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노사정위 참가 기도에 부쳐 – 거듭되는 망각, 거듭되는 파멸의 길

배신과 양보로 얼룩진 노사정위원회

이름을 바꾸면 사물의 본질이 바뀌는가? 예나 지금이나 그렇다고 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 으뜸은 이명박이었다. 이명박은 대운하 건설이 엄청난 사회적 비난에 직면하자 4대강 사업이라고 이름을 바꿔 추진했다. 오늘날 4대강 사업은 대운하와 별반 다르지 않는 사회적 재앙을 가져다 주고 있다.

적폐의 온상 국정원을 해체하기는커녕 이름만 바꾸면 그 본질이 바뀔 것이라며 사기치는 문재인 정권도 4대강 사기꾼 이명박에 못지않게 노동자 민중을 기만하고 있다. 노사정위원회를 통한 사기도 마찬가지다.

노사정위원회(노사정위)는 언제나 노동자에게 재앙이었다. 1998년 김대중 정권 하에서 만들어진 노사정 3자 대표로 구성된 1기 노사정위원회는 1월 20일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정간의 공정한 고통분담에 관한 노사정 공동선언문’을 발표하고 이어 2월 6일에는 정리해고, 근로자파견제를 합의했다. 이처럼 노동자계급에게 파멸과 재앙을 안겨준 노사정위는 기존의 노동악법 도입과는 다른 방식을 취했다. 그것은 사회적 대화라는 신종 노동악법 도입 방식이었다.

기존 일방적인 노동악법 도입은 노동자의 대대적인 저항을 낳았다. 1996년 12월 26일 김영삼 정권의 노동법 개악 날치기 공세에 맞서는 총파업 투쟁이 바로 그것이다. 민주노총 총파업 투쟁으로 정리해고제는 2년 유예됐다. 자본과 권력은 이를 통해 값비싼 학습을 했다. 노동악법은 도입하되 저항을 줄이는 것이다.

언뜻 모순적인 듯한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노동운동의 상층 관료들이 필요했다. 사회적 대화라는 신종 무기로 상층 관료들을 노사정위에 유인해 거기서 교섭을 해보자고 했다. 이른바 바터(barter)라고 노동자의 이해와 자본의 이해를 머리 맞대고 대화와 교섭으로 풀어 주고받기를 해보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바터 결과는 참담했다.

정리해고제와 파견제 도입의 대가로 전교조 합법화와 복수노조 허용 합의를 주고받았다. 그런데 정리해고와 근로자파견제 합의 대가로 나온 성과는 지난한 전교조의 투쟁의 성과가 일부 반영돼 있지만 파업권이 빠진 노동2권이었다. 복수노조 허용은 오랜 기간 노동자의 숙원이었지만, 오늘날 그것은 교섭창구단일화 등의 조항으로 독소조항이 생겨버려 노동악법이 되어 버렸다. 그 대신 정리해고제, 근로자파견제 도입은 한국사회를 대량해고가 판치고 비정규직이 급격하게 늘어나는 헬대한민국으로 만들어놓았다. 그런데 노사정위는 노조대표자들, 실은 상층의 타락한 관료분자들을 끌어들임으로써 노동운동 내부를 극도로 분열시키고 혼란으로 몰아갔다. 노동악법 도입이 동의와 설득, 합의의 모양새를 취하면서 기층 노동자들의 저항과 반발을 봉쇄하려 했다. 물론 노사정위에서 이러한 반노동자적 악법을 수용하자 현장에서는 난리가 났다.

1998년 2월 8일 민주노총 대의원대회 전날 노동자들은 민주노총(위원장 권영길) 사무실을 점거했다. 민주노총 사무실 유리가 박살났다. 그 자리에 나타나 변명을 하려했던 당시 부위원장이었던 김영대(나중에 노무현 정권 때 열린우리당 국회의원이 되었다.)는 분노한 노동자들에게 따귀를 얻어맞았다. 다음날 성균관대 유림회관에서는 민주노총 대의원대회가 폭설이 쏟아진 가운데 열렸다. 민주노총 2월9일 대의원대회장 로비에서 노동자들은 쇠파이프를 들고 대의원대회장 앞에서 무력시위를 했다. 노사정위 합의안을 찬성하는 대의원들은 쪽문으로 대대장에 들어가야 했다.

결국 엄청난 항의와 극렬한 소란 속에 공개투표를 하기로 하고 마침내 합의는 부결됐다. 단병호 위원장이 총파업 비대위원장이 됐다. 그러나 며칠 뒤 총파업이 일방 철회됐다. 이로써 반노동자적 노사정위 합의안인 정리해고제, 근로자파견제가 입법화 됐다. 노사정위는 소기의 목표를 달성했다. 기층 노동자를 배신한 상층 관료분자들을 사회적 대화의 틀로 끌어들여 노동자 내부를 분열시키고 혼란을 주고 저항을 무력화시키면서 자본의 간악한 이해를 효과적으로 관철시키는 것이다. 이를 노사·노사정 사회적 협조주의, 코포라티즘(corporatism)이라고들 한다.

이러한 협조주의는 현실에 존재하는 자본가와 노동자의 적대, 자본가 국가와 노동자·인민의 적대를 은폐하려는 자본과 권력의 이데올로기다. 당시 노사관계를 협조와 협력의 관계로 만들 수 있다는 착각과 허위에 빠져 있었던 노사정위 참가 세력들은 이렇게 말했다.

투쟁만 하고 대화와 교섭은 하지 말자는 거냐?

들어갔다가 언제든지 다시 나와 싸우면 된다.

그러나 사회적 합의주의는 일회적 교섭 방식의 변화 정도가 아니다. 노자타협이라는 자본의 사상과 자본의 공세 일체이다. 국가는 중립적 초월자가 아닌 자본의 철저한 변호인이었다. 부드러운 대화의 방식을 빌어 거대 폭력을 관철시킨다. 사회적 대화를 하자며 내민 손에는 날카로운 비수가 숨겨져 있다.

결국 재앙의 끝을 경험하고는 노사정위를 탈퇴하게 되었다. 그런데 변호인 노무현이 대통령이 되고나서 또다시 노사정위 공세가 재개됐다. 노동귀족론, 고임금론 이데올로기 공세가 같이 펼쳐졌다. 노무현 정권은 기존의 노사정위에 대한 반발이 극심하자 이제는 “노사정위원회 개편방안”이라고 둘러대며 “노사관계 선진화 방안”으로 제출된 “노사관계 로드맵”을 노사정위원회의 핵심 의제로 삼으려 했다. 노사관계 로드맵 폐지라는 노동운동의 투쟁 요구를 노사정이 머리를 맞대고 논의해야 할 의제로 둔갑시켰던 것이다.

이는 정규직 임금삭감과 파업권을 무력화시켜 조직된 민주노조를 와해시키려는 의도였다. 현재 “촛불대통령” 문재인에게 혹해 있는 것처럼, 당시도 변호인 노무현의 “인권 변호사” 경력에 현혹돼 있는 상황에서 또다시 노사정위 복귀 시도가 두 차례나 있었다. 당연한 일이지만 변호인 노무현은 자본의 변호인이 돼있었다. 국가는 노사 간 초월자, 중립자가 아니었던 것이다. 서 있는 곳이 달라지니 풍경도 달라지고 이해관계도 달라진 필연적 결과였다.

2005년 1월 20-21일 민주노총 정기 대의원대회에서 “사회적 교섭 안건” 처리를 통한 노사정위 복귀 시도가 무산된 뒤 2월 1일 영등포 구민회관에서 열린 민주노총 임시 대의원대회 연단이 점거됐다. 당시 민주노총위원장은 이수호였다. 이수호위원장이 앉아 있던 위원장석 옆에서는 격렬한 몸싸움이 일어났다. 나중에는 심지어 소화기가 터졌다. 아수라장 속에 노사정위 복귀는 무산됐다. 연단점거자들 대다수는 노사정위 합의의 직접적 피해 당사자들인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정리해고를 경험했던 노동자들이었다.

언론에서는 이 극렬한 분열상을 즐기며 마치 백색테러 난동배인냥 노사정위 반대자들을 극렬 매도하며 물고 뜯고 씹기에 바빴다. 그리고 3월 15일 잠실에서 다시 임시 대의원대회가 개최됐는데 이 자리에서도 연단점거로 노사정위 복귀가 무산이 됐다. 노사정위는 이후로 민주노총의 금기가 됐다. 그 누구도 감히 용감무쌍하게 노사정위 복귀를 대놓고 주장하지 못했다. 이후 2009년 12월 4일에는 이명박 정권 하에서는 노조전임자 임금지급을 금지하고 악법조항이 있는 복수노조를 허용키로 하는 한국노총, 경총, 노동부 3자 합의안이 발표됐다. 이 합의안에 대해 한국노총 내에서도 격렬한 반발이 일어나 중집회의 도중 한국노총 위원장이 산별위원장 등에 의해 감금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박근혜 정권 들어서는 사회적 합의주의 포섭공세보다는 일방 탄압이 주를 이루면서 민주노총 내에서는 노사정위 참여 논의 자체가 없었다. 2013년 박근혜 정권은 2017년까지 고용률 70%를 달성한다는 목표를 내세우며 노사정대타협을 위한 노사정위원회 참여를 독려했다. 한국노총은 이 노사정위원회에 참여했으나 민주노총은 불참했다. 그런데 이 고용률 70% 달성이라는 목표 하에 한국노총, 경총, 고용노동부는 노사정대표자회의를 운영하기로 합의하기도 했다. 사실 이는 자본주의의 실업문제를 은폐하고 노동자의 공동책임을 내세워서 노동자의 양보를 끌어내려는 술책에 비춰볼 때 현 문재인 정권의 일자리위원회와 하나도 다르지 않다. 정권이 ‘노동존중’이라는 명목적 구호를 내걸고 있다는 점에서만 다를 뿐이다.

2014년 연금 개악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려던 정권은 2014년 10만, 2015년 3월 8만이 결집하는 공무원 노동자들의 저력을 보자 이제는 국회 내 대타협기구 설치를 제안했다. 이 논의기구를 통해 2015년 5월 국회에서는 공무원연금 개악 합의를 했다. 10만의 저항을 무력화 하고 결국 정부안은 거의 그대로 관철시켜 낸 것이다.

박근혜 정권은 2014년 12월 ‘2015년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하고 최우선 과제로 ‘노동시장 유연성 제고’를 주장하며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를 통한 노동시장 구조개혁을 밀어붙이려 했다. 어용 한국노총은 논란 끝(사실은 논란이라는 형식을 빌려)에 노사정위원회에 들어갔다. 노사정위에서는 이른바 양대지침이라고 불리는 일반해고 지침과 취업규칙 변경요건 완화를 합의하려 했다.

한국노총은 2015년 4월 8일 노사정대화 결렬 선언을 하며 탈퇴하고 총파업 찬반투표와 47일 간의 천막농성을 하는 정치쇼를 거쳐 다시 8월 26일 노사정위 복귀 선언을 하고 마침내 9월 14일 일반해고와 취업규칙 일반변경 안을 정부안과 근본적으로 차이가 없는 내용으로 일괄합의를 했다.

신 사회적 대화는 과연 새로운가?

노사정위의 반동적 실체가 경험적으로 폭로되고 극렬한 저항으로 무산되자 이제는 새로운 형식과 구성을 갖춘 사회적 대화가 당면 쟁점이 되었다. 이번 민주노총 직선2기 선거에서 노사정 복귀를 대놓고 주장하는 세력은 3번 윤해모 후보 진영이다. 사회연대포럼이라고 문성현을 필두로 대선에서 공개적으로 문재인을 지지한 관제세력이니 대놓고 노사정위 복귀를 주장하는 것은 정해진 수순이다. 문성현이 노사정위원장이 됐으니 권력과 손잡은 권력의 하수인 선본인 것이다.

4번 조상수 선본과 1번 김명환 선본은 대놓고 노사정위 복귀를 주장하지는 않지만 새로운 형식과 구성으로 사회적 대화틀을 재구성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김명환 선대본이 마침내 그 ‘새로운’ 내용을 밝혔다.

김명환 후보조는 노사정위 체제에 부정적인 의견을 내놓았다. 노사정위와는 완전히 다른 △노동기본권 보장과 법·제도 개선사항 △노동현안 해결에 관한 사항 △노사관계·교섭제도 발전과 경영참가에 관한 사항 △임금·고용·노동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산업정책·사회경제정책에 관한 사항 등 4가지 의제를 다루는 ‘노동존중 사회를 위한 새로운 사회적 대화기구’로서의 새로운 노사정 대화기구가 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를 위해 기존 한국노총이 제안한 8자 회의(노사 대표 4명·정부 대표 2·대통령·노사정위원장 참여)에서 노사정위원장이 아닌 국회 대표자를 포함시키는 신8자 회의에서 논의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김명환 후보조는 “이미 사회적 대화기구 기능을 상실하고 노동계 반발을 사고 있는 노사정위가 (8자 회의에) 참가할 경우 또다시 파행을 피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연윤정 기자, 민주노총 임원직선제 ‘사회적 대화’ 의제 불붙나 김명환 후보, 신8자 회의 제안 … 다른 후보들도 의견 밝힐 듯, 매일노동뉴스, 2017.11.16.).

김명환 후보조는 “노사정위 체제에 부정적인 의견을 내놓았다”면서 “노사정위와는 완전히 다른 ‘  새로운 사회적 대화기구’로서의 새로운 노사정 대화기구”를 주장하고 있다. 김명환 후보조는 이름 바꿔 본질을 바꾼다는 눈 가리고 아웅 식 사고의 전형적인 사례를 보여주고 있다. “체제(體制)”라는 사전적 의미는 이것이 단순한 형식과 구성을 넘어 보다 근본적이고 총체적인 의미를 담고 있음을 보여준다. 김명환 후보조 스스로 “노사정 체제”라고 하여 이것이 단순한 하나의 기구와 형식, 구성을 넘어서는 근본적이고 총체적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결국 “노사정위 체제”는 노사정위원회라는 기구와 형식만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합의주의라는 자본의 사상과 공세, 수단, 목표 일반을 의미한다. 사회적 합의주의는 노조 내부의 상층 대표자들을 끌어들여 동의와 설득을 내세워 자본의 이해를 효과적으로 관철시키는데 복무한다. 노조 대표자들이 여기에 포섭되어 동원(참여)되기 때문에 자본의 이해는 전체 국민적 이해로 포장된다.

자본의 이데올로기는 노사 상생·협조 이데올로기, 사회적 파트너십, 사회통합 이데올로기와 명분, 구호가 동원된다. 여기서 국가 권력은 노사 간의 이해관계에서 중립자, 초월자를 자처한다. 노조 대표자들이 참여하기 때문에 노동자들의 저항을 효과적으로 봉쇄할 수 있다. 계급의식을 마비시킨다. 노동운동 내에 분열과 대립, 혼란을 야기한다. 노동운동의 자본과 정권에 대한 결전태세를 무력화 시킨다. 투쟁력을 약화시킨다. 정리하면 사회적 합의주의의 최종 목표는 노조와 노동운동 전체를 국가의 동원 대상, 활용대상으로 이용하여 자주성을 파괴하고, 더 나아가 그 실물을 파괴함으로써 자본의 세계를 건설하는 것이다. 노사정위는 이를 위한 기구인데, 그 목표가 실현될 수 있다면 명칭과 구성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는 것이다.

김명환 후보조는 “노사정위와는 완전히 다른”이라는 전제를 달고 있으나 “‘노동존중 사회를 위한 새로운 사회적 대화기구’로서의 새로운 노사정 대화기구”를 그 결론으로 주장하고 있다. “노사정위와는 완전히 다”르다면 “새로운 노사정 대화기구”가 아니어야 한다. “새로운”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해서 그것이 “노사정 대화기구”가 아닌 것이 아니다. “새로운 형식과 절차, 구성”을 가진 노사정 대화기구가 되는 것이다.

김명환 후보조가 사회적 대화기구에 “새로운”이라는 명칭을 붙이는 것은 두 가지 이유다. 첫째, 의제가 다르고 둘째, 기구 구성이 다르다는 것이다.

먼저 의제는 “△노동기본권 보장과 법·제도 개선사항 △노동현안 해결에 관한 사항 △노사관계·교섭제도 발전과 경영참가에 관한 사항 △임금·고용·노동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산업정책·사회경제정책에 관한 사항 등 4가지”를 다루는 것이다.

김명환 후보조는 이 새로운 사회적 대화 기구가 “한국노총이 제안한 8자 회의(노사 대표 4명·정부 대표 2명·대통령·노사정위원장 참여)에서 노사정위원장이 아닌 국회 대표자를 포함시키는 신8자 회의”로 구성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신 노사정위원회는 기존 노사정위원회에 비해 의제가 다르고 대통령까지 참여한다는 것이다. 한국노총 안과 다른 것은 노사정위원장이 빠지고 그 자리에 국회 대표자가 포함된다는 것이다. 이 안에 따르면 노사정위원장 대신에 국회 대표자가 1인으로 참여하는 것이 될 것인데, 현재 자유한국당과 민주당 중에 한 명이 국회 대표 자격으로 올 것인데 노사정위원장이 참여하는 한국노총 안과 무엇이 다른지 알 수가 없다. 노사정위원장이 빠짐으로써 반노동자적 합의를 한 기존 기구와는 성격이 다름을 보여주는 자기위안의 최면효과나 노사정위 복귀에 대한 반발을 누그러뜨리는 명목이 생겼다는 점만 다르다.

그런데 먼저 일단 장관급인 노사정위원장이 빠지고 대통령까지 참여하는 이러한 신 노사정위원회 구상에 정부가 응할 가능성이 얼마나 되는지 의문이다. 아무리 신자가 붙어도 노사정위원회는 노사정위원회인데 정부로서는 노사정위원회가 무력화되는데 노사정위원장을 빼고 들어갈 수는 없다. 대통령이 그 자리에 참여할지도 의문이다. 설사 참여하여 “실질적”인 사회적 대화 기구가 된다고 한다면, 노사대표 4명 중 2명은 자본가 대표이고, 1명은 한국노총이고 1명은 민주노총 대표가 될 것이다. ‘실질적’ 사회적 대화기구는 반노동자적 합의의 효력이 명목상으로가 아니라 ‘실질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줄 뿐이다.

이 기구에는 정부 대표와 대통령까지 포함하면 정부 측 인사가 3명이나 된다. 국회대표자 1인도 기존 자유한국당과 민주당에서 나올 것이다. 그렇다면 그 사회적 대화 기구는 구성상으로 보면 기존 노사정위 구도 보다 더 불리한 민주노총 1대 자본 측에 가까운 한국노총 1대 6의 구도가 될 것이다. 결국 1대 7의 구도인데 여기에서 노사정위원회에 참여하는 민주노총 대표는 썩어빠진 관료적 사상을 가진 1인이 될 것이니 노사정위원회는 필연적으로 자본을 위한 무대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김명환 후보조가 문재인 대통령이 중립적이거나 “노동존중”적인 대통령이라고 사고한다면 대선에서 대놓고 문재인을 지지했던 사회연대포럼 측의 윤해모 진영과 다를 바가 하나도 없는 변절 투항주의 세력으로 전락하는 것이다.

김명환 후보조는 자신들이 내건 “4가지 의제를 다루는” “새로운 노사정 대화기구가 돼야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결자해지라고 했으니 이러한 노동기본권과 법·제도 개선 사항 중 하나는 과거 노사정위를 통해 합의한 정리해고제와 근로자파견제 같은 악법 개폐가 주요 안으로 올라가야 한다(노사관계·교섭제도 발전과 경영참가와 산업정책·사회경제정책이 노사 타협주의를 바탕으로 노동운동을 제도화하고 무력화하려 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여기서는 더 이상 언급하지 않겠다.).

그런데 이 4가지 의제는 “다루는” 것으로 확정된 의제가 아니다. 앞으로 신 노사정위원회에서 김명환 선대본이 다루고자 하는, 다루고 싶어 하는 주관적 소망을 가진 의제다. 새로운 노사정위원회에는 민주노총만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7인의 대표가 추가적으로 참여한다. 의제는 “사회적 대화”의 대상이 있는 만큼 정부와 자본, 국회 대표의 동의가 있어야 올라간다. 그리고 설사 김명환 선대본이 다루고자 하는 의제가 올라간다 하더라도 나머지 7인의 이해당사자 대표와의 합의가 있어야 한다. 게다가 이 각자의 참여 대표자들은 민주노총만큼이나 다루고 싶어 하는 자신들의 의제가 있다. 이들이 원하는 의제는 민주노총이 다루고 싶어 하지 않는 의제일 것이다. 그 내용은 반노동자적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의제를 민주노총 대표가 어떻게 막을 것인가? 화려한 언변으로, 아니면 뛰어난 외교술로, 그것도 아니면 술책으로 막아낼 것인가? 어림도 없는 얘기다.

이 새로운 노사정위원회 참가를 다루는 안건이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에 올라간다면 민주노총 내부는 격렬한 내분에 휩싸이게 될 것이다. 단언컨대 3차 민주노총 대의원대회 연단점거 사태가 벌어질 것이다. 민주노총은 그로 인해 투쟁 태세를 갖추지 못하게 될 것이다. 투쟁 조직화도 뒤로 미루게 될 것이다. 노사정위원회에 들어갔다가 여차하면 나오면 된다고 생각하는 김명환(윤해모 선대본은 말할 것도 없고 조상수 선대본도 마찬가지다.) 선대본은 정리해고제, 근로자파견제 등 역대 정권과 자본이 사활을 걸고 입법화한 노동악법을 노사정위원회에서 대화와 협상으로 폐지하겠다고 생각하는가?

노동악법을 폐기하고 노동기본권을 쟁취하기 위한 노동자 대중들의 거대한 투쟁 없이 자본과 권력이 그러한 양보를 할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만약 그렇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전혀 현실성 없는 주관적 몽상에 불과할 것이다. 향후 민주노총을 끌어간다고 하면서 그런 비현실적인 몽상에 사로잡혀 있다면 민주노총의 자주성도 심각하게 유린될 것이고, 민주노총의 투쟁력과 투쟁정신도 심각하게 훼손될 것이다.

“‘사회적 대화’는 고상하고 우아한 게 아니다”

극도로 추악하고 반동적인 것이다

노사정위원회 참가를 거부하고 사회적 대화를 방기한 지난 20여년 동안 산하조직 조합원들의 엄청난 투쟁과 희생에도 불구하고 민주노총이 정치적 영향력과 사회적 위상 추락을 겪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한국 자본주의의 변혁은커녕 개혁에도 별다른 기여를 하지 못하는 세력으로 점차 전락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장날에 장에 가지 않으면 장을 볼 수 없다. 장날은 내 맘대로 바꿀 수 없다. 물건값을 흥정할 수는 있지만, 내 맘대로 결정할 순 없다. 시장통에서는 뒤통수도 맞고 속임수도 겪고 소매치기도 당한다. 하지만 내가 잘하면 원하는 물건을 살 수 있고, 이웃도 만나고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며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듣기도 한다. 자주 장터에 나가면 목 좋은 자리를 파악하고 잘하면 차지할 수도 있다.

사회적 대화에서 노사정위원회가 차지하는 의미는 익살스럽게 이야기하면 장날의 장터와 같은 것이다. 장에 가지 않으면 물건을 사고팔고 흥정하는 기술을 익힐 수 없다. 장터에 돌아다니는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도 못 듣게 된다.

사회적 대화는, 구체적으로 노사정위원회는 ‘신자유주의’를 뛰어넘는 고상하고 세련된 무언가가 아니다. 사회의 주요 계급과 계급이 국가를 매개로 서로 부딪히며 자웅을 겨루는 운동장이자, 자기 물건은 비싸게 팔고 남의 물건은 싸게 사려 흥정하는 장터다. 이를 우아한 말로 바꾸면 정보-협의-교섭이 된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국가가 구조적으로 지배계급의 편을 드는 것은 당연한 경향이다. 그래도 장날에 장이 서면 장 보러 가야 한다(‘사회적 대화’는 고상하고 우아한 게 아니다, 윤효원 인더스트리올 컨설턴트, 매일노동뉴스, 2017.11.13.).

과연 이 작자의 인식대로 노사정위원회 참여 거부와 사회적 대화 방기로 인해 민주노총의 정치적 영향력과 사회적 위상이 추락했는가? 그렇다면 노사정위원회 참여로 민주노총이 정치적 영향력과 사회적 위상을 높인 것은 무엇이 있는가? 민주노총이 여전히 정치적 영향력을 가지고 있고 지금 수준의 사회적 위상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노사정위원회 참여라는 상층 배신 관료들의 집요한 시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끊임없이 투쟁해 왔기 때문이다. 감옥에 가고 수배와 해고를 당하면서도 끈질기게 투쟁해 왔기 때문이다. 비정규직 철폐를 외치며 싸워 왔기 때문이다. 사회 전체의 문제를 가지고 싸워 왔기 때문이다. 민주노총의 정치적 영향력과 사회적 위상이 여전히 낮다면 그러한 투쟁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윤효원 같은 작자들은 항상 사물을 거꾸로 바라본다. 원인과 결과를 뒤집어 놓는다. 현실성을 이야기하지만 가장 비현실적이다. 노동자 대중을 대상으로 간주하는 엘리트주의에 빠져 있다. 이러한 작자들은 노동자의 삶을 “장날의 장터”에서 “물건을 사고팔고 흥정하는” 거래의 대상으로 생각하고 있다. 이 장터에서 노동자의 생존권과 노동기본권을 대화로 “흥정”하려 하고 있는 것이다. “시장통에서는 뒤통수도 맞고 속임수도 겪고 소매치기도 당한다.”며 과거 노사정위원회에서 정리해고제와 근로자파견제 도입, 양대지침의 도입을 시행착오 정도로 묘사하고 있다. “자주 장터에 나가면 목 좋은 자리를 파악하고 잘하면 차지할 수도 있다.”면서 노사정위에 자주 들락거리다보면 운 좋게 요행수가 얻어걸릴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다.

이 작자의 말대로 “사회적 대화는 고상하고 우아한 게 아니다.” 추악하고 반노동자적이고 반동적이었다. 노동자계급에게 파괴적이고 파멸적이었다. 노동자 계급의 삶을 가지고 “흥정하는 기술”을 익힌 배신적 관료주의자들에 의해 노동자의 삶이 도매금으로 넘어 갔다.

지난 시기의 노사정위원회가 정부와 자본의 일방적 구조조정을 합리화하면서 노동자의 희생만을 강요하는 기구로 전락했던 ‘안 좋은 추억’을 지닌 상황에서 민주노동당 의회진출, 산별건설 진전이라는 일부 변화를 들어 노사정위 재참가 여부를 논의하기는 어려웠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 와중에 5월 31일 노사정대표자회의에서 새로운 노사정위 체제를 논의키로 했다는 소식은 기존 노사정위와는 확연히 다른 사회적 교섭틀을 만들어야 한다는 민주노총의 입장을 관철하여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기대가 크다(김창희 사무금융연맹 정책실장, ‘노동과 세계’ 제293호, “노사정위 참가를 앞에 두고 어떤 행동을 조직할 것인가?”, 노동자정치신문 준비 6호, 2005-01-16).

보다시피 2005년에도 “지난 시기의 노사정위원회가 정부와 자본이 일방적 구조조정을 합리화하면서 노동자의 희생만을 강요하는 기구로 전락했던 ‘안 좋은 추억’을” 기억하고 있으면서도 “기존 노사정위와는 확연히 다른 사회적 교섭틀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로부터 12년 뒤인 2017년에도 여전히 “기존 노사정위와는 확연히 다른 사회적 교섭틀”로 노사정위를 복귀하자는 복고적인 주장이 나오고 있다.

“새로운 노동운동”, “대안노조운동”은 언제나 새로울 것이 하나도 없었고, 대안이랄 것이 하나도 없었다. 오직 노동운동의 원칙을 훼손하고 자본과 권력에 굴종하여 노동자의 삶을 팔아먹는 배신자들의 기회주의적 구호일 뿐이었다.

“일방적 구조조정을 합리화하면서 노동자의 희생만을 강요하는 기구로 전락했던 ‘안 좋은 추억’”을 도대체 몇 번이나 반복하려고 하는가? 거듭되는 망각으로 노동자의 인식을 마비시키고 또다시 자본과 권력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으려는 협조주의 투항파들의 의도를 분쇄해야 한다. 노/정/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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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협

전국노동자정치협회

신 노사정위 참가 기도에 부쳐 – 거듭되는 망각, 거듭되는 파멸의 길”의 2개의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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