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이 동원된 이건희 성매수 사건! 저 추악한 범죄자들이 언제까지 우리를 지배하도록 내버려 둘 것인가?

아! 헬 대한민국!!

대중가수 정수라는 1983년 “아! 대한민국”이라는 노래를 발표하여 “은혜로운 이 땅” 대한민국을 이렇게 노래했다.

아! 대한민국(박건호 작사, 김재일 작곡)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얻을 수 있고

뜻하는 것은 무엇이건 될 수가 있어

이렇게 우린 은혜로운 이 땅을 위해

이렇게 우린 이 강산을 노래 부르네

당시만 해도 이 “은혜로운 이 땅”의 하늘 위에는 조각구름이 떠 있고 뚜렷한 사계절이 있었던 것은 분명하지만, 정수라는 자연에 대한 찬미를 넘어 1983년 대한민국을 “저마다 누려야 할 행복이 언제나 자유로운”, “우리의 마음속에 이상이 끝없이 펼쳐지는 곳”이라는 이상향으로 노래했다. 게다가 “농촌에 기름진 논과 밭 저마다 자유로움 속에서 조화를 이뤄 가는 곳 도시는 농촌으로 향하고 농촌은 도시로 이어”지는, 마치 대한민국을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의 대립을 해결하고, 도시와 농촌이 균형적으로 발전하는 도농복합도시를 연상케 하는 ‘공산주의 이상향’으로 노래했다.

아! 이 얼마나 비현실적인가? 아! 이 얼마나 초현실적인 노래인가? 그도 그럴 것이 “영원토록 사랑하리라”던 “은혜로운 땅”, 1983년의 “우리 조국” 대한민국은 1980년 전두환·노태우 군사 파쇼 도당이 광주 민중을 집단 도살한 핏자국이 아직 마르지 않은 학살의 땅이었기 때문이다. 비통과 분노가 넘쳐흐르던 저주의 땅이었기 때문이다. 쿠데타와 대학살로 권력을 잡은 전두환 군사 파쇼가 민주인사와 지식인, 노동자 민중에게 고문과 암살, 구속과 해고를 자행하고 폭정을 저지르던 동토의 땅이었기 때문이다.

정수라가 초현실적으로 미스터리한 노래를 부르고, 1988년 올림픽 때까지도 ‘우민화’된 우리들이 이 노래를 멋모르고 목청 높여 따라 부르고 있을 때, 1990년 민중가수 정태춘은 똑 같은 제목으로 비참하고 저주스런 현실을 고발했다.

아, 대한민국(정태춘 작사 작곡)

우린 여기 함께 살고 있지 않나 사랑과 순결이 넘쳐 흐르는 이 땅

새악시 하나 얻지 못해 농약을 마시는 참담한 농촌의 총각들은 말고

특급호텔 로비에 득시글거리는 매춘 관광의 호사한 창녀들과 함께

우린 모두 행복하게 살고 있지 않나, 우린 모두 행복하게 살고 있지 않나

아 우리의 땅, 아 우리의 나라

 

우린 여기 함께 살고 있지 않나 기름진 음식과 술이 넘치는 이 땅

최저임금도 받지 못해 싸우다가 쫓겨난 힘없는 공순이들은 말고

하룻밤 향락의 화대로 일천만원씩이나 뿌려대는 저 재벌의 아들과 함께

우린 모두 풍요롭게 살고 있지 않나 우린 모두 만족하게 살고 있지 않나

아 대한민국 아 우리의 공화국

 

우린 여기 함께 살고 있지 않나 저들의 염려와 살뜰한 보살핌 아래

벌건 대낮에도 강도들에게 잔인하게 유린당하는 여자들은 말고

닭장차에 방패와 쇠몽둥이를 싣고 신출귀몰하는 우리의 백골단과 함께

우린 모두 안전하게 살고 있지 않나 우린 모두 평화롭게 살고 있지 않나

아 우리의 땅 아 우리의 나라

 

우린 여기 함께 살고 있지 않나 우린 모두 행복하게 살고 있지 않나

아 우리의 땅 아 우리의 나라

우린 여기 함께 살고 있지 않나 양심과 정의가 넘쳐 흐르는 이 땅

식민 독재와 맞서 싸우다 감옥에 갔거나 어디론가 사라져간 사람들은 말고

하루아침에 위대한 배신의 칼을 휘두르는 저 민주인사와 함께

우린 너무 착하게 살고 있지 않나 우린 바보같이 살고 있지 않나

아 대한민국 아 우리의 공화국

 

우린 여기 함께 살고 있지 않나

거짓 민주자유의 구호가 넘쳐 흐르는 이 땅

고단한 민중의 역사 허리 잘려 찢겨진 상처로 아직도 우는데

군림하는 자들의 배부른 노래와 피의 채찍아래 마른 무릎을 꺾고

우린 너무도 질기게 참고 살아왔지 우린 너무 오래 참고 살아왔어

아 대한민국 아 저들의 공화국 아 대한민국 아 대한민국

1990년 현실의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헬 대한민국이었다. 1990년 1월 22일에 노태우 파쇼 군사 정권은 전노협(전국노동조합협의회) 출범을 공권력으로 분쇄하고 핵심 지도부들에 대해 대대적인 검거 작전을 펼쳤다. 바로 이듬해인 1991년에는 한진중공업 박창수 열사가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에 의해 타살을 당하는가 하면, 강경대 열사가 백골단에게 타살당하고 김귀정, 박승희, 김영균, 천세용, 김기설 등이 잇달아 분신 저항을 하며 극악한 탄압만큼이나 극렬한 저항이 이뤄지던 시기였다.

노태우 정권은 강기훈 씨가 김기설 열사 유서 대필을 했다고 구속시키는 희대의 날조극을 벌이기도 했다. 군사 정권의 위기를 돌파하고자 조작된 이 사건의 주모자로 바로 당시 법무부 장관이던 김기춘은 박근혜 정권 들어 비서실장을 지내며 실세로 군림했다. 김기춘과 함께 당시 이 사건 조작에 앞장서던 강기욱 부장검사는 박근혜 대선 후보 당시 법률 특보단장을, 남기춘 당시 수사검사는 새누리당 대선기구 클린위원장을, 윤석만 당시 수사검사는 새누리당 예비 후보를, 곽상도 당시 수사검사는 박근혜 청와대 민정수석을 역임하며 권력의 중심에 포진했거나 하고 있다.

이처럼 2016년 현실의 헬 대한민국 공화국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여전히 우리는 “최저임금도 받지 못해 싸우다가 쫓겨”나기도 하고, 여성들은 “벌건 대낮에도 강도들에게 잔인하고 유린당하”는 노랫말처럼, 증오범죄로 무차별적으로 살해당하고, 일하다 죽임을 당하고, 하루아침에 자본의 명령으로 쫓겨나는 그런 헬 대한민국의 현실에서 살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또한 “하룻밤 향락의 화대로 일천만원씩이나 뿌려대는 저 재벌의 아들과 함께” “풍요롭게”, “만족하게” 자본의 공화국 하에서 살고 있다. 헬 대한민국에서 재벌과 그 자식들은 여전히 하룻밤 향락의 ‘화대’로 비정규직 노동자 1년 월급보다 많은 수천만 원을 뿌려 대고 있다. 재벌의 자식들이 그렇게 향락과 호사를 즐기고 있을 때 청년들은 실업으로 고통 받고 있다.

이건희 성매수 사건의 본질은 무엇인가?

“하룻밤 향락의 화대로 일천만원씩이나 뿌려대는 저 재벌의 아들과 함께”라고 정태춘이 묘사했던 “아! 대한민국”은 2016년 뉴스타파 보도로 그 빙산의 일각이 드러난 이건희 성매수 사건을 그대로 연상시킨다.

이건희는 한남동에 담장 길이만 300미터에 달한다는 국내 최고가인 350억이 넘는 호화 대저택을 소유하고 있다. 이번 이건희 성매수 사건은 2013년 완공된 삼성동 자택과 논현동 빌라에서 벌어졌다. 2013년 완공된 삼성동 자택은 현재 공시가격이 120억에 달한다. 논현동 고급빌라는 전세보증금이 13억에 달한다. 이건희 성매수가 이뤄진 집은 초호화 인테리어로 장식이 됐는데 그 중 스피커만 2억이라고 한다.

이건희는 성매수를 하면서 4명의 여성들에게 각각 500만원 씩 2천만 원을 지급했다. 심지어는 성매수 상대의 몸무게가 기준을 초과하면 50만원 벌금을 매기기도 하는 기괴한 벌칙도 공개됐다.

이번에 폭로된 성매수 사건은 2011년 12월, 2012년 3월, 2013년 1월, 4월, 6월에 걸쳐 촬영됐다. 다섯 번에 걸쳐 성매수 사건이 이뤄진 것이 아니라, 이번에 폭로된 동영상에서만 다섯 번에 걸쳐 성매수가 이뤄졌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이번에 폭로되지 않은 성매수 사건은 도대체 얼마나 될 것인가? 과연 이런 일들이 국내에서만 이뤄지는 것인가? 해외의 이건희 소유 호화 주택에서 이뤄지는 이러한 성매수 사건은 도대체 얼마나 될 것인가? 이번에 성매수 당사자 여성들에게 각각 5백만 원을 제공했는데, 과연 이게 최고 가격인가? 과연 이번 사건은 이건희 개인만의 도덕적 타락의 문제일 뿐인가? 이건희 일족들이 벌이는 향락과 퇴폐는 얼마나 광범위한 것일까? 이건희 수하의 삼성 고위 임원들은 이러한 종류의 성매수 사건과 무관할 것인가?

삼성은 이번 이건희 성매수 사건에 대해 개인의 “사생활” 문제로 축소, 왜곡해서 빠져나가려 하고 있다. 이번 이건희 성매수 사건에는 브로커도 등장하고 이건희 측 관리인도 등장한다. 박정희의 성적 향락을 위해 권력기관과 비공식 기관인 ‘채홍사’가 조직적으로 관여했듯이, 이건희에게도 이건희의 성적 향락을 담당하는 삼성의 전담 ‘채홍사’들이 있는 것이다. 이 기관이 은밀하게 브로커와 결합하여 여성을 안내하고 이후에는 소문나지 않게 보안을 감독하고, 언론기관을 감시하는 등 사후관리까지 하는 것이다. 이 동영상 유출을 막기 위해 ‘삼성 미래전략팀 위기관리팀’까지 나섰다는 보도도 나오고 있다.(이재진 기자, “이건희 동영상 찍었던 사람을 만났다” [인터뷰] 김성환 삼성일반노조 위원장, “지난해 두 차례에 걸쳐 접촉, 이건희 회장 성매매 동영상 확인했다”, 미디어오늘, 2016년 07월 26일)

이뿐인가? 수백억에 달하는 초호화 주택의 용도는 오로지 이건희의 성적 향락과 휴식을 위해 지어진 건물이다. 이번 동영상에 나오는 논현동 빌라를 계약한 사람은 전 삼성SDS 김인 사장이었다. 권영국 변호사의 주장에 따르면 이건희는 불법 성매매뿐만 아니라, “논현동 빌라를 이건희 씨 개인의 안가로 사용하면서 김인 고문의 이름을 빌려 전세권 등기를 한 것이라면 부동산실명법 위반죄, 비서실에서 김인 고문 몰래 김인 이름으로 전세금을 송금했다면 금융실명법 위반죄도 성립될 수 있다”고 한다. 만약 실제로 전 삼성SDS 김인 사장의 말대로, 그가 몰랐다면 부동산실명제법과 금융실명법 위반죄이지만, 반대로 김인이 말 바꾸기를 하는 것을 통해 추정해 볼 수 있듯, 자신의 명의를 빌려준 것을 알고 있었다면, 그 또한 법위반과 함께 이건희 성매수를 위해 삼성이 조직적으로 나선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러나저러나 삼성의 조직적 개입이 있었던 것이다.

결국 이건희 성매수 사건의 본질은 무엇인가? 이는 우리를 지배하는 이 사회의 실질적 지배자들인 재벌 금융자본가들이 얼마나 호사스러운지, 얼마나 추악하고 타락했는지, 얼마나 파렴치한 범죄자들인지를 보여주는 중대 사건이다. 이 사건은 단지 이건희 개인의 성적 타락과 범죄가 아니다. 이건희의 추악한 성범죄와 향락을 충족시키기 위해 삼성이 동원된 중대한 조직적 범죄 사건이다.

이 사건의 본질은 어떻게 둔갑하고 있는가?

이 사회의 실질적 지배자들인 삼성 재벌은 이건희 “사생활”이라는 소극적인 변명에 그치지 않고 이 사건의 본질과 판이하게 다른 방식으로 성격을 둔갑시키고 있다. 삼성의 반격과 복수가 시작된 것이다.

7월 25일 KBS는 “[심층 리포트] ‘이건희 동영상’ 수사 방향과 처벌 수위는?”라는 뉴스를 내보냈습니다. 심층리포트가 앞에 붙었기 때문에 깊이 있는 이건희 동영상 관련 뉴스라고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뉴스의 대부분은 ‘몰래 카메라’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습니다. 즉 이건희 회장의 성매매 의혹이 아닌 동영상을 촬영한 부분이 불법이라는 사실과 뉴스타파를 공격하기 위한 뉴스였습니다.(아이엠피터, 내부자들 실사판? 이건희 동영상 보도에 웬 이병헌, 07/26/2016)

이미 여러 언론에서는 이러한 방향으로 경찰과 검찰의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이미 1997년 삼성X파일 사건에서 이러한 방식으로 사건의 본질을 둔갑시켜 효과적으로 써먹어서 효력을 검증했던 방법이다.

주지하듯, 삼성X파일 사건은 2005년 7월 문화방송 이상호 기자가 당시 국가안전기획부의 도청 내용이 담긴 90분짜리 테이프를 폭로한 사건이다. 1997년 대선 당시 ‘회장님’ 이건희의 지시로 삼성그룹 이학수 부회장이 중앙일보 홍석현 회장을 통해 당시 한나라당 후보인 이회창 후보에게 대선자금을 제공했다. 또한 최고위급 검찰 간부들에게는 명절 때마다 떡값 명목으로 500만~1000만원의 금품을 제공하면서 검사들을 매수했다.

이 사건은 삼성 같은 금융과두제가 어떻게 권력자들을 매수하여 이 사회를 지배하는지 보여준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그러나 이 사건은 이른바 독수독과(毒樹毒果, 독나무의 열매에는 독이 들어 있다)라는 기괴한 논리가 동원되어 증거 자료 자체가 불법 도청이기 때문에 증거능력 자체가 부인되었던 것이다. 이 때문에 이상호 기자는 통신비밀보호법위반 혐의로 2006년 징역 6월에 자격정지 1년의 유죄를 선고받고, 검사 실명을 공개했던 노회찬 의원은 의원직을 박탈당하는 고초를 당했다.

삼성X파일 사건의 본질이 둔갑한 것은 명목적으로는 독과독수 법리지만, 실상은 언론, 정계, 사법부까지 장악한 삼성이 가진 이 사회에 대한 지배력 때문이었다. 이회창을 선호하여 자금지원을 했던 삼성은, “노무현정부의 한미 FTA는 삼성의 프로젝트였다”(정태인)라는 폭로가 나올 만큼 노무현 정권조차도 손아귀에 넣었다.

삼성은 이러한 X파일 사건처럼, 이건희와 삼성이 조직적으로 개입한 성매수 사건을 이건희는 사생활이 폭로된 피해자로, 이를 폭로한 뉴스타파는 동영상 촬영, 제공자들과 부도덕하게 얽히고 불법을 저지른 언론으로 몰아가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이건희가 이미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삼성 차원으로 번져갈 문제는 철저하게 차단돼 있는 것이다.

이대로라면 결국 이 사건은 그 동안 금기였던 재벌의 사생활의 일단을 들여다 본 것으로 사람들의 호기심을 충족시키면서 끝날 수밖에 없다. 이 사회의 실질적 지배자였던 이건희는 평생 부와 권력, 향락을 누리고도 모자라, 온갖 불법과 편법을 총동원하여 이재용, 이부진, 이서형으로 자식 대까지, 그리고 그 자식의 자식 대까지 부와 권력을 성공적으로 승계시키고, 승계시키게 될 것이다. 이는 또 다시 노동자 민중을 착취하고 수탈할 권능과 이 사회를 지배하는 지배력까지도 승계되는 것이다.

지배자가 지배당하고 수탈자가 수탈당해야 한다

“거짓 민주자유의 구호가 넘쳐흐르는 이 땅”, 재벌 공화국에서 우린 너무도 오래 참고 살아 왔다.

이건희의 향락과 타락과 부패와 부의 원천, 그리고 그 자식의, 그 자식의 자식들까지의 영원한 계급지배의 원천적인 토대는 노동자들의 잉여노동이다. 오늘날 거대 자본 삼성을 일군 노동자들의 피땀과 고통이라는 토대를 통해 이건희 같은 추악한 자들의 부와 향락과 지배 구조가 유지될 수 있다.

백혈병으로, 추락사 등으로 참혹하게 죽어 나가는 삼성 노동자들과 애통하게 죽어간 자식들, 남편들, 부인들의 참담한 고통과 절규 위에서 이건희와 삼성일족들의 무한한 행복이 있다. 삼성 노동자들의 장시간 노동, 야간노동, 무권리, 무노조 신화, 이를 위한 민주노조 건설 활동가 납치, 감금, 사찰, 도청, 매수 등 끝없는 악행, 비정규직의 저임금 기반 위에서 이건희와 그 일족의 화려한 영광이 있다. 대다수 노동자 민중의 빈곤과 참상 위에서 이건희와 삼성 일족들의 부와 권력이 유지되고 있다.

권력은 노동법 개악을 통해 재벌의 사적소유 체제와 부를 보호하고 있다. 재벌의 지배체제를 영구적으로 유지, 강화하기 위해 국가의 폭압기구가 동원되고 있고, 심지어 제국주의의 군사력까지도 동원되고 있다. 성주 주민들이 어느 날 날벼락처럼 당하고 있는 고통과 이 땅에서의 전쟁 책동이 한미 양국의 독점자본과 그 영구적 지배체제를 위한 것이라고 한다면 과연 비약인가? 자본주의와 제국주의의 본질, 역사적 역할을 조금이라도 이해한다면 이것이 비약이 아니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삼성은 이건희와 그 장자 세습자 이재용의 것이 아니다. 기업은 노동자의 것이어야 하고, 그 대다수가 노동자 민중의 일원인 소비자들의 것이어야 한다. 소비자들은 독점가격의 삼성 제품을 소비하는 부담을 지면서 삼성의 재생산과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이처럼 삼성은 이미 자본주의 내에서도 노동자 다수가 생산하고, 사회적 생산력의 발전 위에서 운영되며, 사회적 소비로 지탱되는 ‘사회적 기업’인 것이다.

이미 주식회사 삼성 자체가 삼성이 이건희, 이재용 개인의 것이 아님을 입증하고 있다. 이건희 이재용이 지주회사 격인 삼성에버랜드를 소유하고 있고, 삼성에버랜드가 삼성생명을, 삼성생명이 삼성전자를 소유하는 사기적인 주식회사 지배구조를 통해 70개가 넘는 삼성 계열사 전체를 이건희와 이재용 그리고 그 일족들이 지배하는 것이다. 이건희와 이재용은 상호출자라는 마술적 수단으로 단지 몇 %의 지분율로 삼성재벌 전체의 지배자가 될 수 있었다.

이러한 지분율조차도 이재용이 이건희로부터, 이건희가 이병철로부터 물려받은 것이고, 그 지배의 재생산 장치 뒤에는 일제 시대 악질 친일지주가에서 매판자본가로의 변신, 해방 후 친미 자본가로 변신하여 적산불하와 미국 원조물자 배당, 그 과정에서 불법 정치자금 제공으로 이승만, 박정희 국가권력과의 결탁, 매수, 조세포탈과 사카린 밀수, 권력가와의 혼맥 형성 등 추악하고 범죄적인 삼성가의 원시적 축적의 역사가 있다. 이 과정은 한국 재벌과 권력자들의 전형적인 흑역사 그 자체였다.

거기에 무노조 삼성의 폭압적 노동자 통제와 감시, 탄압 등으로 점철된 노동자 착취가 가장 밑바탕에 있다.

맑스는 주식회사는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사적생산의 폐지를 향한 최초의 단계라고 표현했다. 이미 삼성은 개인의 소유가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삼성은 노동자가 집단적으로 소유해야 한다. 그러나 삼성 주식회사가 이건희, 이재용 일족의 사적 소유가 되어서는 안 되는 당위가 있지만, 자본주의 현실에서는 이들 일족이 삼성을 소유하고 지배하고 있다. 바로 자본주의 법률, 권력이 이 사적소유를 보호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이 사적소유 체제를 분쇄하지 않으면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이건희가 자연사해도 이건희 일족의 탐욕과 부패, 타락과 향락은 대대손손 계속될 수밖에 없다.

오늘날 재벌개혁, 경제민주화, 또 사회화가 금융과두지배 체제의 대안인 것처럼 제기되고 있지만, 자본주의 사적소유 체제와 그 비호자인 권력, 또 그 권력의 비호자인 제국주의 체제와 싸우지 않는다면 저들의 독점력 강화와 기생적이고 탐욕적인 지배의 털끝도 건드리지 못한다.

지배자가 지배당하고 수탈자가 수탈당해야 한다. 언제까지 저 타락하고 추악한 범죄 집단, 탐욕과 부패로 가득 찬 착취자들이 우리를 지배하도록 용인할 것인가?

우린 너무 착하게 살고 있지 않는가? 우린 너무 바보같이 살고 있지 않는가? 우리는 너무도 질기고 오래 참고만 살아오지 않았는가? 노/정/협

이 기사를 총 1135번 보았습니다.

노정협

전국노동자정치협회

답글 남기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