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의 물질적 조건 확보 없는 간통죄 폐지는 해방은커녕 자유로운 성적결합도 가져올 수 없다!

지난 2015년 2월 26일, “형법(1953. 9. 18. 법률 제 293호로 제정된 것) 제241조는 헌법에 위반된다”는 헌법재판소 한 문장의 위헌 결정(위헌7명, 합헌2명)으로 ‘간통죄’는 62년 만에 사라지게 되었다.

과연 62 년뿐이겠는가! 그 옛날 기독교 십계명에서도 ‘간음하지 말라’ 했고, 고조선의 8조법에 또한 간통한 자를 처벌하는 조항에 있었다고 알려져 있으니 ‘간통죄’는 이미 수천 년 전, 사유재산이 형성되고 계급이 발생하던 때부터 명시되어 현대의 사법체계 속에까지 그 흔적을 두고 있다가 오늘날에 와서야 위헌결정을 받아 그 법적 효력을 끝내게 된 것이다.

간통죄가 폐지되었다는 것은 이제는 간통을 범죄로 규정하여 ‘배우자가 있으면서 간통을 한 자’를 형법상으로 처벌하지 않겠다는 의미이다. 더 이상 신고 받은 경찰이 간통 현장을 급습하여 증거를 잡고 형법으로 처벌할 수는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간통죄가 폐지되었다고 해서 그 도덕적 문제 또한 없어지게 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또한 소송 이혼 등에서 위자료 및 혼인파탄의 책임성의 문제 등으로 여전히 간통은 그 민사상 법적 영향력을 유지하게 될 것이다. 때문에 수많은 논란 속에서도 헌법재판소의 네 번의 합헌 결정으로 62년 동안 굳건하게 형법 속 지위를 지키고 있던 간통죄가 위헌 결정으로 폐지되었다고 해서 이후에 이혼이 급격히 늘어나 ‘가정이 파괴’되고, 성문화가 문란해질 것이라고 진심으로 걱정하거나 놀라는 이는 사실 얼마 되지 않는다. 대부분의 언론과 대중, 지식인들은 ‘진즉에 폐지되어야 할 법이 폐지되었다’는 담담한 반응이 대다수인 듯하다.

다만, 2명의 헌법재판관이 합헌 의견을 통해 간통제 폐지로 인한 우려를 보이며 그들의 권위주의적 도덕의식을 강조했으며, 부르주아 일부 언론들 또한 간통제 폐지에 근본적 반대는 아님에도 짐짓 가정의 해체를 ‘걱정’하는 동시에 자신들의 ‘도덕성’을 강조하는 훈계조를 늘어놓고 있다.

특히 간통죄의 폐지는 ‘성도덕의 최소한’의 한 축을 허물어뜨림으로써 우리 사회 전반에서 성도덕 의식의 하향화를 가져오고, 간통에 대한 범죄의식을 없앰으로써 우리 사회에서 성도덕의 문란을 초래할 수 있으며, 그 결과 혼인과 가족 공동체의 해체를 촉진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간통죄를 형사처벌하도록 한 입법자의 판단이 자의적인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재판관 이정미, 안창호의 반대의견 >

2명의 재판관은 ‘성도덕이 허물어진다’, ‘간통의 범죄의식이 없어진다’, ‘가족이 파괴된다’의 근거로 폐지 반대 의견을 냈다. 타락한 성도덕에 희생될 가정 내 약자와 자녀들의 인권을 보호하라! 국가는 도덕과 정의를 바로 세우기 위해 여관과 이불 속으로 경찰권을 발동하라! 이들의 논리라면 성도덕이 허물어져가고 있는 지금의 시대에 간통죄는 폐지가 아니라 더욱 강화되어야 할 것이다. 도덕과 윤리조차 징벌로 다스리지 않으면 그 근간이 무너지게 될 것이라는 이들의 우려는 부르주아 국가주의적 권위의식의 발로이다.

간통죄 폐지가 사회윤리의 훼손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후속 조치에도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 <중앙일보 사설, 2015.2.27.>

부부는 개인이 행복감과 정서적 안정감을 얻을 수 있는 원천인 가족(家族)을 이루는 가장 기초적 관계다. 가족의 가치를 최우선으로 여기는 분위기를 유지해야 할 필요성이 더 절실해졌다. <조선일보 사설, 2015.2.27.>

이제 우리의 가정, 우리의 남편, 우리의 아내, 우리의 아들과 딸을 어떻게 지킬지를 걱정해야 한다. 아내나 남편이 기본권을 이유로 이성을 만나 성행위를 하고 다니는 것은 가정을 뿌리째 흔드는 일이다…… 아내나 남편이 기본권을 이유로 이성을 만나 성행위를 하고 다니는 것은 가정을 뿌리째 흔드는 일이다. <아시아투데이, 2015.2.26.>

부르주아 언론은 대다수 간통죄의 폐지를 받아들이면서도 행여나 그로인해 사회윤리가 훼손될까, 가정이 파괴될까 우려를 표한다. 지배계급이 그동안 감추어 왔거나, 혹은 정치적 목적이 있을 때 터트리거나 폭로되었던 성상납 사건, 해외 원정 성매매, 성폭력, 혹은 정략결혼 등을 생각해 본다면 이들이 말하는 ‘사회 윤리’나 ‘성도덕’은 위선일 뿐이다.

또한 이들은 간통죄의 폐지로 가정이 파괴될까 가정의 가치가 땅에 떨어질까 걱정을 하고 있는데, 과연 그토록 오매불망 무너질까 두려워하고 신성시하고 있는 가정의 현재 모습은 어떠한가?

– 깡통전세에 전세금을 날려 가족을 남기고 분신자살한 인천의 장애인 아버지 (2014년 7월)
– 질병과 실직 등 생활고로 월세를 남기고 동반 자살한 송파구 세 모녀 (2014년 12월)
– 생계 부담과 빚 문제 등으로 아버지가 세 모녀를 살해 (2015년 1월 서초구)
– 기초생활수급 자격을 얻기 위해 위장 위혼, 혹은 실제 이혼하는 사례들

이러한 일들은 단지 간간히 발생하는 끔찍한 사건, 일탈적이거나 우발적으로 일어나는 일들로 볼 것이 아니다. 부르주아 언론은 ‘가족의 가치를 최우선시’ 해야 한다며 가족에 환상을 불어 넣으려 하고 있지만, 실제 ‘가족’의 현재는 일상적인 실업과 부채, 주식의 폭락, 사기, 질병, 사업의 실패 등과 같은 이유로 이미 파괴당하고 있다.

경제적 빈곤 문제로 이혼을 하거나 이혼을 하지 않더라도 갈등 속에서 살고 있는 가정이 상당수로 부르주아 사회에서 가정은 이미 해체되어 있거나 벼랑 끝에 서 있는 경우가 대부분인 것이다. 전기요금을 내지 못해 단전되어 촛불을 켜다 화재로 사망했던 안타까운 일도 있었던 것처럼, 이혼이 증가하면서 경제력이 없는 조부모가 생계를 책임질 수밖에 없는 조손가정 또한 늘고 있다.

아마도 지배계급이 지키고 싶어 하며, 이상적으로 내세우는 가정의 모습은 양부모와 자녀가 함께 사는 부모-자녀 가족일 것이다. 한 부모 가정, 미혼모가정, 조손가정 등은 이른바 ‘결손가정’이라 하여 불행하고 지양되어야 할 가족의 형태로 생각하고 있다. 그리하여 이들 가정에 사회적 편견이라는 고통까지 더해 주고 있다.

물론 지금 사회에서 한 부모 가정이나 조손가정이 대부분 경제적 고통이나 문화적/정서적 박탈 속에 살고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불행한 삶을 살 가능성이 큰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가족의 행복감이 부모의 경제 수준 등에 좌우되지 않는 사회라면, 가족 중 한 명이 아프거나 실직한다고 온 가족이 위기에 몰리는 사회가 아니라면,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에 따라 가족이 구성될 수 있는 사회라면, 이른바 ‘결손가정’ 또한 행복하고 동등한 가족의 모습으로 공존할 수 있을 것이다.

현실 속 가정이 파탄 위기 속에 있는 반면 다른 한편으로는 결혼을 포기하여 가정을 꾸릴 기회조차 갖지 못하는 젊은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출산율이 떨어지고 있다며 걱정스럽게 말하는 사람들은 젊은이들이 개인주의에 편한 것만 찾아 결혼과 출산을 꺼린다고 나무라지만 지금 대다수의 젊은이들은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말을 위로 삼으며 저임금과 고용불안, 각박한 생존 경쟁과 절망 속에 결혼할 엄두조차 못내는 이들이 많다.

‘노동의 유연성’을 위해 실업자를 양산하는 정책, 빚을 내서라도 아파트를 사라고 부추기는 정책, 담뱃세와 연말정산으로 세금을 수탈해가면서도 복지와 연금은 축소하려는 정책 이렇듯 자본주의 공황의 고통을 민중에게 전가하며 가까스로 자본주의를 지탱하려는 자본과 국가의 정책이 바로 가정을 파괴하는 실제적인 원인이다. 짐짓 가정 파괴를 걱정한다는 지배자들의 가증스런 위선과 달리, 빈곤을 가중시키는 착취 체제가 바로 가정을 파괴하는 실질적 원흉들이다.

이제, 간통죄는 위헌이라는 결정을 내린 헌법재판관들의 의견을 보자.

심판대상조항은 과잉금지원칙에 위배하여 국민의 성적 자기결정권 및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하는 것으로서 헌법에 위반된다. <합헌 의견 일부 재판관의 의견>

국가가 도덕적 문제에 대해서 사생활의 자유과 성적 자기 결정권을 침해하면서 범죄시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명시했다는 점에서 간통죄 위헌 결정은 진일보한 의미가 있다. 전통적으로 간통죄가 여성에게 정조의 의무를 부과하며 여성을 억압하기 위한 수단으로 형성되어 왔고, 현대에도 간통죄를 범한 여성은 사회적으로 엄청난 비난을 받았기에 간통죄는 진즉에 폐지되었어야 하는 것이었다. 또한 형식적으로나마 개인의 권리와 평등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부르주아 법체제의 측면, 민주주의에 대한 투쟁과 그로인해 인권의식이 발전한 측면을 부르주아 법이 뒤늦게나마 받아들이고 따라가게 되었다는 점에서도 간통죄 폐지 결정은 의미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부르주아 국가가 지켜주겠다는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는 저들의 지배를 위협하지 않는 한에서의 자유이기에 위선적이고 불완전한 것일 뿐이다.

불과 몇 달 전 헌법재판소는 대법원 판결이 나기도 전에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을 내림으로써 스스로 정치사상의 자유와 결사의 자유를 부정했다! 국가보안법 또한 여전히 살아 날뛰며 정치사상의 자유를 유린하고 있다!

이는 단지 법조항만의 문제가 아니다. 세월호 유가족들에 대한 미행과 감시, 활동가들에 대한 카카오톡 대화방 압수수색 사건 등을 보더라도 저들은 국가에 위해를 가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감시와 사찰을 자행하며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적극적으로 파괴하고 있는 것이다.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와 더불어 간통죄 폐지의 주요한 근거인 ‘성적자기결정권’ 또한 마찬가지로 부르주아 사회에서는 온전할 수가 없다. 과연 간통죄가 폐지되었다고 해서 ‘성적자기결정권’이 보장받게 되었는가?

성적자기결정권을 가장 기본적으로 행사하는 것은 결혼을 선택하는 과정에서일 것이다. 그러나 현 사회에서 결혼은 안정된 직업을 갖고 있지 않거나 재산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굉장히 어려운 일이 되었다. 오늘날 청년 실업자들과 저임금과 불안정 노동으로 시달리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 대다수가 안정적으로 거주할 주택을 보유하고 아이를 낳아 키울 수 있는 최소한의 경제적 조건을 갖출 수 없다는 게 현실 아닌가?

설령 이러한 경제적 어려움을 감내하고 결혼을 성사시켰다하더라도, 부부 간의 정신적 유대감과 사랑만으로 언제까지 화목한 가정을 지속시킬 수 있을 것인가? 특히 빈곤, 폭력, 애정상실 등 여러 가지 이유로 가정이 해체될 상황에 직면했을 때, 상대적으로 경제적 능력이 없는 여성의 입장에서는 이혼을 하고 싶은 상황이 오더라도 이혼 이후 닥칠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해 이혼을 감행할 수 없는 경우가 다반사다.

자본주의에서 형식적으로 보장된 법적 자유(그조차도 여전히 자유롭지 않지만)조차도 경제적 자유의 박탈, 이혼 이후의 사회적 편견 등으로 인해 실질적인 이혼의 자유 또한 없다. 지금의 결혼제도에서의 성적자기결정권은 경제적 상황이나 사회적 관계 속에서 제약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간통이 죄악시 되고, 특히 여성을 옥좨는 수단이 된 것은 계급사회의 형성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다. 생산력이 발전하여 잉여생산물이 발생하고, 그것을 유지, 소유하는 데에 노동력은 절대적으로 중요한 것이었다. 가족은 노동력을 재생산하고 사유재산을 유지, 계승하는 단위가 되었다. 혈통을 유지하기 위해 여성은 정절을 지킬 것을 강요받았다. 현대의 여성이 경제활동에의 참여도 높아지고, 부르주아적 인권의식이 향상되면서 여성의 권리 수준은 상대적으로 높아졌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여전히 정절을 요구 받고 있을 뿐 아니라, 결혼 또한 경제적 이해관계로 맺고 있으며, 여성이 경제적 어려움에 내몰리게 되는 상황에서는 성매매에 내몰리게도 된다.

때문에 단지 간통죄가 폐지되었다고 해서 가족관계에서의 여성에 대한 억압이 폐지된 것 또한 결코 아닌 것이다. 오히려 간통죄의 폐지로 남편의 간통을 단죄할 수단이 없어지게 된 것을 두려워하는 여성들도 있는 상황이다. 이는 부르주아 사회에서 부부 간의 관계가 얼마나 허약한 신뢰 속에 있는 것인지, 이혼과 재산분배 조차 법적인 공방과 갈등을 벌이지 않고서는 쉽게 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또한 소비와 향락을 부추길 수밖에 자본주의 문화는 성적 자극을 강조하는 대중문화, 광고, 성매매, 성접대 등 역시 남성과 여성 모두의 ‘성적자기결정권’을 왜곡하고 파괴하도록 하고 있다. 지배계급은 겉으로는 도덕과 정절, 가족의 가치를 부르짖지만 한편으로는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여 장사를 하여 부를 축적하고, 퇴폐와 향락적 문화를 누리며 지배계급으로서의 행복감을 느끼려 한다.

경제적 타산 속에 존재하는 결혼과 가족 제도 속에서 부부간의 애정과 신뢰는 허약할 수밖에 없다. 허약한 애정과 신뢰는 외도로 이어진다. 상대방에 대한 애정이 없음에도 자녀에 대한 걱정 혹은 경제적 이유로 원치 않게 혼인을 유지하고 있다면 그 또한 성적자기결정권을 억압받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자유로운 결혼(또는 새로운 결합 형태나 관계)은 자본주의 생산관계와 소유제도가 폐지됨으로써 가능하게 된다. 때문에 성적자기결정권의 진정한 획득 또한 단지 간통죄를 폐지함으로써 가능한 것이 아니라 계급과 사적소유가 폐지됨으로써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새로이 나타나게 될 가족(관계)의 모습에 대해 엥겔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남자는 일생을 두고 금전이나 기타 사회적 권력수단으로 여자를 사는 일이 없게 되고 여자는 진정한 사랑 이외에는 다른 어떠한 동기로도 결코 남자에게 몸을 맡기지 않게 되며, 사랑하는 사람에게 경제적 결과에 대한 몸을 허락해 버리는 일을 거부하게 될 때 확정될 것이다. 이러한 사람들이 출현 할 때면 현재 그들의 의무로 간주되고 있는 것들에 대해 그들은 조금도 애태우지 않게 될 것이다. 그들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스스로 알 것이며, 또 이에 따라서 각자의 행동에 대한 여론을 스스로 조성할 것이다. 오직 그뿐인 것이다. <엥겔스,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 <노/정/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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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협

전국노동자정치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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