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구대천지수(不俱戴天之讐) 분노한 민중은 단 하루라도 윤석열 정권과 한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다

윤석열 “너는 듣고 있는가
분노한 민중의 노래
다시는 노예처럼 살 수 없다 외치는 소리를”

* 이 글은 3월 18일(토) 전국집중 촛불에 배포되는 선전물 전문입니다.

 

‘민중의 노래’는 분노한 민중이 부르는 노래입니다. 다시는 노예처럼 살 수 없다는 분노한 민중이 구체제의 부패하고 폭압적인 권력을 무너뜨리고 밝은 아침 새 세계를 열겠다는 맹세의 노래입니다. 과거 프랑스대혁명에서도 그렇고 지금 ‘윤석열 타도’를 외치는 이 현장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윤석열 정권 하에서는 모든 게 뒤죽박죽 뒤집어지고 머리를 땅에 대고 사는 전도된 사회, 적반하장의 파렴치한 사회가 되고 있습니다. 민중의 노래가 분노한 민중의 투쟁현장에서가 아니라 국민의힘 전당대회장에서 울려 퍼졌습니다. 정권 한 관계자는 하다못해 이 노래가 윤석열의 애창곡이라고 합니다. 이 정도면 정신감정을 의뢰해볼 정도의 중증 망상이지만, 저들은 진심으로 이 노래가 당 내 정적을 제거하고 자기 수족을 당대표로 앉힌 승리의 기념곡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노래는 윤석열의 운명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윤석열 정권에 분노하고 노예처럼 살 수 없다고 각성한 민중은 반드시 윤석열을 퇴진시킬 것입니다. 윤석열이 제 발로 내려오지 않는다면 타도할 것입니다.

 

중세적 야만성으로 무장한 “과거의 낡은 이념”에 사로잡힌 윤석열 일당

 

윤석열은 이날 축사에서 “미래는 저절로 오지 않는다”면서 “기득권의 집요한 저항에 부딪혀도 나라의 혁신을 위한 길을 결코 포기하거나 늦춰선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미래는 저절로 오지 않는다”는 경구만 빼면 윤석열 축사 중 맞는 게 하나도 없습니다. 윤석열의 망상은 검찰권력과 국정원 권력을 뒷배삼아 독재를 일삼는 자신들과 재벌들이 ‘기득권’이 아니고 ‘기득권력’에 맞서 저항하는 노동자 민중을 오히려 “기득권”이라고 사고하는 것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윤석열은 “이제 우리는 더 강력하게 행동하고 더 신속하게 실천해야 한다”며 “과거의 낡은 이념에 기반한 정책, 기득권 카르텔의 부당한 지대추구를 방치하고는 한 치 앞의 미래도 꿈꿀 수 없는 게 현실”이라고 언급했습니다.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도대체 누가 누구한테 할 소리입니까? “과거의 낡은 이념에 기반한 정책”은 바로 1년여 집권 기간 동안 윤석열 정권이 신물나게 보여주고 있는 거 아닙니까? 윤석열은 집권 1년 여 사이에 박근혜, 이명박 시대를 넘어 전두환 시대, 박정희 시대로, 심지어 중세의 암흑 속으로 무단 불법 역주행하는 권력입니다. 중세의 암흑 속으로라니! 너무 과한 비유가 아닌가? 의구심을 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 봅시다!
현재 하루 8시간 근무, 주 40시간 노동은 법정 노동시간입니다. 그러나 그 법적 노동시간조차도 예외를 두고 자본가들의 착취를 위해 만들어진 게 주52시간 연장노동입니다. 이 연장노동이 사라지고 온전하게 법정노동시간이 지켜지고 시대변화에 따라 더 단축되어야 합니다. 심지어 과거 러시아에서는 독일 파시즘하고의 전쟁을 앞두고 8시간으로 늘어나기는 했지만 이미 1930년대에 하루 7시간, 광산노동 6시간 노동이 실시되었고, 프랑스에서는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인 2002년에 하루 7시간 노동제가 통과되었습니다.
하루 8시간 노동은 무려 1817년에 로버트 오언이 8시간 노동제를 지지하며 ‘8시간 일하고, 8시간 놀고, 8시간 쉬자’라는 슬로건으로부터 시작하여 1886년 5월1일 미국 시카고 노동자들의 “8시간 노동”을 요구하는 총파업과 1890년부터 매년 5월1일부터 진보적 인류가 주장하며 쟁취하고 있는 권리입니다. 연장노동으로 왜곡되고, 장시간 노동의 현실이 만연하지만, 노동자들의 쉼 없는 투쟁으로 주5일제 8시간 노동, 52시간 연장노동이 현재 실시되고 있습니다.
윤석열은 중세적 야만성이라는 “과거의 낡은 이념”에 사로잡혀 있는 착란적인 자입니다. 윤석열은 후보 시절에는 주 120시간 노동, 지금은 주69시간 연장노동을 정책으로 실시하려 하고 있습니다. 일부 극우적 청년들이 결집한 황색노조인 엠제트(MZ) 노조까지 반발할 정도로 민중의 분노가 심상치 않자 윤석열은 “주60시간 이상은 무리”라며 69시간 정부안에 대해 보완 지시를 내렸습니다. 그러나 이는 고용노동부가 11시간 연속 휴식권을 없애는 대신 연장근로 한도를 현행 과로사(뇌심혈관계질환) 인정기준에 준하는 ‘주 64시간’도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추가 방안(김미영 기자, 법정 근로시간 주 40시간인데, 69시간 vs 64시간 선택하라는 정부 건강보호조치로 ‘과로사 산재인정 기준’ 제시 … 미사용 연차 금전보상 축소, 고소득자 근로시간 적용제외 추진, 매일노동뉴스, 2023.02.27.)을 내놨던 것처럼, 기만과 술책으로 보완하여 실시하겠다는 겁니다.
“저녁이 있는 삶”에 대한 간절한 요구에 대해 파렴치한 자본가 신문인 중앙일보는 “‘저녁 있는 삶’도 좋지만, ‘저녁밥 없는 삶’은 곤란”(저녁 있는 삶, 저녁밥 없는 삶, 2023.03.13.)하다면서 “근로시간 규제가 획일적일 필요는 없다. 업종·규모별로 탄력적으로 적용할 수 있다.”며 노동시간 연장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누가 과연 배를 곪으면서 저녁 있는 삶을 누리기를 원했습니까? 이는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되지”라며 민중을 개돼지쯤으로 조롱하는 망발입니다.
윤석열의 “기득권 카르텔의 부당한 지대추구”라는 말도 그것이 아무리 상징적이라고는 해도 너무 뻔뻔하고 파렴치한 주장입니다. 지대는 토지 소유에 의한 이득입니다. 게다가 그것이 ‘부당한 지대추구’라면 기생적인 투기에 몰두하는 부동산 투기자들, 사기꾼들을 일컫는 말일 것입니다. 오늘날 부당한 지대는 안락한 국회의원실에 앉아 온갖 특혜를 누리고 있는 국민의힘은 물론이고 민주당 상당수 의원 나리들 상당수가 추구하고 있습니다. 건물주들, 주식투기자들, 투기업체들, 부동산 투기에 몰려드는 50억 클럽 같은 전현직 법조계, 전현직 고위 관료들, 그 부스러기를 뜯어먹는 부패한 매문언론기자들이 바로 민중의 고혈을 빨아먹고 사는 거머리 같은 작자들입니다. 그 기생자들의 정점에는 은행과 업무용 부동산이라는 명목으로 투자와 투기를 오가며 이 사회의 토지와 건물을 독점적으로 소유하는 재벌들이 있습니다.
윤석열 일당이 바로 이들 부자들, 기생적인 투기자들, 권력자들, 자본가들의 파렴치한 이익을 위해 법인세를 인하하고 천문학적 금융지원을 하는 반면에 노동시간을 무한 연장하고 노동법을 개악하고 여기에 저항하는 노동자 민중을 간첩조작으로 내몰아 때려잡으려는 거 아닙니까? 그런데 이들 일당들이 “기득권 카르텔의 부당한 지대추구를 방치하고는 한 치 앞의 미래도 꿈꿀 수 없는 게 현실”이라는 억지 같은 망발을 아무렇지도 않게 쏟아대니 억장이 무너지고 분통이 터질 지경입니다.
“국민을 고통에 빠뜨리는 기득권 이권 카르텔을 확실하게 뿌리 뽑아야 한다”! 그건 바로 너희 놈들을 두고 하는 말이야! 맞습니다. “정(政)관(官)경(經)언(言)학(學)”, 검경의 기득권 카르텔을, 이 기득권 카르텔을 권력의 힘으로 보장하고 이 기득권 카르텔의 정점에서 여기에 맞서는 노동자 민중을 때려잡으며 “국민을 고통에 빠뜨리는 기득권 이권 카르텔을 확실하게 뿌리 뽑아야” 합니다.
우리는 바로 이 역사적 과업을 위해 오늘도 투쟁하고 있는 것입니다.

 

청년의 문제는 중장년과의 세대 간 문제가 아니라 불평등, 착취의 문제

 

윤석열은 “우리 사회의 지속 가능성과 청년세대를 위한 노동·교육·연금 3대 개혁을 흔들림 없이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윤석열의 3대‘개혁’은 평등과 평화, 자유와 민주주의와 권리를 송두리째 무너뜨림으로써 “우리 사회의 지속 가능성”을 파괴하려는 음모입니다. 청년세대를 내세워 세대갈등을 조장해 자본가들과 권력자들의 탐욕을 게걸스럽게 충족시키려는 술책입니다.
윤석열의 3대‘개혁’ 중 노동개혁은 쉽게 말해 노조말살, 노동자 무권리 사회를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교육개혁은 경쟁교육을 강화하고 연금개혁은 연금을 더 내고 늦게 받고 덜 받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윤석열은 이 중 노동개혁을 가장 강조하는데, ‘법치·유연성·공정성’ 강조하면서 “노조 회계의 불투명, 산업현장의 고용세습, 폭력과 불법에 단호히 대처하고 바로 잡아야 한다.”고 하고 있습니다.
윤석열이 ‘건폭’으로 간주하여 하루가 멀다 하고 침탈하고 있는 건설노조와 건설노동자들은 떨어져 죽고 끼어죽고 깔려 죽는 무시무시한 죽음의 건설현장에서 죽지 않고 다치지 않고 일할 수 있는 권리를 위해 싸워 왔습니다. 원청, 하청, 재하청, 오야지로 이어지는 중층하도급제도 하에서 부패에 찌들고 광주아파트 건설단지 붕괴처럼, 이 구조 하에서 안전은 나 몰라라 하는 건설자본과 싸워 왔습니다. 퇴직금도 없고 안정적인 고용도 보장되지 않은 건설현장에서 권리를 위해 싸워 왔습니다.
노조 회계 투명성 운운하지만 노조는 독립적인 회계감사를 두고 운용되는 우리 사회 내에서 가장 투명하고 민주적인 조직들 중 하나입니다. 바늘구멍 보다 작은 극히 일각의 사례를 침소봉대하여 노조를 이 사회의 암적 존재, 범죄집단 쯤으로 간주하여 말살하려고 하는 저들의 사고야말로 가장 투명하지 않고 음험합니다. 가장 투명하지 않은 건 수십 만 직원을 거느리고 수십조 예산을 쓰며 간첩조작에 인권유린, 정치공작을 도맡아 하는 국정원입니다. 기업의 영업비밀과 재벌들의 회계구조입니다. 평범한 사람들에 대한 생사여탈권을 쥐고, 불러 조지며 기소권을 남발하며 권력기관이 된 검찰독재야말로 가장 투명하지 않습니다.
윤석열의 술 취한 머릿속과 전도된 인식이, 주가조작 혐의와 논문조작 혐의로 얼룩진 김건희의 사기꾼적인 삶과 오만방자한 머릿속이 가장 투명하지 않고 음험합니다.
‘산업현장의 고용세습’은 산재나 직업병으로 사망한 조합원의 직계가족 우선 채용처럼 권리의 측면도 있고, 현대자동차 아산 사례처럼 자본탄압에 맞서 산화한 열사 가족을 채용하는 특수한 합의 사례가 있었는데, 최근 공개채용 과정에서 사실상 사문화한 조항입니다. 그런데도 정권과 나팔수 언론들은 이를 극단적으로 침소봉대하여 노조말살을 위해 노조일반을 이기적인 부도덕한 집단으로 내모는 단골소재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무노조 삼성의 악행과 온갖 편법과 불법을 자행하며 권력과 국회 장학생, 언론 장학생들을 총동원하여 이병철, 이건희, 이재용으로 이어지는 재벌의 세습으로 삼성과 이 사회 지배권을 세습하고 이를 비호하는 자들이 ‘고용세습’을 말하다니 너무 파렴치한 거 아닙니까?
의원 나리들 자식들의 호화 외국 유학서부터 산재비용조로 50억을 받는 나라가 나라입니까? 애비는 민주화 투사에 대한 유서대필 조작 사건 검사로 물리적 고문을 가하고 그 자식새끼는 애비 빽으로 산재비용조로 50억을 받아 청년들에게 정신적 고문을 자행하고 아버지에게 무죄를 때리는 나라가 어디 이게 나라입니까?
노동시간 연장에 대한 인식과 마찬가지로 윤석열의 노동관은 중세적 야만성이라는 “과거의 낡은 이념”에서 한 발도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1800년대 자본주의 초기 노동자들의 권리기구인 노동조합이 만들어지고 파업권은 노동자들의 권리입니다. 노동자들의 자주적인 권리기구인 노조는 파업권으로 노동자들의 생존권과 정치적 권리를 정당하게 행사해 왔습니다. 그런데 윤석열 일당은 노동자들의 권리를 제약하는 것도 모자라 아예 노조 자체를 말살하려 기도하고 있습니다. 일체의 파업권 행사를 불법으로 간주하고 ‘건폭’ 운운하며 일망타진 하겠다는 것입니다.
이 땅의 노동자들은 박정희 시절부터 이 사회의 역사적 발전과 노동자 민중의 권리의 증진에 막대하게 기여해 왔습니다. 오늘날 이 사회가 누리고 있는 정치적, 생존권적 권리 중 노동자, 노조의 피와 땀이 배어 있지 않은 것이 하나라도 있습니까? 전태일 열사로부터 지금도 구속되고 수배되고 천문학적 손배가압류로 고통 받으면서도 노동자들은 이 사회의 진보적 발전과 권리를 위해 싸워 왔습니다.
자본의 필요에 의해 언제든지 탄력적으로 노동자를 고용하고 또 하루아침에 내칠 수 있는 자본의 노동유연화에 맞서 비정규직 철폐와 권리보장을 위해 싸워왔습니다. 구의역 김군을 비롯해 김용균과 제2의, 제3의 김용균들 같은 청년 노동자들, 심지어 청소년 실습생 노동자들의 비통한 죽음에 맞서 투쟁한 것도 바로 노동자들이었습니다.
윤석열이 입만 열면 청년을 내세우지만 4무, 5무, 전무라는 총체적 절망에 빠져 있는 청년들의 고통을 제대로 어루만져 주고 안정적인 일자리와 권리를 보장해 준 적이 한 번이라도 있었습니까? 노동개혁의 핵심인 노동유연화가 더 진척되어 태반이 비정규직인 사회가 모두가 비정규직인 사회로 면모되면 그것이 과연 청년세대들을 위한 것입니까? 청년은 생물학적으로 중장년, 노년이 되지 않는단 말입니까?
노조법 2, 3조 개정을 전면 부정함으로써 노동자들의 파업권을 부정하고 특수고용노동자들의 권리가 보장되지 못하면 그게 대다수가 비정규직으로 살아가야 하는 청년세대들에게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김용균의 죽음이 계기가 돼서 만들어진 중대재해처벌법이 사라지게 되고 청년 세대에게 죽음의 일터가 대물림되게 되는 것이 과연 청년세대를 위한 것입니까?
윤석열이 내세우는 청년세대의 문제, 공정성의 문제는 수십 년씩 땀 흘려 일한 청년 세대들의 아버지 세대에게 책임을 돌려 이 사회의 불평등의 문제, 양극화의 책임을 은폐하고 자본가들의 천국을 만들려고 하는 것입니다. 윤석열에 맞서는 최대의 저항거점인 노동조합을 말살하려 하는 것입니다.

 

윤석열의 대일 굴종 외교 뒤에 있는 미국과 전쟁 야욕

 

반노동 반민중의 윤석열은 그 연장선에서 반민족적입니다. 윤석열은 급기야 일본을 방문하여 굴욕적인 한일회담을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세계사의 변화에 제대로 준비하지 못해 국권을 상실하고 고통받았던 우리의 과거”라는 윤석열의 3.1절 기념사 인식은 조선 침략과 지배를 비롯해 2천만 아시아 인민을 희생시켰던 일본 제국주의자들의 책임을 식민지 조선에 돌리는 전형적인 뉴라이트의 인식입니다. 윤석열은 “일본은 과거 군국주의 침략자에서 우리와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고 안보와 경제, 그리고 글로벌 어젠다에서 협력하는 파트너가 되었”다는 발언은 전쟁하는 국가로 변모해 점점 더 군국주의 책동을 강화하는 일본을 비호하는 친일논리입니다. 그러나 일본이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고 안보와 경제, 그리고 글로벌 어젠다에서 협력하는 파트너가 되었”다는 윤석열의 인식은 어떤 측면에서 맞는 말입니다.
윤석열이 “심각한 북핵 위협 등 안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한미일 3자 협력”, 즉 반북 반중 반러 한미일 동맹이 바로 일본 군국주의자들과 윤석열이 추구하는 “보편적 가치”로서의 ‘가치동맹’이기 때문입니다. 이 가치동맹의 맨 꼭대기에는 미국이 있습니다. 미국은 나토에게 완장을 채워서 러시아로 동진하며 군사적 위협을 가하고 레짐체인지를 시도하고 신나치를 육성해서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을 일으킨 주범입니다. 젤렌스키는 우크라이나 민중을 배신하고 미국과 나토 외세에 빌붙어 대리전을 치르고 있습니다. 러우전쟁은 마음만 먹었다면 수십 가지 이유로 피할 수 있었던 전쟁입니다.
미국은 유라시아에 이어 동북아에서도 반중 반러 반북의 가치동맹을 만들어 전쟁을 촉발하고 있습니다. 대만과 한반도 분쟁과 전쟁위기는 역사적으로 미국이 조장한 것입니다.
오야붕 미국은 미일한 동맹의 맨 꼭대기에서 일본에게 완장을 채우고 대만과 한국을 꼬붕으로 삼아 대리전을 치르려 하는 것입니다. 원활한 미일한 군사동맹을 위해서는 한국과 일본 사이에서 역사문제 갈등이 벌어지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이러한 미국은 뜻에 따라 ‘위안부 문제’와 강제징용 배상 문제 등 청산하지 않는 역사적 문제가 더 이상 거론되지 않아야 합니다. 윤석열은 미국의 뜻에 따라 이번 3.1절 기념사에서 과거를 묻고 미래로 가자고 하게 된 것입니다. 미국이 윤석열의 연설에 대해 사전 기획된 시나리오처럼 곧바로 환영의 의사를 표하고 한일 회담을 하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미래로 가자는 것이 국가 간 평화와 선린관계의 강화하기 위해서라면 백보를 양보해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한일동맹의 복원은 반북 반민족 전쟁동맹입니다. 일본이 윤석열에 대해 맨 먼저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의 정상화를 주장한 것도 한미일이 공동으로 반북 반중 반러를 위한 군사동맹을 강화하겠다는 의도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한미일 군사동맹을 강화하기 위해서 강제징용 제3자 변제로 일본 전범 기업의 배상 책임을 묻지 않겠다고 양보했던 윤석열은 초계기 문제, 사도광산 유네스코 등재,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문제 등에 대해서 끊임없이 굴욕적 양보를 종용받고 있습니다.
굴욕적인 친일외교, 반민족적 인식의 배후에는 한반도를 전쟁기지화고 북에 대한 침략기지로 만들겠다는 미국의 의도가 도사리고 있습니다. 미국이 지휘하는 나토가 우크라이나전을 초래했다면 아시아판 나토는 윤석열을 제2의 젤렌스키로, 한반도를 제2의 우크라이나와 같은 참화지역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한반도를 대리전을 치르는 분쟁과 전쟁의 소용돌이로 몰아넣으려는 미국의 의도와 이에 영합하여 북한 주적론, 선제타격론을 내세우고 있는 윤석열이 만나 이 땅은 언제 전쟁이 터질지 모르는 일촉즉발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자유의 방패’라는 명목으로 침략성을 은폐하지만 한미 실기동 훈련은 지도부 참수작전, “북한 안정화”입니다. 북은 70년 이상 미제와 싸우면서 자주와 일심단결을 최우선 가치로 내세우고 있습니다. 안정적인 북을 “안정화” 하겠다는 의도는 북을 침략하여 초토화 시키고, 지도자들을 참살하고 안정적으로 식민통치 하겠다는 노골적인 선전포고에 다름 아닙니다.
바이든이나 기시다나 윤석열이나 ‘북핵위협’을 근거로 내세우지만, 실제는 미국의 핵패권 유지, 북에 대한 침략책동, 적대시 정책이 한반도 분쟁과 전쟁위기의 근본 원인입니다. 가까이는 4.27판문점 선언과 9.19평양공동선언, 조미정상회담의 불발만 보더라도 이 문제가 누구에게 책임이 있는지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미래는 저절로 오지 않는다”

 

국제적 전쟁광들이 국내에서 평화를 추구할리 만무합니다. 전쟁광들이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하고 민중의 복지를 위해 헌신할리 만무합니다. 반북혐오를 조장하는 자들이 노동자에 대한 우호적 감정을 가질리 만무합니다. 민주주의를 탄압하는 자들이 자유의 애호자가 될 리 만무합니다.
전쟁과 노조 말살, 민생말살, 민주주의 탄압은 하나입니다. 윤석열은 평화의 적이고 민주주의의 적이고 노동자 권리의 적이고 민생의 적입니다. 윤석열과 단 하루라도 같은 하늘을 이고 살 수는 없습니다.
다른 의도로 사용되었지만, 윤석열의 말대로 미래는 저절로 오지 않습니다. 파쇼 탄압과 전쟁책동을 막고 윤석열을 끌어내릴 때 희망찬 미래가 우리 앞에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윤석열을 퇴진시켜 공세를 막아야 할 뿐만 아니라 이 나라를 지금과는 전혀 다른 나라로 만들어야 합니다. 윤석열을 퇴진시키고 제2의 문재인을 만들어 내려고 이 고생을 하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윤석열을 퇴진시키고 이 땅에서 노동자의 권리가 보장되는 나라를 만들어야 합니다. 빈곤을 척결하고 풍요로운 민중복지의 나라를 만들어야 합니다. 외세의 눈치를 보는 게 아니라 민족자주와 자결의 정신으로 분단을 극복하고 남과 북의 평화와 통일을 추구하는 나라를 만들어야 합니다.
이러한 요구를 내걸고 싸워서 승리합시다!

반민족 굴종 외교 반대한다!
한일 굴종 외교 배후 미국을 반대한다!
청년과 청년의 미래인 중장년, 노년은 하나다!
청년에게 좋은 일자리를! 중장년에서 안정된 일자리를! 노년에게 편안한 삶을 보장하라!
부채를 탕감하라!
안정적인 주거를 보장하라!
노동시간 단축하자!
생활임금 쟁취하자!
비정규직 철폐하자!
노동3권 쟁취하자!
국가보안법 철폐하고 국가정보원 해체시키자!
전쟁을 막고 평화와 통일로 나아가자!
평화협정체결, 미군철수, 한미일 전쟁동맹을 분쇄하자!

이 기사를 총 205번 보았습니다.

노정협

전국노동자정치협회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