국, 일본, 호주, 뉴질랜드 등 인도태평양 주요국 정상들이 초청 받았다…
일부에서는 이번 정상회담을 기점으로 미국-유럽-인도태평양과 중국-러시아의 신냉전 대결 구도가 더 격화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나토는 북한을 두고서는 “이란과 북한은 핵과 미사일 프로그램을 계속 개발하고 있다”며 “시리아, 북한, 러시아는 비국가 활동 세력과 함께 화학무기 사용에 의존해 왔다”고 썼다.(김정남 특파원, “나토, 中 향해 ‘위협’ 첫 공식 명시…신냉전 더 격화한다”, 이데일리, 2022.06.30.)
누군가에 대한 혐오는 혐오자 자신들의 영혼을 피폐화 시키며 망가뜨린다. 중국혐오는 혐오 대상자들을 망가뜨리는 것이 아니라 혐오자들을 망가뜨린다. 중국혐오는 고스란히 부메랑이 될 수밖에 없다. 중국의 한국혐오와 경제보복, 군사보복을 부를 것이며 그 혐오자인 한국을 망가뜨린다. 그 피해는 노동자 민중이 고스란히 뒤집어쓰게 된다.
나토정상회의가 열리는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나토에 반대하는 대중집회를 열고 있다. |
윤석열은 나토정상회의 참가를 통해 철부지 망동으로서 아시아판 젤렌스키 역을 수행하려 하고 있다. 나토정상회의는 반중, 반러 ‘전략적 개념’으로 아시아에서 중국, 러시아, 조선을 견제하고 포위 말살하기 위해 아시아판 나토를 획책하고 있다. 아시아판 나토에서 한국은 미제를 총사령관으로 해서 군국주의화 되고 있는 일제와 나토제국주의를 총참모장으로 모시고 미군, 나토군, 자위대와 함께 남중국해, 대만 접경지대, 러시아와 일본의 영토분쟁 지대 어디든 불려 다니며 위험천만한 분쟁과 전쟁에 끌려 다니게 될 것이다.
유라시아에서 우크라이나는 나토의 동진이라는 “전략적 목표”의 최전선에 복무하다가 참화를 당했다. 아시아판 나토는 대만과 한국을 아시아판 우크라이나로 만들어 아시아판 참화를 부르고 있다. 더욱이 한반도(조선반도)는 이미 ‘북핵’, 실은 미제국주의의 핵독점, 패권전략으로 인해 일촉즉발의 전쟁 직전 상황에 처해 있다. 언제 우크라이나처럼 전쟁이 터져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 돼버렸다. 하나의 작은 불씨라도 당겨지면 전쟁으로 비화하는 ‘강대 강’의 상황에서 맹동분자 윤석열은 섶을 들고 불길로 뛰어드는 망동자를 자처하고 있다.
천지분간하지 못하고 날뛰는 윤석열 정권이 더 괴물로 자라나기 전에 초장에 분쇄해야 한다. 노/정/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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