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사] 문재인 정부는 무엇이고, 노동자 계급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이번에 발행되는 <노동자정치신문>은 문재인 정부의 성격이 무엇인지, 그리고 문재인 정부에 대해 한국의 노동자 계급과 민중은 어떠한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에 대해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이명박근혜가 걸어갔던 길을 따라 가는가?”

“일자리 문제와 문재인 정권의 제반 노동정책 그리고 노동자계급의 태도, 임무에 대하여”

“[투쟁사업장 문제해결 촉구 대정부 성명서] 노동자들이 겪고 있는 참혹한 고통의 해결이 1년 뒤로 미뤄져야 합니까?”

“문재인 정권의 성격은 무엇인가?”

“대선과 민중의식 변화의 조건” 등의 기사들이 모두 그렇다.

우리의 분석, 평가, 예측, 전망은 거의 동시대적 상황에 대한 것인데 현실의 냉혹한 검증을 통과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주의·주장만으로 끝나거나, 분파주의적 꼬투리거나, 냉소이거나 무책임한 폭로로 끝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우리의 내용이 실제로 현실에서 맞아 떨어지고 있다.

지금 전개되는 한미정상회담은 지금까지의 우리 내용의 정당함을 확인시키고 있다.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 문재인 정부가 합의한 것을 정리하면 ‘불가역적인’ 사드 배치 확약, 한미FTA 재협상(이에 대해 미국은 재협상을 하기로 했다고 하고, 정부는 재협상 합의를 하지 않았다고 하고 있다.), 미국으로부터 수십조의 군사 무기 도입 약속, 방위비 분담 확대 등이었다. 이처럼 이번 한미 정상회담은 문재인 대통령이 미국으로부터 극진한 환대를 받은 대가로 한국이 미국의 변치 않는 우방국, 즉 ‘봉’이라는 것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는 기회였다. 방명록에서 ‘대한미국’ 헤프닝은 실수지만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다는 점에서 우연치고는 기묘한 우연이었다. 그런데 이는 고스란히 노동자 민중의 부담과 고통으로 전가될 수밖에 없다.

문재인은 미국 상·하원 지도부 간담회에서 “한국의 촛불혁명은 미국이 한국에 이식해 준 민주주의가 활짝 꽃을 피운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미국이 한국의 민주주의 발전에 큰 도움을 준 점에 대해서도 감사드립니다.”라고 인사를 했다.

아무리 한미동맹을 우상숭배해도 그렇지 역사의식이 이렇게 빈곤하고 천박하고 반동적일 수 있는가? “미국이 한국에 이식해 준 민주주의”는 통탄스럽게도, 일제로부터 해방 이후 미군정의 진주와 민중 대학살과 수탈과 착취로 얼룩졌다. “미국이 한국에 이식해 준 민주주의”는 이승만 괴뢰 도당과 박정희 군사 파쇼, 전두환 군사파쇼를 비호한 것으로 나타났다. 현대사에서 광주 학살은 미국식 민주주의가 어떻게 노동자 민중의 ‘민주주의’와 불구대천의 원수가 될 수밖에 없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미국식 ‘이식 민주주의’는 또한 이곳 반도와 동북아에서 전쟁 책동을 의미했고, 지금도 여전히 그러하다. 사드는 미국식 ‘이식 민주주의’가 군사적 무기로 형상화된 것이다. 미국은 전쟁무기 강요로 미국식 민주주의를 이 땅 성주 소성리에 강제 이식시키고 있다.

미국식 ‘이식 민주주의’는 대외적으로는 전쟁 책동이고 대내적으로는 노동자 민중에 대한 파쇼 억압체제였다. 그 중심에 국가보안법이 있다. 여전히 국가보안법으로 양심수들이 감옥에서 고통 받고 있다.

“이진영을 즉각 석방하라! 국가보안법 폐지하라! -‘노동자의 책’ 이진영 대표 국가보안법 재판 방청기”는 기고 글에서는 정신에 대한 단죄와 처벌, 사상재판인 국가보안법 재판의 기만성과 반민중성을 폭로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이진영이라는 한 인간을 구속하고 국가보안법으로 옭아매는 것은 그와 같은 생각-사회에 대한 비판의식과 저항의식을 갖고 있는 모든 인간에 대한 억압이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진영에 대한 구속과 억압은 “저항의식을 갖고 있는 모든 인간에 대한 억압이다.” 따라서 이진영에 대한 석방과 탄압 중단 요구는 억압당하고 있는 모든 인간, 특히 그 억압이 가장 극렬한 감옥에서 고초를 겪고 있는 모든 양심수에 대한 즉각 석방 요구이기도 하다. 이는 곧 한상균, 이석기, 김덕용, 이병진 등 진보적 양심들의 자유를 요구하는 외침이기도 하다.

2017년은 러시아 혁명 100주년을 맞는 해이다. 맑스 탄생 200주년을 앞두고 있는 해이기도 하다. 우리는 토니 클라크(Tony Clark)의 “왜 우리는 트로츠키주의를 반대하는가? ‘트로츠키주의란 무엇인가?’의 요약”을 번역, 소개하고 있다. 이 글은 쏘련 사회주의에 대한 트로츠키의 “일국혁명론”이라는 비방에 맞서 일국혁명과 세계혁명은 긴밀하게 통일되는 것이라는 점과 ‘스탈린 관료주의’라는 통속적 비방이 관료주의의 근본적 해결 방책을 어떻게 극단적 종파주의로 변질시켰는지를 밝히고 있다. 이 글이 러시아 혁명과 그 혁명의 성과로 만들어진 쏘련 사회주의, 특히 스탈린 시대에 대한 왜곡과 비방을 극복하고, 러시아 혁명 100주년의 교훈을 제대로 섭취하여 21세기 혁명으로 나아가게 하는 단초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청와대 인근에서 투쟁 사업장 노동자들이 싸우고 있다. 치열하게 싸우고 있다. 6월 30일에는 민주노총 ‘사회적 총파업’이 있었다. 이 투쟁에 대해 자본가 언론에서는 악선전을 하고 있다. 문재인 지지자들 중에서도 이에 합세하여 노동자들의 투쟁을 비난하고 나서고 있다. 문재인 지지자들 대다수가 노동자들일진대, 노동자가 노동자를 비난하는 자기계급 배반 행위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문재인 지지자들 다수는 문재인 정권을 자신의 권력으로 간주하고 옹호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자본주의는 박근혜를 대신하여 문재인을 통해 다시 새로운 피를 수혈하여 더욱 고도화된 방식으로 계급 지배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문재인에 대한 80% 이상의 지지는 한편으로는 확고한 한미동맹을 맹약하는 지배계급의 힘으로 나타나고, 다른 한편으로는 민주노총의 ‘사회적 총파업’에 대한 ‘국민적 반발’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노동자 계급은 노동자 계급이다. 노동자 중심성에 대한 부정, 노동계급에 대한 불신이 넘쳐나고 있지만 역시 노동자 계급은 노동자 계급인 것이다. 노동자들은 박근혜 퇴진과 문재인 정권의 등장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 아무런 변화가 없기 때문에 싸울 수밖에 없다. 노동자 계급 중에서 가장 선진적인 노동자들이 어쭙잖은 기대와 환상에 휩싸이지 않고 투쟁을 시작하고 있다. 이 투쟁은 일부 선진적 노동자들의 투쟁으로부터 구심을 발휘하면서 아직은 아니지만 앞으로 상당수 노동자 계급의 투쟁, 민중의 투쟁으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무엇이고 노동자 계급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우리가 이번 <노동자정치신문>의 상당 부분 지면을 통해, 문재인 정부는 독점자본의 정권이고 이는 필연적으로 반노동자적이고 반민중적일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노동자 계급은 인물교체를 통해 번갈아가며 노동자 민중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자본주의 권력, 제국주의에 맞서 투쟁을 전개하는 중심 계급이어야 한다. 노동자 계급은 자신의 해방자인 동시에 전체 사회의 해방자가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노동자 계급은 독점자본 권력의 정치적 영향력으로부터 하루라도 빨리 독립해야 한다. 정신적으로 독립해야 하고, 조직적으로 독립해야 한다. 노동자는 <노동자의 사상>으로 무장할 때, 해방의 길을 올곧게 걸어갈 수 있다. <노동자정치신문>이 그 길의 좋은 벗이자 길잡이가 됐으면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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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협

전국노동자정치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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