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일 50주기 열사 정신계승 2020노동자대회에 부쳐 – ‘노동존중’을 자가배반하는 “의지의 상징적 표현”을 뚫고 완전한 정치적 해방으로 나아가자!

정부 발표에 의하면, 11월 12일 문재인 대통령은 전태일 열사 국민훈장 무궁화장 추서식에서 “오늘 전태일 열사에게 드린 훈장은 ‘노동존중 사회’로 가겠다는 정부 의지의 상징적 표현”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어 문재인 대통령은 “노동존중 사회에 반드시 도달할 것이라는 의지를 갖고, 수많은 전태일과 함께 나아가겠다”고 밝혔다고 한다.

“의지의 상징적 표현”! 바로 그렇다. 이 정권의 본질을 스스로 정확하게 드러내는 표현이다.

국민의힘 윤희숙 의원의 “주52시간 노동제를 연기하는 것이 전태일 정신에 부합하는 것”이라는 착란적 망언에서 보듯, 박근혜 정권이나 현 ‘국민의힘’은 노동존중이라는 “의지의 상징적 표현”조차도 거부하고 반노동자 반민중적 반민주적 탄압을 노골화 한다. 반면 이 정권은 ‘노동존중’을 말하는 “의지의 상징적 표현”만 있을 뿐, 그 상징표현 뒤에서 그 의지를 배반하고, 심지어 실제에 있어서는 그 상징조작 뒤에서 반노동자적 탄압을 저지르고 있다.

민주노총의, 노동자들의 “전태일 50주기 열사정신계승 2020 전국노동자대회”는 코로나19 방역을 핑계로 탄압을 예고당하고 있고, 대다수 언론은 전태일 열사를 말하는 그 입으로 전태일 열사 정신 계승 집회에 대해서 온갖 악선전을 퍼붓고 있다.

“비정규직 제로시대”라는 선언 뒤에서 국회 다수당이 되었는데도 그 의지의 상징적 표현을 배반하는 파견제, 비정규직 같은 악법들을 폐기할 움직임은 전혀 없다. 비정규직 제로의 ‘마중물’이 되겠다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정책은 저임금 영구적 비정규직화로 마중물이 아니라 온 사회를 비정규직화 하는 ‘구정물’이 되고 있다.

지난 2월 문재인 대통령은 고 김용균 가족들을 만나 “스물네살 꽃다운 나이의 김용균씨의 안타까운 사고소식을 듣고 가슴이 아팠다”며 “특히 첫 출근을 앞두고 양복을 입어보면서 희망에 차있는 동영상을 보고 더 그랬다. 모든 국민들이 마음 아파했을 것”이라고 위로했다. 그러면서 문재인 대통령은 “그래도 자식 잃은 부모의 아픔을 다 헤아릴 수는 없을 것”이라며 “간접적으로 애도의 마음을 전했지만 이 자리를 빌어서 진심으로 애도의 뜻을 표한다”며 거듭 위로의 말을 전했다.

최고 권력자로서 참으로 절절한 위로의 말을 전했지만, 9개월이 지난 지금에서도 노동자들의 중대재해 사망은 계속되고 있다. 여전히 이 땅의 청년 김용균들을 비롯한 노동자들은 열악한 노동조건 속에서, 저임금 속에서, 불안정 노동에 시달리다가 중대재해로 비통하게 죽어나가고 있다.

“진심으로 애도의 뜻을 표”하는 “의지의 상징적 표현” 뒤에서 여전히 그 의지를 실현할 수 있는 법적 수단인 중대재해 기업처벌법(기업살인법) 제정은 외면당하고 있다. 이낙연 민주당 대표 역시 불과 2개월 전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해마다 2,000명의 노동자들이 산업 현장에서 희생되는 불행을 막아야 한다”며 ”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이 그 시작”이라고 말했지만, 자본가들의 눈치를 보며 “그 시작”을 주저하며 거부하고 있다.

범죄자 이재용은 정권의 비호 하에 사실상 ‘사면’을 받으며 이건희의 공식 사망 처리 뒤에 삼성의 후계자로서의 공식 행보를 하고 있다. ‘노동존중’이라는 “의지의 상징적 표현” 뒤에서 실제로는 사망 처리된 악질 범죄 대착취자 이건희에게 최대의 찬사를 표하며 자본가들과 자본가들의 세상에 대한 최대한의 존중과 경외를 표시하고 있는 것이다.

“최저임금 1만원 인상”이라는 의지의 상징적 표현 뒤에서 약간의 최저임금 인상 뒤에 최임 산입범위 확대로 “줬다 뺏기”를 하는가 하면, 2021년에 적용될 최저임금은 2020년 8590원 대비 1.5% 오른 8700원으로 역대 최저의 인상폭을 기록하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이라는 “의지의 상징적 표현” 뒤에서 물가인상 대비 실질 최저임금 인상은 삭감되고 있는 것이다.

“소득주도 성장”이라는 “의지의 상징적 표현”은 노동자들의 실업대란과 저임금, 소상공인들의 최악의 폐업대란과 농민들의 소득감소로 상징은 폐기되고, 반면 ‘불로소득 주도성장’이라는 조롱이 나올 정도로 불로소득자과 그 기생적인 불로소득자들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자본가들의 태평천하가 계속되고 있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며 자신의 몸을 불살랐던 전태일 열사에게 국민훈장 무궁화장 추서식을 하면서, 역대급 노동개악을 추진하는 정권의 자기배반적인 행동을 보노라면, “의지의 상징적 표현”의 폐기를 넘어 이 정권의 담당자들이 “반사회적 인격장애”가 아닌가하는 의구심을 가지게 한다.

“의지의 상징적 표현”의 실제에서의 배반과 폐기가 비단 노동문제뿐인가?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5.18기념사에서 “5.18은 불의한 국가권력이 국민의 생명과 인권을 유린한 우리 현대사의 비극”으로 규정하고, “이 땅의 민주주의를 온전히 복원”하고, “성숙한 민주주의의 꽃을 피워낼 것”을 다짐했다. 게다가 “5월 광주를 왜곡하고 폄훼하려는 시도”에 대해서는 용납할 수 없는 일”이고, 이는 “역사를 왜곡하고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그런데 이 “의지의 상징적 표현”말고, 부관참시를 당해도 모자랄 5.18수괴 살인마 전두환은 법적단죄를 받기는커녕 골프나 치러 다니며 인생 말년을 즐기고 있다. 전두환 재산몰수도 하지 않고 있다. 더더욱 중요한 것은 광주 역사왜곡의 정점인, 군사반란을 배후에서 조종했던 미제국주의의 개입에 대해서도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으며 미제를 마치 “미국식 민주주의”, “인권보장”의 국가로 찬양하고 있다. 최근 바이든 ‘당선자’가 전두환의 “4·13 호헌 깊이 우려”했다는 기사가 심심찮게 나오고 있는데, 이는 ”미국 식 민주주의“와 ”인권보장“의 나라로 미국을 추켜세워 암살과 공작, 폭정 및 폭격으로 얼룩진 미제국주의의 추악한 전쟁사, 외교사를 미화하려는 파렴치한 행위에 불과하다.

광주의 진실뿐만 아니라. 1948년 4.3제주 대학살을 비롯해 여순항쟁 피학살자, 1950년 보도연맹 대학살과 등 한국전쟁을 전후로 한 국가권력의 민중대학살의 전모와 여기에서 미군정이 수행한 역할은 은폐되고, “양민의 희생”이라는 “의지의 상징적 표현” 외에는 실질적인 역사적 진실의 추구도 외면당하고 있다.

희대의 악법인 국가보안법은 “표현의 자유와 알권리 제한하는 ‘국가보안법 7조부터 폐지’” 운동이 펼쳐지고 있고, 민주당 몇몇 의원들도 여기에 동참하고 있지만, 민주당은 7조의 폐기조차도 단호하게 처리하지 못하고 미적거리고 있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7조부터 폐지”하고 난 뒤에 그 후속으로 국가보안법 자체를 폐지할 의지가 있는지, 7조의 폐기가 국가보안법의 영구적 존속을 위한 명분으로 이용할지에 대해서도 불분명한 상황이다.

문재인 정권은 국가보안법에 대해서조차도 “의지의 상징적 표현”이 아니라면 국가보안법 전면 폐지라는 실질적 행동을 보여야 한다.

“의지의 상징적 표현”은 최고의 형태와 실제적 현실의 최대한도의 배반은 4.27판문점 선언과 9.19평양선언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문재인 정권은 이 두 선언의 발표로 님북관계의 평화적 발전과 ‘민족자결’이라는 “의지의 상징적 표현”을 선언했으나 현실은 양 선언 2주년이 넘은 시점에서도 미제의 눈치를 보며 하나도 진척되지 못하고 있다.

“세월호 학살” 진상규명은 또 어떠한가? 문재인 정권은 ‘촛불정부“라고 자칭하기도 했고, 실제 박근혜 정권 퇴진 촛불투쟁은 세월호 학살 책임자 처벌과 진상규명 투쟁으로부터 비롯됐다. 그런데 정권을 잡은 지 3년이 지나고, 2021년 세월호 7주기가 다가오는 시점에서도 세월호 침몰 진상규명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국정원은 세월호 관련 모든 자료를 세월호 유가족에게 공개하겠노라고 약속했으면서도 자신들이 자료를 철저하게 선별. 관리, 통제하며 자료 공개를 회피하고 있다. 더욱이 세월호가 증축, 과적, 평형수 부족, 복원력 상실에 의한 급변침이라는 박근혜 당시의 검경합동수사본부의 발표가 과학적으로 거짓으로 드러났고, 최근에는 그 내인설을 유지하기 위한 솔레노이드 고착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사참위) 진상규명 소위원회에서 결론을 내렸는데도 사참위 전원위원회에서 조사보고서 채택을 거부하고 있다. 내인설은 세월호 진상규명을 가로막는 최대의 걸림돌인데도 민주당은 박근혜 시절의 내인설을 완강하게 고수함으로써 진상규명을 회피하고 있다.

문재인 정권의 “공약”이었던 세월호 진상규명의 회피는 진상규명이라는 실제를 배반하는 또 하나의 중대한 “의지의 상징적 표현”에 다름 아니다.

최근 정부의 대통령은 전태일 열사 국민훈장 무궁화장 추서식에 이어, 언론에서도 온통 전태일 열사에 대해 보도하고 있고, 심지어 여야의 부르주아 의원들조차도 전태일 열사를 언급하고 있다. 그런데 전태일 열사 정신은 이제 하나가 아니다. 자본의 주구들도 “나눔”이니 “화해”니 하며 전태일 열사 정신을 말하고 있다.

최근에는 전태일 열사를 기억하고 추모하는 방식이 하나가 아니라 여럿이 되었다. 지금으로부터 반백년 전인 박정희 군사 파쇼 정권 시절에 열사가 염원했던 사회가 아직도 도래하지 않았다면, 그리고 그 뒤에도 수백 명의 전태일이 생겨났다면, 우리는 결국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가 꿈꾸는 사회, 희망과 행복을 누리는 사회는 실현불가능하다는 것을 절대적 진리처럼 확인할 수밖에 없다. 맑스주의를 계급투쟁 사상이 아니라 휴머니즘으로 한정하여 부르주아 화해사상으로 변질시키는 것은 맑스주의에 대한 모독이듯이, 비타협적인 전태일 열사 정신을 나눔과 양보로 한정하여 부르주아의 이기적 이해에 맞추는 것 역시 열사에 대한 모독이다.(“맑스주의의 과학성과 혁명성은 어떻게 형성되었는가?”, 《맑스주의와 무정부주의》 머리말 중에서)

전태일 열사의 정신은 권력과 자본에 대한 불굴의 투쟁 정신이다. 그러나 해방과 한국전쟁에서 민중의 해방 열망을 잔인하게 짓밟는 반공주의 백색테러 체제와 그 정점에 있었던 박정희 파쇼 체제 하에서 전태일 열사의 정치의식은 소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5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전태일 열사의 정신을 1970년대로 낮추려는 온갖 음험한 시도는 정치적 해방으로 나아가려는 노동자 계급의식을 심각하게 왜곡, 굴절시키는 것이다.

국가보안법은 노동자 민중이 정치적 전망을 가지고 해방된 세상으로 나아가려는 의지와 투쟁을 가로막는 역할을 수행했다. 국가보안법은 해방의 열망으로 가득 찼던 격동의 현대사와 전쟁과 분단의 역사적 의미와 진실을 추구하는 것을 가로막았다. 특히 투쟁을 이야기하고 해방을 이야기하는 ‘진보’적 운동진영에까지 반공반북주의가 심각하게 팽배하고 있는 상황은 국가보안법의 존재이유가 어디에 있는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2020년 11월 13일 전태일 열사의 정신 계승은 정권의 “의지의 상징적 표현”에 포섭되어 부르주아 체제에 굴종, 굴복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 계급의 완전한 정치적 해방으로 나아가는 새로운 기점이 되어야 한다. 노/정/협

이 기사를 총 344번 보았습니다.

노정협

전국노동자정치협회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