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나가다 정치적 무지와 악선전으로 항상 빠지는 김갑수 선생의 모양빠짐주의

사진은 영국의 인도 지배 결과 발생한 1876-1877년 당시 인도 인민들의 기아의 참상
7월 19일

 

김갑수 선생은 이른바 ‘모양주의’를 항상 내세워 서구 추종주의나 사대주의를 신랄하게 비난한다. 선생의 말대로 비주체적이고 사대주의적 외세추종적 태도가 소부르주아 지식인 사이에, 더 나아가 한국사회 저변에 자리잡고 있다. 그런데 김갑수 선생은 올바른 전제에서 항상 엉뚱한 결론으로 미끄러진다.

“심지어 북을 무조건 나쁘게 보는 태도도 모양주의와 관련되는 것은 아닐까 생각들 때도 있다. 그러면서도 유럽의 마르크스 – 레닌은 지나치게 우대하는데 이것 역시 일정 부분 모양주의와 관련된다. 대한민국의 모든 문화적 병폐의 근저인 모양주의는 알고 보면 기실 일제식민사관과 동전의 양면 같은 것이다.”(김갑수, 모양주의와 일제식민사관은 동전의 양면)

오늘날 소부르주아적 기회주의 정치세력들의 반공 반북주의에 맞서 일관되게 투쟁하는 세력 중 일부는 맑스레닌주의다.
맑스레닌주의는 유럽중심 사상이 아니라 자본주의 모순을 철폐하는 사상일뿐만 아니라 식민지 반식민지 해방의 등불이 된 사상이었다.
김갑수 선생은 모양주의 운운하지만 맑스주의의 변증법적 방법론에 무지하다. 이 무지가 맑스주의, 더 나아가 맑스레닌주의에 대한 천박한 왜곡에 빠지게 한다.
김갑수 선생이 맑스주의를 서양중심의 식민사관으로 간주하는 근거는 맑스가 인도문제를 다룬 글인데 김갑수 선생은 맑스가 인도에서 자본주의 발전을 찬양하는 것으로 식민지주의에 일조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김갑수 선생은 맑스 원전을 읽지 못하고 이에 대해 왜곡해서 비난하는 다른 저술가들의 2차문헌만을 읽었을 가능성이 높다.
맑스는 인도문제뿐만 아니라 선언에서도 봉건제에 비한 자본주의의 진보적 측면을 이야기하고 대공업 발전에 찬사를 보내고 초기 부르주아를 진보적 계급이라고 보았다.
그런데 이걸 가지고 맑스가 부르주아적이고 자본주의 찬양자라고 한다면 그야말로 모양빠지는 정치적 무지의 발로에 다름아닌 것이다.
맑스는 이어서 변증법적으로 부르주아의 태동과 자본주의 발전, 기계의 발전이 노동자 인민을 착취와 억압과 수탈과 죽음에 빠뜨린 결과니만큼 자본주의를 철폐하고 노동자 인민이 정치권력을 장악할 것을 호소하였다.
식민지 국가에서도 봉건주의로 되돌아갈 것이 아니라 제국주의에서 민족해방 투쟁을 할 것을 호소했다.
‘모양주의자들’이 프랑스 혁명을 좋아하되 조선과 중국혁명은 무시한다고 하는 것이 문제라고 해서 프랑스혁명의 역사적 경험을 무시한다면 그것은 일면성이고 또다른 편향이 된다. 이 동서양의 혁명의 경험은 모두 역사적 보편성과 각자의 특수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가령 맑스의 프랑스 혁명의 분석을 통해서만 우리는 부르주아 체제의 본질과 각 계급세력의 정치적 특성을 인식하고 파리꼬뮌의 혁명적 경험을 사회발전의 교훈으로 삼을 수 있기 때문이다.
1789년 혁명 발발 이후 1793년 프랑스대혁명에서의 좌코뱅 독재라는 공안위원회, 1871년의 파리꼬뮌의 계급독재, 조선의 1884년 갑오농민전쟁과 집강소라는 농민독재기구, 1945년 해방 이후 인민위원회가 혁명의 보편성을 지니고 있고 각자 역사마다의 특수성을 가지고 있디.
조선의 봉건성을 부정하는 선생이 갑오농민전쟁에서 반외세 반봉건 기치를 내걸고 싸웠던 갑오년의 계급전쟁을 보면 무엇이라고 할지 자못 궁금하다.
맑스주의, 그 발전인 맑스레닌주의는 21세기에도 여전히 찬란하게 빛나는 진리의 등불이다. 해방의 사상이다. 맑스레닌주의를 21세기에, 한국현실에 더 창조적으로 현대화하고 현지화해야 한다. 이것이 맑스레닌주의의 교조화가 아닌 주체적 발전이다.
맑스레닌주의를 철저하게 학습해야 한다. 그것이 교조주의와 수정주의 이 양편향을 극복하는 21세기 맑스레닌주의자들의 참된 태도다.
무지는 무지를 자각할 때 발전의 원동력이 된다. 무지를 자각하지 못하고 무지를 하나의 이념으로 발전시킬 때에는 악선전가가 된다. 맑스의 말을 빌면, 무지가 역사발전에 도움이 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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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협

전국노동자정치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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