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사회주의 대혁명 이후 100년, 당대 공산주의자들을 위한 교훈(2)

러시아공산주의노동자당-쏘련공산당 중앙위원회 보고(RCWP-CPSU)

2018년 4월 18일

 

* 이 글은 러시아공산주의노동자당-쏘련공산당(RCWP-CPSU)의 강령적 글이다. 러시아공산주의노동자당-쏘련공산당은 구 쏘련 공산당 내에서 쏘련 사회주의 체제를 지키기 위해 투쟁했고 쏘련 해체 이후부터는 사회주의 복고를 위해 투쟁하고 있는 혁명적 공산주의 조직이다.

러시아 혁명과 쏘련 사회주의의 승리는 진보적 인류 전체의 승리였고, 쏘련 사회주의의 해체는 진보적 인류 전체의 패배였다. 러시아 내부에서 맑스-레닌주의의 기치를 내걸고 투쟁하고 있는 혁명적 공산주의자들이 직접적인 자신들의 역사를 어떻게 평가하고, 또 어떠한 전망을 가지고 투쟁하고 있는지 이 글을 통해 확인하게 될 것이다.

이 글은 몇 차례에 걸쳐 번역될 것이다.(편집자 주)


2.2. 전 세계 노동자 계급과 근로인민을 위한 쏘련 사회주의 건설 경험의 중요성과 사회주의 국가의 역할

(а) 쏘비에트 –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가장 강력한 조직 형태

(b) 경제적 정치: 직접적으로 사회화된 생산은 쏘비에트 권력의 경제적 기초이다.

c) 세계 최초의 사회주의 국가인 쏘련: 쏘련에서는 어떤 유형의 사회주의가 건설되었는가?


2.3. 쏘비에트 경험의 중요성: 다른 나라 노동자계급당을 위한 유효성, 필요성 및 필연성

III. 우리의 장래 승리를 위해 패배로부터 얻은 교훈들

3.1. 이론적인 문제들: 주요 맑스주의 기반으로부터의 후퇴

3.2. 경제적 실수들: 사회적 생산에서의 상품 요소들과 자본주의로의 급격한 후퇴

3.3. 사회주의 건설에서의 정치적 실수: 쏘비에트 권력 발전의 레닌주의 원칙으로부터의 이탈 및 당 강령의 일탈

1. 현재 공산주의 진영과 문학. 반(反) 과학, 우리 시대의 가짜-공산주의 이념적 흐름

4.1. 유로 꼬뮤니즘은 공산주의가 아니다.

4.2. 시장 사회주의는 사회주의에서 자본주의로 가는 역주행이다. 고르바초프의 꿈: 적기(赤旗) 아래 자본주의를 향해 가는 것. 중국 공산당과 러시아연방공산당의 길

4.3. 21세기 사회주의: 라틴 아메리카 및 다른 국가에서 일종의 개량된 자본주의

1. 우리의 전망은 쏘비에트 권력과 사회주의 재생을 위한 투쟁이다

5.1. 공산주의 운동에 맞서 싸우는 부르주아지의 오늘날의 수단

5.2. 임박한 혁명에 반대하는 부르주아 투쟁 수법에 대한 레닌의 견해

5.3. 러시아에서 공산주의에 대한 부르주아의 오늘날의 공격 수법

새로운 유형의 당을 향하여 – 레닌주의 길을 따라

 

2.2. 전 세계 노동자 계급과 근로인민을 위한 쏘련 사회주의 건설 경험의 중요성과 사회주의 국가의 역할

프롤레타리아트가 처음부터 자신의 국가를 가질 필요성은 계급의 적들을 억압할 필요성에 의해 결정된다. 따라서 혁명은 오로지 공산주의의 최종 목표의 도달, 즉 계급 없는 사회의 건설, 국가의 소멸, 사회주의 건설의 완성과 공산주의의 가장 높은 단계로의 이행, 안팎에서의 자본주의 침략의 소멸에 의해서만 종료된다.

공산주의 건설의 길을 걷는 사회의 진보는 직접적으로 사회화된 생산을 수립함에 있어 인민들의 보편적인 정치 참여를 보장하여 적극적인 프롤레타리아 진영이 우세해짐으로써 가능해진다. 그러한 참여를 보장하는 것은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가장 중요한 기능이다.

(а) 쏘비에트 –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가장 강력한 조직 형태

10월 사회주의 대혁명은 러시아에서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조직 형태로서 쏘비에트 권력을 수립했다. 혁명적 봉기와 임시정부의 붕괴 후 이튿날 일찍이 제2차 노동자농민병사위원회 쏘비에트 대회는 노동자 계급의 권력, 즉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선언했다. 그것은 노동자 계급의 지도 하에서의 계급적 단결의 특수한 형태이기 때문이다. 쏘비에트는 이전에는 짜르 러시아 하에서 노동자 투쟁기구로서 등장했는데, 처음에는 권력을 위해 투쟁하는 경제적, 정치적 기구였다가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수립했다. 혁명 이후 쏘비에트는 프롤레타리아 독재 정권을 실행하는 조직 형태가 되었다.

쏘비에트는 역사적으로 가장 강력한 형태의 프롤레타리아 독재이다. 그것은 다른 형태보다 가장 오래 지속되었거나 위대한 업적을 성취했기 때문만이 아니다. 쏘비에트의 확고함과 프롤레타리아 독재 기능을 수행하는데 있어서 최고의 적합성은 모든 근로 인민들에게 공유되었던 객관적인 현실, 즉 물질적 생산 과정에서 조직되는 방식에 기반하고 있다는 사실로 결정된다. 부르주아 의회 또한 객관적 현실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러나 이 현실은 자본 숭배와 이윤의 정신으로서 전체 상품생산의 세계에서 전능한 화폐권력으로 표현된다. 역사상 처음으로 쏘비에트 근로 인민들은 생산과정에서 획득한 기구를 사용하여 사회 문제를 관리하고 정치적 결정을 내리고 자신들의 요구에 국가가 복종할 수 있도록 정부 기관을 통제하기 위하여 노동자들의 집단적 대표자들을 선출할 뿐만 아니라 필요하면 언제든지 그들을 소환할 수 있도록 권한을 부여 받았다. 1917년 설립된 쏘비에트 권력은 근로인민의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와 근로 인민을 위한 최고의, 가장 진보적인 형태의 민주주의였다.

쏘비에트 권력의 객관적이고 물질적인 기초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10월 혁명이 시작되기 훨씬 전인 1905년 초 최초의 러시아 혁명 과정에서 노동자들의 경제적, 정치적 권리를 위한 투쟁기구로서 쏘비에트가 생겨났다는 중요한 사실을 고려해야한다. 레닌이 지적한대로 쏘비에트는 볼셰비키의 발명품이 아니다. 쏘비에트는 이바노보-보츠네센스크(Ivanovo-Voznesensk)에서의 경제파업에 이은 정치파업 과정에서 노동자 계급이 스스로 발견한 투쟁 형태이다. 그것은 여러 공장과 기업의 노동자 대표단으로 산업 대표 원칙을 바탕으로 건설되었다. 이후 쏘비에트는 국가권력의 수준까지 하나로 통합되었다. 쏘비에트 초기부터 이바노보 지역 자본가의 산업체 소유주들은 노동자 대표단과 협상할 준비는 되어 있었지만, 자본가 단체는 개별 자본가들이 우선 “자기 기업” 노동자 대표자들과 협상해야만 한다고 요구했다는 것을 우리는 언급해야만 한다. 노동자들은 완강하게 “전체를 상대로”라는 원칙을 고수하면서 이것이 필수 조건임을 인식하게 되었다.

쏘비에트 권력의 객관적 기반은 다음과 같은 일련의 역사적 사건을 결정했다. 먼저 짜리즘 및 부르주아 계급과의 어떠한 논의나 합의 없이 쏘비에트가 등장했고, 이어서 쏘비에트 권력이 설립됐던 곳에서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났는데, 쏘비에트 국가 창출과 쏘비에트 헌법이 마련된 이후에 쏘비에트 연방이 창립되었다. 이 사건의 역사적 연속은 오직 계급투쟁의 논리에 의해서만 결정될 따름이다. 따라서 쏘비에트의 역할은 이미 권력 투쟁의 단계에서도 중요하다. 어떠한 의회나 “인민의 신뢰를 받는 정부”라도 쏘비에트 권력이 되어 쏘비에트 헌법을 채택하고, 노동자를 사회주의로 이끌 수는 없다.

어떤 이론가들은 “쏘비에트 유형의 의회공화국 형태로 민주주의를 향해 나아가는” 식의 공식을 도입하면서까지 쏘비에트를 묘사하려고 했는데, 그러한 쏘비에트는 노동자 의회를 대표하지 않는다. 쏘비에트는 계급투쟁을 수행하기 위한 프롤레타리아트의 전투부대다. 레닌이 말했듯이, “노동자대표 쏘비에트는 노동자 의회나 프롤레타리아 자치 정부 기관이 아니며, 결코 자치 정부 기관이 아니라 명확한 목표를 성취하기위한 투쟁 기구이다.”[12]

자본주의 지지자들이 즐겨 말하는 것처럼, 쏘비에트는 행정을 관리할 준비가 안 된 노동자들과 요리사들에게 결코 권력을 주지 않았다. 정반대로 레닌의 그의 저작 “볼셰비키는 권력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우리는 몽상가들이 아니다. 우리는 비숙련 노동자나 요리사가 국가 행정업무를 즉각 수행할 수 없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카데트(입헌민주당)인, 브레쉬꼬프스까야(Breshkovskaya), 쩨레텔리(Tsereteli)와 같은 입장이다. 그러나 우리는 부유한 가정의 선택된 부자나 정부 관리들만이 국가를 운영할 수 있고, 평범하고 일상적인 행정 업무를 수행할 수 있다는 편견을 바로 거부한다는 점에서 이러한 시민들과 다르다. 우리는 국가 행정업무를 수행하는 훈련이 계급의식이 있는 노동자들과 군인들에 의해 수행되어야한다고 주장하며, 이 훈련은 즉각 시작되어야한다고 요구한다. 즉, 모든 근로 인민과 가난한 인민 전부가 국가 업무를 수행하기 위한 훈련을 즉각 시작해야 한다.”[13]

쏘비에트의 기원을 연구하고 러시아공산당(볼셰비키)의 두 번째 강령작업을 할 때 레닌은 쏘비에트 권력 건설을 위한 필수 원칙을 정확히 지적했다.

이 원칙은 다음과 같다.

– 자본주의에 의해 착취당한 통일되고 조직된 노동자들과 대중들만 고려해야 하고, 다음과 같은 착취계급은 고려되어서는 안 된다.

– 착취 받는 계급들의 가장 활동적인 기구와 계급의식적인 일부인 전위인 노동자 계급은 이론만이 아니라 다음과 같이 실제적으로 국가 운영에 참여하도록 전체 주민을 교육하고 촉구해야만 한다.

– 권력 분배의 한 수단으로써의 의회의 폐기. 입법기구와 집행기구의 권한을 하나의 기구로 통합. 그들은 스스로 법을 채택하고 실행하고 통제한다.

– 생산하는 경제 단위와 긴밀하고 직접적인 연계의 제조 경제기구와 긴밀하고 직접적인 연계 지원. 공장, 기업(산업적이거나 농업적), 즉 제조 단위(공장이나 제조소)는 (특히 선거와 같은)의 주요한 세포로 변모한다. 이러한 형태의 제조 활동 형태에 관여하지 않는 주민층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지역 선거구가 존재한다.

– 이전의 모든 민주주의 형태와 비교하면 대중과 국가 권력 기구 전체와 국가통제 사이의 가장 긴밀한 유대 관계.

– 점차적으로 정부 통제 기구에 있어서 관료적 형식주의를 폐기할 가능성.

– 불필요한 공식 절차로 인해 국가권력 기구들의 조직에 민주주의가 더 많아지고, 필요하다면 언제라도 노동하는 팀에 의해 대표자들을 선출하고 소환하는 것의 단순화.

– 민주주의의 주요 쟁점은 가난한 사람과 부유한 사람들 사이의 형식적 평등에 대한 형식적 조항이 아니라 사회화된 소유에 기초한 노동 대중을 위한 자유와 민주주의의 실질적인 접근성 보장이다.

– 노동자 계급의 주요 부위의 무장력을 세우는 것. 부르주아지는 필요한 경우 무장해제 되어야 한다.

– 사회 문제를 통제하기 위해 점차적으로 전체 주민을 포함시키기 위해 쏘비에트 권력의 광범위한 발전을 사전에 계획한다.

쏘비에트의 일시적인 패배는 주로 공산주의 이론을 실행하고 위의 원칙을 폐기한 당의 잘못으로 설명될 수 있다. 특히 실제의 수정주의나 혹은 무의식적인 방식이지만 스탈린 시기 이후 실질적으로 나타난 수정주의 배신 때문이다. 이로 인해 쏘비에트가 일종의 부르주아 의회로 타락하게 되었지만 이 문제는 나중에 논의하게 될 것이다.

사회주의의 임무는 노동자 권력을 선포하는 것에 국한되지 않는다. 사회주의는 노동자들이 이 권력을 행사할 실제적이고 실질적인 가능성을 가지고 있음을 보장해야 한다. 쏘련은 노동자 계급이 권력을 행사할 수 있게 해주는 가장 적절한 형태이며,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조직 형태이다.

(b) 경제적 정치: 직접적으로 사회화된 생산은 쏘비에트 권력의 경제적 기초이다

쏘련의 경험은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형태로서 쏘비에트 권력의 수행, 강화 및 발전의 경제 기반이 생산수단에 대한 사회화된 소유이며, 직접적으로 계획된 사회화된 생산 – 완전한 복지의 제공을 목표로 하는 소비자 가치의 생산 및 사회 각 구성원의 자유롭고 포괄적인 발전-이라는 것을 설득력 있게 증명해 주었다.

사회주의 생산의 목표는 가치의 자기 증식과 부가가치 증대가 아니라 사회 각 성원의 완전한 복지와 자유롭고 전면적 발전의 제공이다. 이러한 목표를 거부하면서 상품시장의 경제로 사회주의를 타락시키고 파괴하도록 시장으로 나아가는 과정은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를 위한 경제적 기초에 복무할 수 없다. 전반적인 시장경제는 장차 부르주아 독재의 기초가 되는 자본주의를 의미하는 것이다.

공산주의 생산에서 노동은 직접적으로 사회화된 노동으로 대표되며 교환의 방식으로 작동되지 않는다. 따라서 공산주의 생산은 직접적으로 사회적인 것으로 특징지어질 수 있으며, 공산주의의 가장 낮은 단계인 사회주의에서 뿐만 아니라, 가장 높은 단계인 공산주의에서도 그러하다.

러시아 사회주의 혁명의 역사적 경험과 소련 사회주의 건설과 발전의 경험에 대한 변증법적 접근은 공산주의로의 이행시기 및 공산주의의 첫 단계인 사회주의 발전 시기에 생산방식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관찰할 수 있도록 한다.

노동계급으로의 권력 전환과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확립은 스스로 생산 방식을 변화시키지 않는다. 공산주의 (사회주의) 방식이 확립된 것은 국유화 캠페인 직후였을 뿐이었다. 이러한 생산방식 하에서 생산은 명백하게 사회적 성격을 지니는 반면, 이 방식은 이행기 내내 다른 생산 방식과 공존한다. 러시아에서 국가 자본주의, 사적 자본주의, 소상품과 가부장적인 방식이 있었다.

가부장적 방식은 개인적 필요를 위한 생산을 의미하며 자연적인 성격을 띤다.

소상품 생산은 교환을 위한 생산이며 상품 생산을 의미한다.

가치 창출(부가적)을 전제로 하는 사적 자본주의 생산은 본질적으로 상품생산을 특징으로 한다.

우리는 러시아의 신경제정책 기간에 존재했으며 지금도 여전히 널리 이용되고 있는 중국인민공화국과 쿠바와 베트남의 국가자본주의에 특별한 주의를 기울여야한다. 문제는 국유화 이후 일정 기간 동안 국유화 된 기업의 일부만이 사회의 필요를 직접적으로 충족시키는 데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사회주의 생산 방식을 구성하는 것이 바로 이 부분뿐이다. 다른 모든 국유화 된 기업은 국가가 소유하고 있지만, 여전히 계획에 의해 지배되지는 않고, 어떠한 유형의 상품생산 기본법칙, 즉 자본주의적 생산인 가치법칙에 따라 작동한다. 결국 국가자본주의 경제영역에서의 생산은 상품생산이다.

공산주의 (사회주의) 생산 방식이 발전하고 확장되는 동안, 그것은 일반적으로 이행기 내에서 다른 모든 양식을 대체한다. 사전 계획되고 조직된 직접적으로 사회화 된 사회주의 생산은 우선 하나의 유형에서 지배적인 형태로, 그리고 이후 단계에서는 생산의 유일한 형태로 전환된다. 쏘련에서는 1922년 12월 20일 모스크바 쏘비에트 총회 연설에서 레닌이 예상했던 방식 그대로 일어났다.

“신경제정책의 러시아는 사회주의 러시아로 바뀔 것이다.”[14]

이행기 내에서 비사회주의적 유형이 축출되는 것은 레닌의 다음과 같은 말로 표현될 수 있다.

“더 많은 사회주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구절은 공산주의 첫 단계인 사회주의 자체에는 적용될 수 없는데, 사회주의 이후 생산은 지배적일 뿐만 아니라 유일한 생산 형태로 더 많은 사회주의는 가능하지 않고 더 발전되거나 덜 발전된 사회주의만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 발전은 증가 또는 감소로 제한될 수 없으며, 통일과 대립의 갈등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직접적 사회화의 측면과 자본주의에서 유래한 상품화의 잔재로 인한 부정적인 측면 간의 충돌이 존재하는 사회주의 생산의 발전이라는 측면에서 이는 사실이다. 계획 경제에서 이러한 투쟁은 국가와 통치 정당의 이론적 입장 및 정치 전략에 직접적으로 의존한다.

부하린(Bukharin)의 저작인 “이행기 경제학”에 대한 논평(레닌 전집 11권)에서 레닌은 사회주의 생산 하에서 생산은 시장을 통하지 않고 소비자에게 간다고 강조했다. “지방 쏘비에트 기관에 대한 노동 및 방위위원회(STO, 번역자: 라틴어 Sovet Trudai Oborony의 약어다.) 훈령”에서 그는 농민이 생산한 식량을 교환하는 사회주의 공장 생산물은 정치 경제적 의미로는 상품이 아니고, 어느 정도 그것은 상품이 아닐 뿐만 아니라, 그것은 이미 상품이 아니며, 상품이 되기를 중단했다고 밝혔다.

농업 집산화 이후 쏘련에서는 두 가지 유형의 소유가 아니라 사회주의 소유라는 한 가지 유형의 두 가지 형태의 사회화된 소유가 나타났다. 계획에 따라 생산의 본질은 점차적으로 상품생산과 반대되는 방향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다양한 상품의 모습과는 관계없이, 생산은 전체적으로 특징지어 질 수 없으나 직접적으로 사회적이고, 생산과 노동이 시장과 관련이 없는 곳에서 바로 처음부터 직접적으로 사회적이다.

쏘련에서 반혁명 사건은 우리에게 다음의 두 가지 선택만이 있음을 확인시켰다. 우리는 직접적으로 사회화된 생산으로서의 사회주의를 건설하고 발전시킨다. 소비자 가치의 생산은 소비자 법칙에 따라 이루어지거나 가치의 생산의 분배를 증가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즉, 상품생산은 자연적으로 자본주의 상품 생산으로 이끈다. 사회주의 하에서도 개별적으로 생산된 식량이 농업 시장에서 판매될 때 상품 생산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그렇다. 여전히 농산물 시장에서 가격은 가치법칙에 의해서가 아니라 국유기업에서 제조된 상품에 대한 가격 수준에 의해 결정된다. 반면 이 가격은 계획경제에서 직접적으로 사회화된 상품의 소비자 가치를 고려하며 생산에 소비되는 노동량에 따라 결정된다.

사회주의 상품경제를 건설하려는 시도는 필연적으로 사회주의 파괴로 이어질 것이다. 이는 과학적으로 확립된 사실일 뿐만 아니라 유감스럽게도 역사적인 실험 과정에서도 입증되었다.

사회주의는 직접적으로 사회화 된 경제이다. 쏘비에트 권력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사회주의 생산의 목적이 완전한 복지와 사회 구성원의 자유로운 광범위한 발전을 제공하는 한,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노동자 계급의 발전이 바로 생산의 목표의 일환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부가가치 창출을 당연시하는 자본주의 상품 생산이 노동자 계급으로부터 자유시간 및 자유로운 발전을 위한 다른 조건을 빼앗아야 할 때, 사회주의의 직접 사회화된 생산은 과학발전의 결과로 절약되는 노동시간이 노동자들을 위한 물질적 혜택이 추가되는 것뿐만 아니라 특히 국가 활동과 정치 업무에 참여하기 위한 전반적인 발전을 위한 여가 시간이 확대되도록 해야 한다. 유감스럽게도 바로 이러한 일은 지난 수십 년 동안 쏘련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생산력이 발전하고 생산성이 증가하는 것이 직접 제조업 종사자의 수를 감소시키지 않으며 거기에 맞게 비제조업 종사자의 수를 늘려, 오히려 노동자와 농민들에게 더 많은 여가 시간을 주어 특히 국가 운영에 관여 할 수 있도록 했다는 것을 쏘련 혁명과 반혁명의 역사가 보여 준다.

완전한 공산주의가 달성될 때까지, 계급의 완전한 파괴까지 노동자와 농민의 수를 줄이지 않는 것이 가능하다. 보다 중요한 것은 생산 발전에 따라 사회의 물질적 번영뿐만 아니라 노동자의 여가 시간 또한 증가하여 자유로운 전반적 발전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가 시간의 배분이 직장에 할당된 시간을 초과하자마자, 어떤 사람이 그/그녀의 근무 시간에 무엇을 하는 지가 중요하지 않고 그/그녀의 여가 시간에 무엇을 하는지가 더 중요해질 것이다. 이것은 실제로는 그들이 생산에서 차지하는 위치에 따라 사람들을 나누는 계급 체계의 완전한 파괴로 변화하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따라서 사회주의를 발전시키고 쏘비에트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우리는 노동자의 여가 시간을 소비하는 것과 같은 생산을 요구하지 않는다. 우리에게는 사회주의 발전 과정에서 노동시간을 절약하고 여가시간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하는 생산이 필요하다. 그러한 생산의 목적은 완전한 복지와 사회 구성원 각각의 자유로운 전반적 발전이다. 사회주의 생산의 목표가 레닌의 볼셰비키 당의 첫 번째, 두 번째 강령에 기록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c) 세계 최초의 사회주의 국가인 쏘련: 쏘련에서는 어떤 유형의 사회주의가 건설되었는가?

사회주의 사상을 지지하거나 심지어는 사회주의의 적대자들이나 할 것 없이 다양한 이론가들이 쏘비에트 사회주의의 많은 특성을 상세하게 설명했다. 초기 사회주의, 저개발 사회주의, 완전한 사회화, 변형 사회주의, 병영 사회주의, 관료주의적 타락한 사회주의 등과 같이 쏘비에트 운영에 대한 수많은 정의가 등장했다.

특히 러시아연방공산당[CPRF, 역자: 쏘비에트 시절 쏘련 공산당(CPSU, Communist Party of the Soviet Union) 후신으로 1993년 창립되어 주가노프(Zyuganov)가 당수로 있는데, 혁명적 노선의 공산당이 아니다.) 주요 이론가들이 공유하고 있는 일반적 관점이 있는데 그것은 실패했던 초기 사회주의 모델이다. 그러나 그것은 20세기 전반 상황에 잘 맞았던 모델이지만 과학 기술 진보와 덜 견고한 민주주의 사회라는 변화된 상황에 조응하지 못하게 되었다.

우리는 공산주의 형성의 가장 낮은 단계인 사회주의가 미완성의 공산주의라는 레닌의 테제에 기초한다. 사회주의는 모든 면에서 여전히 과거 자본주의 질서의 각인을 지니고 있다. 개인들은 여전히 그/그녀의 개인적 분배의 증가 뿐 아니라 공유재산의 증가에도 관심이 있다.

이를 기회로 공산주의 운동 내의 기회주의자들은 사회주의 건설 모델을 사적 소유, 실업, 정치적 및 경제적 다원주의처럼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것으로 하기 위해 사회주의를 공산주의와 이론적으로 분리시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산주의의 첫 단계가 아닌 다른 형태의 과학적 사회주의는 없다. 한편 진정한 공산주의의 기초는 일반적으로 공산주의에 공통적인 관계이며 그리고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 그리고 공산주의 두 단계로 이행기를 경과하는 (성숙 정도가 다를 수 있다는 것이 분명하다.) 것이다. 공산주의의 일반적 특징이며 완전한 공산주의로 향해 발전하는 관계란 다음과 같다.

전 세계적으로 사회화된 소유와 재편성, 모든 주요 생산수단과 인민 경제 발전과 다른 사회생활 영역의 계획, 주민의 완전고용, 아직 일할 수 없는 이들(아이들)과 이미 일할 수 없게 된(노약자 및 무능력자) 이들을 보살피는 사회, 각 사회 구성원의 능력을 개발하고 발전시키는데 공평한 조건을 보장하는 사회(모든 사람이 교육과 의료에 자유롭게 접근 가능), 노동자 쏘비에트 체제를 통해 모든 수준의 생산과 사회생활을 관리하는 것이다.

사회주의 사회의 발전 과정에서 육체노동과 정신노동 사이, 도시 노동과 농촌지역에서의 노동 사이의 차이는 점차 사라지게 될 것이다. 창의력이 인간의 주요 요건이 되자마자 노동은 물질적 이해 때문에 자극받는 사회적 의무가 아닌 창조성으로 변하게 될 것이고 이에 따라 저절로 보상이 될 것이다.

사회주의의 주요 원리는 “각자의 능력에 따라 일하고, 일한만큼 분배받는” 것으로부터 “각자의 능력에 따라 일하고, 각자 필요에 따라 분배받는” 공산주의의 원리로 바뀐다.

발전 과정에서 (공산주의의 첫 단계인 미완성의 공산주의인) 사회주의는 경제, 도덕 및 지적 분야에서 자본주의의 흔적을 폐기하고 가장 높은 단계인 완전한 공산주의의 단계로 넘어 간다.

공산주의로 향한 운동은 필연적인 것이며 인류 전체가 이 방향으로 가고 있다.

노동자 계급과 그 동맹자들의 투쟁과 역사적 창조성이 더욱 의식적이고 조직적으로 될수록 공산주의로 가는 운동은 더욱 성공적이게 된다. 사회주의 혁명은 노동자들의 투쟁을 촉구할 수 있고 대중을 이끌 수 있는 조직된 노동자들의 진정한 정치적 다수가 혁명의 필요성을 깨달을 때에만 가능해진다. 혁명은 당에 의해서도, 음모자에 의해서도 아니라 혁명적인 계급이 주도하는 대중에 의해 수행하는 것이다. 인민의 의식 혁명은 사회, 정치적 질서의 혁명적 변화에 앞선다. 공산당의 임무는 프롤레타리아트가 이데올로기적 무기를 갖추고 불필요한 희생자를 발생시키건 환상에 빠지는 것을 피하기 위해 제대로 투쟁을 집중시키는 것이다. 공산주의 사상은 노동자 대중들이 그 사상을 움켜쥘 때 행동하는 물질적 힘으로 변한다.

맑스-레닌주의 이론은 미래 사회에 대한 상세한 청사진과 이상적인 모델을 제시하지 않는다. 맑스와 엥겔스는 공산주의가 도입되어야 할 하나의 상태도 아니고 그것에 꿰어 맞춰 현실을 변화시켜야 하는 이상도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들은 공산주의가 사회 발전에 방해가 되는 부당한 상태를 파괴하려는 현실의 운동으로 간주한다.

사회주의는 자본주의 모순으로부터 발생한다. 자본주의는 가혹하고 무자비하며, 굶주리게 하고 유혈적일 수 있다. 계급투쟁은 사회주의 하에서 중단되지 않고 다른 형태를 취할 뿐이고 프롤레타리아의 창조적 경향과 쁘띠 부르주아 및 사유재산에 뿌리를 둔 경향 사이의 투쟁으로 진행된다.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수행하고, 확고한 공산주의적 경향이 승리하는 것이 보장되는 것은 사회주의의 아주 중요한 특징이다.

사회주의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레닌에 따르면 정치영역에서의 사회주의는 계급 체제의 제거를 의미한다. 그것은 계급 구분 및 육체노동과 정신노동 등의 사이의 차이를 극복하려는 운동이다. 레닌은 “자본주의 지배의 전복 및 부르주아 국가의 파괴, 프롤레타리아 독재 수립 이후 계급의 폐지는 장구하고 어려우며 완강한 계급투쟁을 필요로 하지만, 계급투쟁은 (과거 사회주의와 과거 사회민주주의 저속한 대표자들이 상상하는 것과 달리) 사라지지 않고 오직 그 형태를 바꾸고 여러 측면에서 더 격렬하게 진행된다.”[16]는 것을 분명히 했다.

경제 영역에서 사회주의는 직접 사회화된 생산에서 상품화를 극복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회주의의 도덕적 영역에서 모든 사람과 각자의 자유로운 발전을 위한 더 큰 기회를 제공한다.

쏘비에트 지도부와 당은 사회주의 건설 과정에서 실수를 저질렀는가? 물론이다. 낯설고 아주 어려운 상황에서 전인미답의 길을 가며 낡은 부르주아 세계 전체로부터의 광기 어린 저항을 받으며, 어떠한 실수도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다르게 했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정치적 위선과 자만을 의미한다. 우리는 실수, 배반과 비열할 폭정을 구분한다. 우리의 선구자인 레닌과 스탈린의 지도 아래 공산주의볼셰비키는 그 길을 아주 잘 통과했다. 볼셰비키는 혁명적인 정통 맑스주의였다. 실천 이론에서 그들은 특정한 도그마에 집착하지는 않았지만, 무엇보다도 계급투쟁과 관련된 맑스주의 기본 원칙을 확고하게 따랐다. 그것이 모든 실수에도 불구하고 “앞으로와 더 높은 곳으로의” 방향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이다. 운동의 관성은 그들 이후에도 아주 오랫동안 남아 있었지만 점점 더 후퇴하고 있었다.

[12] 레닌 전집(러시아어 5판), 12권, 130쪽.

[13] 같은 책, 34권, 315쪽.

[14] 같은 책, 45권, 309쪽.

[15] 칼 맑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독일 이데올로기, 1955년, 34쪽.

[16] 레닌 전집, 38권, 386-387쪽. 노/정/협

이 기사를 총 367번 보았습니다.

노정협

전국노동자정치협회

답글 남기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