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급과 자주

이범주

 

– 자주성…. 외부의 부당한 힘에 굴복하지 않고 자기답게, 자신의 이익과 지향에 맞게 살고자 하는 사람들만의 사회적 속성이라고 일단 정의하자. 동물이나 다른 생명체들에게는 자주성이 없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면서 살기 때문이다. 노동을 통하여 자연을 변화시키고 사회적 행위를 통해 기존 사회질서를 바꿔가면서 사는 존재라는 이유로 오로지 사람만이 자주성이라는 사회적 특성을 갖는다. 그러므로 자주성은 사람이 지닌 본질적 특성이다.

– 자주성은 ‘대상과의 관계’를 전제로 한 개념이다. ‘나’라는 한 개인이 억울하게 억압받고 있거나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강요당하면 개인적 차원에서 자주성이 억압된다. 사회적으로 동일한 계급적 처지에 있는 이들이 억압, 착취당하면 계급 차원에서 자주성이 억압된다.

비록 구성원 모두가 동일한 계급 처지에 있지는 않지만 민족 전체가 식민지적으로 예속되어 있다면 민족 차원에서 자주성이 억압된다. 자주성은 사람의 본질적 특성이므로 사람들은 자주성 옹호를 위해 투쟁한다. 사람 사는 세상이 전면적으로 자유롭고 평등하게 되지 않는 한 자주성 구현을 향한 노력에는 그침이 없다. 그러므로 자주성 향한 투쟁은 인류가 존재하는 한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 자연과의 관계에서도 자주성은 적용된다. 풍부한 물질문명을 향유하고자 하고 고된 노동으로부터 해방되고자 하는 사람들은 과학기술을 활용하여 생산력을 향상하기 위해 노력한다. 이는 자연과의 관계에서 나타나는 자주성 구현을 향한 투쟁이다.

– ‘자주’가 전 인류에게 보편적인 화두로 등장한 시대는, 자본주의 생산력이 극도로 발달한 유럽 제국(諸國)들이 생산력이 미발달한 전 세계 후진국가들을 식민지로 지배하기 시작한 최근 시기부터가 아닌가 한다.

이때부터 제국주의 국가들이 중남 아메리카, 아프리카, 중동, 아시아 후진 나라들의 자주권, 생존권을 유린하며 잔혹하게 수탈, 착취해 왔고 지금은 2차 대전 후 최강대국으로 떠오른 미국이 그 나라들의 뒤를 이어 그 지역을 신식민지적으로 지배하려 하고 있다.

– 부당한 침략과 지배는 이에 대한 정당한 저항과 투쟁을 부른다. 지금 후진국들은 미국으로부터의 예속탈피, 미국과 결탁한 국내 매판세력의 척결, 궁극적으로는 국내에서의 계급차별 철폐를 위해 투쟁한다. 이는 지금 전 세계적인 차원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니 가히 ‘자주의 시대’라 할 만 하겠다.

– 지금의 한국을 생각한다. 비록 생산력은 당장 사회주의로 전환되더라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발달했지만 한미동맹, 군 작전지휘권 상실, 분단, 국가보안법, 경제의 심한 대외의존, 식량주권의 상실…등에서 보듯 한국은 아직도 미국의 신식민지적 지배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금의 한국에서 군사, 경제, 정치, 외교, 남북관계…에서의 주권은 심각하게 훼손되고 분단의 법률적 표현인 국가보안법으로 인해 진보적인 사회를 향한 운동이 거의 봉쇄된 상태다. 이러한 상황은 이 나라에서 미국에 대한 자주성 회복이 선차적으로 해결되어야 할 불가피의 과업임을 알려주고 있다.

– 민족적 예속 상황은 한반도 전체차원에서…더 나아가 해외동포까지 아우르며…이 문제 해결에 이익과 관심을 공유하는 광범위한 사람들이 결집할 것을 요구한다. 이런 실천적 요구에서 ‘조국은 하나다’, ‘우리 민족끼리’라는 통일전선的 슬로건이 등장한다. 오로지 ‘계급’이라는 창(窓)을 통해 이 복잡한 현실을 설명할 수 없다.

– 계급과 자주를 생각해 보자. 계급투쟁은 왜 하는가. 투쟁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계급투쟁에는 자체에는 그것이 지향하는 가치가 표현되어 있지 않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물어야 한다. 무엇을 위한 계급투쟁인가, 무엇이 인민들로 하여금 계급투쟁에 나서게 하는가. 계급적 착취가 종식된 사회에서 사람들이 구현하고자 가치는 무엇인가. 그에 대한 대답으로 ‘자주성의 구현’을 말하면 어떨까.

– 계급소멸을 지향하는 혁명투쟁, 혁명 후 반혁명적 기도(企圖)로부터 혁명을 보위하는 것, 생산력을 부단히 발달시킴으로서 풍부한 물질생활과 쾌적한 노동을 달성하기 위한 노력, 농촌과 도시의 차이를 없애는 것,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의 차이를 없애고 남성과 여성의 차별을 없애는 것, 무지로부터 해방되는 것…. 이 모든 행위들이 각 국면에서의 자주성 구현을 위한 사람들의 투쟁이다.

– 자주성을 지향하는 노력은 필연적으로 사회주의, 공산주의를 지향한다. 부당한 사회적 억압 착취에 견결히 반대하므로 계급철폐를 주장하고(사회주의), 이상적 공산주의 사회 구현을 위해 생산력이 충분히 발전될 것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 이런 견지에서 “인간의 역사는 사람의 자주성 구현을 위한 투쟁의 역사다”라고 말하면 어떨까. 맑스는 인간 역사에 대해 “계급투쟁의 역사다”라 했는데…. 인간역사의 핵심적인 부분을 언급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협소하다는 생각을 안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인간이 인간답게 살고자 하는 여러 국면에서의 분투를 계급투쟁으로 귀결시킬 수는 없기 때문이이다.

위에서 언급했다시피 (가장 주요한 것으로서의) 계급투쟁 뿐만이 아니라 자연의 예속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주로 생산력 발달을 위한 투쟁으로 나타나는)인간의 분투, 계급철폐 후 도농간의 차이를 없애고자 하는 투쟁,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의 차이를 없애려는 투쟁, 남성-여성 성차별을 없애려는 투쟁 그리고 계급사회에 기인한 정신적 잔존물을 극복하고자 하는 사상적 문화적 영역에서의 투쟁….

모두가 인간해방 향한 노정의 빠뜨릴 수 없는 영역들이기때문이다. 이를 일러 ‘자주성 구현을 향한 투쟁’이라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계급이 종식되고 나면 인간의 역사는 끝나는가?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인간의 분투에는 끝이 없을 것이므로 인간 역사의 동력을 생각할 때 계급투쟁 그 이상을 우리는 생각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계급이 담고 있는 함의가 부분적이며 계급은 자주로까지 확장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단, 계급으로 분열된 사회에서 계급이 담고 있는 과학성, ‘절대 다수 노동하는 사람들의 지향과 이익을 옹호한다는 의미에서의 당파성’을 굳건히 견지해야 함은 물론이다.

– 자주는 대단히 추상의 정도가 높고 포괄적인 개념이긴 하지만 관념적이지 않고 공허하지 않다. 왜냐하면 자주는 현존하는 대립, 모순관계를 현실적 근거로 하고 있고 그 대립, 모순관계에서 고통받은 인민들의 삶에 대한 연민, 연대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 자주는 또한 사람 삶의 질을 평가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기준을 제시한다. 노복(奴僕)처럼 부림당하고 멸시받으면서도 월급 많이 받으면 행복한가. 제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권한마저 상실한 나라에 살면서도 그런대로 먹고 살면 문제 없는가. 돈을 산더미처럼 쌓아놓았다 한들 주위 사람들로부터 경멸과 저주를 한 몸에 받으면 그게 살만한 인생이겠는가.

사람은 먹을 수만 있으면 만족하는 짐승이 아니다. 자존을 희구하는 영적 존재다. 이러한 질적 측면에 대해 기존의 진보적 사상 그 어느 것도 충분한 답을 제시하지 못한 것 같다. 이 생략된 부분에 자주성을 슬쩍 집어넣어 세상을 보면 세상은 또 어떻게 달라 보이겠는가. 아마 지금까지의 풍경과는 다른 것이 풍부하게 펼쳐질 것이다.

– 맑스레닌의 사상과 주체사상은 상호 모순, 배타적인가. 그렇지 않다. 주체사상은 기존 맑스레닌 사상의 성과를 고스란히 흡수하면서 그 위에 달라진 조건과 상황 즉 나라가 식민지로 전락한 조건에서 민족해방 무장투쟁을 하고 해방 후 교조주의와 수정주의에 맞서 자주적 입장에서 조선의 현실에 맞게 사회주의를 건설했던 경험을 담아 성립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양 사상을 상호모순, 배타의 관계가 아니라 계승, 발전의 관계로 보는 것이 정당할 것으로 보인다.

– 상황은 변하고 이론은 역동적으로 변하는 상황을 설명하고 향후 대안을 찾아야 한다. 변화된 상황에 대해 이론적으로 해명하고 그에 준해 실천하며 이룬 성과의 총화가 기존 맑스 레닌의 사상에 주체사상이 추가로 기여한 부분 혹은 독자성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 모든 사상, 특히 위대한 혁명사상은 천재적인 한 두 사람이 머리로 고안해 낸 것이 아니라 장구한 기간에 걸친 대중들의 투쟁과 실천이 총화된 결과물이다. 그러므로 주체사상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1930년대 항일 무장투쟁 이후 지금에 이르기까지의 북의 역사를 알아야 할 것이다. 노/정/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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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협

전국노동자정치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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