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자가 한사코 버리려는 맑스주의의 혁명적 사상을 우리는 혼신을 다해 벼려야 한다

박노자는 한국에서 맑스주의가 ‘오해’를 받고 편향적으로 일부만 수용됐다고 주장한다.

마르크스는 한국에서 너무 오랫동안 ‘오해’를 받아온 대사상가죠. 마르크스의 한국적 소개는 금년에 딱 한 세기를 이룹니다. 1920년대 초반에 <공제>, <아성>, <신생활>, <개벽> 등에서 본격적인 소개가 시작된 것이죠. 일각에서는 크로포트킨 식의 마르크스 독해도 이루어졌지만, 그 때나 그 후나 마르크스의 한국적 소개는 주로 카우트스키-레닌의 방식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즉, 임금착취론, 자본주의적 공황론, 계급론, 계급투쟁론 위주로 소개가 이루어진 것이죠. 이게 꼭 ‘틀린’ 건 아니지만, 마르크스 사상의 ‘전부’는 절대 아닙니다. 마르크스 초기의 인간소외론 (자신의 본질로부터의 소외)에는, 첨에는 구미권 신좌파가 제대로 눈을 뜬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 – 마르쿠제나 프롬 등 -은 한국에선 번역, 출판돼도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습니다. 그 때에, 즉 1970-80년대에는 한국 지성계는 주로 레닌주의적 문제의식 일변도로 돌고 있었죠. 그리고 마르크스의 협동 (어소시에이션) 내지 물질대사 등 환경론적 사상은 이제서야 규명돼 소개되는 것입니다. 결국 시대마다 그 시대에 필요한 마르크스, 그리고 그 시대가 독해할 준비가 돼 있는 마르크스가 따로 있는 것이죠.

박노자가 레닌주의적 문제의식 일변도로 소개됐다는 “임금착취론, 자본주의적 공황론, 계급론, 계급투쟁론”은 맑스주의 혁명적 사상의 본질이자 핵심이다.
도대체 “임금착취론, 자본주의적 공황론, 계급론, 계급투쟁론”이 빠진 맑스주의를 어떻게 맑스주의라고 부를 수 있는가? 맑스주의 사상의 핵심에 대한 이해가 박노자의 말대로 ‘오해’라면 자본가들의 노동자들의 착취도, 자본주의의 위기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되고, 계급모순과 계급투쟁도 사라지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계급적 단결과 계급동맹도 도모할 수 없는 가상의 것이 된다.

맑스주의는 프루동, 바쿠닌 등 무정부주의자들과 투쟁하며 혁명적 사상을 정립해 왔다. 이렇게 형성된 맑스주의의 혁명적 사상이 빠진 맑스주의는 무정부주의적 사회주의에 불과하다.
오늘날 한국의 ‘맑스 꼬뮤날레’에 정성진을 필두로 강단의 ‘맑스주의자’들이 협동(어소시에이션)이니 자치니 생태니 민주적 계획이니 하며 앞다퉈 소개하는 맑스주의는 직접적으로 무정부주의거나 아류 무정부주의에 불과하다.(정성진 교수의 주장에 대한 전면 비판은 “반(反)‘맑스 꼬뮤날레’와  창궐하는 무정부주의”, 2019년 6월 10일, 전국노동자정치협회 글을 보기 바란다.)

여기에는 현실변혁의 무기로써 맑스주의의 혁명적 사상이 사라지고 현실에 대한 과학적 이해 대신에 사변적이고 현학적 주장이 대신 자리잡고 있다. 노동자계급의 사상이 아니라 소부르주아 사상이다.
박노자가 말하는 구미권 신좌파의 소외론은 맑스주의의 총체성을 허물고 혁명사상을 부정하는 것으로 일관한다.
이들은 수십년 동안 쏘련 사회주의를 건설하고 국제공산주의 운동에 막대한 영향력을 미쳐온 스탈린을 부정하는 것으로 출발해 스탈린의 뒤에 레닌이 있다며 레닌을 부정하고 이어서 엥겔스를 비난하며 맑스와 분리시킨 뒤에 급기야는 맑스를 초기 맑스와 후기맑스로 나눠서 변증법적 유물론자로서의 맑스를 부정하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이로써 프롤레타리아 독재 사상을 가진 맑스는 온데간데없고 휴머니스트로서의 맑스만 남는다. 이를 위해 이들은 맑스주의를 왜곡하는 문필조작까지 서슴지 않는다.
이들의 사상은 부르주아들이 좋아하는 가짜 맑스주의다.
이들 신좌파들은 대개 쏘련 및 현실 사회주의를 부정한다.
T. I. 오이저만은 《맑스주의 철학성립사》에서 이러한 사상들을 “반공주의의 일종”이라고 규정했다.
우리에게 진정으로 절실한 맑스주의는 그때 그때 다르게 수용되는 맑스주의가 아니라 맑스주의의 혁명적 사상이다. 일제시대 민족해방 투쟁의 무기가 되고, 그 역사적 단절을 딛고 1980년대 혁명의 시대에 수용한 맑스주의는 바로 맑스레닌주의다. 맑스레닌주의만이 전 세계적 대공황과 대량 실업의 시기, 제국주의 패권과 전쟁의 시기에 자본주의 모순을 해결할 수 있는 무기를 제공한다. 박노자가 한사코 버리려 하는 것을 우리는 혼신을 다해 벼려야 한다.

이 기사를 총 463번 보았습니다.

노정협

전국노동자정치협회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