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제의 아프간 침략상을 은폐하고 패배를 위무하는 언론의 위선과 모순 해결의 순서, 방법에 대하여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중립적인 표현이지만 그 진상을 정확하게 드러내지 못한다. 제국주의의 아프가니스탄 침략이 사태의 진실을 보다 명확하게 드러낸다. 아프가니스탄에서 미제국주의와 유럽연합 제국주의는 남의 나라 자주성을 침해하고 침략한 악랄한 전범국들이다. 제국주의 침략자들은 ‘테러와의 전쟁’을 명목으로 아프가니스탄을 공습하여 초토화 시키고 무고한 아프간 인민들을 대량 살해했다. 제국주의자들이 테러와의 전쟁을 명분으로 침략을 정당화 하지만 정작 중동에서 반쏘 반공을 명목으로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을 육성한 것은 미제국주의자들이었다. 또한 이라크, 리비아에 자행했던 제국주의자들의 무차별적 폭격과 경제제재 등은 어린이, 노인, 여성을 가리지 않고 수십, 수백만의 무고한 희생자를 낳으며 아랍 민중의 격렬한 분노를 불러 일으켰다.
제국주의자들의 폭격과 폭력은 이슬람저항세력들의 테러 보다 수천 배 더 잔학한 것이었다. 제국주의 국가들은 역사상 가장 거대하고 잘 조직돼 있으며 흉악한 관료폭력 국가테러 범죄 단체다. 특히 ‘정밀폭격’을 자랑하는 최첨단 드론은 학살자들에게는 한낱 살인게임에 불과했지만 이 무인 살상기에 의해 무고한 아프간 주민들 수천 명이 살해당했다. 미제는 드론기가 최첨단 정밀폭격기라고 자랑했지만 그 살인기는 살해당한 자들이 아이인지, 노인인지, 여성인지, 농민인지 아니면 테러리스트인지까지 정밀하게 식별하는 것은 아니었다.

“2012년 1월과 2013년 2월 사이 아프가니스탄 북부에서 이뤄진 드론 공격으로 200명 이상이 사망했다. 이 중에 원래 사살 목표로 삼은 표적은 18%에 불과한 35명에 그쳤고, 나머지는 무고한 희생자였다. 특히 이 기간 특정한 5개월만 살피면 민간인 희생자의 비율은 90%에 육박했다.”(“최근 미군 드론 공격 희생자의 90%는 표적과 무관”, 장현구 특파원, 연합뉴스, 2015-10-16)

2019년 9월에는 아프가니스탄 동부 난가르하르 산지마을에서는 잣 농사를 짓고 있던 농민 30명 여명이 무인기 폭격으로 그 자리에서 집단 폭사했다. 2019년 11월 아프간 남동부 코스트주에서는 산모 등 5명이 탑승한 차량이 미군 드론의 폭격을 받고 사망했다. 실제로는 6명의 고귀한 생명이 살해당한 것이다.

 

[2019년 9월 난가르하르 산지마을에서 드론 폭격으로 살해당한 농민의 장례식이 열리고 있다.]

 

아프간 전쟁, 실제로는 제국주의자들의 아프간 침략으로 발생한 전체 사망자와 희생자 규모는 훨씬 더 컸다. 침략전쟁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국제분쟁 전문기자 정문태 기자의 다음 기사를 보자. 참된 언론인이 드문 요즘 시점에서 정문태 기자는 항상 제국주의의 본질을 폭로하고 진실을 추구한다.

“미국은 지금껏 드론으로 폭격한 그 어느 나라에도 전쟁선포를 한 적이 없다. 전쟁이란 건 국가 간에 무력을 동원하는 가장 극단적인 정치 행위이고 따라서 전쟁선포란 건 반드시 국가라는 대상을 지녀야 성립할 수 있다. 미국은 국가가 아닌 전술일 뿐인 ‘테러리즘’이라는 추상적인 단어에 대고 전쟁을 선포한 뒤 수많은 나라들을 드론으로 폭격해왔다. 유엔은 테러리스트의 범죄 활동을 동결한다는 결의안 두개(1368호/1373호)를 통과시켰을 뿐 미국의 그 테러와의 전쟁도, 또 불법 공격도 추인한 적이 없다. 따라서 드론 폭격은 미국 국내법과 국제법을 원천적으로 짓밟은 불법 범죄 행위다. 이뿐만 아니라 폭격 대상 인접국 영공을 허락 없이 불법으로 넘나드는 드론은 세계 각국의 영토 주권을 치명적으로 침해해왔다. 그럼에도 미국 대통령 버락 오바마는 지난 5월23일 국방대학 연설에서 “미국은 국내법과 국제법상 알카에다, 탈레반과 연대한 세력들과 정의로운 전쟁중이다. 드론은 심각한 자제와 판단에 따라 사용해왔고, 민간인 사상자를 없애고자 최고 수준에 맞춰…”라고 늘어놓았다. 그 결과 미국은 드론 폭격으로 2004년부터 어림잡아 4500~4700여명을 살해했고, 그 과정에 어린이 200여명을 포함한 민간인 1000여명이 희생당했다.(미국 컬럼비아대학(CHRC)/영국 탐사보도국(BIJ) 집계) 민간인 살상률이 최대 34%에 이른다는 뜻이다. 드론 폭격의 불법성이 만천하에 드러난 대목이다.
미국은 1991년 제1차 이라크침공에서 군인 10만명을 죽이는 동안 같은 수의 민간인 10만명을 살해했다. 이어 미국이 주도한 1999년 코소보전쟁에서 유고 군인 2000여명을 죽이면서 민간인 1만여명을 죽여 최악의 전쟁기록을 세웠다. 2001년부터는 아프가니스탄 침공에서 민간인 2만여명, 2003년 제2차 이라크침공에서 지금까지 민간인 13만4000여명을 살해했다.(정문태, “B-52와 드론은 똑같은 ‘살인기계’”, 한겨레, 2013-10-25)

미국이 명명한 ‘테러와의 전쟁’, ‘정의의 전쟁’은 제국주의 침략을 은폐하는 기만적 수사에 불과하다. 드론 폭격은 그 자체로 미국 내에서나 해외에서나 불법 범죄행위이다. 미국은 해외에서는 무차별적 침략을 자행하고 국내에서는 흑인을 포함한 자국민들의 수천 명씩 경찰이 살해하는 만행을 자행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을 비롯해 세계 곳곳을 침략하고 제재를 가하면서 내거는 ‘인권’과 ‘인도주의’는 미제국주의의 만행을 은폐하는 교활한 구호에 불과하다.
미제는 2006년에는 이라크 지도자 후세인을 사형시키고, 2011년에는 리비아 지도자 카다피를 참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위 기사에서 묘사하는 참상은 2013년 통계다. 그리고도 9년의 시간이 더 흘렀다. 이 9년의 세월을 전후로 야수와 같은 미제 침략자들은 아프간을 비롯해 리비아, 시리아, 예멘 등 세계전역에서 침략전쟁을 수행했다. 심지어 관타나모 포로수용소에서는 이슬람 포로들을 잔학하게 고문했다. 남미에서는 베네수엘라 내에서 쿠데타 세력들 동원하여 레짐 체인지 기도를 자행하고, 최근 쿠바에서는 반혁명 시위를 배후조종했다. 한반도에서는 남북 합의사항 이행을 방해하고, 사드 배치를 강요했으며 지금도 한미연합 군사훈련으로 북침 훈련을 전개하며 전쟁위기를 고조시키고 있다.
미국이 패퇴하기 전까지 아프가니스탄 침공 20년은 무엇을 남겼는가?

“전쟁으로 숨진 사람이 민간인과 군인을 포함해 아프간에서만 17만여명에 이르고, 전선이 이어진 파키스탄에서 사망한 사람까지 포함하면 24만명을 훌쩍 넘어선다.
브라운 대학의 왓슨 연구소가 집계한 통계(아프간+파키스탄 포함)를 보면, 미군과 나토 동맹국 병력이 3500여명 숨졌다. 이 중 2300명 이상이 미군이고 영국군도 450여명이나 된다.
현지인의 피해는 더 엄청나다. 아프간 정부군과 경찰이 7만5900여명 희생됐고, 탈레반은 8만4100여명 숨진 것으로 집계됐다.
민간인도 7만8300여명 숨졌다. 민간인 피해는 올해 1~3월 사이에 특히 급증했다. 유엔은 그 이유로 급조폭발물(IED·또는 사제폭발물)의 사용과 민간인을 겨냥한 작전 증가를 꼽았다. 지난해 민간인 희생자 중에 여자와 어린이가 43%를 차지했다.
전쟁으로 집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난민도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지난해에만 아프간 난민이 40만명에 달했으며, 2012년 이후 500만명이 집을 떠난 뒤 귀향하지 못하고 있다.”(박병수 선임기자, “‘아프간 침공 20년’이 남긴 숫자…사망자 17만명, 난민 500만명, 전비 1100조원”, 2021-08-16)

이 제국주의 전쟁에서는 “민간인과 군인을 포함해 아프간에서만 17만여명”이 사망했다. 사제 폭발물은 아프간 내 이슬람 저항세력들이 사제폭발물을 사용한 무차별적 테러로 인한 것인데, 이조차도 사실은 제국주의자들의 침략이 근본원인이다. 위 기사도 전쟁의 참상이 “‘아프간 침공 20년’이 남긴 숫자”라고 하지 않는가! 미제와 나토 제국주의자들의 아프간 침공에 없었으면 벌어지지 않았을 비극이다.
이처럼 제국주의자들의 침략전쟁은 수십만의 아프간 주민들을 희생시키고 심지어는 제국주의 국가 내부의 가난한 청년들을 명분 없는 해외 침략전쟁에서 희생시켰다. 더욱이 이 전쟁은 500만 명 이상의 전쟁 난민을 발생시켰다.
위에서 전쟁의 참상 일부를 인용한 것만으로도 미제의 아프간 침략이 얼마나 야만적인 침략이고 미제 침략자들이 용서받을 수 없는 전범인지 그 실상을 적나라하게 알 수 있다. 미제 침략자들은 아프간을 초토화 하고 일시 점령했지만 아프간을 안정적으로 지배, 통치하지 못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20년 동안 부패하고 타락한 현지 괴뢰권력을 내세워 통치했던 미제 침략자들은 탈레반 세력을 중심으로 한 아프가니스탄 인민들의 강력한 저항으로 아프간에서 축출 당하게 되었다.
아프간 저항자들은 최첨단 무기에 비하면 원시적 무장수준으로도 20년간 끈질기게 저항했다. 위에서 미제의 막대한 군사 지원을 받고 육성된 아프간 정부군과 경찰이 7만5900명이 희생됐다고 했는데, 이에 반해 탈레반은 그 보다 더한 8만4100여명 숨진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미제와의 전쟁에서 8만 이상의 희생자가 나왔다면 탈레반에는 수십 만 명의 지원병들이 참가했을 것이다. 이들 탈레반 저항자들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아프간 인구는 4천만 명에 육박한다. 수십만 명의 무고한 희생자들의 가족과 친척, 친구들, 갈 곳 없는 난민들이 이후 탈레반 저항세력으로 끊임없이 충원됐을 것은 충분하게 예상할 수 있다.
결국 아프가니스탄에서 미제와 나토 침략자들은 최소 1조 달러 이상의 비용과 최첨단 무기를 사용하고, 미제의 지배에 현지 괴뢰 군인과 경찰들 수십만을 동원하고도 20년 간 침략전쟁에서 참패하고 아프간에서 도망치듯 철수하게 되었다. 아프간 인민들은 미제를 포함한 제국주의 외세로부터 자주성을 되찾게 되었다. 물론 탈레반의 성격상 이것이 아프간 인민들의 진정한 해방은 아니다.

 

미제 침략극을 은폐하고 패배를 위무하는 부르주아 언론의 논조

 

지금까지 밝힌 것이 공명정대하게 바라본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진실이다. 그런데 부르주아와 제국주의 언론은 이와는 전혀 다른 논조로 탈레반을 악마화 하여 탈레반보다 수십, 수백배 진짜 악마인 미제의 침략행위를 은폐하고 정당화하고 있다. 또한 아프간 침략을 야반도주하듯 쫓겨나는 자신들의 처참한 패배와 처량한 신세를 위무하고 있다.
조금은 다른 상황인 것 같지만, 아프가니스탄 카불공항에서 미군 철수와 아프간 피난민들의 처참한 탈출 상황에 대한 언론의 한결 같은 논조를 살펴보기 전에 한국전에서 미군의 철수 상황을 보기로 하자.
이는 마치 1950년 12월 한국전쟁에서 자유를 찾아 나선 피난민들 수만 명을 미군과 함께 탈출시킨 전설적 사건으로 남아 있는 ‘흥남 철수작전’을 연상시킨다. 이 작전은 지금까지 두고두고 한미혈맹의 상징이자 전쟁에서 후퇴하면서도 현지 주민들의 생명을 보호하는 ‘자유의 수호자’로서 미국이 행한 영웅적인 사건으로 회자되고 있다. 하지만 이 탈출극은 사실 개마고원 장진호 전투에서 조중연합군에게 미군이 “군사역사상 최악의 패전”을 당했다는 사실과 미국의 전쟁범죄를 은폐하고, 자유투사로서 영웅적인 피난민 탈출 사건으로 역사의 초점을 옮기는 것이다.
함흥부두에 몰려든 북주민들은 미군의 무차별 폭격을 피해 필사적으로 살아남기 위해 남으로 피난하려 했다. 실제 ‘자유의 수호자’ 미국은 “북한지역의 모든 도시와 농촌을 소이탄으로 불태워 없애버리라”는 맥아더의 명령과 함께 이북 전 지역을 참혹하게 폭격하였다.

“1950년 6월 29일부터 원산, 평양, 흥남, 청진, 나진, 함흥 등의 주요 도시에서 시작된 대량폭격이 날이 갈수록 전황이 불리해짐에 따라 겸이포, 성진, 강계, 신의주, 삭주, 북청, 의주, 만포진, 신천, 나남, 초산, 남시, 회령, 무평리, 구읍동, 곽산, 구성, 별하리, 표동, 무산, 장전하구, 운산, 신창, 태천, 희천, 정주, 태산, 대관군, 운성, 해주, 흥덕, 양덕, 신고산, 영흥, 고원, 회양, 선천, 삼동리, 신안주, 진남포, 안악 등 북한지역 주요 도시들과 마을로 확대되었다.”(《폭격-미공군의 공중폭격 기록으로 읽는 한국전쟁》을 읽고, 산백 박희용, 카페 양백산맥, 14.02.08.)

이 폭격은 남쪽 지역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또한 1950년 9월부터 전선이 낙동강까지 남하하였다가 북상함에 따라 지상군 근접지원 대량폭격작전에 동원된 폭격기들이 낙동강전선 왜관 지역의 적진 융단폭격, 적 점령지인 김천, 의성, 포항, 의령, 경주, 군산, 하동, 안강, 송정동, 구미, 청산, 신반리, 풍기, 유성, 함안, 약목, 고창, 진주, 안동, 성주, 합천, 고령, 상주, 영동, 제천, 대전, 대구, 서울, 이리, 충주, 문경, 순천, 예천 등 남한 땅의 도시와 촌락을 폭격 하였다. 이동전선 이북 지역의 적군과 군사시설, 철도, 조차장뿐만 아니라 피난민, 마을주민, 교량, 큰 건물, 마을, 독립가옥 무차별 폭격의 대상이 되었다. 전선이남 지역에서도 역시 조종사가 육안에 조금이라도 수상하다 싶으면 대번에 기총소사를 하고 폭탄을 퍼부었다.
그러나 중공군의 참전과 지상군의 패퇴라는 군사적 위기상황이 닥친 1950년 11월 5일 이후부터는 북한지역에 군사목표뿐만 아니라 산업시설, 철도시설, 도로와 교량 등에 대한 대량 파괴폭탄 폭격이 전략폭격이란 논리 하에 수행되었다.
맥아더의 공세적 명령에 따라 인구밀집지역에 무차별적으로 소이탄과 네이팜탄 폭격을 퍼부었다. 아주 작은 시골마을까지도 모두 불살라버렸다. 깊은 산속에 고립되어 있던 외딴 가옥마저 상당수 그 같은 운명을 벗어날 수 없었다. 이것은 군사적 목적을 갖고 나름의 논리에 따라 수행되는 전략폭격이라고 말할 수 없는 무지막지한 초토화폭격, 대량학살폭격이었다.”(같은 글)

김태우가 지은 《냉전의 마녀들 한국전쟁과 여성주의 평화운동》(창작과 비평)에서도 이 때의 상황을 그대로 묘사하고 있다.

“장진호 전투에서 많은 피해를 입은 국군과 유엔군은 1950년 12월 원산이 적중에 넘어가 퇴로가 차단되자 흥남 해상으로 철수할 수밖에 없었으며, 흥남주변에 몰려든 10만 명의 북한주민들도 유엔군의 도움을 받아 선박으로 월남하였다.
한국전쟁기 미공군 공중폭격의 양상이 1950년 11월 5일을 전후하여 질적으로 완전히 달라졌다. 이전에는 군사목표 정밀폭격정책이 중요하게 강조되었다. 그러나 11월 5일을 기점으로 공중폭격 양상이 완연히 달라졌다. 북한의 도시와 농촌의 인구밀집지역을 핵심 타깃으로 설정하는 이른바 ‘초토화정책’이 공식적으로 하달되었던 것이다. (한달 만인) 1950년 11월 미공군이 집계한 북한 주요 도시들의 파괴율에 따르면, 만포진 95퍼센트, 고인동 90퍼센트, 삭주 75퍼센트, 초산 85퍼센트, 신의주 60퍼센트, 강계 75퍼센트, 희천 75퍼센트, 남시 90퍼센트, 의주 20퍼센트, 회령 90퍼센트가 완전 파괴되었다. 이 같은 파괴율은 사실상 도시 전체의 전면적 붕괴를 의미했다.”

실제 조선일보는 [만물상]이라는 칼럼을 통해 “필사의 탈출”(김태훈 논설위원)이라는 제목으로 아프간에서 탈출 상황을 흥남철수와 연결시키고 있다. 제국주의 침략사를 은폐하고 정당화 하는 프로파간다는 한국전과 흥남이라는 시대와 공간을 훌쩍 뛰어 넘어 21세기에 아프간과 카불에서 똑같이 진행되고 있다. 서방 제국주의 언론은 카불 공항과 국경선에 수천 명씩 아수라장이 되어 몰려든 장면을 집중 조명하며 이들이 자유와 민주주의를 향해 탈출을 감행하는 자유의 투사이자 난민으로 묘사한다. 미군은 이들 중 극히 일부만 탈출시키고 자신들의 현지 협조자들에게 총질을 하고 이들이 수송기에 매달려 있는데도 잔혹하게 수송기를 이륙시켜 떨어지는 비극적인 사태도 벌어졌다.
미국 숭배주의에 빠진 한국 언론들도 서방언론의 논조를 그대로 따라 보도하고 있다. 그런데 이들 중 상당수는 미국의 아프간 점령 기간 동안 협조했던 군경이나 군경가족들로서 탈레반의 보복이 두려워서 필사적으로 탈출하려는 것이다. 권력을 잡은 탈레반이 미군 협조자들을 보복하지 않을 것이니 아프간에 남아 있으라고 거듭 발표를 하는 사실만 보아도 이들이 왜 필사적인 탈출을 시도했는지 알 수 있다.
언론들은 또한 일치된 논조로 탈레반의 잔학성을 부각하면서 여성의 권리가 탈레반의 권력탈환으로 무너지게 생겼다고 보도하고 있다.

“탈레반 달라졌을까?..공포에 떠는 아프간 여성들”(YTN, 2021.08.18.)  |

“아프간 난민 36만명 탈출행렬… “여성·아이에겐 지옥 될 것”(인사이트, 2021.08.14.)

“여자 혼자 외출도 불가” 탈레반은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한 후 가장 먼저 여성 인권 지우기에 돌입했다(안정윤, 2021년 8월 17일, 허핑턴포스트코리아)

“미용실 사진에도 검은 스프레이… 카불 여성 얼굴이 사라지고 있다”(정채빈 기자, 조선일보, 2021.0819.)

“탈레반 통치 첫날, 거리에 여성이 사라졌다”(김윤나영 기자, 경향신문, 2021.08.17.)

이러한 논조는 조선일보나 경향이나 다른 신문이나 다들 사전에 입을 맞춘 듯이 똑같다. 아프간에서 미군철수로 여성의 인권이 악화되게 되었다면 미군 진주 당시에는 여성의 인권이 대폭 신장됐다는 말인가? 그러면 아프간에서 미국은 여성인권 보장을 위해서 아프간에서 철수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인가?
미제의 드론 폭격으로 수많은 여성과 그 여성의 아이와 여성의 남편이 목숨을 잃고 부상을 당했는데 거기에 무슨 여성의 권리라는 게 있을 수 있는가? 폭격으로 정든 집이 처참하게 파괴되었는데 거기에 무슨 여성의 행복이 있고 가정의 행복이 있을 수 있는가? 빈곤으로 굶주리며 먹거리를 찾아 헤매야 했던 여성들에게 무슨 권리며, 행복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수백 만 난민이 된 여성들에게서 무슨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기대할 수 있다는 말인가? 탈레반의 권력 장악으로 여성인권의 후퇴를 앞 다퉈 폭로하고 언론들은 그만큼 진짜 전쟁원흉인 미제국주의의 폭압성과 여성 인권유린, 한 사회 전체의 파멸과 극단적 대립에 대해 폭로하고 비난한 적이 있었던가?
앞에서 정문태 분쟁전문 기자를 미제의 실상을 폭로하는 ‘참언론인’이라고 했는데, 최근 언론과 기자들은 입으로는 약자, 소수자, 여성인권을 매일 같이 떠들면서도 실제로는 미제국주의의 이해에 적극 복무하는 ‘참부역자’들이다.
심지어 “나라 뺏기면 이렇게 된다…화물처럼 포개진 600명 탈출 장면”(정은혜 기자, 중앙일보, 21.08.17.)이라는 기사 제목을 보면 언론이 이성을 상실해도 한참을 상실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미군이 철수해서 아프간이 나라를 빼앗겼으면 그 나라는 미국의 나라였다는 말인가.

“실제로 탈레반이 카불에서 집권할 경우 가장 큰 위험에 노출되는 부류는 여성들이다. 미국의 아프간 개입의 20년 동안 여성들의 지위가 상당히 개선되었다. 아프간 초등학교의 여학생의 비율이 40%에 달했고 상급학교 진학도 어렵지 않았다. 또한 여성에게 완전히 금지된 대학교 입학과 경찰직에 복무할 수도 있었다…
미국의 군사개입 동안 미국이 평등의 가치 하에 여성해방의 실현을 도왔으며 아프간 여성들과 그 지지자들에게 환영을 받은 것은 기정사실이다.
따라서 탈레반의 귀환은 아프간 여성인권 신장에 엄청난 타격을 줄 것이 확실하다. 그런 점에서 미국의 바이든 행정부의 실용주의와 자국 우선주의에 따른 아프간에서의 미군철수는 불가피하게 아프간 여성의 인권신장을 포기하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다.”(진태유 논설위원, [국제時評] 아프가니스탄,  “미군철수와 여성인권의 포기”, 시사뉴스피플, 2021.08.09.)

이쯤 되면 미국은 최소한 여성인권 측면에서는 아프간 봉건주의, 야만주의에 맞서는 해방자다. 대다수 언론이 탈레반의 악마성을 부각시키면서 진짜 하고 싶었던 말은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국 점령이 계속됐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군 철수를 되돌릴 수 없는 지금 상황에서는 미국의 아프간 지배가 정당했다고 미화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전 세계 나라들에서 미국의 침략과 진주를 정당화 하는 것이다. 한국 언론의 이러한 논조는 바로 이남에 미군이 진주하는 것이 정당하다는 것으로 연결된다. 아프간처럼 미군이 철수하면 탈레반 같은 악마인 북이 침략을 하게 되고 아프간에서 벌어지는 지옥 같은 아비규환의 상황이 연출될 것을 지레 경고하는 것이다.
‘미국 식 민주주의’가 실제로 이남에서는 강도 같은 점령, 학살, 주권 유린, 쿠데타와 인권유린, 암살, 민주주의의 파괴, 수탈로 점철되고 있는 것처럼, 미국이 아무리 아프간 괴뢰 정부에서 여성을 장관으로 임명하고 히잡과 부르카를 쓰지 않는 자유로운 이미지를 연출해도 아프간 여성들 절대 다수의 삶은 식민지 노예의 비참한 삶이다.
서방 제국주의 언론과 ‘참부역자’ 언론의 이러한 논조는 21세기 ‘식민지 근대화론’이다.
일제가 조선을 보호령으로 하면서 봉건적, 신분적 억압에 시달리던 여성을 해방시켰다. ‘신여성’은 조선봉건제의 억압으로부터 자유로진 현대화된 여성의 상징이다. 이 여성들은 봉건적 고루한 인식을 뚫고, 도도하며 자유롭게 사고하고 자유연애를 즐겼다.
그러나 이들은 대다수가 일제 친일파 부역자들, 지주, 고위관료들의 자식들로서 일본 유학을 다녀오기도 하는 엘리트들이자 식민지 현실을 외면하는 위선자들이었다. 그런데 이 극소수 ‘신여성’의 처지와 다르게 조선 식민지 여성 대다수는 봉건적 억압 보다 훨씬 더 극심한 착취, 억압, 수탈, 빈곤에 시달렸다. 일본군 ‘위안부’ 여성들의 처지는 더 말할 것도 없다.
미군이 점령하고 ‘미국식 민주주의’가 판치는 아프간에서 절대 다수 여성들의 처지도 이와 다르지 않다. 그런데 이러한 언론들의 영향을 받아 제국주의에 저항하는 세력들의 정치적 성격에 대한 논란으로 제국주의에 대한 저항과 제국주의 모순을 희석시키는 흐름들이 광범위하게 존재하고 있다. 특히 진보적 운동진영 내에서도 ‘신좌파’적 경향들이 그렇다.
이들은 미제와 나토 제국주의자들의 침략과 레짐 체인지라는 본질을 주된 모순과 본질로 인식하지 않고, 미제가 전복하려는 권력의 성격을 가지고 제국주의를 간접적으로 정당화, 비호했다. 이라크 후세인, 리비아 카다피, 시리아 아사드, 이란과 홍콩에서 최근에는 미얀마의 군부세력들까지 이들이 진보적인지, 사회주의적인지, 반제국주의적인지를 둘러싼 논란으로 미제와 영국 제국주의 같은 제국주의의 의도, 전략, 이해관계가 도리어 부차화되었다.
히잡이나 부르카를 벗는 것은 여성 진보의 상징으로 부각되고 있지만, 이것이 언제, 어느 때나 실질적 여성진보의 척도가 될 수는 없다. 상징은 현실을 반영하기도 하지만 현실을 왜곡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언론에서는 아프간 여성들이 자유롭게 거리를 활보하는 사진들을 게시하면서 아프간에서 진보적 인민정부가 탄생했을 때의 정치상황을 설명하지 않는다.
히잡이나 부르카는 문화적 차이, 역사성, 상대성을 존중하면서 바라봐야 하고 특히 오리엔탈리즘적 사고로 봐서는 안 된다. 오리엔탈리즘의 본질은 제국주의 관념이다. 프랑스에서 무슬림 여성이 히잡을 쓰는 것이 권리일 수 있고 중동에서는 히잡을 벗는 것이 권리일 수도 있다. 그것도 여성 주체가 판단할 문제다. 특히 제국주의가 자신의 전쟁범죄를 은폐하기 위해 내거는 ‘인권’, ‘여성인권’이라는 수사에 현혹돼서는 안 된다.

 

모순해결의 순서와 방법

 

오늘날 알튀세르주의자들과 여기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은 신좌파들은 모순의 ‘중층성’, ‘다양성’, ‘복수성’ 등을 말한다. 한 사회 내부 모순은 다양하고 이는 여성, 인권, 생태, 노동 등의 무지개 식 모순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들은 이러한 모순들의 중심에 있는 핵심적인 모순을 인정하려 하지 않으며, 사회 전체의 모순과 분리시키고 고립적으로 모순을 바라보기도 한다. 쉽게 얘기하면 우리 사회만 보더라도 자본주의 생산관계의 모순과 분리하여 개별적, 고립적으로 바라보고, 근본모순인 노동자와 자본가 간의 모순이나 제국주의 모순, 분단모순 등과 분리시킨다.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 철수를 보며 이들은 극단적 사고의 혼란을 보이고 있다. 아프간에서 여성권리 침해를 우려하는 이들은 과연 미제의 영구적 주둔을 찬성한다는 말인가? 대놓고 그렇다고 주장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대체 어쩌란 말인가? 이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갈팡질팡하고 있다.
아프간 사태를 바라보는 전 세계의 진보적 세력들, 아프간 내부의 공산주의자들은 아프가니스탄 내 모순을 어떻게 인식하고 어떠한 순서와 수단으로 처리해야 할 것인가? 이는 모순을 어떻게 인식하고 적절하게 처리하는지의 문제다.

“복잡한 사물의 발전과정에는 많은 모순이 있는데 반드시 그 중 한 가지가 주요한 모순이다. 그것의 존재와 발전이 기타 모순의 존재와 발전을 규정하거나 또는 그것에 영향을 준다…
반식민지국가, 예를 들면 중국과 같은 데서는 그 주요 모순과 주요하지 않는 모순과의 관계가 복잡한 상황을 나타내고 있다.
제국주의가 이런 국가에 대하여 침략전쟁을 진행하는 경우에는 이 국가 내부의 각 계급은 일부 반역자들을 제외하고는 일시적으로 단결하여 제국주의를 반대하는 민족전쟁을 진행할 수 있다. 이때에는 제국주의와 이 국가간의 모순이 주요 모순이 되고 이 국가내부의 각 계급간의 일체모순(봉건제도와 인민대중 간의 이 주요모순도 포함한)은 잠시 이차적이고 종속적인 위치로 물러선다…
그러나 다른 상황에서는 모순의 위치가 변한다. 제국주의가 전쟁으로 압박하지 않고 정치, 경제, 문화 등 비교적 온화한 형식으로 압박해올 때에는 반식민지국가의 통치계급은 제국주의에 투항하여 양자가 동맹을 맺고 인민대중을 공동으로 압박하게 된다. 이런 때에는 인민대중은 왕왕 국내전쟁의 형식을 취하여 제국주의와 봉건계급 간의 동맹을 반대하며 제국주의는 흔히 직접적 행동을 취하지 않고 간접적 방식을 취하여 반식민지 국가의 반동파를 도와 인민을 압박한다. 그리하여 내부적 모순의 특별한 첨예성이 나타난다.”(마오쩌둥, 《모순론》, 김승일 옮김, 범우문고)

마오쩌둥과 그가 지도자로 있을 당시 중국 공산당은 중국 내부의 모순을 이렇게 인식했다. 마오쩌둥과 중국 공산당은 봉건제도와 인민대중간의 모순을 적대적 모순으로 사고하여 싸운 적이 있었다. 손문 사후 군벌과 지주, 그리고 이들의 이해를 대변하는 국민당은 중국 인민대중의 적이었다. 그러나 일제가 중국대륙을 직접 침략하면서는 일제와의 모순이 주요모순이 되었다. 그리하여 유명한 제1차, 2차 국공합작이라는 통일전선이 형성됐다. 이때는 국가내부 각 계급간의 일체 모순은 이차적이고 종속적인 위치로 물러나게 됐기 때문에 일부 매판자본가들이나 친일파 같은 반역자들을 제외하고 침략자 일제에 맞서 식민지해방투쟁이 제안됐다.
그런데 제국주의가 전쟁으로 압박하지 않고 정치, 경제, 문화 등 온화한 형식으로 압박해 올 때는 종종 계급투쟁은 국내전쟁의 형식을 취하여 제국주의와 봉건계급에 맞서 투쟁하며 그럴 때에는 내부적 모순의 특별한 첨예성이 나타난다고 하고 있다.
지금까지 아프간에서 제국주의 외세의 개입을 규탄했는데 모든 외세 개입이 다 나쁜 것은 아니다. 1978년 4월 아프가니스탄에서 4월 혁명이 벌어지고 나서 진보적인 나지불라 인민정권이 들어섰다. 그러나 미제를 포함한 제국주의 원조를 받는 무슬림 세력인 무제헤딘 같은 반혁명 세력에 의해 혁명권력의 안위가 위태로워졌다. 이때 나지불라 정부는 소련에 군사지원을 요청했고 소련은 1979년 12월부터 아프가니스탄에 직접 군사개입을 했다. 그러나 1989년 2월 소련군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하게 되었다. 나지불라 정권은 소련군 철수 이후에도 1992년까지 제국주의 진영을 막대한 지원을 받고 있던 반혁명 세력에 맞서 투쟁했다. 이들 반혁명 세력들 중에서 탈레반이 탄생하게 되었고 이후 탈레반은 혁명권력이 무너지자 권력을 잡고 무자비한 반동적 통치를 하게 되었다.
이러한 시점에서 반혁명 세력에 맞서 싸우는 투쟁은 진보적이다. 전 세계의 진보세력은 인민정권을 옹호하고 군사개입을 하고 있는 반혁명 세력들을 규탄해야 한다. 물론 소련의 군사개입은 일종의 혁명의 수출이나 지원인데, 자체 인민의 힘으로 아프간 혁명을 수호하지 못하는 인민정권의 한계나 오류, 군사개입의 적절성 문제는 별개로 토론할 문제다. 분명한 것은 무자헤딘이 소련군 외세의 철수를 주장했다고 해서 이들이 자주세력이라고 할 수는 없다. 이들은 인민정권이 수행한 정치적 진보를 반혁명을 통해 송두리째 뒤집는 반동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2001년 미제가 아프가니스탄을 무력으로 침공했을 때에는 상황이 이와 정반대다. 이때는 제국주의 침략에 맞서 외세를 축출하는 것이 사활적 과제가 된다. 아프간 내부의 계급모순은 이차적, 종속적 과제로 되게 된다. 그럴 때에는 모든 역량을 다 동원하여 사활을 걸고 외세 제국주의 침략자들에 맞서 투쟁해야 한다. 제국주의가 국내 괴뢰 통치자들을 내세워 통치할 때에는 제국주의 무력과 함께 국내 괴뢰 세력들 전체에 맞서는 투쟁이 필요하다.
아프간에서는 미제의 무력 침공 이후 탈레반이 반제투쟁의 주도자 역할을 수행했다. 정치적 성격이 어떠하든 이들은 엄청난 희생을 무릅쓰고 미제에 맞서는 반제투쟁의 선봉에 섰고, 이들이 아프간 민중 상당수의 지지를 받았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이들의 정치적 성격과 상관없이, 테러라는 형식을 주된 전쟁의 형식으로 사용한 것에 대한 호불호와 상관없이, 이들이 수행한 반제반미 투쟁은 미국을 아프간에서 물러나게 했고 미국 패권에 심각한 치명타를 가했다. 아프간에서 미제 축출은 곧바로 이미 미군 철수 문제가 부각됐던 이라크에서 더 세찬 반미항쟁을 불러일으키며 미군 철수가 긴박한 정치적 문제로 떠오르게 할 것이다. 리비아에서도 마찬가지다. 더욱이 아프간에서 미군철수는 시리아, 이란에 대한 미제의 개입을 더 제한적으로 만들게 될 것이다. 미제의 패권 약화는 동북아에서도 미제의 패권을 약화시키게 될 것이며 남미에서도 마찬가지다. 물론 항상 그러한 순경이 나타난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렇게 될 객관적 가능성이 높아지게 된다.
그렇다면 제국주의 침략자들이 물러난 이후에 아프간 인민들은 무슨 선택을 해야 할 것인가?
국제 진보세력들은 미제가 철수된 뒤 아프간에 대한 제국주의 진영의 제재를 반대하고 아프간의 자주적 발전을 기원해야 한다. 아프간이 미제 식민지 통치의 후과를 일소하는 것을 지지해야 한다. 다만 아프간에서 민주주의의 억압, 여성에 대한 억압, 빈곤의 지속, 아프간 내부 계급모순이 심화되고 이에 저항하는 진보적 세력들이 나타날 때에는 이들을 적극 지지하고 지원해야 한다.
제국주의 외세 침략자들이 물러난 이후에 아프간 인민들이 자신의 정부를 지지할지, 아니면 내부 모순의 격화에 맞서 새로운 저항을 할지는 아프간 인민들 자신들이 자주적으로 선택할 과제다. 아프간 인민들은 제국주의의 개입 없이 자신들의 운명은 자신들이 개척해야 한다. 노/정/협

이 기사를 총 540번 보았습니다.

노정협

전국노동자정치협회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