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0민주항쟁의 이름으로 명령한다 – 6월10일 올들어 12번째 군사작전 저지투쟁
은영지(사드저지 평화활동가)
오늘은 6.10 민주항쟁 34주년을 맞는 역사적인 날이다. 군인독재자 전두환이 장기집권 탐욕을 부리면서 인권을 유린하고 박종철을 고문살해하고 4.13호헌 조치를 발표하자 반독재 민주화 운동이라는 전 민중적 저항에 직면하게 된다. 1987년 6월10일 전국 대규모적인 국민대회에서 호헌철폐, 독재타도를 부르짖고 대통령 후보인 노태우가 6.29 항복선언을 하면서 그야말로 민중의 힘으로 민주화를 앞당긴 감동의 역사를 펼친 시간들이었다.
그러나 이 의미있는 역사적인 날에 소성리는 또다시 1000명이 넘는 경찰병력에 침탈당하는 고통을 겪었다. 대구평통사 김찬수 대표는 비통한 목소리로 발언을 시작했다.
“노태우가 1987년 장충체육관에서 민정당 대통령 후보로 뽑힌 날 민중들이 대통령 직선제와 민주화를 요구하는 6.10민주항쟁을 일으켰어요. 지금 우리 소성리는 어떻습니까? 5.18 광주민주항쟁 41주년인 지난 5월18일에 소성리에 국방부와 경찰이 대규모 군사작전을 폈고 오늘도 군사작전으로 짓밟히고 있습니다.
정부당국은 오늘 기념식을 하고 민주주의의 중요성에 대해서, 국민의 민주적 권리에 대해서 얘기를 할 것입니다. 김천구미역에서도 6.10민주항쟁기념 사진 전시회를 하고 있어요. 올해 구호가 ‘민주주의 바람되어 역사에서 일상으로’입니다.
문재인 정부, 부끄럽지 않습니까? 문재인 정부는 6.10항쟁 정권이잖아요. 6.10항쟁의 기억들이 청와대에 가 있고 여의도에 있고 통일부 장관도 되고… 소성리의 민주주의는 대통령 기념사에, 총리의 기념사에 문구로만 있지 일상의 주권자로서 소성리 주민들에게 인권이 있고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인정받고 그것을 지키기 위한 그런 권리가 있습니까?
6.10민주항쟁의 이름으로 명령합니다.
경찰은 지금 당장 철수하라!!
6.10항쟁의 원혼들이 외칩니다.
경찰병력 철수하라!!
6.10항쟁 당시의 사진을 보면 경찰병력이 명동성당을 에워싸고 그 안에 우리 학생들, 시민들, 수녀님, 신부님들이 갇혀 있습니다. 최루탄이 자욱한 가운데 거리 구석구석에 모여서 쓰러져가는 시민들을 경찰들이 무자비하게 끌어내는 장면들을 볼 수 있습니다. 지금은 최루탄이 안 보인다고 민주주의입니까? 물론 그 전보다 일보 전진한 건 사실입니다. 그것을 권력자들이 해줬습니까? 자본가들이 해줬습니까? 경찰이 했습니까? 우리 민중들의 피와 땀이 서린 투쟁으로 이뤄냈습니다.
6.10항쟁 기념식의 사진과 오늘 소성리의 주권과 인권, 민주적 권리가 유린되는 이 장면이 함께 적어도 신문기사 1면은 아니더라도 사회면 정도엔 실려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오히려 그것을 기사화해서 성주 김천 원불교의 평화를 지키고자 하는, 우리 주민들과 교도들의 이름으로 오늘 하루의 투쟁이 기억되고 이 땅의 진정한 민주주의가 어떻게 실현되어야 하는가를 온 국민들에게 알리는 6월10일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소성리가 민주주의이고, 평화이고, 정의입니다. 주민의 평화적인 집회시위를 보장하지 않는 나라가 무슨 민주주의입니까? 저 경찰들은 여기에 서서 주민을 짓밟으면 그 댓가로 수당을 챙기고 월급 봉투 두둑해질지 모르지만 우리 주민들은 농사를 포기하고 일상생활을 포기하고 몸을 상해가면서 이 아스팔트 위에서 민주주의와 평화와 정의와 인권을 지키려고 투쟁하고 있습니다. 오늘 하루 우리의 저항이 6.10항쟁의 정신을 이어받아 이 땅의 민주주의와 평화를 진정으로 이루는 길이라고 생각하고 힘들더라도 주민들을 믿고 동지들에게 의지하고 손잡고 당당하게 투쟁하면 좋겠습니다.”
김대표가 묵직하고 숙연한 발언을 하는 와중에도 경찰들은 마치 딴 세상에 와 있는 것처럼 자기들끼리 잡담을 하거나 스트레칭을 하며 한가로운 행동을 하는 게 아닌가. 금련 어머니를 비롯한 할매들이 “저것들 미쳤나. 우리 앞에서 뭐하는 짓이고~ “라며 역정를 내셨다. 삶을 송두리째 빼앗기고 밤낮없이 투쟁하고 있는 주민들에 대한 최소한의 연민이나 공감 능력조차 없는 경찰들의 참을 수 없는 가벼운 행동에 모두 혀를 끌끌 찼다.
원불교 김선명 교무님이 경찰들을 빗대어 발언하신 ‘악의 평범성’에 대한 얘기가 참으로 적절한 비유였다.
“저 경찰들처럼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지 못하는 능력, 그것을 “악”이라고 합니다. 저들은 그것에 대해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말하는데 있어서 아무 거리낌이 없고 행동하는데 있어서 거리낌이 없기 때문에 그런 ‘악’이 지배하는 것이죠.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은 독일의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의 1963년 저작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 나오는 유명한 구절입니다. 600만명의 유대인을 학살한 나치 친위대 장교 아이히만은 이스라엘 법정에서 ‘나는 무죄다’라고 주장합니다. 이유는, 자신은 ‘공무원으로 상부의 명령을 실행하였을 뿐, 유대인을 죽이지 않았다’.라고 믿고 있으니까요. 이러한 악행은 히틀러와 같은 극악무도한 독재자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우리의 이웃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아이히만이 유대인 학살이라는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것은 그의 타고난 악마성이 아니라 그도 집에서는 다정한 남편이요, 자상한 아버지였는데, 아무런 생각없이 그저 시키는 대로 자신의 직무를 수행했을 뿐이라고 주장한 것입니다. 한나 아렌트는 그래서 ‘ 타인의 고통을 헤아릴 줄 모르는 무능은 말하기의 무능과 행동의 무능을 낳는다’ 고 했습니다. 생각하지 않고 그저 시키는 대로 직무를 수행한(모범적 공무원?) 아이히만은 그렇게 홀로코스트를 자행했던 것입니다.
아이히만처럼 우리 경찰들도 아무 생각없이 주민들을 폭력적으로 끌어내고 고착시키는 행위가 자기들은 ‘공무집행’이라고 하지만 결국은 불법사드에 면죄부를 주고 선량한 시민들을 겁박하고 주권을 팔아먹은 매국행위나 다를 바 없습니다. 제복입은 시민들이 타인의 고통과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한 평화운동에 공감하지 못하는 것이 지금 ‘우리의 비극’입니다. 경찰이 저렇게 마이크 들고 주민들에게 법 조항을 들먹이며 협박 방송을 하는 자체가 ‘구조적인 폭력’입니다. 저들이 여기에 들어온 것 자체가 공권력의 남용인 것이죠.
우리는 개인의 안위와 평화를 위해서만이 아니라 소성리 평화를 지키는 것이 궁극적으로 세계 평화를 지켜내는 것이라는 걸 알기에 누가 시키지 않아도 여기 이렇게 앉아 있는 것이고 어떤 고난이 닥쳐도 이 자리를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곱씹어봐야 할 명연설이었다. 소성리 아스팔트 위에서는 늘 이렇게 역사에 길이 남을 정의와 저항과 자주의식이 살아 펄떡인다. 오늘도 경찰의 무지막지한 폭력에 맞서긴 했지만 모두 길밖으로 내던져졌다. 경찰은 주민과 연대자들을 못 잡아먹어 안달하는 짐승같았다. 팔 다리와 어깨와 가슴을 대여섯명의 경찰들이 우르르 달려들어 사방으로 비틀어 꺾고 들어올릴 때는 능지처참을 당하는 것처럼 고통을 느낀다고 어느 연대자가 하소연했다. 저들에겐 인간의 품격과 향기라곤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 없었다. 교무님의 악의 평범성이 진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도 부산과 울산, 포항에서 온 연대자들은 4~50명밖에 안 되는 주민과 평화지킴이들을 제압하기 위해 들이닥친 엄청난 수의 경찰병력과 그들의 난폭한 행동에 분노했고, 음용수 차량 3대와 각목 실은 트럭 몇 대만이 사드기지에 들어가는 상황에 놀라워했다. 마을길을 미군 군홧발 들여놓기 위한 ‘작전을 위한 작전’에 불과하다는 걸 모두 느꼈다.
진보당 경북도당 김차경 위원장은 문재인 정부에 대한 분노를 드러냈다.
“소성리에 올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억장이 무너지는데요. 박근혜 정부와 문재인 정부의 차이가 뭔가요? 세월호 유가족이 말씀하셨어요. 두 정권 사이에 차이가 있다면 문재인 정권이 조금 더 친절한 거, 이만큼의 차이밖에 없다고요. 얼굴로 웃으면서 다 들어줄 것 같이 얘기하면서 손으로 때리고 발로 차고 한다는 거죠. 진짜 미운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성질 바락바락 내면서 때리는 사람보다 더 미운 놈들은 실실 쪼개면서, 위하는 척 하면서 손과 발로 공격하는 사람이죠.
여기에 ‘대화경찰’이 왜 있는 겁니까? 대화를 하기 위해서 있는 겁니까? 대화경찰의 목적이 뭡니까? 해산시키는 거 아닙니까? 진지하게 대화하는 척하면서 뒤에서 몰래 사람들을 두들겨 패면서 고생시키는 게 무슨 대화예요? ‘종교안전팀’이 종교를 위하는 겁니까? 목적은 해산시키는 거 아닙니까? 저는 그래서 문재인 정부가 더 밉습니다.
또 한가지, 우리 옛말에 ‘말이나 못하면 밉지나 않지’ 라는 말이 있습니다. 문재인이 얼마나 그럴 듯한 말 많이 했습니까? 정작 그 말이 얼마 갔습니까? “비정규직 제로시대” 얼마나 좋습니까?
“우리는 반만년을 함께 살았고 70년을 헤어져 살았습니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롭다” 했습니다. 얼마나 멋진 말입니까?
말은 그런데 현실은 그렇습니까? 비정규직 없어졌습니까? 비정규직 양산하는 법, 근로자 파견법, 기간제법 만들어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고통을 주었죠. 국회에서 방망이 두드리면 하루 아침에 비정규직 없어집니다. 안 하지 않습니까? 더 이상의 기대, 더 이상의 미련, 이런 거 애초부터 없었지만 진짜 해도해도 너무합니다. 박근혜처럼 철퇴 맞을 짓을 계속하면 철퇴 맞는다는 걸 문재인 정권에게 경고하고 싶습니다.”
“임순분 부녀회장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소성리 마을길을 미군 군홧발이 지나가는 거 놔둘 수 없습니다. 미국의 안보를 위해서 자국민의 안전을 내팽개치는 정신 나간 국가권력에 맞서 싸우고 평화를 지켜내는데 저도 힘을 보태겠습니다”
어느 연대자의 말이 내내 뇌리에 맴돌았다. 오늘도 무척 힘들고 화가 나는 싸움이었지만 멀리서 연대온 동지들이 있어 외롭지 않았다. 십시일반 밥묵차의 유희 동지, 기수 동지가 허기지고 슬픈 속을 채워주어 더 든든했다. 여세를 몰아 사드와 미군 뽑고 승리의 역사를 거머쥘 때까지 계속 전진이다. 노/정/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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