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의 세상읽기 6호 1면] 근로기준법 개악 기도로 사회적 대화의 반노동자적 실체가 드러났다!


사진은 매일노동뉴스

민주노총 선거가 점점 더 뜨거워지고 있다. 선거가 정점으로 분명한 쟁점이 떠오르고 있다. 사회적 합의주의라는 자본의 사상과 그것을 관철시키는 노사정위원회다. 다양한 선거 쟁점이 있지만 각 선거운동본부의 성격을 규정할 수 있는 대표적인 준거점이 바로 사회적 합의주의에 대한 태도이다.

모든 정치세력, 사회세력, 개인들은 민주노총 선거와 문재인 정권 내내 뜨거운 논란이 될 사회적 합의주의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가져야 한다.

사회적 합의주의에 찬성할 것인가? 확고하게 반대할 것인가? 사회적 합의주의를 관철하는 자본과 권력의 도구인 (신)노사정위원회에 참여할 것인가? 노사정위를 반대하고 대중투쟁을 전면화할 것인가? 이는 다른 말로는 자본과 정권에 대해 어떠한 태도를 취할 것인가? 로 정리할 수 있다. 노사, 노사정 대타협 기조를 통해 양보와 타협을 할 것인가? 노동자 대투쟁으로 노동자 민중의 삶을 전진시킬 것인가?

이 두 갈래 길에서 제3의 길은 없다. 교섭하다 안 되면 투쟁하면 된다거나 기존의 노사정위와는 다른 새로운 사회적 교섭 틀을 만들어야 한다는 말로 이 두 갈래 길과 다른 길이 있다는 것은 사기를 치는 것이다.

사회적 합의주의자들은 그 반대세력에 대해 교섭자체를 거부하고 투쟁만 하는 무정부주의자로 매도하려고 한다. 그리고 대화를 무조건 거부하면서 옹졸하고 떼나 쓰는 막가파 이미지를 덮어씌우려 한다. 현실성도 없는 세력으로 매도하려 한다.

그러나 투쟁을 중심으로 교섭을 하고 교섭은 투쟁의 연장이자 연속이다. 교섭주의자들은 노동자 대중을 대리하여 대중의 삶을 교섭으로 흥정하려 하는 반면에 투쟁주의자들은 노동자 대중을 주체로 하여 그 대중투쟁의 힘으로 교섭을 하려 한다. 물론 투쟁주의자들이 모든 투쟁에서 승리하는 것은 아니다. 때론 패배하고 쓰라린 시련을 겪지만 노동계급의 이해를 전면에 내세워 투쟁한다.

현실성의 측면에서 사회적 합의주의자들이야말로 노사 또는 노사정간 이해가 공존하고 조정과 화해가 가능하다고 본다는 점에서 공상주의자다. 과거 노사정위와 이제는 다르다는 것, 현 정권은 과거 김대중, 노무현 정권과 다른 모종의 계급초월적인 보나빠르티즘적 정권으로 보는 착각에 빠져 있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이번 선거는 사회적 합의주의 반대 세력 대 노골적 사회적 합의주의 및 변형되고 은폐된 사회적 합의주의 세력의 경쟁과 투쟁이다.
문재인 정권의 기관지로 전락한 소부르주아 경향신문이 노동계급의 변절자, 배신자인 문성현을 내세워 민주노총 선거에 노골적으로 개입하고 있다.

– 10월24일 청와대에서 열린 노동계 대표 만찬에 민주노총이 불참했다. 민주노총 집행부 선거에서는 ‘사회적 합의주의 분쇄’란 구호도 나온다. 나름의 사정이 있겠지만 여론의 시선은 싸늘하다(서의동 선임기자, 노조, 국민과 동떨어진 존재돼… 이대로 가면 ‘화석’될 수도”, 경향신문, 2017.11.17).

경향은 자신들의 계급타협적 열망을 국민여론으로 포장하여 사회적 합의주의 반대세력을 일방적으로 매도하고 있다. 경향은 운동의 근본원칙과 방향의 문제를 “나름의 사정” 정도로 지나가듯 언급하며 그것을 노동계급의 배신자 문성현을 통해 집중 공격하도록 하고 있다.

양대 노총이 사회적 책임을 소홀히 하면 ‘화석(化石)화’된다. 많은 이들이 해고·구속되고 죽기까지 하면서 노조를 지켜왔는데 국민들과 동떨어진 존재가 돼버린 거다(같은 기사).

노동계급의 변절자 따위가 감히 “해고.구속되고 죽기까지 하면서 노조를 지켜왔”고 지금도 지키고 있는 세력들을 매도하는가? 운동의 화석화? 문성현은 변치 않고 원칙을 지키며 투쟁하는 세력을 구시대의 흔적이 남아 있는 화석으로 매도하며 자신의 변절을 정당화 한다.

문성현은 자본과 권력의 이기적 이해를 국민적 이해로 포장하고 노동계급의 이해를 사회적으로 고립시키려 한다. 노동운동을 “국민과 동떨어진 존재”로 취급하여 피억압 계급 전체의 이해를 대변하는 노동운동의 임무를 자본과 권력의 이해에 종속시키려 한다.

근본적으로는 노동운동의 자주성을 말살, 파괴하려는 것이지만, 문성현이 노사정위를 통해 관철시키려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는 ‘최저임금 문제는 사용자나 정부만 바라볼 게 아니라 노동운동이 연대정신을 발휘해 풀어야 한다’며 SK이노베이션 노조가 기본급 일부를 각출해 협력업체 지원 등 상생기금에 출연하기로 한 사례에 주목했다(같은 기사).

문성현이 말하는 노동운동의 “연대정신”은 특별한 게 아니다. 자본의 이윤을 침해하지 않고 성역으로 두면서 정규직 노동자의 양보를 요구하는 것이다.

 노무현정권의 노동귀족론, 고임금론 주장에 다름 아니다. 이는 21세기 임금기금론으로 임금은 기금처럼 제한돼 있어서 노동자 한 쪽에서의 임금인상은 다른 한 쪽에서의 임금인하이므로 임금인상을 자제해야 한다는 논리이다. 이를 부정하면 연대정신을 침해하는 이기주의 세력이 되는 것이다.

문성현은 이를 위해 “전태일 열사가 돈이 없어 점심을 굶는 어린 노동자들에게 버스비를 털어 풀빵을 사주던 연대정신”까지 언급한다.

권력자들이 전태일 열사까지 언급하며 고도로 세련된 방식의 노동운동 고립책을 구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노동자의 연대는 피와 눈물과 땀으로 성취한 노동계급의 물질적, 문화적 성취를 후퇴시키는 것이어서는 절대 안 된다.

이는 정규직 비정규직 이해를 대립시키게 하는 자본과 권력의 분열공작이다.

반대로 노동계급의 성취를 정규직 노동자들의 것만이 아닌 비정규직, 이주노동자 등 노동계급 전체의 것이 되도록 투쟁해야 한다. 하향평준화가 아니라 상향평준화하도록 해야 한다.

또한 전체 노동자들의 기본권을 최대로 신장시키는 것이 되어야 한다. 자본의 거대한 독점과 부의 집중으로 소외되고 극도로 양극화되고 불평등한 사회를 변화시켜야 한다. 자본의 착취사회를 철폐시켜야 한다.

1만원을 달성하려면 15조원 안팎이 필요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임금 지급여력이 부족한 중소·영세사업자들을 위해 정부가 조달할 수 있는 재원은 5조원 안팎이다. 재정만으로 감당하는 것은 한계가 있고, 원·하청 간 공정거래 확립, 세제지원이나 카드수수료 인하 같은 수단을 동원해도 부족하다. 상대적으로 임금이 높은 대기업 노사가 사회연대적 차원에서 부족분을 채우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같은 기사).

자본의 착취사회에서 비롯된 극단적 빈곤과 불평등, 자본의 독점에서 비롯된 소생산자 및 중소영세 상공인들의 파산과 빈곤, 절망을 “대기업 노사”의 공동책임으로 돌려 노동자의 양보를 끌어내고 자본의 착취를 은폐하고 궁극적으로 자본의 지배를 영속화하는 것이 문성현의 속셈인 것이다.

밥값은 해야 한다. 자본과 권력이 출세분자한테 장관급이라는 노사정위원장 자리를 부여한 만큼, 권력 투항자는 밥값을 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노동자 계급의 집단적 투쟁 역사를 독점, 자신의 운동경력으로 포장하여 상품화하고 이를 통해 자본과 권력에게 봉사하는 투항자의 역할이다.

문재인 정권은 앞에서는 사회적 대화, 노동존중 운운하며 방심하게 해놓고 뒤에서 근로기준법을 날치기 통과하려는 악랄한 기도를 하고 있음이 들통 났다. 정신 바짝 차리고 근로기준법 개악을 저지해야 한다. 사회적 합의주의를 박살내야 한다.

이제 문재인 정권의 사회적 합의주의 공세는 노동운동에게 어떠한 노선을 걸을지를 가부간에 결정하도록 윽박지르고 있다.

자본과 권력에 종속된 노동’운동’인가?

자주적이고 혁명적인 노동운동인가? 노/정/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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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협

전국노동자정치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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