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스주의 고전읽기 《가난한 농민에게 바란다》(레닌) – 러시아 차르의 실상은 우두머리 대지주였다!

《가난한 농민에게 바란다》(이정일 옮김, 범우사)

《농촌 빈민에게》(레닌저작집 2-1권, 김탁 옮김, 전진출판사)

세미나

일시: 2020년 5월 11일(월요일) 19시 30분

장소: 노정협 남영동 사무실

문의: 010 3398 0248

레닌은 《무엇을 할 것인가?》에서 러시아 맑스주의자들은 “모든 인민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했는데, 그 대표적인 대상은 농민이었습니다. 이미 1870년대 ‘브나로드운동’이라고 알려진 러시아 청년들의 “민중 속으로” 향하는 농민운동이 있었습니다만, 1903년 3월에 쓰인 레닌의 이 저작은 브나로드 운동의 낭만성과 계몽성에 비해 당시 러시아 농민의 실상을 놀랍도록 속속 파악하는 레닌의 맑스주의적 관찰력과 분석력이 돋보이고 러시아 농민을 혁명의 주체로 간주하는 인민대중 중심주의가 또한 돋보입니다.

맑스주의 저작 중에서 한 계급의 상태에 대한 탁월한 보고서 둘을 꼽으라면 엥겔스의 《영국노동자계급의 상태》와 레닌의 《가난한 농민에게 바란다》가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레닌의 이 저작은 당시 러시아 농민뿐만 아니라 식민지 조선의 운동가들, 농민들에게도 커다란 영향을 미치기도 했습니다.

1890년대에서 1900년대 초반 당시 레닌이 농민문제를 다룬 주요 저작 중에는 《러시아에 있어서 자본주의의 발전》(태백), 《농민생활의 새로운 경제적 양상》(아고라 출판사), 《인민의 벗이란 무엇인가》(새길)와 《가난한 농민에게 바란다》 등이 있습니다. 그런데 앞의 세 저작이 러시아 사회구성체 논쟁으로 주로 인민주의자들(나르도니키)과의 신랄한 논쟁적 저작이라면, 우리가 읽으려고 하는 글은 레닌이 러시아 농민들에게 직접 호소하는 따뜻하고 대중적인 저작입니다. 그러다보니 이 책은 레닌의 다른 저작에 비해 읽기 아주 쉽고 친근합니다. 전진출판사판에서는 “사회민주주의자들이 원하는 것을 농민에게 설명함”이라고 이 책의 부제를 밝히고 있습니다. 농민들의 구체적 실상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면 이 책은 당시 아주 낯설고 심지어 경계의 대상이기도 했던 러시아 사회주의자들이 농민들에게 철저하게 외면당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마오쩌둥은 “조사 없이 발언 없다”고 강조했는데, 레닌은 이 점에서 확신에 차서 우렁찬 목소리로 러시아 농민들에게 다음과 같이 발언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도시 노동자 대중이 다만 길거리에서 부르짖고 행진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위대한 결정적 투쟁을 위해 분기하는 날이, 노동자가 한 사람같이 ‘우리는 투쟁의 파도 속에서 죽든지 그렇지 않으면 자유를 획득할 것이다’라고 부르짖는 날이, 투쟁의 파도 속에 죽고 넘어질 100명을 대신하여 새로운 보다 더 확고한 1000명의 투사가 분기할 날이 속히 다가올 것이다.

그때에는 농민도 전 러시아의 도처에서 분기하여 도시 노동자를 원조하고 농민과 노동자의 자유를 위해 최후까지 싸울 것이다.”

레닌은 러시아의 토지 소유 실태를 분석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여 토지가 누구에게 집중되어 있고, 이 토지의 집중이 대다수 농민들을 가난하게 만드는지 폭로하고 있습니다.

“러시아 토지의 전 면적은 농민의 분유지와 사유지를 합해 약 2억 4천만 데샤티나에 달한다 … 1억 900만 데샤티나 사유지 가운데 700만 데샤티나의 왕궁 토지, 즉 차르 가족의 사유지가 있다. 차르는 그의 가족과 더불어 대지주 중에 첫 번째를 차지한다. 그는 러시아의 가장 큰 지주다. 한 가족이 50만 농민 가족보다 더 많은 토지를 갖고 있다! 더욱이 교회와 수도원에는 약 600만 데샤티나의 토지가 있다. 우리나라 목회자들은 농민에게 무욕無慾과 절제를 설교하면서 자기네는 정당한 방법과 부정한 방법으로 막대한 토지를 손에 넣은 것이다 …얼마나 막대한 토지가 대지주의 손 안에 집중되고 있는가는 1000 이하의 소수 가족(924)이 각자 1만 데샤티나 이상의 토지를 영유領有하고 그들의 토지를 전부 합치면 2700만 데샤티나에 달하는 것으로도 명백하다! 1천의 가족이 소유하고 있는 만큼의 토지를 200만 농민가족이 소유하고 있다.

수천 명의 부자들이 이런 막대한 토지를 소유하고 있는 동안 수백만 수천만 인민이 가난하고 굶주릴 수밖에 없고 또 영구히 가난하고 굶주리게 되리라는 것이 이해된다. 또 차르의 권력도 정부 자신도(차르의 정부라고 할지라도) 그때까지는 대지주의 의도대로 일해 나가리라는 것도 이해된다. 또한 빈농 자신이 이 지주계급과의 꾸준한 필사적인 투쟁을 위하여 단결하여 하나의 계급으로 결합하기까지는 누구로부터도 또 어디로부터도 원조를 기대할 수 없다는 것도 이해된다.”

이로써 러시아 농민들에게 여전히 신과 같은 존재로서, 자애로운 존재로서 남아 있는 차르 황제가 결국은 지상의 탐욕에 찌든 우두머리 대지주에 불과하다는 것이 낱낱이 폭로되고 있습니다. 황제가 가진 권력의 힘은 신탁(神託)에 의해서가 아니라 바로 토지의 황제와 황제 일가로의 집중에 의해서임이 백주에 밝혀졌습니다.

마찬가지로 종교적 환상을 유포하며 러시아 농민을 무지와 빈곤 속으로 몰아넣은 두 번째 우두머리가 바로 가난한 농민들에게 “무욕과 절제”를 강요했던 교회와 수도원이라는 것을 폭로하고 있습니다. 가난한 농민들의 굶주림을 “무욕과 절제”로 포장하고서는 교회와 수도원은 탐욕과 무절제로 극단적 부와 권력을 향유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결국 레닌은 차르의 권력은 대지주의 폭력적 집행위원회에 불과하기 때문에 빈농이 단결해서 지주계급과 싸우고 그 정점에 있는 차르권력과 투쟁해야 한다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레닌은 《인민의 벗이란 무엇인가?》에서 봉건적 황제 체제 하의 러시아 농촌에서도 “상품경제가 시골 일반, 그리고 특별히는 ‘공동체’ ‘농민’의 경제생활의 주요한 배경으로서 명확하게 두드러진다”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레닌은 《가난한 농민에게 바란다》에서도 러시아 농촌에서 자본주의적 관계의 발전에 따라 (반半)프롤레타리아화 되는 가난한 농민들의 실상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면 빈농은 무엇으로부터 돈을 얻는가? 오직 품삯밖에 없다. 말1필을 가진 농민은 그것조차 갖지 못한 농민과 마찬가지로 품삯으로써만 그날그날 살아가고 있다. 그러면 품삯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것은 다른 사람에게로의 노동, 고용된 노동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것은 말 1필을 가진 농민의 절반은 경영주인 것을 중지하고 고용꾼, 프롤레타리아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이런 농민은 반半프롤레타리아라고 불리는 것이다.”

1917년 혁명 당시 인구 구성상으로 러시아 농민의 비중은 80%가 넘었습니다. 농민과의 동맹이 없이는 러시아 혁명이 성공하지도 못했고, 혁명권력을 유지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레닌이나 볼셰비키에게 농민문제는 민족문제와 더불어 가장 중대한 문제였습니다. 그러나 농민은 단일한 계급이 아닙니다. 농민 내에는 지주도 있고, 부농도 있고, 중농과 빈농도 있었습니다. 레닌과 볼셰비키는 빈농을 중심으로 하여 중농을 견인하고 지주를 타격하고 부농을 무력화 하는 전략을 구사했습니다. 따라서 레닌은 《가난한 농민에게 바란다》에서 빈농의 상태뿐만 아니라 지주와 부농, 중농의 상태까지 상세하게 분석합니다. 심지어는 부르주아가 농민에게 하는 사회주의자들에 대한 악선전, “사회민주주의자는 중농과 소농으로부터 소유권을 박탈하려고 한다”에 대해 “사회주의자는 오직 소유자로부터만, 남의 노동으로 먹고 사는 자로부터만 소유권을 몰수하려는 것이다”라고 반박을 하기도 합니다.  이 문장은 맑스와 엥겔스의《공산당선언》을 연상케 합니다.

우리가 레닌의 저작을 읽는 것은 이를 통해 오늘날 한국의 현실을 이해하고자 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2020년 한국에서 농민문제는 어떠합니까? 한국에서 농민은 점차적으로 그 수가 줄어들고 있는데 현재는 200만 명을 조금 넘습니다. 그러나 러시아에서만큼 비중이 높지는 않지만 여전히 농민들은 노동자계급의 전통적인 동맹계급입니다. 특히 전농으로 조직된 선진 농민들은 농민자신의 문제뿐만 아니라 한국사회의 민주화와 분단문제의 극복을 위한 투쟁에도 앞장서왔습니다. 한국에서도 한때는 사회성격 논쟁에서 지주-소작관계의 문제, 재생소작제 등 농민문제에 대한 관심이 높았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한국의 맑스주의자들 사이에는 농민문제에 대한 분석이 거의 사라졌습니다.

“모든 인민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레닌의 외침이 공허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곧 출판할 “한국사회와 변혁의 길”에서 농민문제에 대해서도 분석하고 있는데, 레닌의 《가난한 농민에게 바란다》를 공부하기 전에 한국농업과 농민의 상태를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는 글을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일하지 않는 자본가들이 공장과 기업을 소유하는 것과 농업에서도 마찬가지로 “경자유전의 원칙”은 무너지고 비농민들의 토지소유가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농업 인구가 줄어들고 고령화 되어 가고 있는 상황에서 토지가 버려지지 않았다면, 토지가 점점 더 소수의 손으로 집중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토지가 법인 소유, 자본가 소유로 독점화 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게다가 토지에 대한 자본주의적 투기도 늘어나고 있다. 농촌에는 전통적인 지주 대신에 국회의원, 자치단체장, 고위 공무원, 의사, 교수, 변호사 등 ‘강남 부자’들이 토지를 소유하여 소작료를 받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이들은 ‘부재지주’인데, 이들이 파렴치하게도 2008년 쌀직불금을 받아 쌀직불금 파동이 일어난 바가 있다. ‘부재지주’의 비업무용토지에 대해서는 양도소득세가 중과세 되고 있는데, 이 말을 뒤집어 살펴보면, 자본가들의 업무용 토지에 대해서는 세금감면이 이뤄지면서 자본가들의 토지 독점이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한국사회와 변혁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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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협

전국노동자정치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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