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4년 8인 적색독서회 사건을 2026년 8인 통일독서회 사건으로 다시 보는 우리는 부끄러워서 차마 하늘을 볼 수 없습니다
참으로 가당치 않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국가보안법 폐지 법안발의 300일을 맞아 국가보안법을 폐지하고 국민주권을 보장하라, 국민인권을 보장하라고 외치는 그 상황에서 다른 쪽에서는 국가보안법을 내세운 탄압이 자행되고 있었습니다. 국가보안법 탄압으로 국민주권은 무너졌습니다. 국민인권은 유린당했습니다.
더욱이 국가보안법 탄압은 <통일사회과학연구모임>이 북의 책을 읽고 토론했다는 이유로 벌어졌습니다.
1934년 일제시대에 8인 적색독서회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2026년 다시 8인 통일독서회 사건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처음 이 사건을 보고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별건사건으로 이정훈선생 자택을 압수수색 한다고 하더니 한성민 동지도 추가 압수수색이 들어왔다고 하고 급기야 8명 동시 압수수색을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오늘 기자회견을 알리면서 무죄가 ‘죄’가 될 수 있을지언정 공부가 죄가 될 수는 없다고 했습니다.
이 말은 단지 무엇을 강조하고자 하는 상징적 표현이 아닙니다. 실제 무지가 때로는 죄가 될 수 있습니다. 특히 우리가 북한이라고 부르는 조선에 대한 무지는 죄가 되고 있습니다. 북에 대한 무지는 단지 모른다가 아니라 악의적인 왜곡과 중상에서 비롯되고 있습니다. 이로써 북을 악마화 하고 적대화하고 있습니다. 북에 대한 무지는 북을 우리사회의 주적으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이를 통해 대북적대 정책과 경제제재 침략책동이 가능해졌습니다. 북을 적대시하면서 통일을 말하고 북적대시의 배후인 미국과 침략동맹인 한미동맹을 규탄하고 평화와 민주주의를 말하는 이들은 친북인사, 더 나아가 간첩이 되어 단죄했습니다.
이른바 북맹은 범죄입니다. 이 사회를 중세의 마냐사냥의 시대로 되돌리는 범죄입니다.
그런데 이와 반대로 도대체 북을 제대로 인식하고 자주와 평화와 통일을 열망하는 것이 어떻게 범죄일 수 있습니까?
북의 책을 읽었다는 것이 어떻게 범죄입니까?
언제는 적대화된 남북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바늘구멍이라도 뚫겠다더니 쇠못을 꽝꽝 박고 민주의 숨통을 틀어막고 있습니까? 언제는 국민의 알 권리를 보장하고 북한의 실상을 스스로 판단·평가하도록 하도록 노동신문을 자유롭게 열람할 수 있다고 하더니 지금은 북 책을 읽었다고 고무찬양으로 8명이나 압수수색을 자행한단 말입니까?
이재명 대통령은 “개혁은 혁명보다 어렵다”고 “개혁의 가장 큰 걸림돌은 개혁의 이름으로 개혁을 방해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도대체 이재명 대통령이 무슨 개혁을 했습니까? “개혁은 혁명보다 어렵다”고 했으면 개혁을 가로막는 모든 기득권 세력들, 제도와 기구들과 싸우며 이 사회 발전을 위해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개혁의 이름으로 개혁을 방해하는 것”은 이재명 정권 자신입니다.
국가보안법 철폐와 당장 그 이전이라도 시대착오적인 국가보안법 탄압을 중단하는 것이 개혁의 출발입니다.
사상과 양심은 그 누구에게도 침해받을 수 없는 인간의 권리입니다. 무지를 깨고 인식을 확장시키는 공부는 더더욱 침해받을 수 없는 학습권입니다.
일제시대, 군사독재 시절에 터졌던 독서회 사건을 2026년에 다시 보는 우리는 부끄러워서 차마 하늘을 볼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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