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 월산 지춘란』 한 사람의 삶이 역사가 될 수 있는가?

한 사람의 삶이 그 자체로 역사가 될 수 있는가?

『 빨치산 여성 간호장교의 불꽃 같은 삶 아! 월산 지춘란』, 한찬욱 지음, 도서출판 우리겨레, 2026년 7월 10일)이 그 의문에 대한 명쾌한 해답이 될 수 있다.

<사월 혁명회> 한찬욱 사무처장이 지은 이 책은 한 빨치산 여성 간호장교 지춘란의 치열한 혁명의 삶을 다룬 전기이면서도 그 자체로 현대사이다.

지춘란의 전기가 그 자체로 현대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그녀가 일제 식민지 시대에 중국 길림성 용정 출신 조선인으로서 중국인민해방군에 입대하여 중국 국공내전에 참여하고, 한국전쟁 시기에는 ‘항미원조’ 투쟁에 참여하여 빨치산 투쟁을 전개하였으며, 구속되어 사형선고를 받으면서도 혁명적 신념과 지조를 지키고 이후 1969년 석방되어 사월혁명 시기에 투쟁을 전개했고 남민전(남조선민족해방전선) 활동을 했던 남편인 황금수 선생이 남민전 사건으로 구속되고 나서 옥바라지를 하다가 1984년 의문의 죽음을 당할 때까지 평생 진보적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이 책에 나오는 내용들은 인터넷 매체에 정기 기고한 글들이라 이미 필자는 일부 기사들은 읽었다. 기사를 접하며 워낙 감동이 크고 깊이 알지 못하는 새로운 내용들에 대해서 필자는 이미 “’6.25전쟁은 미국의 인종말살전쟁'(한찬욱 사월혁명회 사무처장)이라는 ‘쇼킹한’ 글을 보면서…”(노동자정치신문, 2025년 1월 27일), “격동하는 국내외 정세 변화 속에 우리사회 근본변혁의 단초를 어디에서 마련할 것인가?”(노동자정치신문, 2025년 4월 11일 ), “사월도 사월혁명도 현재다 ‘껍데기는 가라!’ 알맹이만 남고!”(노동자정치신문, 2025년 4월 2일), “파시즘은 현재다 독일 파시즘과 일제 군국주의의 대두”(노동자정치신문, 2025년 3월 28일) 등의 기사에서 그 글 일부를 인용하거나 서평을 남기기도 했다.

나는 이 연재기사들이 한 권의 책으로 발행됐으면 좋겠다고 저자에게 요청을 드린 적도 있었는데 이번에 이 책이 발행되어서 다시 책을 읽게 되었다.

기억과 기억은 역사가 된다

필자는 『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를 비롯해 와다 하루키의 현대사 관련 저작들, 부르스커밍스의 『 한국전쟁의 기원』, 안재성의『 이현상 평전』 등을 읽었는데 그 중에서도 이 책을 가장 감동적이고 흥미 있게 읽었다. 와다 하루키의 역사책은 일본인 특유의 세밀하고 방대한 조사를 통해 역사를 서술한다는 장점이 있지만 역사적 사실에 논란 여지가 있고 그의 관점에 동의하지 못하는 점도 있었고 무엇보다 지루했다. 안재성의 책은 이현상의 치열한 투쟁을 다루기 때문에 흥미로웠으나 안재성의 분단적 관점, 일부 반공적 관점이 심하게 거슬렸다.

반면 『 아! 월산 지춘란』은 혁명가의 전기를 담아 감동적이고 흥미진진했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현대사뿐만 아니라 전 세계 진보운동과 세계 정세 전반을 통찰하고 있기 때문에 역동적인 현대사를 인식하는데 도움이 된다.

더욱이 이 책은 전기이면서도 주관적 서술에 치우치지 않고 엄밀하게 역사적 사실들에 충실하고 혁명가들에 대한 직접 구술, 여러 역사책의 교차 확인 등으로 역사적 왜곡에 대해 바로잡고 있기조차 하다.

이 책은 비극적이지만 영웅적인 인물들도 감동적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경북도당 위원장이자 지춘란이 빨치산 활동을 할 때 배속돼 있던 제3유격지대 박종근 사령관의 투쟁과 죽음이 그렇다.

박종근 사령관

박종근 사령관은 아내 이숙의 선생과 만나 결혼한 뒤 고작 6개월의 행복한 신혼생활을 하였다. 그뒤 10월 대구항쟁으로 도피하다 1947년 12월에 월북하고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남쪽으로 내려와 경북도당 위원장이자 제3유격지대 사령관으로 빨치산 활동을 이끌었다. 박종근 사령관은 결국 1952년 2월 27일 무렵 총상을 입고 자결한다.

6개월의 짧은 신혼생활이었지만 박종근 사령관 아내는 평생을 남편을 잊지 않고 살았으며 고난의 세월 동안 한 번도 아버지를 본 적이 없는 딸 박소은을 키웠다.

『 아! 월산 지춘란』에서는 이 비극의 가족사를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2000년 6.15남북공동선언이 발표된다. 이때 이행 사업의 하나가 ‘비전향 장기수 송환’이었다. 이 역사적 사건이 일어나는 9월 2일 전날, 박종근 위원장과 함께 활동한 김익진 비전향 장기수와 이숙의는 극적으로 상봉한다. 김익진은 “1951년 태백산 기슭에서 제가 받은 명령이 아주머니와 따님을 찾아서 북송하는 것이었습니다. 박종근 위원장은 전선에서도 언제나 딸의 모습을 보고 싶어 했고, 아주머니에 대한 사랑을 뜨겁게 간직하고 계셨습니다.”라고 이야기한다…

조선작가동맹 김덕철은 김익진 선생을 주인공으로 삼아, 박종근 경북도당위원장과 아내 이숙의 여사의 숭고한 이야기를 『 의리』란 소설로 발표한다. 조선의 노래 <생이란 무엇인가>가 필자의 가슴을 찡하게 울려온다.

남편 박종근에 대해 평생 가슴에 간직하며 기억하고 있었던 아내 이숙의는 남편도 자신을 열렬하게 기억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전해듣고 감격에 차 숨을 거뒀고 아버지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던 딸도 아버지의 기억에 감격했다.

부부함께 해외에서 민주화와 통일운동에 앞장선 소은씨한테도 평생 “가장 궁금했던 것”은 “아버지가 우리를 기억했을까?”하는 것이었고, 마치 예언이 실현되듯 극적으로 그 의문은 풀렸다…“그 사람이 우리를 찾았단다”던 어머니처럼 소은씨도 전율했다. “나의 아버지, 어머니의 남편, 나에게도 가족이 있었구나… 그리고 아버지는 우리를 잊지 않고 찾았구나…” 어머니는 그날 밤 평안하게 운명했다. 심장마비였다.(한승동 기자, [이사람] “53년만에 아버지 진심 전해듣자 눈감으셨어요” ‘빨치산 대장의 아내’ 이숙의씨 유고자서전 낸 딸 박소은씨(한겨레신문, 2007-08-15)

지춘란을 아내이자 동지로서 사랑하고 존경했던 황금수 선생은 아내가 젊은 나이에 산을 넘나든 삶을 기리기 위해 월산(越山)이라고 호를 지어줬다.

지춘란(왼쪽)과 황금수(오른쪽)

기억과 기억은 시공간을 넘어 하나로 만났다. 박종근의 아내 이숙의와 딸 박소은의 기억과 지춘란과 황금수의 기억은 이렇게 절절한 개인사와 역사로 남았다.

역사에 대한 반쪽의 기억 정정

“글을 맺으며”에서 저자(한찬욱)는 이태, 김남식의 빨치산 투쟁에 대한 왜곡과 와다 하루키의 일부 역사왜곡에 대해 중대한 반론을 제기하고 있다.

법정에서 일관되게 주장한 것처럼 공산주의자인 지춘란은 당의 결정에 따라 빨치산에 배속받고 흔들림 없이 끝까지 투쟁했다. 지춘란은 민족ㆍ민중혁명과 조국 통일을 위해 계급해방과 인간 평등 쟁취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걸고 싸웠다…특히 빨치산은 인민의 지지를 “물과 고기의 관계”, 즉 ‘인민성’을 중시하며 협력을 끌어내야 했다. 하지만 이남의 빨치산은 그 어느 나라와도 비교할 수 없는 좁은 근거지에다, 조선으로부터의 병력과 무기, 장비를 보급받을 수 없는 열악한 조건에서 활동했지만 불굴의 의지로 신화를 창조했다.

그런데 이태는 『 남부군, 최초로 공개된 지리산 빨치산 수기』(1988) 에서 빨치산 투쟁이 성립되기 위한 몇 가지 필수요건을 이야기하면서, 시종 부정적으로 어떨 때는 악의적으로 왜곡 폄훼했다…

이태는 “북한과의 왕래가 단절된 상태에서 남한 빨치산의 보급 수단은 전투에서의 노획이나 산악지대 주민으로부터 약탈”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빨치산은 보급품 조달하는 것을 보급 투쟁이라 하고 당 활동가들은 공작이라 불렀다. 남도부 부대 현존 생존 빨치산 당일꾼인 구연철은 생애사『 신불산』에서. 보급 투쟁, 즉 대민공작은 약탈이 아니라 주민들의 협조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이태뿐 아니라 대다수 투항하거나 전향한 빨치산은, 당국의 눈치와 입맛에 맞게 쓴 수기로 빨치산의 정신 무장과 인민성을 왜곡 폄훼했다. 그러지 않으면 가공의 이야기로 남과 북에서 버림받은 빨치산으로 소설화했다…

조선노동당 전문가인 김남식은 빨치산에 대해 ‘희생’을 전제한 제2전선론 논문을 썼다…그러나 김남식의 빨치산 평가는 제2전선의 전술적 성격과 빨치산을 지도한 남로당 지도부와의 관계가 많은 지라, 목숨으로 제2전선의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투쟁한 빨치산 통사(通史)를 조명하는 데 김남식의 주장은 부족하다고 본다.

필자가 20여 년 동안 만난 장기수 빨치산 대부분은 6.25전쟁 시의 조국 통일과 혁명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바쳤던 뜨거운 신념을 가졌던 분들이었다. 그런데 ‘고역의 장정’을 한 빨치산을 평가하지 않고 지도책임의 문제만 부각한 것은 매우 아쉽다…그런데 김남식은 1962년 말 남파 후 체포되어 전향한 사람으로, 과거 조선노동당 간부였지만 집필 당시에는 조선노동당 당원도 아니었다. 더구나 평가할 위치에 있지도 않은 그가 어떻게 「 6.25 당시 남한의 빨치산을 어떻게 볼 것인가 – 북한의 입장을 중심으로」 라는 논문을 쓸 수 있었는지 필자는 의문이다…김남식은 1991년 8월에 논문을 발표했는데, 이때는 『 조선전사』가 완전히 출판되지도 않은 때이다. 그러면 어떻게 남쪽 자료를 수집하고 평가하는 논문을 쓸 수 있었는지, 남쪽 공안 당국의 협조 없이는 절대 불가한 일이다.

중국이 6.25전쟁 전부터 개입했다는 와다의 주장은 얼토당토 않다. 특히 와다 하루키는 이것뿐만 아니라 조선을 ‘유격대 국가’라 칭하며 ‘사령관’ , ‘유격대원’ 등으로 조선을 비정상 국가로 왜곡 폄하했다…또한 와다 하루키는 조선을 ‘국가사회주의國家社會主義’라 하였다…신현칠 선생은 조선을 어떻게든지 ‘비정상국가’와 ‘불량국가’로 이미지화하려는 일본학자와 미국을 날카롭게 비판했다.

안재성의 장편소설 『 아무도 기억하지 않았다』나 “1953년 7월, 휴전협정 어디에도 살아 있는 빨치산에 대한 고려는 없었다. 북한 정권에 의해 버림받은 수백의 생명은 사지에 방치되어 죽어갔다. ‘역사의 수레바퀴에 깔려 죽어간 우리 삶을 기록해 달라’는 한 대원의 말은 이 책을 탄생시킨 도화선이 되었다고 한다.”는 이태의 『 남부군』, 그리고 이를 부각시키는 한겨레신문(김진숙 기자, 스물여덟 종군기자의 빨치산 수기, 2019-10-19)이나 남쪽의 일부 진보진영 등에서는 잊힌 혁명사를 복원한다고 하면서 ‘남북에서 버림받은 비운의 혁명가’ 라는 관점으로 양비론적인 역사관을 펼치고 있으며 이를 통해 고차원의 반북주의를 유포하고 있다. 이는 주체적이고 혁명적인 투사들의 삶을 수동적이고 패배주의적으로 왜곡하기도 할 뿐만 아니라 혁명에 대한 패배주의와 역사의 진보에 대한 허무주의를 유포하기도 한다.

『 아! 월산 지춘란』의 역사 기억 방식

『 아! 월산 지춘란』은 해방 이후 민중항쟁과 한국전쟁과 빨치산 투쟁, 사월혁명과 1, 2차 인혁당재건위 사건 등을 다룬다.

필자가 “사월도 사월혁명도 현재다 ‘껍데기는 가라!’ 알맹이만 남고!”라는 기사에서 인용한 것처럼, 이 책은 사월혁명을 이승만의 부정선거에 저항하고 미국식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으로 축소, 왜곡시키는 흐름에 맞서 “사월 혁명 공간”에서 적극 활동했던 황금수의 투쟁을 통해 이 혁명이 미국의 원조를 빌미로 한 제국주의 개입과 매판자본의 탄생, 한미경제협정의 불평등 조약과 이에 맞서는 2.8한미경제협정 반대투쟁과 반공법ㆍ 집시법 개악 등 2대 악법투쟁에 맞서는 투쟁, 절량 농가들의 생존권 요구, 피학살자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미군철수 자주통일 투쟁이라는 온전한 역사적 의미도 부각시키고 있다.

망각에 맞서 역사의 기억을 되살리는 노력은 단순하게 오랜 시간 빛바래 희미해져가는 기억을 끄집어내는 것만이 아니다.

저자가 『 아! 월산 지춘란』에 『 아!』라는 감탄사를 부친 것은 월산 지춘란에 대한 개인적 연민과 동정적 감정만이 아니라 그 시대에서 오늘날까지 역사의 진보를 위해 투쟁하는 모든 이들을 위한 기억의 소환이다.

민족관계의 적대관계로의 전환 이후 희미해져가는 민족ㆍ 계급ㆍ통일에 대한 기억의 소환이자 분단을 뚫고 역사의 진보와 해방을 위한 투쟁의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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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협

전국노동자정치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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