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 애국, 계급…등이 토론과 논쟁의 대상이 되는 데 대해
이범주
민족에 대해
유럽 사정을 들여다 보면 한 국가를 구성하는 민족이 대단히 복잡하게 얽혀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예컨대 폴란드의 경우 서쪽으로는 게르만족 동쪽으로는 슬라브족이 다수를 점하는데다가 거기에 유태인, 집시, 체코인, 슬로바키아인…등이 섞여 있어 민족구성이 매우 복잡하다. 러시아, 독일, 프랑스, 옛날 유고슬라비아, 벨기에, 네덜란드…다 그렇다. 심지어 이란도 그러하다. 말하자면 유럽 포함 많은 나라들이 그렇다.
이런 조건에서 민족을 강조하면 이는 곧 분열과 갈등을 부른다. 따라서 자기만의 배타적 상품시장인 국민국가를 만들어 제 나와바리를 확보하고자 하는 부르조아 계급의 입장에서도, 민족을 초월해서 계급적 연대를 확보하고자 하는 노동계급의 입장에서도 민족은 금기의 언어가 된다.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노동계급에게는 국가는 없다”….류 맑스의 선언도 이런 맥락에서 언급된 내용일 것이라고 난 이해한다.(물론 민족이 침략의 언어로 활용된 경우도 있다. 예컨대 나찌즘의 독일)
아시아 특히 한국의 경우는 다르다. 최근까지 국민국가를 이루지 못한 채 공국으로 분열되어 거듭되는 전쟁으로 일관해 온 유럽과는 다르게 한국은 천 년 이상 통일된, 단일언어 단일 민족국가를 운영해 왔고 더구나 일본에게 식민지로 전락되어 민족의 자주권 회복이 초미의 실천적 과제로 등장한 조건에서의 민족은 계급적 처지와 사상의 상이함을 넘어 민족해방, 주권회복의 기치를 향해 모이게 하는 단결의 언어, 저항의 언어가 된다. 식민지로 전락한 조건에서 각각의 상이한 계급적, 계층적, 사상적 입장을 먼저 내세우면 저항역량을 최대한 조직, 동원하는 게 도저히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민족의 이름으로 저항역량을 최대한 결집하는 것, 이를 일러 항일통일전선이라 칭했다. 일제의 침략을 받았던 중국과 식민지 조선에서 등장한 개념이다.
애국에 대해
유럽에서의 애국은 침략과 배타, 기만의 언어다. 제 나와바리를 확장하기 위해 다른 국가를 장악해 제 상품시장 권역으로 편입시기려 했던 일국의 부르조아들은 국내에서의 적대적 계급이익에서 기인하는 계급투쟁을 민족이라는 추상적, 비과학적 언어로 은폐하고 다른 나라를 침략하고자 하는 의도를 애국심이라는 명분으로 합리화시켰다. 따라서 유럽에서의 애국은 기만의 언어, 침략의 언어, 국수(國粹)의 언어였다.
하지만 식민지로 고통받았던 제3세계 국가에서의 애국은 다른 의미를 지닌다. 주권을 상실해 식민모국에 부역하는 극소수 매판세력을 제외한 절대 다수 거의 모든 인민들의 극단적 수탈과 착취에 고통받는 조건에서의 애국은 민족국가의 자주권 회복을 위해 계급, 계층, 사상의 차이를 넘어 최대한의 역량들을 결집해 낼 구심의 언어, 단결의 언어, 저항의 언어로 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일부 사람들은 “그렇게 주권 회복해 봤자 결국 자본가들의 계급적 이익에 봉사하는 거 아니냐” 문제제기 하지만 통일전선 결성을 통한 전민항쟁을 추구했던 중국과 조선, 벳남의 사례를 보면 그렇지 않다. 제국주의를 추방하고 국가의 주권을 회복하는 과정이 곧 제국주의와 매판세력의 수중에 장악되어 있던 토지와 공장, 기업, 은행, 도로, 임야 등을 박탈하여 국유화 즉 전인민적 소유로 전환하는, 생산관계에서의 실제적 변화를 수반했기 때문이다. (비록 세력은 미약했지만 김구의 임시정부도 이런 내용의 정강을 천명하고 있었다.)
이렇듯 동일한 개념도 역사적, 지리적, 사회경제적 배경과 맥락에 따라 내용과 의미가 달라진다. 말하자면 유럽적 상황에서의 민족, 애국 개념과 식민지 고통을 겪거나 겪고 있는 조건에서의 민족, 애국의 개념이 실천적 함의에서 전혀 같지 않다는 말이다. 그런데도 유럽개념에서의 민족과 애국의 잣대를 식민지 혹은 신식민지적 고통을 당하고 있는 국가들에게 그대로 적용하는 사람들이 있다. 문제가 있는 것이다.
결국 이 문제에 대한 인식의 차이로 귀결되는 것 같다.
“한국은 주권국가인가 아닌가”
“주권국가가 아니라면 주권을 회복해야 하는가 아니면 이대로 살아도 되는가.”
지금의 한국이 주권국가라 생각하거나 주권이 없다 하더라도 이대로 살아도 생각한다면, 말하자면 주권이라는 게 현실적으로 중대한 의미를 가질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 민족과 애국 개념은 실천적 의미를 잃어버린다. 반면 주권국가가 아니라고 생각하거나 주권이야말로 선차적으로 확보해야 할 매우 핵심적 가치라고 생각한다면 민족과 애국개념은 여전히 실천적으로, 역사적으로 극히 중대한 의미를 갖는다. 어떤 기준으로 세상을 보는가. 이것이 철학과 사상, 세계관을 가른다.
하지만 이런 걸로 논쟁하고 다툰다는 게 실은 말이 안 되는 얘기다. 세계 자본주의 체제의 제1 대빵으로서 전대미문 일극 패권 행사하며 전 세계 거의 모든 전쟁 일으키고 약소국들 정권교체, 주권유린, 자원약탈, 자본에 의한 국제적 수탈 자행하면서 온갖 행악 저질러 온 미제국주의의 존재를 빼놓고서 전쟁과 가난, 내전 등의 고통으로 가득한 지금 세상에 대해 무엇을 설명할 수 있다는 말인가. 자주, 민족, 애국…개념이 그런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하는 것이라면 어떻게 그게 냉소의 대상으로 될 수 있겠는가. 또한 착취, 피착취 계급모순의 궁극적 해결을 지향하지 않는다면 자주, 민족, 애국이 또 뭔 소용이 있겠는가.
단일 대상의 복합된 핵심 문제를 드러내므로 결국은 실천적으로나 이론적으로나 상호 보완되어야 할 두 측면이 상호 갈등의 원인이 된다는 게 실은 어불성설인 것이다.
사진출처: 민주노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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