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 민족문제 이해를 위해서 – 한국의 양두구육식 반쏘 반북 ‘진보급진파’들에게

2018년 1월 18

2018년 2월 2일(개정판)

* 이 글은 2월 2일 열렸던 토론회에 제출됐던 자료입니다. 기존에 제출됐던 글을 대폭 보강한 내용입니다.

그 동안 이른바 좌파들은 쏘련에 대해서 사실상 제국주의의 프로파간다를 마치 독립적인 자신의 사고인 냥 착각하고 반쏘비에트 사상에 물들었습니다.

맑스레닌주의 진영의 계속되는 정치적 비판과 역사에 대한 진실 추구에 이어서 최근 《문화적 냉전 – CIA와 지식인들》(저자 : 프랜시스 스토너 손더스, 역자: 유광태, 그린비, 2016년 10월 20일 출간)이나 ‘수정주의’ 역사학파 등에 의해 그 실상의 일부가 밝혀지자 혼비백산 정신적 아노미 상태에 빠져들었습니다.

원제(Who Paid the Piper?: The CIA and the Cultural Cold War)에 압축돼 있듯이, 그 실체가 가려져 있었던 이 문화냉전의 요체는 ‘누가 그 (막대한) 비용을 댔는가?’라는 것이다. 물론 CIA다. 무엇을 위해? 서방 지식인들에게 “공산주의라는 병균이 퍼지지 않도록 예방접종”을 하고, “미국의 외교적 이권을 선취하는 길을 닦기” 위해서였다. 미국 뜻에 따르도록 함으로써 팍스아메리카나, ‘미국의 세기’를 열기 위한 것이었다.

이를 위해 CIA는 세계문화자유회의(CCF, 나중에 국제문화자유협회로 개칭) 등 민간 위장단체들을 만들어 컨소시엄을 구성하고, 35개국에 그 지부를 두었다. “사실상 CIA의 가장 야심찬 전위부대 중의 하나”요 “공산주의 사상의 확산을 막는 교두보”라고 했던 세계문화자유회의는 한국에도 그 지부가 있었다. 이 컨소시엄 구성을 주도한 이가 CIA의 아버지라고도 불린 최장수 5대 국장 앨런 덜레스(1893~69)다.

컨소시엄은 대변지 <인카운터> 등 20종이 넘는 선전매체(잡지)들을 발행했으며, 통신사까지 소유하고 수많은 학술행사, 전시회, 콘서트, 대형 국제회의 등을 열었다. 한국에서도 열린 국제펜클럽 대회가 이 컨소시엄과 무관하지 않으며, 1953년에 창간된 잡지 <사상계>가 미 공보원(USIS)의 자금 지원을 받아 탄생했다는 망명객 정경모의 증언도 있었지만 일본의 <자유>, 이탈리아의 <템포프레젠테> 같은 반공주의 잡지들이 CIA 자금 지원으로 창간됐다.

조지 오웰, 버트런드 러셀, 장 콕토, 한나 아렌트, 솔 벨로, 빌헬름 푸르트벵글러, 쇼스타코비치, 레너드 번스타인, 대니얼 벨, 아서 슐레진저 2세…. 서방 지식계를 이끈 유명인사들도 대거 등장한다. “모르고 한 일일 수도 있겠지만, 전후 유럽의 작가, 시인, 미술가, 역사가, 과학자, 평론가 중 이 은밀한 사업과 연관되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었다.” 대중은 CIA의 반공 심리전 각본에 따라 알게 모르게 동원·포섭된 이들의 작품과 의견, 태도, 감정과 행동에 영향을 받아 “사실은 누군가가 바라는 대로 움직인다 해도 스스로는 자신의 의지에 따라 움직인다고 믿게 되는” 상태에 빠졌다. 이 ‘세뇌’ 작전에 가담한 유명인들은 돈을 받아 교양계층의 안락한 기득권을 유지하며 CIA에 포박당했다(한승동 선임기자, ‘문화냉전’ 이끈 CIA는 왜 괴물이 됐나, 한겨레, 2016-10-27)

지금도 한국사회에는 조지 오웰뿐만 아니라 “버트런드 러셀, 장 콕토, 한나 아렌트” 같은 제국주의 첩자들을 진보적 지식인으로 추종하며 이들의 글들이 일부 지식인, 학생들에게 제법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이들은 “사실은 누군가가 바라는 대로 움직인다 해도 스스로는 자신의 의지에 따라 움직인다고 믿게” 될 정도로 철저하게 정치적 꼭두각시 노릇을 했습니다. 이 정치적 꼭두각시를 추종하는 대중들은 꼭두각시의 꼭두각시로 그 맨 위에 미제국주의 정보기관의 프로파간다에 따라 사고하고 움직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CIA(미국 중앙정보국)의 어용단체인 세계문화자유회의는 “공산주의 사상의 확산을 막는 교두보”로 자신의 위상을 설정했는데, 분단되어 있고 사실상 반공주의가 국교인 한국에서 그 지부가 얼마나 많은 지식인, 문화예술가, 정치인들을 프락치로 삼아 정치선전부대로 활용해 왔겠습니까? 우리에게 진보적 지식인들이 모여 만든 <사상계>조차도 첩보공작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한편으로는 충격적입니다. 그런데 <사상계>의 발행인이었던 장준하 선생도 미국 CIA의 전신인 전략첩보국(OSS) 첩보원이었다는 사실을 돌이켜본다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문제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한겨레 한승도 선임기자는 “윌리엄 풀브라이트 상원의원은 CIA가 이런 활동의 구실로 삼은 당시 소련의 흉포함, ‘세계정복 계획’ 따위는 허구이며 오히려 체제 안보를 유지하기 위한 병적인 공포, 허약함에서 나온 것일지도 모른다며 비판했습니다. 이 또한 우리와 닮아 있지 않은가.”라고 반쏘 반공주의를 우리 사회의 종북몰이에 빗대서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사회 종북몰이가 얼마나 극심한지 CIA의 반공주의 첩보공작을 비난하는 한겨레조차도 막상 통합진보당 해체 공작과 이석기 의원 등에 대한 알오(RO) 내란공작 등이 극심하게 자행될 때 종북몰이에 동조했습니다. 한겨레뿐만 아니라 경향신문, 오마이뉴스, 프레시안 같은 ‘진보적’ 신문도 이 종북몰이의 노예가 되었습니다.

스페인 내전에 대한 반공주의 신화화 주역인 조지 오웰과 트로츠키주의자들

한국사회에서 반쏘반공주의는 ‘진보적’ 지식인, 활동가들한테도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스페인 내전도 반공주의 의식을 심는데 일조하는 커다란 소재입니다. 그런데 스페인 내전에 대한 이른바 좌파들의 정신적 기원은 의외로 빈약, 간단한데, 찰리 채플린, E.H. 카 등을 비롯해 진보인사들 38명을 밀고하기도 한 영미 제국주의 정보기관 첩자(첩자로 된 시기는 정확히 모르겠으나 반쏘 반공주의의 극단적 정치적 귀결인 첩자질)였던 조지 오웰의 《카탈로니아 찬가》, 정영목 옮김, 민음사, 2001.05.01, 2012.07.09 재발행)와 그것을 영화화한 캔 로치 감독의 《랜드 앤 프리덤》 정도를 보고 스탈린주의자들이 혁명가들 등에 총질을 했다고 분개합니다.

영국 작가 조지 오웰(1903∼1950)도 저자의 비판 대상이다. 오웰은 CIA에게 비공산주의 좌파를 앞세우는 데 이용됐다는 지적이다. 오웰의 인기작 ‘1984’가 던진 메시지는 명확했다. 작품은 정부가 행하는 모든 위선과 기만에 대한 저항이었다. 하지만 미국의 정치선전 전략가들은 민첩하게도 이 책을 반공주의의 상징처럼 둔갑시켰다. 책에선 “오웰이 어떤 의도로 이 책을 썼는지는 몰라도, 작품에서 드러나는 강렬한 주제들은 결국 냉전에 큰 도움을 주었다”고 했다.

오웰 스스로도 냉전의 조작이나 확산에 일말의 책임이 있다고 저자는 지적했다. 예컨대 1949년에 영국 정보당국에 공산주의 동조 혐의자들 명단을 넘겨주었다. 오웰의 명단이 정부 기관의 손에 들어가는 순간, 그것이 사찰로 이어지지 않는다 해도 애초의 순수성을 모두 잃게 된다는 것.

1950년 조지 오웰이 사망하자 CIA는 즉각 그 아내 소니아(Sonia Orwell)와 접촉했다. 죽은 작가의 아내를 만난 이유는 그녀를 위로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동물농장’ 영화 판권 계약서에 서명을 받기 위해서였다. 이 덕분에 ‘동물농장’을 만화영화로 제작할 수 있었고, CIA가 전 세계 시장에 투자와 배급을 맡았다(정승욱 선임기자, 냉전시대… CIA 도구로 전락한 지식인들 CIA ‘미국적 가치’ 확산위해 교묘하게 이용 / 레몽 아롱·버트런드 러셀 등 지성들 예외없어 / 조지 오웰 ‘1984’ 반공주의 상징으로 둔갑, 세계일보, 2016-10-29)

이 기사에서는 “오웰이 어떤 의도로 이 책을 썼는지는 몰라도”라고 하지만 그 의도는 아주 명확합니다. 사회주의 쏘련에 대한 극단적인 혐오감을 가지고 제국주의 국가의 인민들에게 반쏘비에트 감정을 불러일으키려는 것이 조지 오웰이 이 책을 쓴 목적입니다.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은 그 반공주의 상투적 인식에 맞게 스탈린을 탐욕의 돼지로 묘사합니다. 《동물농장》이 상징하는 것은 쏘련의 국영농장(소포즈)과 콜호즈(집단농장) 같은 전국적인 협동조합 체제입니다. 쏘련 농촌에서 빈농 중심의 농민들은 부농과 신흥 자본가계급인 네프맨과 세계사적으로 유례를 알 수 없는 거대하고 격렬한 계급투쟁을 거쳐 사회주의 집단적 소유 형태를 만들어 내게 됩니다. 이 사회주의 소유 체제에 대해 조지 오웰은 《동물농장》으로 묘사하며 극렬한 혐오를 했던 것입니다. 조지 오웰이 제국주의 첩자가 된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닌 것입니다. 또한 조지 오웰의 작품을 문학적인 가치가 있는 것처럼 대대적으로 부각하면서 이른바 ‘교양도서’로 만들고 심지어 만화영화제작까지 한 것도 다름 아닌 CIA였던 것입니다.

스페인 내전에 대한 조지 오웰의 묘사도 신화(거짓말)로 가득 차 있습니다. 스페인 내전은 1936년 7월 17일~1939년 4월 1일 인민전선 정부 공화파와 프랑코 파시스트 반란자들 사이에서 벌어졌던 격렬한 전쟁입니다.

1936년 2월 총선 결과 스페인 사회주의노동자당, 좌파 공화파, 스페인 공산당 등으로 구성된 인민전선이 승리하여 473석 중 289석을 확보하였다. 의회를 장악한 인민 전선은 토지개혁을 포함한 개혁 정책들을 시행하였다. 이에 대해 스페인의 지주·자본가·로마 가톨릭 교회의 불만은 고조되었고, 마침내 1936년 7월 17일 스페인령 모로코에 머물고 있던 프랑코와 스페인 군부가 반란을 일으켰다(위키 백과).

이 전쟁은 2차 세계대전의 서막이었습니다. 독일 히틀러 파쇼 권력은 1935년 이탈리아를 지원하여 마침내 1936년 에디오피아를 점령하도록 부추기면서 로마와 베를린 간에 파시스트 ‘강철동맹’을 체결했습니다. 1936년 11월 25일에는 국제공산당에 반대하는 조약이 처음에는 독일과 일본에 의해 체결됐습니다. 추축국들의 타도 목표가 쏘련 사회주의와 국제공산주의 운동이었음이 분명해진 것입니다.

영국과 프랑스 등 제국주의는 ‘불간섭 정책’이라는 이름으로 겉으로는 이 전쟁에 기권했으나 뒤로는 프랑코 파시스트군들에게 무기를 팔아먹었습니다. 고립무원의 인민전선 정부를 지원한 사실상 유일한 나라는 스탈린이 지도자로 있었던 쏘련이었습니다.

소련은 스페인 공화국 정부에게 군사 물자를 지원하였다. 내전 기간 동안 지원된 군수 물자는 비행기 806기, 탱크 362대, 야포 1,555문 등이었다. 또한 소련은 국제 연맹의 불간섭 조약을 무시하고 소수의 군사를 파견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스탈린은 히틀러와 비밀리에 불가침 조약을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에 소련의 직접적인 지원은 제한적이었다. 대신에 군자금으로 상당한 양의 금을 스페인 은행으로 보냈다. 이때 보내진 510 톤의 금은 모스크바 황금으로 알려져 있다.

소련은 약 700명의 군인을 파견하였다. 독일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의용군”이라 불린 이들은 전차와 전투기를 운용하였다. 이들의 참전은 “X 작전”이라 불렸다(위키 백과).

그런데 영국과 프랑스 등 제국주의는 ‘불간섭 정책’을 이유로 쏘련의 인민전선 지원을 가로막기조차 했습니다. 영국과 프랑스, 미국은 스페인 내전이 진행 중이던 1938년 3월 독일에 대해 “유화” 정책을 추구하면서 독일이 오스트리아를 강제 합병했을 때, 이를 저지하기 위한 실질적 조치를 방기함으로써 독일 히틀러를 도왔습니다.

쏘련과 국제공산당(코민테른)의 적극적 사업으로 스페인 내전을 지원하는 전 세계적인 진보인사들이 “국제여단”을 꾸려 스페인 내전에 참전해서 영웅적으로 싸웠습니다. 누가 뭐랄 것도 없이 당시 스페인에서 프랑코 파시스트 독재와 싸워 승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사안이었습니다. 스페인에서는 대다수 스페인 농민들은 토지 집산화가 아니라 토지분배를 원하고 있었습니다.

부르주아 민주주의혁명이 6년 이상 계속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혁명이 당면한 기본적인 과업들은 미해결 상태로 남아 있었는데 그것은 주로 토지 문제였다…. 총 4,000,000명의 토지를 빼앗긴 농민들과 농업노동자들 중에서 단지 150,000명만이 토지를 받았지만 전적으로 불만족스러운 크기였고 토지의 경작을 위해 필요한 연장과 기구도 없었다 … 농민들과의 밀접한 동맹을 위해 노력하면서, 공산당은 농민들의 절대 다수가 아직은 토지를 집단적으로 경작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는 것을 고려하였다. 그러므로 토지의 강제적인 집산화와 무정부적인 모험주의 정책을 전파했던 무정부주의적인 사회주의자들과 무정부주의자들에 반대하는 완강하게 격렬한 투쟁을 전개할 필요가 있었다. 공산당의 이 일관된 정책과 실질적인 작업 덕택에, 전쟁 초기부터 중대한 해를 입혔던 이들 농민의 적들은 그들의 목표를 달성할 수 없었다. 노동자계급과 농민의 동맹은 강화되었고 확고해졌다(1940년 호세 디아즈(José Diaz)2), 특집3 스딸린의 가르침 스페인 공산당에 대한 지도 원리, 노동자정치신문, 2015년 9월 9일).

그러나 트로츠키주의자들은 항상 혁명의 발전단계를 건너 띄는 좌경적 오류를 범하고는 하는데, 스페인에서 영향력이 컸던 무정부주의자들과 함께 트로츠키주의자들은 카탈로니아, 아라곤 지방에서 토지 집산화를 단행했습니다. 쏘련에서의 집산화가 혁명 이후 10여년이 지나 시행된 것을 봤을 때, 스페인에서 “토지의 강제적인 집산화와 무정부적인 모험주의 정책”은 농민과의 동맹을 심각하게 해쳤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들이 프랑코 파시스트 군과 맞서 싸우기 위한 공화파 군대의 통일적인 일원화와 규율을 무정부적으로 거부하면서 사사건건 충돌이 벌어졌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이들은 1937년 5월 프랑코 독재와 맞서 싸우는 공화파 정부에 맞서 바르셀로나에서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혁명이라는 이름으로 반혁명을 했던 것입니다. 이 반란은 곧바로 진압됐습니다. 이것이 바로 조지 오웰이나 트로츠키주의자들이 말하는 스탈린주의자들이 혁명가들 등에 총질을 했다고 분개하여 쏘련을 혐오하는 반공주의 신화의 실제적 상황입니다.

그런데 캔 로치가 찬가를 불렀던 “카탈로니아” 지역은 실질적인 스페인 내전 전투 현장이 아니었습니다.

켄 로치의 영화로 되돌아가기 위해, 그의 영화에 대해서 내가 당시에 가장 중요한 전선에서의 사건들은 아마 마드리드 전선에서 발생했다고 말했던 모든 것은 분명하다.

그는 왜 그것에 대한 영화를 만들지 않았을까? 그는 왜 독일 포탄들이 그들 주변에 떨어질 때 마드리드 인민의 특별한 영웅주의를 묘사하지 않았을까? 그것은 만들 가치가 있는 영화가 되었을 것이다.

대신에 켄 로치 감독은 결정적 전선에서 멀리 떨어진, 아라곤에 있는 먼 마을로 갔다. 스페인의 일부 지역에서의 사건들은 바르셀로나 주위에서 벌어졌다. 바르셀로나에서, 파시스트 장군들이 공화국에 맞서는 반란을 일으켰을 때, 인민들은 막사를 부수고 도시를 장악했다. 거점을 확보했기 때문에 그들은 프랑코 진격군과 싸우는 이들을 지원하기 위해 바르셀로나에서 나가야 했다. 그러나 아나키스트와 맑스주의통일노동자당(POUM) 영향력 때문에 그들은 이것을 하지 않았다. 그들은 전혀 싸우지 않았다. 로치는 사실상, 중단된 전선에서 무엇이 있었는지를 영화로 만들기로 결정했다. 바르셀로나를 점령했을 때의 사건들이 영화에서 묘사되는 동안, 프랑코는 마드리드를 점령하기 위해 북쪽으로 행진하고 있었고, 나찌는 2차 세계대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나찌는 일반 주민들에 대한 대량 폭격의 효과를 측정해볼 요량으로 게르니카를 폭격하고 있었다. 당신은 이 영화를 보는 것을 통해서는 그것을 결코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맥락에서 영화에서 묘사된 사건들을 아는 것은 중요하다. 무자비한 전투가 다른 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동안, 바르셀로나에서 그들은 싸움을 중단하고 집산화를 개시하기로 결정했다. 그들은 규율 바른 군대를 조직하기를 원하지 않았다. 그들은 우선적인 필요성을 이해하지 않았다. 솔직히 집산화에 관하여 논쟁이 진행되는 장면은 진군 초기에 프랑코가 없애 버렸던 스페인 남부의 집산화된 소작농들의 운명을 기억할 때 아주 비통하다. 그 장소에 어울리는 것은 프랑코를 저지시키기 위한 것이었고, 만약 그를 저지하지 못한다면 집산화에 관하여 진행되었던 모든 논쟁이 헛된 것이었다는 것은 분명하다(특집1 국제여단은 ‘랜드 앤 프리덤’을 규탄한다, 노동자정치신문, 2015년 9월 9일).

지금까지 간략하게 살펴본 스페인 내전에서 당시 의용군으로 참전했던 조지 오웰은 트로츠키주의 입장으로 영웅적인 인민전선 정부와 스페인 공산당, 스페인 인민들, 쏘련을 비롯한 국제여단의 피어린 투쟁의 역사를 철저하게 왜곡하며 제국주의 진영에 봉사했던 것입니다. 그 정치적 결과가 제국주의 첩자가 되어 공산주의자들 및 진보인사들을 정보기관에 넘겨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CIA 첩보공작의 자금줄을 주로 댄 건 록펠러, 포드 등 미국의 독점자본이었습니다. 여기에 전쟁으로 폐허가 된 유럽을 부흥한다는 명분으로 만들어진 “마샬플랜” 자금 일부도 CIA자금으로 사용됐습니다. 마샬플랜 자체가 쏘련과 동유럽 사회주의 체제에 맞서 유럽을 공산주의로부터 구하기 위해 만들어졌기 때문에 정치공작 자금으로 사용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세계문화자유회의 주최 국제행사 참석자들 항공료까지 댄 CIA의 자금줄은 이들 록펠러, 포드 등의 재단만이 아니었고, 유럽 재건을 위한 마셜플랜 내에도 있었다. 유럽 각국이 미국의 지원금을 중앙은행에 예치할 때 그 5%를 미국 자산으로 따로 떼어 놓게 했고, CIA는 이를 활동자금으로 썼다. 세계문화자유회의가 창설돼 해체되기까지 17년간(1950~1967) 이 단체 관련 프로젝트에 투입한 돈만 수천만 달러, 그 돈의 90%를 CIA가 댔다. “이런 활동을 통해 CIA는 사실상 미국 문화부 역할을 하고 있었다.”

CIA가 내세운 위장 민간 파필드 재단이 이 단체에 지불한 돈은 연간 100만 달러(99년 가치로 600여만 달러)였다. CIA는 이런 재단을 170여 개나 운용했다. 국가안보회의 냉전지침 NSC-68을 작성한 1950년 심리전에 쓴 돈은 4000만 달러였고, 2년 뒤엔 그 4배로 불었다. 이 심리전에서 CIA는 좌파들, 특히 비공산주의계 좌파들의 높은 동원 효과에 주목하고 특별히 신경을 썼다(한승동 선임기자, ‘문화냉전’ 이끈 CIA는 왜 괴물이 됐나, 한겨레, 2016-10-27)

그런데 여기서 “비공산주의계 좌파들의 높은 동원 효과”는 무엇입니까? “비공산주의계 좌파”의 핵심은 바로 트로츠키주의자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왜 이들은 미국 첩보기관을 비롯한 제국주의자들에게 “높은 동원 효과”를 내겠습니까? 이들은 급진좌파로 위장하고 진보진영 내에서 목소리를 내기 때문입니다. 이들이 쏘련을 악마의 제국주의 선전하면서 타도하자고 주장하면 진보진영의 목소리기 때문에 설득력이 배가 됩니다. 그 때문에 트로츠키주의자들이 반쏘반공 공작의 최고로 “높은 동원 효과”, 즉 이용가치가 가장 크다는 것입니다.

트로츠키주의자들은 쏘련 사회주의의 실질적인 건설자인 스탈린을 도살자, 독재자, 관료라고 부르며, 쏘련 “관료집단”을 타도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특히 트로츠키는 《배반당한 혁명》에서 이 주장을 했는데, 이 책이 발행된 시기는 1936년이었습니다. 1933년 히틀러가 권력을 잡고 1936년에 스페인 내전이 개시되었고, 실제 1941년 히틀러 파시즘 세력들이 쏘련을 침공했습니다. 쏘련 인민들이 시시각각 닥쳐오는 전쟁에 맞서 쏘비에트 체제의 명운을 걸고 투쟁을 준비할 때 트로츠키는 쏘련 관료집단, 즉 당과 국가를 타도하자는 선동을 하며 제국주의의 이해에 적극 복무했던 것입니다.

결국 이처럼 반쏘 반공주의의 정치적 기원은 트로츠키주의이기도 한데, 트로츠키는 수십년간 기회주의 회색분자, 멘셰비키질 하다가 1917년 혁명적 분위기가 고조되자 뒤늦게 볼셰비키 혁명호에 승선해놓고는 나중에 레닌과 볼셰비키가 자신의 혁명론을 받아들여 그렇게 했노라며 거만하게 역사를 자기중심으로 돌리며 기회주의적 정치적 행보를 합리화합니다.

그런데 수십 년간 기회주의 행보가 우연이겠습니까? 그 행보가 우연이 아닌데 철저한 자기비판은커녕 혁명사를 자기중심으로 개작하는 트로츠키가 볼셰비키에 승선해서는 정신을 차렸겠습니까? 트로츠키는 1917년 4월 테제 전 볼셰비키와 스탈린이 임시정부를 지지했으나 트로츠키 연속혁명론을 수용한 레닌이 4월 테제를 발표하자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고 수십 년간 볼셰비키를 지도하고 헌신해온 당지도부와 당을 자기 발밑에 넣고 밟아 버립니다.

신경제정책, 브레스트 강화조약, 노동조합 문제, 집산화 시기와 방식 문제 등에서 트로츠키는 언제나 반레닌적 입장을 취하며 극렬하게 분파주의를 일삼으며 당을 분열시키고 심지어 쏘비에트 체제를 위기로 몰아넣었습니다. 일국혁명과 세계혁명을 대립시키며 쏘련에서 사회주의 건설이 가능하다는 걸 부정하며 정치적 자멸의 길을 간 것입니다.

트로츠키의 정치적 후반기는 쏘비에트 체제에 대한 정치혁명을 기치로 반볼셰비키, 반쏘비에트주의를 내건 카우츠키와 일치합니다. 트로츠키의 반쏘비에트 사상과 흐루쇼프로부터 기원된 반쏘비에트 다원주의 사상을 현대의 신좌파, 그 아류인 소부르주아 트로츠키 후예들이 반쏘 반북주의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입니다.

트로츠키와 자율주의의 반쏘 반공주의가 하나로 만난 것이 바로 이원영인데, 그는 과거 사노맹 출신으로 본명은 조정환입니다. 조정환은 갈무리 출판사에서 《이탈리아 자율주의 정치철학》(세르지오 볼로냐, 안또니오 네그리 저, 이원영 편역, 갈무리, 1997.)이나 《디오니소스의 노동 국가형태 비판》(안또니오 네그리, 마이클 하트, 이원영 1996년 9월 10일 도서출판 갈무리)의 네그리주의와 구조주의 같은 프랑스 소부르주아 철학사조를 집중 번역했습니다. 조정환은 크리스 하먼의 《소련의 해체와 그 이후의 동유럽》(1995)같은 반쏘적인 영국 트로츠키주의자의 글도 번역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조정환이 번역하는 글 출판사가 쏘련을 국가자본주의로 보고 타도해야 한다는 트로츠키주의 내 국가자본주의 진영 글을 집중 번역하는 건 우연이 아닙니다.

파시즘과 제국주의 모순을 은폐하기 위한 정치적 물타기로서의 프로파간다

자율주의와 트로츠키주의가 서로 논쟁하고 있지만 반쏘 반공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 상당수는 쿠바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우호적입니다. 쿠바가 북과 생산관계가 가장 비슷한 체제인데 말입니다. 쿠바를 향해 국가보안법이 작동하는 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를 볼 때도 이들의 반북사상은 국가보안법과 제국주의 프로파간다를 닮았습니다.

조중동이 탈북자들과 반북 전문가들을 내세워 특집기사로 북의 평양에 특권층들이 살고 불평등 문제가 심각하다, 심지어 북지도부가 도덕적 타락이 심각하고 부패해 있다고 하는 내용을 그대로 수용해 조중동의 나팔수를 자처하며 크게 외칩니다.

이 의식은 바로 박정희가 심어 놓은 겁니다. 박정희 시대의 부패, 채홍사로 나타났던 수백 명 여성에 대한 강간, 부의 극심한 불평등을 숨길 수 없으니 자신들한테 만연한 걸 북에 그대로 투영해 도찐개찐이라고 왜곡해서 물타기하는 것입니다. 이로써 정치적 불신과 패배주의, 체념을 조장해서 대안부재론으로 정치적 전망과 급진화의 분출도 막는 것입니다. 이는 결국 체제를 방비하는 길이기도 합니다.

이는 제국주의 독일 히틀러 파시즘의 전쟁촉발과 대학살을 은폐할 수 없으니 스탈린 학살, 마오쩌둥 중국 공산당의 학살이라며 역사를 극단적으로 왜곡, 과장해 도찐개찐으로 쏘련과 사회주의 체제를 비방하려는 제국주의 프로파간다와 같은 선상에 있는 것입니다.

파시즘, 적색파시즘 도찐개찐론은 파시즘의 배후에 독점자본과 제국주의가 있다는 것과 영국, 미국, 프랑스 제국주의가 독일 히틀러와 내통해 히틀러의 쏘련침공을 부추기고 협조했으며 심지어 독일 파시즘 패전 이후에도 반쏘 반공전선에 파시즘 잔당들을 앞세웠다는 역사적 사실을 은폐합니다.

쏘련의 제거는 나찌 독일의 목표라고 선언됐지만, 다른 방식으로 노동자권력에 타격을 가하고 약화시키고자 했던, 이른바 “연합국들”(미국, 영국) 역시 같은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 이 목표를 가지고 연합국들은 독일에서 히틀러가 권력을 잡도록 지원했다. 게다가 나찌즘-파시즘은 자본주의가 낳은 자식이었고 지금도 그러하다. 미국과 영국은 나찌 독일에서 쏘련에 맞서는 공격에서 최적의 “동맹”을 발견했다 …

당시 미국 중앙정보국(CIA) 고위 관료였던 버넘(G. Burnham)은 미국 해외정책의 목표는 “공산주의 권력”의 소멸이어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했다.

이러한 계획 속에서, 서베를린은 수천 명의 정보원들이 80여개의 첩보기구나 테러기구가 같이 활동했던 국제적 중심지로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러한 기구 중에는 미국 중앙정보국(CIA)과 나찌 비밀요원들의 전(前)지도자였던 라인하르트 겔렌(Reinhard Gehlen)이 이끌었던 서독 독일 연방정보국(BND)이 있었다(전후 미군에 입대한 겔렌은 쏘련에 대항하는 간첩망을 구축하라는 명령을 받고 결국은 독일연방공화국으로 되돌아갔다).(《사회주의에 대한 진실과 거짓》, 〈3. 역사 왜곡에 대하여〉, 그리스청년공산주의자(KNE), 2판, 아테네, 2013년 9월, <노동자의 사상> 8호 근간)

추축국 패전 이후에 일본에 진주하는 미제가 일본 제국주의의 부흥을 앞세워 동북아에서 일제를 반쏘 반중 반북의 거점으로 삼으려 했던 것도 마찬가지로 은폐합니다.

미국이 약화된 자국의 힘을 보충하고 제국주의 진영의 공동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일본의 재무장을 독촉하고, 나아가 동북아시아에서 제국주의 첨병의 역할을 떠맡도록 부추긴 일련의 장기적 계획이 한국전쟁을 전후로 이미 그 싹을 틔우기 시작했다는 사실은 새삼 반복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 1953년 11월 15일 일본을 방문한 당시 미국 부통령 닉슨은 미일협회 환영회 석상에서 “일본에 전쟁 포기의 헌법을 강요한 것은 미국의 오류였다”라고 단언했다 … 이어서 1960년 1월 워싱턴에서 신미일안보조약이 조인되었다. 신안보조약은 구안보조약이 가진 기지대여협정의 성격에서 일본 경제의 부흥을 배경으로 하여 더욱 밀접한 미일군사동맹의 형성을 목표로 한 것이다 … 삼시(미쓰야, 세 개의 화살)작전은 명칭에서 드러나듯이 일본이라는 활에 한국이라는 화살을 재워 대륙(중소)으로 향한다는 상징적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박세길,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 2》, 176쪽-178쪽).

그런데 이러한 삼시 작전은 사실 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문제는 7월 27일 오전부터 시작된 태프트와 가쓰라 사이의 장시간에 걸친 밀담인데, 그 자리에서 양자간에 성립된 양해사항은 간단히 말해서 일본이 필리핀에 대한 미국의 지배권을 인정하는 한, 미국은 한국에 대한 일본의 종주권을 인정한다는 것이었소이다.

태프트가 이 밀담의 내용을 전보로 본국 정부에 보고한 것은 7월 29일이었으며, 이 전문 보고서를 읽은 루스벨트가 그 내용을 전면적으로 승인한다는 답전을 태프트에게 띄운 것이 7월 31일. 그리고 이 답전을 받은 태프트가 마닐라에서 가쓰라에게 그 내용을 알리는 전문을 띄운 것이 8월 7일이었소이다. 보통 ‘태프트-가쓰라 밀약’으로 알려진 문건은 7월 29일 태프트가 일본에서 워싱턴으로 보낸 전문을 말하는데, 미국이 국제법상의 조약도 아닌 밀약의 형식으로 비밀리에 일본에 조선에 대한 지배권을 인정했다는 역사적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 둘 필요가 있으리라 믿는 바이외다(정경모 통일운동가, 「태프트-가쓰라 밀약…미·일의 ‘갈라먹기’」, 〈한겨레신문 길을 찾아서〉, 2009.08.25, “한국전쟁 60주년, 다함께 국가자본주의의 역사왜곡과 파산”, 노동자정치신문, 2010-06-30).

‘케넌 설계도’는 다음과 같은 것인데, 간단히 말해서 조선반도에서 만주에 이르는 일본의 구식민지는 다시 한 번 일본에 통치를 맡기는 것이 미국에는 이득이라는 것이외다. …. 베트남에 대한 프랑스의 지배권을 회복시킨다는 미국의 의도에서부터 베트남전쟁이 시작된 것이라고 한다면, 일본의 힌터랜드(배후지)로서 조선과 만주를 우선 미군의 군사력으로 점령한 뒤 그 지배권을 일본에 넘겨준다는 ‘설계도’는 당시의 국제정세로 보아 별로 놀랄 만한 것은 아니었고, 6·25전쟁은 어차피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전쟁이었으니만치, 제1발을 쏜 것이 김일성이었나 이승만이었나를 캐묻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 아닐까 하는 바이외다(정경모, 「한반도서 소련과의 전쟁 준비한 미국」, 〈한겨레신문 길을 찾아서〉, 2009.12.21, “한국전쟁 60주년, 다함께 국가자본주의의 역사왜곡과 파산”, 노동자정치신문, 2010-06-30).

1905년 7월 29일 ‘태프트-가쓰라 밀약’에 의해, 같은 해 1905년 11월 17일 을사조약이 체결되고 조선은 일제의 식민지가 됐던 것입니다. 그런데 ‘캐넌 설계도’는 제2의 ‘태프트-가쓰라 밀약’입니다. 이 제국주의 강도 밀약의 역사는 삼시작전으로, 지금도 그 본질적 성격은 변하지 않은 채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삼시작전은 과거에는 반쏘, 반중 동맹으로 현재는 반북, 반중, 반러 동맹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미제국주의는 일본을 “전쟁하는 국가”로 만들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일본과 아시아 인민의 피가 서려 있는 “평화헌법”을 해석개헌으로 변경하려 하고 있습니다. 일본 군국주의 아베 정권은 ‘북핵’을 빌미로 반북을 기치로 자국 인민들을 체제내화 시키고 우민화 하여 일본을 전쟁하는 국가로 면모시키기 위해 미제국주의에 적극 협조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동북아에서 일본 제국주의를 앞세워 미일한 반공주의 전선을 형성해야 하는데, 일제 만행에 치를 떠는 과거 식민지 인민들의 역사적 기억들이 걸림돌이 됩니다. 일본군 성노예 협정을 불가역적으로 맺어 일제의 잔학한 만행을 더 이상 언급하지 못하도록 한 것이 바로 미제를 중심으로 한 미일한 반공주의 신성동맹입니다.

미일한 동맹은 반공전선을 위해 군사적 협력도 필수적인데 이를 위해 한일군사정보협정도 체결하고 자위대와의 공동군사 훈련도 서슴지 않습니다.

적폐청산을 외치면서도 미일한 동맹을 추종하기 때문에 문재인 정권은 이 적폐를 철폐시키지 못하고 심지어 적폐의 새 온상이 되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역사적 문제에 대해 깊게 인식해야 합니다.

그런데 좌익공산주의 무리들이 프랑스 극우의 ‘공산주의 흑서(The Black Book of Communism)’를 바탕으로 공산주의 체제가 수천만 명, 심지어 1억 명을 학살했다고 비방을 하는데 그 자료를 그대로 인용해서 반쏘 반스탈린 비방을 합니다.

조선일보는 프랑스 우익들을 초대해 그들 주장으로 기사를 쓰기도 하고 김홍도 같은 극우 목사들이 흑서와 같은 주장을 합니다.

1917년 11월 7일에 있었던 사건은 그 예찬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노동자 계급의 혁명’이 아니었다. 잘 조직된 소수(少數)가 이끄는 혁명전위당(前衛黨)의 무력(武力)에 의한 쿠데타였다.

이 사건이 인류에 미친 영향은 심대했다. 한때 대영제국의 케임브리지대학에서부터 식민지 조선의 경성제국대학에 이르기까지 각국의 ‘깨어 있는 젊은이’들은 ‘노동자들이 정권을 잡은’ 러시아를 모델로 하는 혁명을 꿈꾸었다. 1945년 이후에는 세계의 절반이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소련)의 영향력 아래 놓였다. 지금도 중국·쿠바·베트남·라오스 등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공산당 일당독재 아래 놓여 있다. 북한은 스탈린주의에 천황숭배, 민족주의가 결합된 공산왕조라는 기괴한 형태로 존재하고 있다…

소련의 작가 솔제니친은 “러시아 혁명 이전 80년 동안 연간 약 17명이 처형됐다고 한다. 스페인의 종교재판소는 그 절정기에 매달 10명 정도 처형했다. 반면 1918~19년에는 매달 1000명 이상이 처형됐다”고 고발한 바 있다….

혁명을 위해 평생을 바쳤던 그들은 ‘인민의 적’으로 몰려 조작된 재판에서 죄를 시인한 후 죽어갔다. 솔제니친은 “스탈린의 대숙청이 절정에 달했던 1937~38년에 매달 4만명 이상이 처형됐다”고 했다. ‘올드 볼셰비키’들이 사라진 자리는 맹목적으로 스탈린을 추종하는 새로운 세대가 차지했다.

다음에는 군부 차례였다. 1937년부터 시작된 군부 숙청으로 투하쳅스키 원수(元帥)를 비롯해 5000명이 넘는 고급 장교가 처형됐다. 5명의 원수 중 3명, 15명의 군사령관 중 13명, 85명의 군단장 중 57명, 195명의 사단장 중 110명, 406명의 여단장 중 220명이 처형당했다.

로버트 콘퀘스트는 《대숙청(The Great Terror)》에서 이렇게 밝혔다.

“1956년 2월 공산당 전당대회에서 흐루쇼프가 폭로한 바에 의하면, 1936~38년에 10월 혁명 이전에 공산당에 입당한 사람의 90%, 그 후에 입당한 사람의 50%, 군 장성의 60%가 처형됐다.”

… 고급 간부나 군 수뇌부만이 당한 것은 아니었다. 스탈린이 1928년부터 추진한 농업집단화 과정에서 1000만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처형되거나 굶어 죽거나 강제노동수용소에서 죽었다. 거대한 사회경제적 실험의 장(場)에서 희생된 것이다…

인류가 자신에게 ‘실험’한 결과는 참혹했다. 프랑스국립학술연구센터(CNRS)의 스테판 쿠르투아 등이 1997년 펴낸 《공산주의흑서(共産主義黑書·Le livre noir de communisme)》에 의하면, 볼셰비키 혁명 이후 공산주의의 폭력이나 정책 실패로 인한 기아 등으로 사망한 사람의 숫자는 1억명에 달한다고 한다. 구(舊)소련 2000만명, 마오쩌둥(毛澤東) 치하의 중국 6500만명, 베트남 100만명, 폴 포트 정권하의 캄보디아 200만명, 동구(東歐) 공산정권하에서 100만명, 아프리카에서 1500만명, 그리고 북한에서 200만명…. 북한에서의 희생자 200만명 속에는 1990년대 후반 ‘고난의 행군’ 시기에 아사(餓死)한 300만명은 포함되지 않았다.(배진영 기자, 러시아 혁명 이후 공산주의로 인한 희생자는 1억명(《공산주의 흑서(黑書)》), 월간조선)

그런데 로버트 콘퀘스트는 누구이겠습니까? 역사가이자 저술가로 유명한 로버트 콘퀘스트는 대숙청(The Great Terror, 1969)과 슬픔의 추수(Harvest of Sorrow, 1986)라는 저작을 써서 일약 전 세계적으로 유명인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배후에는 파쇼적 기구와 영국 외무부 산하 정보기관이었던 정보조사부(Information Research Department)가 있었습니다. 그는 그로부터 재정후원을 받고 글의 출처도 정보기관이 제공한 자료를 재가공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쏘련과 스탈린을 악마화하는데 앞장선 공로로 2005년에는 미국 대통령 (아들) 부시로부터 “자유의 메달”을 받기도 했습니다.

쏘련 역사를 독립적으로 연구하는 ‘수정주의’ 학파의 중심인물인 아치 게티(Arch Getty) 같은 역사학자들은 “대숙청”에 관한 그의 철학 박사 논문이 쏘련 망명자들의 주장을 그대로 베낀 것이기 때문에 믿을 수 없다고 비판하고 있습니다(“내 생각은 과연 어떻게 내 것이 되었는가?” 스탈린 시대 “대숙청”, “대테러”에 대한 인식을 중심으로, 노동자정치신문, 2016년 6월 30일 참고).

반쏘주의, 반스탈린주의는 곧바로 한국에서는 반북주의 종북몰이와 곧바로 연결이 됩니다. 이승만, 박정희 체제의 민중대학살에 기초한 백색테러와 국가보안법은 한국 전쟁 이후에 한국의 진보운동을 철저하게 말살했습니다. 극우 인사들은 말할 것도 없고 자유주의 지식인, 언론, 심지어 ‘진보인사’를 자처하는 이들도 ‘반북주의’를 적극 내면화 했습니다. 반공주의를 내면화 했음에도 불구하고 ‘진보적’이라고 자처하기 때문에 이들의 반공주의 종북몰이 행보는 더욱 더 거칠 것이 없고 부끄러움이 없습니다.

심상정, 주대환, 한석호 부류들이 국가보안법의 논리에 서서 종북몰이에 앞장서고 이석기 의원에 대한 극단적 비방과 통합진보당 해체에 정치적 앞잡이가 된 것도 이러한 정치적, 지적 상황 속에서 나온 것입니다.

미제국주의의 핵독점 전략으로서의 북핵문제에 대한 좌파의 복무

이들이 정치적 도찐개찐 물타기를 해서 제국주의 체제에 봉사하는 중대한 문제가 더 있습니다. 그건 바로 북의 핵개발과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둘러싼 정세적 인식과 실천들입니다.

미국이 가진 최소 7천기 이상의 핵무기, 셀 수 없는 핵실험, 최초로 핵투하, 수없는 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 등으로 미제국주의 본질을 숨길 수 없자 그때 그 정치적 물타기로 나와 결국 미제의 입장을 비호하는 이른바 진보(사회주의) 정치세력들도 있습니다.(정의당의 이에 대한 입장에 대해서는 “정의당의 ‘정의’는 제국주의에 봉사하는 ‘정의’인가?”, 2017년 7월 6일, “‘반북 극우’ 정의당, 또 ‘도발’하는가?”, 2017년 8월 30일 등 전국노동자정치협회의 성명이나 여러 차례 글들도 비판했으므로 여기서는 더 이상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그들은 양비론, 중립으로 위장합니다. 미핵도 나쁘고 북핵도 나쁘다는 것입니다. 이는 파시즘도 나쁘고 스탈린주의 적색파시즘도 나쁘다, 박정희도 나쁘고 김일성도 같은 독재체제로 나쁘다는 양비론의 연장선에 있습니다.

북과 쿠바를 타도해야 하는 반동권력으로 보는 트로츠키주의 노건투(혁명적노동자당건설현장투쟁위원회)는 “카다피는 ‘다국적군 공습은 리비아를 식민지로 만들기 위한 침략’이라면서 자신을 ‘반제투사’로 부지런히 포장하고 있다. 석유와 민중에 대한 지배권을 차지하기 위한 깡패들의 더러운 쟁탈전을 미화하는 데서 큰 깡패나 작은 깡패 모두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다.”(서방 강대국과 카다피의 전쟁은 깡패들의 석유쟁탈전!, 2011.03.22)라며 전형적인 중립론, 양비론을 구사합니다. 강패짓의 정도가 다르다는 점이 유일한 차이라면 차이입니다. 리비아 전쟁을 강패끼리의 전쟁으로 묘사하는 이들의 인식은 좋게 말하면 기권주의이고 나쁘게 말하면 제국주의 침략을 용인하는 것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습니다.

노건투(기고 글)는 ‘북핵문제’에 대해서도 이러한 논리를 들이댑니다.

제국주의 큰 강도들에 맞서 약소국의 작은 강도들이 자신의 이익을 지킬 수 있는 결정적 무기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작은 강도들의 반항에 대해 큰 강도들은 이제껏 단결해 효과적으로 대응해왔다. 대량살상 화학무기를 개발하던 후세인 정부를 무너뜨렸고, 북한과 함께 핵무장에 나섰던 이란 지배자들을 굴복시켰다. 하지만 북한의 작은 강도들을 제압하는 것은 그리 만만치 않다. 북한 민중만이 아니라 남한 민중까지 볼모로 삼으면서 저항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무엇보다도 중국과 미국이라는 가장 큰 강도들 사이의 대립을 북한 지배자들이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최영익 노동자운동 연구공동체 뿌리, 무기력한 정부가 제국주의 전쟁광을 만나다 – 트럼프 방한, 2017.11.09.)

여기서는 깡패 간 패싸움 정도의 논리가 발전해 더 험악한 강도들의 싸움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이미 2003년 이라크 침공 1년 뒤인 2004년에 미국 정부가 임명한 이라크 대량 살상 무기 조사팀이 “이라크에는 대량 살상 무기가 없었다”고 공식 보고했던 공공연한 사실에 대해, “대량살상 화학무기를 개발하던 후세인 정부를 무너뜨렸고”라는 역사왜곡은 실수 정도로 넘어가겠습니다. 그러나 “제국주의 큰 강도들에 맞서 약소국의 작은 강도”라는 논리는 제국주의자들에 저항하는 “약소국”들이 강도가 되지 않으려면 무장해제하라는 논리로밖에 들리지 않습니다. 이러한 주장에는 미제국주의의 북에 대한 적대시 정책과 군사적, 정치적, 경제적 말살 정책이 ‘북핵’ 개발의 원인이었다는 최소한의 역사적 인식도 들어설 자리가 없습니다. 북을 타도해야 하는 트로츠키주의 국가자본주의로 보는 입장이 결국은 북을 “작은 강도”로 묘사할 정도로 적개심을 표하게 만들고, 미제국주의의 적대시 정책에 맞서는 대응을 “강도”짓으로 묘사할 정도로 이들의 정치적 분별력은 철저하게 붕괴했습니다.

이미 그 끝을 향해 달려가는 체제의 낙후성 때문에 북한 지배자들한테는 어차피 도박 말고는 다른 선택지가 없다. 이 도박은 한반도의 노동자계급 전체를 거대한 위험 속에 빠뜨리면서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제국주의 지배자들의 무장 강화와 패권 놀음의 명분을 제공할 뿐이다 … 결국 한반도를 휘감고 있는 군사적 긴장의 두 주역은 북한과 미국 지배자들이다. 겉으로는 으르렁대지만, 사실상 북한과 미국 지배자들은 한반도 신냉전 질서 도입을 절실히 갈망하면서 지금 상황을 연출하고 있는 동맹자들이다. 그리고 여기에 가세해 한몫 챙기려 발악하는 자들이 한국과 일본 지배자들이다(최영익 노동자운동 연구공동체 뿌리, 특집]미사일도 사드도 아닌 노동자 단결만이 희망, 2016.02.18.)

이들에게는 북의 핵개발이 한탕주의 “도박”입니다. 그리고 “이 도박”이 “한반도의 노동자계급 전체를 거대한 위험 속에 빠뜨리면서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제국주의 지배자들의 무장 강화와 패권 놀음의 명분을 제공”하는 원인이고, “제국주의 지배자들의 무장 강화와 패권 놀음의 명분을 제공”하는 것이라며 원인과 결과를 전도시키며 사태를 제 멋대로 파악합니다. “북한과 미국 지배자들은 한반도 신냉전 질서 도입을 절실히 갈망하면서 지금 상황을 연출하고 있는”, “동맹자들”이라는 인식은 정치적 분석이 아니라 망상에 가깝습니다.

노건투는 “김정일 사망 – 37년간 철권통치한 자본가독재정부 수장의 죽음”(2011.12.20)이라고 합니다. 노건투는 도대체 “자본가”를 무엇이라고 생각하는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노건투는 과학적 입장은 고사하고 극단적인 분파주의에 사로잡혀 완전히 분별력을 상실하고 있습니다. 노건투는 해방 전후 현대사와 맑스주의를 원점에서 다시 배워야 합니다. 이들의 터무니없는 노선에 대해서는 수차례 비판했으므로 여기서는 그만하겠습니다.

최근 해방연대 성두현 씨는 <사회주의자> 잡지에서 이 양비론과 중립론을 가져다 씁니다.

“북한은 핵보유국 인정을 협상의 조건으로 제출하고 있다 … 그런데 이런 조건으로 트럼프 정부가 협상에 임할 가능성은 없다.”(성두현, 한반도 문제 해결을 가로막고 있는 요인들, 2018년 1월 4일, 이하 인용은 같은 글).

자칭 <사회주의자>들에게 미제국주의 수장 트럼프는 그 처지와 지위를 고려, 존중해야할 존엄한 대상이기 때문에 “트럼프 정부가 협상에 임할 가능성은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들은 미제국주의 트럼프는 협상장으로 끌려나와 평화협정에 서명을 하도록 압박하고 투쟁해야할 대상이 아닙니다.

“미국의 태도가 변할 가능성이 없는 상황에서 북한이 현재의 태도를 고집하면 협상이 개시될 수 없고 이는 미국의 제재일변도 정책과 전쟁불가피론의 구실로 사용될 것이다.”

이들은 미국의 태도가 불변하는 것은 기정사실이기 때문에, 일방적으로 양보해야할 것은 ‘북한’이라면서 북이 굴복하라고 윽박지르고 있습니다.

“협상과정에서 북한은 궁극적으로 한반도 비핵화의 원칙을 따라 비핵화와 북미관계 정상화, 주한미군 철수, 평화협정 체결 등을 일괄 타결하는 길로 나아가야 한다.”

그런데 준 선전포고라 할 수 있는 해상봉쇄까지 포함한 경제 제재를 통해 “북미관계 정상화”를 가로막고 있는 것은 과연 누구입니까? 이들은 북이 “비핵화”와 함께 “주한미군 철수, 평화협정 체결 등을 일괄 타결하는 길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후자의 조치들을 이행해야할 주체는 누구입니까? 이들은 “북미관계정상화를 위해 한반도 비핵화가 필요하기 때문이다.”라고 하는데, 이는 미제국주의와 한미일 동맹의 입장입니다.

“핵무장한 한반도의 통일에 대해서는 주변국들이 반대할 것이 분명한데 이를 고집하는 것은 통일을 어렵게 하기 때문이다.”

과연 “주변국들”은 누구입니까? 현재 러시아와 중국은 명시적으로 “한반도의 통일”을 반대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면 남은 주변국은 일본입니까? 북이 “핵무장”을 했다고 통일을 반대한다면 그것은 이른바 “주변국”들이 한반도 통일을 반대하는 명분에 불과할진데, 그 명분에 힘없이 굴복하라는 말입니까?

“만약 북한이 핵보유국 인정을 고집한다면 미국은 이를 끊임없이 제재일변도 정책의 구실로 삼고 한반도 전쟁위기를 고조시킬 것이며 이런 상황에서 언제 전쟁이 발생할지 모르는 상황이 조성될 것이다.”

“언제 전쟁이 발생할지 모르는 상황이 조성될 것이”라면, 그 제국주의 깡패폭력에 맞서 목숨 걸고 싸워야 하는 것 아닙니까? 전쟁이 장난입니까? 전쟁책동을 일삼는 제국주의자들의 전쟁의 구실을 인정해야 합니까?

“북한이 핵보유국 인정을 고집”하는 것이 과연 “한반도 전쟁위기를 고조시킬 것이”라면, 결국 전쟁의 원인은 북의 핵보유란 말입니까? 이야말로 몰역사적이고 전도된 사고입니다.

또한 이들은 “이러한 조건에서 핵보유국 인정을 고집하는 것은 모험적 맹동주의로서 민족전체를 절체절명의 생존의 위기로 내모는 것이다.”라고 주장하는데, 이 역시 선 북핵폐기, 한반도 비핵화를 압박하는 제국주의 깡패논리 전파에 앞장서며, “미제국주의의 모험적 맹동주의”의 주구를 자처하는 짓입니다.

“이미 김일성, 김정일 정권에서 한반도 비핵화는 남북이 합의한 원칙이다. 또한 이것은 김일성의 유훈이기도 하다. 이 점을 김정은 정권은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이건 뭡니까? 언제는 3대 세습 운운하더니, 지금은 그 세습의 원조들, “김일성, 김정일”의 유훈을, “김정은 정권”이 무시하고 있다는 말입니까? 차도살인지계? “김일성, 김정일”의 유훈을 빌려 “김정은 정권”을 치는 차도살인지계인가요? 아니면 이간계인가요? 참으로 가당찮은 주장입니다.

“실제로 한반도에서의 전쟁을 시작할 세력이 미국밖에 없다 하더라도, 미국이 한반도를 전쟁의 위기로 내모는 상황에서 북한이 이를 무력화시키는 행동을 하지 않고 전쟁의 빌미를 제공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행동이다. 북한은 아무런 조건 없이 미국과 협상을 개시하여 전쟁의 참화를 막아야 한다.”

“실제로 한반도에서의 전쟁을 시작할 세력이 미국밖에 없다”면 온 힘을 다해 그 제국주의 세력과 싸워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그 전쟁 개시자, 책동자, 발화자들을 내버려두고 그 전쟁의 대상자에게 “이를 무력화시키는 행동을 하지 않고 전쟁의 빌미를 제공하는 것은 위험한 행동이”라면서 자제를 촉구합니까? “전쟁의 빌미를” 삼아 전쟁을 일으키는 자들이 나쁜 놈들이지, “전쟁의 빌미를 제공”한 게 잘못입니까?

제국주의자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전쟁의 빌미를 만듭니다. 베트남 전쟁의 빌미가 됐던 “통킹만 사건”도 그렇게 이라크 전쟁의 빌미가 됐던 “대량살상 무기”도 그렇고 다 조작의 산물이고 제국주의가 침략전쟁을 일으키기 위한 “빌미” 아닙니까? 만약 “북핵”이 전쟁의 빌미라면, 핵무기 개발을 중단했던 리비아 카다피의 비참한 최후와 리비아에 닥친 재앙은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까? “북핵”은 오히려 전쟁의 빌미에도 불구하고 실제적인 전쟁을 막고 있는 현실적인 물리적 수단은 아닌가요?

“아무런 조건 없이 미국과 협상을 개시”한다고 하는데, 아무런 조건이 없다는 것은 그 상대방의 조건을 충족시켜 준다는 것인데, 그것은 북핵의 일방적인 폐기에 불과합니다. 그것은 “전쟁의 참화를 막”는 길이 아니라, 이라크, 리비아처럼 제국주의 전쟁을 불러오는 지름길입니다.

이들을 과연 <사회주의자>들이라 할 수 있습니까?? 차라리 <사회제국주의자>들이라고 불러야 마땅하지 않습니까? 북에 대한 혐오가 아무리 넘쳐도 그렇지 자칭 <사회주의자>들이 중립을 가장하여 제국주의자들의 편을 들 수 있습니까?

이처럼 한국의 자칭 <사회주의자>들은 양비론적 물타기와 함께, 핵확산금지, 즉 미제의 핵독점 전략으로 북에 대한 압살공세가 자행되는 시점에서 궁극적으로 한반도 비핵화라는 기조로 미제의 이해에 복무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정치적 귀결은 극우 반북반공주의자들과 같은 행보를 하면서도 급진진보파로 자처하고 착각하는 자들은 자신들의 사고, 정치적 기원을 발본적으로 추적해서 철저하게 정치적으로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역사적이고 과학적 인식을 갖추지 못하면 급진과 진보의 외양으로 위장, 자기합리화 하면서 제국주의 프로파간다, 종북몰이 노예 신세를 면치 못하는 것입니다. 노/정/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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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협

전국노동자정치협회

한국사회 민족문제 이해를 위해서 – 한국의 양두구육식 반쏘 반북 ‘진보급진파’들에게”의 4개의 생각

  • 2018년 5월 4일 3:48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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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 1세(1906 ~ 75; 이 분의 자제로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 2세와 더 유명한 막심 쇼스타코비치가 있습니다.)와 레너드 번스타인(1918 ~ 90; 올해 탄생 만 1세기를 맞이합니다.)를 포함한 사실은 의외입니다.

  • 2018년 3월 5일 11:04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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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제국주의의 세 번째 의미의 탄생 순간입니다. 얼마 전에 노건투가 해산했고 사회주의자에서는 변혁당 건설 실패에 대해서 문서를 남겼습니다만 바로 이와 같은 사회제국주의를 포기하지 못하는 한 거의 동일한 결과를 재생산하는 것은 너무나 확실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현 시기의 이 결과들이야 말로 이와 같은 결과마저도 반영한 결과들이기 때문입니다.

  • 2018년 1월 31일 7:3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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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주의자 웹진의 그 국가에 대한 인용분이 지난해 노서아/러시아 변혁 만 1세기를 맞이해 많아졌습니다만 여전하게 사고는 과거의 상황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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