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턴 회고록에 대해

존 볼턴 전 국가안보보좌관의 회고록(《그 일이 일어났던 방》)이 국내외적으로 파문이 일고 있다. 볼턴이 미제국주의의 은밀한 외교분야에서 한미, 조미, 한일, 미일 간 수장들의 긴밀하고 긴박한 협상과정을 직접 목격하고 개입했으므로 이 회고록을 통해 중요한 정치적 진실들을 추적해볼 수 있다. 특히 조미, 남북 간 외교사안은 우리에게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중대한 정치적 사안이므로 면밀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물론 볼턴 같은 극우 분자들의 극단적 자기 과신이나 망동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고, 백악관이나 청와대에서도 회고록에 대해 400여 곳 수정과 삭제를 요구하고 있는 만큼 있는 그대로 신뢰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볼턴 회고록 중 상당 부분이 사실에 대한 자의적 해석과 편향된 관점이 문제라면, 역으로 먼저 수정과 삭제를 요구하지 않은 부분은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할 수 있다. 또한 문제들이 사실(팩트)을 둘러싼 자의적 해석과 편향일 것이기 때문에 이 부분과 본래의 사실 자체를 분리해서 살펴볼 여지가 생긴다. 더욱이 수정과 삭제를 요구하는 부분에서도 “회고록이 기밀 정보를 담고 있다는 점”, “외교적 악영향”, “협상 신의 훼손” 등이 문제라면 사실 자체의 왜곡 보다는 다른 정치적 이유로 공개에 대해 반발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볼턴은 회고록에서 한반도 문제와 관련하여 방위비 분담금과 자위대와의 군사연합이라는 민감한 정치적 문제에 대해서도 누설했다.

오로지 미국만이 결정할 수 있다

볼턴은 2019년 7월 미국의 한국에 대한 방위비 분담 요구 과정에 대해서도 공개했다. 당시 트럼프는 볼턴에게 이렇게 노골적으로 요구했다.

“80억달러(일본)와 50억달러(한국)를 각각 얻어내는 방식은 모든 미군을 철수한다고 위협하는 것”

“그것이 당신을 매우 강한 협상 지위에 올려놓을 것”

“돈을 요구하기에 좋은 타이밍”

“존(볼턴 전 보좌관)이 올해 10억달러를 가져왔는데 미사일 때문에 50억달러를 얻게 될 것”(헤럴드경제, [볼턴 회고록 파문] “트럼프, 50억달러 못받으면 거기서 나와라”…주한미군 철수 위협, 2020-06-22)

이처럼 트럼프는 문재인 정부한테 미군 전원 철수를 협박용으로 사용하면서 그 대가로 한국에는 50억 달러(현재 시세로 6조490억 원)이라는 천문학적인 방위비 분담금을 뜯어내려 하고 있다. 사실 이 부분은 외교적 비밀도 아니고 공공연한 사실이기도 하다. 심지어 트럼프는 북의 미사일 발사 상황도 방위비 분담을 뜯어낼 수 있는 기회로 여겼다. 그런데 문제는 주한미군 철수를 내세워 날강도 같은 협박이 항상 먹히는 것인데, 볼턴은 “난 트럼프 대통령이 적당한 액수라고 판단하는 만큼 지불하지 않는 나라에서 미군을 철수하겠다는 그의 궁극적인 위협이 한국의 경우 진짜일 것을 두려워했다”고 하고 있다.

심지어 방위비는 어처구니없게도 미국의 “창의적 회계 기술”에 따라, “거의 모든 비용 수치가 높든, 낮든 정당화될 수 있었다”라고 볼턴은 회고하고 있다. 미국이 어떠한 핑계와 근거를 대든 일방적으로 분담금 비용을 정하면 그 요구에 무조건 응해야 하는 것이다.

이처럼 주한미군 철수가 한국의 모든 권력자들에게는 공포를 느낄 정도로 “위협”이 되기 때문에 이를 협박용으로 사용하여 천문학적인 분담금을 요구할 수 있었던 것이다.

볼턴 회고록에서는 4.27 남북정상회담 때 김정은 국방위원장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군사훈련 문제를 제기했지만 미국만이 결정할 수 있다고 답변했다는 부분도 나온다. 이처럼 한미연합훈련 같은 군사적 문제는 한국은 아무런 결정권한이 없고 오로지 “미국만이 결정할 수 있다.” 한미연합 훈련도, 그 중단이나 축소나, 방위비 인상도, 사드 배치도, 최첨단 무기수입도 오로지 “미국만이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실제로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판문점선언이나 평양선언의 전반적 이행은 고사하고, 개성공단 재가동, 금강산 관광의 재개나 철도연결 같은 남북관계 진전의 가장 초보적인 경제적 문제의 이행도 미국의 “경제제재 동참”이라는 요구에 의해 한 발짝도 진전하지 못하고 오늘날 남북 관계의 파탄이라는 파국적 결과를 초래하게 된 것이다.

역사적으로도 정전협정 4조 60항에 명시된 협정 체결 “3개월 내 정치회의를 소집해 한국으로부터 모든 외국 군대의 철수 및 한국 문제의 평화적 해결 문제를 협의할 것을 건의한다”는 조항이나 정전협정 제 13항 ㄹ목 “한반도 경외로부터 증원하는 작전비행기, 장갑차량, 무기 및 탄약을 들여오는 것을 정지한다”는 부분은 미국에 의해 일방적으로 거부되었다. 미국은 정전협정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이를 위반하고 1957년 6월에는 전술핵무기를 이남에 반입했다. 이처럼 난폭하게 정전협정 위반 상태가 67년이나 지속되고 있지만 이 땅의 지배권력자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이 위반을 정상으로 되돌릴 생각이 전혀 없다.

고 리영희 선생은 생전에 한미군사훈련에 대해 만약 해주에서 중국군과 러시아군과 북한 군대가 연합하여 군사훈련을 벌인다면 우리가 그로부터 어떠한 위협을 느낄지 입장 바꿔 생각해보라고 말했다.

자기 나라 땅에 외국 군대에 70년 동안이나 주둔하고 있는 상황을 지극히 정상적인 상황으로 간주하고, 그 군대의 철수에 대해 노예적으로 매달리며 강박적 공포심을 느끼고 이 공포심을 자극한 날강도 같은 방위비 마케팅이 일방적으로 먹히는 상황은 너무나 적나라한 우리의 현실이다. 이 현실이 너무나 가당찮아서 초현실적으로도 비춰지기도 한다.

계급 간 동맹이든 국가 간 동맹이든 동맹은 동맹자들 간의 정치적 운명공동체에 기초해 있고, 상호 신뢰와 존중이 기본일 텐데, 이 한미동맹은 강도 같은 동맹인데도 무기를 든 강도 앞에서 최적의 안정감을 느끼는 노예적 동맹이다. 민주당이든 미래통합당이든 누구든 한결같이 이 땅의 지배권력자들은 이 기이한 동맹을 우상숭배한다.

한국과 일본은 하나가 돼서 싸울 수 있다!”

베트남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의 결렬 이후 2019년 4월 11일 백악관에서 열렸던 한·미 정상회담에서 트럼프가 “우리가 만약 북한과 전쟁을 하게 된다면 한국은 일본의 참전을 수용할 수 있나?”라고 묻자 문재인은 “우리는 그 문제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면서 “일본 자위대 병력이 한국 땅을 밟지 않는다면 (북한의 위협에 맞서) 한국과 일본은 하나가 돼서 싸울 수 있다”고 답했다고 존 볼턴은 주장했다.

문재인 정권으로서는 당혹스럽게 여길 국가 간 외교적 비밀이 누설된 것이다. 그런데 트럼프의 방위비 협박만큼이나 이 역시 사실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언론기사를 검색해보면 1999년부터 시작된 한일수색·구조훈련(SAREX)는 2003년부터는 격년제로 실시되어 왔다. 한일은 1999년 7월부터 국방당국 간 핫라인을 설치 운영하고 있으며 합참과 일본 통합막료부 간에도 핫라인이 있다. 해군과 공군도 일본 해상자위대, 항공자위대와 핫라인을 가동하고 있다. 한미일 3국은 해군 이지스함을 해상에 띄워 북한 미사일의 탐지·추적 정보를 교환하는 경보훈련을 했다고 여러 차례 공개하기도 했다.

“한국군, 일본 자위대와 비밀리에 공동 군사훈련 산케이 ‘한국 국내엔 자위대 알레르기… 한국측이 비공개해달라 요청’“(문형구 기자, 미디어오늘, 2016.01.13.)이라는 기사 제목에서 보듯, 국민적 반일 감정의 눈치를 보면서도 자위대와 비밀리에 군사 훈련을 하고 있다는 것이 드러나기도 했다.

2018년 10월 제주에서 열리는 ‘2018 대한민국 해군 국제관함식’에는 자위대 함정이 참가하기로 예정돼 있었으나 군국주의 상징인 욱일기 게양이 논란이 되자 일본 측에서 불참을 통보하기도 했다. 일본에서는 불참을 통보하면서도 “향후 양국 해군 간의 군사교류와 우호증진은 지속해나갈 것”이라고 하여 한일 해군 간 군사교류가 밀접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시사했다.

2019년 2월에는 자위대 행사에 한국 해군 중령이 참여하고, 4월에는 일본 해상 자위대 소속 장교 4명이 부산에서 열리는 다국적 연합해상훈련 개회식 등에 참여하기도 했다.

한일 간 무역갈등에도 불구하고 논란을 벌이다가 미국의 요구에 의해 연장된 것이 바로 한일군사정보협정(지소미아)이다. 그런데 지소미아 연장 문제가 논란이 되던 2019년 11월에 고노 다로 일본 방위상은 참의원 외교방위위원회에 출석해 지소미아가 종료되더라도 한국군이 포함된 다자연합군사훈련에 자위대가 참여할 수 있다는 견해를 밝혔다는 기사도 있다.

볼턴은 “나의 관점에서는 한국의 다른 정치 지도자들과 마찬가지로 문 대통령이 국내 상황이 힘들 때 일본을 이슈화하기 위해 애썼다”고 폭로했다. “이번 총선은 한일전이다”라는 구호에서 보듯, 문재인 정권과 민주당은 한일 간 무역분쟁을 정치적 책략으로 이용하면서도 뒤로는 일본과 군사적으로 긴밀하게 협력하는 이중적 행보를 보이고 있다. 심지어 여기에 진보진영 일각에서도 어릿광대처럼 춤추며 민주당과 문재인 정권의 이해에 무비판적으로 동조하기도 했다.

“한국과 일본은 하나가 돼서” 이미 북에 맞서 싸우고 있다. 이것이 반북 한일 동맹의 중심 기치이다. 한미군사동맹은 곧 한미일 군사동맹이다. 한미일 군사동맹의 중심 기치는 반중 동맹이며 더 중요하게는 반북동맹이다. 북의 군사적 위협을 근거로 한일 간에는 미국을 매개로, 또는 직접적으로 군사협력이 지속돼 왔다.

게다가 유엔군사령부라는 간판을 내세워 미국은 “유사시”에 일본 자위대가 유엔기를 앞세워 병력과 장비를 지원하는 방안을 마련했다. 일본 자위대와의 공공연한 군사훈련은 물론이고 패전 이후 물러갔던 일본군대가 “유사시” 한반도에 상륙해 미군과 함께 점령군으로 들어오게 되는 것이다.

이른바 제2의 카스라-테프트 밀약이라는 ‘캐넌설계도’가 있는데 이는 한반도에서 만주에 이르는 일본의 구식민지는 다시 한 번 일본에 통치를 맡기는 것이 미국에는 이득이라는 외교 정책상의 전략이다. 캐넌 설계도는 아직도 미제국주의의 한반도 전략의 중추이다. 평화헌법 개정과 군국주의화는 미일군사동맹의 중심 기치인데, 이에 따라 한미일 군사동맹 역시 일본의 군국주의화에 동조하는 반북 반공주의 동맹이 될수밖에 없다. “한국과 일본은 하나가 돼서 싸울 수 있다!”는 문재인의 발언은 숭배하는 우상 앞에서의 노예적 맹세인 것이다.

볼턴은 극우 파쇼적 세계관과 망동에도 불구하고 회고록으로 부르주아 외교가, 특히 문재인 정권의 추악한 진실을 폭로하게 된 것이다. 노/정/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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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협

전국노동자정치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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