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공산주의 운동의 첨예한 쟁점들3-3 [보론] 우크라이나 신나치주의의 영향에 대해

저자: 조 로리아(Joe Lauria)

2022년 12월 29일

컨소시엄 뉴스(Consortium News)에 처음 게시

먼쓸리 리뷰(Monthly Review)

2023년 1월 4일

 

미국과 우크라이나 파시스트의 관계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시작되었다. 전쟁 중에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 조직(OUN-B) 부대가 홀로코스트에 참여하여 최소 10만 명의 유태인과 폴란드인을 죽였다. 미국 국립문서보관소의 2010년 연구에 따르면, 파시스트 OUN-B의 지도자 스테판 반데라(Stepan Bandera)의 최측근인 미콜라 레베드(Mykola Lebed)는 전후 미중앙정보국(C.I.A)이 키웠다.

정부 연구는 “반데라의 날개(OUN/B)는 전투적 파시스트 조직이었다.”고 밝혔다. 반데라의 최측근인 야로슬라브 스텟츠코(Yaroslav Stetsko)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모스크바의 우크라이나 노예화를 돕고 있는 유태인들의 아주 해롭고 부적당한 역할에 전적으로 감사한다…따라서 나는 유태인을 말살하고 독일이 유태인을 근절하는 방식을 우크라이나로 신속하게 가져오는 것을 지지한다…연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1941년 7월 6일 르부프(Lwów)에서 열린 회의에서 반데라 충성주의자들은 유태인을 ‘가혹하게 다루어야 한다… 우리는 그들을 끝장내야 한다… 유태인과 관련하여 그들을 파괴하는 모든 방법을 채택할 것’이라고 결정했다.”

레베드는 직접 “‘폴란드 주민의 전체 혁명 영토를 정화’하여 부활한 폴란드 국가가 1918년처럼 이 지역을 차지하지 않도록 할 것”을 제안했다. 레베드는 망명 중인 반데라파 정부의 “외무장관”이었지만 나중에 독재자로 활동했다는 이유로 반데라와 결별했다. 미 육군 방첩부대는 반데라를 “매우 위험하다”고 하면서도 “모든 우크라이나인들의 정신적, 국가적 영웅으로 여겨진다.”고 말했다.

미중앙정보국(C.I.A.) 보고서 81-82쪽에 따르면 미국과 달리 영국 비밀정보국(MI6)은 반데라와의 사업에 관심이 있었다. “MI6은 반데라 그룹이 ‘해외에서 가장 강력한 우크라이나 조직이며, 당 간부를 양성하고 [그리고] 도덕적으로나 정치적으로 건전한 조직을 구축할 능력이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라고 주장했다.” 1954년 초 MI6은 자료 분석에서 이렇게 언급했다.

“이 [반데라와의] [영국] 협력의 작전 양상은 만족스럽게 발전하고 있었다. 점차적으로 침투 작업에 대한 보다 완전한 통제가 이뤄졌다…”

사진 설명: CIA의 앨런 덜레스는 살인 유죄 판결에도 불구하고 레베드가 미국에 재입국할 수 있도록 미국 이민국에 요청한다.(히틀러의 그림자에서.)

영국은 1954년에 반데라와의 협력을 종료했다. 전 나치 정보국장 라인하르트 겔렌(Reinhard Gehlen) 휘하의 서독 정보국은 그 뒤 반데라와 협력했다.

미중앙정보국은 반데라 대신 그의 파시스트 경력에도 불구하고 레베드에게 관심이 있었다. 미중앙정보국은 그를 뉴욕시의 한 사무실에 자리를 주고 그곳에서 우크라이나 내 정보기관을 대신하여 소련에 대한 사보타주(파괴공작)와 프로파간다(정치선전) 작전을 지시했다. 미국 정부 조사 보고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들 우크라이나인들과의 CIA 작전은 1948년 암호명 카르텔(CARTEL)로 시작되었고 곧 에어로다이나믹(AERODYNAMIC)으로 변경되었다. 레베드는 뉴욕으로 이주하여 영주권과 미국 시민권을 획득했다. 그로 인해 그는 암살로부터 안전하게 보호 받았고, 우크라이나 이민자 그룹과 소통할 수 있게 됐으며, 유럽에서의 작전 활동 뒤 미국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 한때 미국에 있던 레베드는 에어로다이나믹에 대한 CIA의 주요 연락 담당자였다. CIA 담당자는 그의 ‘교활한 성격’과 ‘게슈타포와의 관계와…게슈타포가 그를 훈련시키’고 그가 ‘아주 무자비한 대원’이었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C.I.A.는 레베드와 손잡고 1991년 우크라이나가 독립할 때까지 그곳에서 사보타주 및 친우크라이나 민족주의 선전 활동 관련한 사업을 했다. 연구에 따르면 “미콜라 레베드(Mykola Lebed)와 CIA의 관계는 냉전 기간 내내 지속되었다.”고 한다.

“전시 가해자와 관련된 대부분의 CIA 작전은 역효과를 냈지만 레베드의 작전은 소련의 근본적인 불안정성을 증가시켰다.”

 

반데라의 부활

 

따라서 미국은 적어도 우크라이나가 독립될 때까지 우크라이나 내에서 파시스트 계획을 은밀하게 유지했다. 미국 국립문서보관소 연구는 “우크라이나에서 반데라의 전시 부관이었던 미콜라 레베드(Mykola Lebed)는 1998년에 사망했다. 그는 뉴저지에 묻혔으며 그의 논문은 하버드 대학의 우크라이나 연구소에 있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미국 OUN-B의 후계 조직은 그가 죽은 뒤에도 살아남았다. 인터내셔널 비즈니스 타임스(IBT, International Business Times)에 따르면 그 조직은 미국 우크라이나의회위원회(UCCA)로 개명됐다.

“1980년대 중반까지 레이건 행정부 내에는 UCCA 성원들이 들어와 있었다. 레이건은 1983년 백악관에서 리비우(Lviv)에서 7,000명의 유태인 학살에 앞장섰던 반데라주의자 지도자 [야로슬라브(Yaroslav)] 스테츠코(Stetsko)를 개인적으로 환영했다.”라고 인터내셔널 비즈니스 타임스가 보도했다. “야누코비치 정권이 무너진 후 UCCA는 유로마이단 시위를 지원하기 위해 미국 전역의 도시에서 집회를 개최하는 것을 도왔다.”라고 보도했다.

그것은 마이단과(Maidan)과 2차 세계 대전 시기 우크라이나 파시즘 사이의 직접적인 연결 고리이다. 미국이 반데라보다 덜 극단적인 레베다를 선호함에도 불구하고 레베드는 우크라이나에서 더 유력한 인물로 남아 있다.

우크라이나 독립 첫해인 1991년에 신파시스트 사회국민당(후에 스보보다당)이 결성되어 그 기원을 반데라에서 직접 따왔다. 리비우에 반데라의 이름을 딴 거리가 있었고 그의 이름을 따서 도시의 공항 이름을 지정하려고 했다.[스보보다당은 쿠데타 전과 이듬해 맥캐인(McCain)*과 뉼런드(Nuland)**가 그 당 지도자***와 함께 나타나기 전인 2012년에 우크라이나 의회(라다 Rada) 의석의 10%를 차지했다.]

* 존 매케인J(ohn McCain)은 미국 상원의원이자 2008년 미공화당 대선후보이기도 했다.

** 빅토리아 뉼런드(Victoria Nuland) 2013년에는 미국무부대변인이었고 2013년 현재는 미 국무부 정무 담당 차관을 맡고 있다.

*** 스보보다당 지도자 올레 타흐니보크(Oleh Tyahnybok)을 말한다.(역자)

2010년 친서방 우크라이나 대통령 빅토르 유시첸코(Viktor Yushchenko)는 반데라를 우크라이나의 영웅으로 선포했으며, 이는 전복된 야누코비치에 의해 파기되었다.

반데라를 기념하는 50개 이상의 기념물, 흉상, 박물관이 우크라이나에 세워졌으며 그 중 3분의 2는 친미 유시첸코가 당선된 해인 2005년 이후에 지어졌다. 스위스의 한 학술 연구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2011년 1월 13일, 리비우 주의회는 반데라 기념물 옆에 있는 임시회기에 회의를 갖고, 스테반 반데라를 ‘영웅’으로 명명하라는 빅토르 유시첸코(Viktor Yushchenko)의 법률 폐기[skasuvannya] 조치에 반응했다. 수백만 명의 우크라이나인들에게 반데라는 법원의 가련하고 무가치한 결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우크라이나의 영웅이었으며 지금도 그러하다며 ‘스테판 반데라 거리’를 ‘우크라이나의 영웅 스테판 반데라 거리’로 개명할 의사를 선언했다.”

올해를 포함해 그의 생일인 1월 1일 우크라이나 도시에서는 반데라의 초상화 뒤의 횃불 행진을 흔히 볼 수 있다.

 

신나치의 주류

 

2013-2014년 우크라이나 사건이 시작될 때부터 컨소시엄 뉴스(Consortium News) 창립자 로버트 페리(Robert Parry)와 다른 기자들은 신나치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뉴스가드(NewsGuard)* 주장을 반박하는 근거를 제시하면서 쿠데타와 우크라이나 신나치의 영향력 있는 역할에 대해 광범위하게 보도했다. 당시 기업 언론도 쿠데타에서 신나치가 한 핵심적인 역할을 보도했다.

* 뉴스가드(NewsGuard)는 온라인 정보 분석 단체로 미국에 본사를 두고 있다. 뉴스가드가 허위 뉴스를 제공했다고 주장하자 컨소시엄 뉴스는 이에 대해 우크라이나 신나치의 역사를 분석해서 기사로 쓰고 있다.(역주)

뉴욕타임스가 보도한 바와 같이, 신나치 그룹인 우익섹터(Right Sector)*는 야누코비치(Yanukovych)의 폭력적인 축출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봉기에서 신파시스트 단체의 역할과 우크라이나 사회에 대한 영향은 당시 주류 언론 매체에 잘 보도되었다.

* 우크라이나 극우 정당(역주)

비비씨(BBC), 뉴욕타임즈, 데일리 텔레그래프(Daily Telegraph) 및 씨엔엔(CNN)은 모두 우익섹터(Right Sector), C14* 및 기타 극단주의자들이 야누코비치(Yanukovych) 전복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에 대해 보도했다.

* 우크라이나의 신나치 단체(역주)

BBC는 그가 축출된 지 일주일 후에 이 보고서를 실었다.

 

쿠데타 이후 새 정부의 많은 장관들은 신파시스트 정당 출신이었다. NBC 뉴스는 2014년 3월에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자유’를 의미하는 스보보다(Svoboda)는 지난 2월 빅토르 야누코비치 대통령이 축출된 후 만들어진 임시 정부에서 내각 직위의 거의 4분의 1을 차지했다.”

맥케인(McCain)과 뉼랜드(Nuland)가 함께 무대에 섰던 스보보다당의 지도자 올레 타흐니보크는 한때 “모스크바-유태인 마피아(Muscovite-Jewish mafia)”로부터 우크라이나의 해방을 요구했다. 인터내셔널 비즈니스 타임스는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2005년 티흐니복은 당시 우크라이나 대통령 빅토르 유시첸코에게 공개서한에 서명하여 반명예훼손연맹을 포함한 모든 유대인 조직을 금지할 것을 촉구했으며, 그가 ‘조직된 유대인들이 범죄 활동’을 수행했다고 주장한 것은 결국 우크라이나 민족의 대량 학살을 목표로 한 것이었다.”

맥케인과 뉼런드가 타흐니보크와 그의 사회 국민당을 이용하기 전에 유럽 의회는 2012년에 다음과 같이 비난했다.

“[의회]는 인종차별, 반(反)유대주의, 외국인 혐오적 견해가 유럽연합(EU)의 근본 가치와 원칙에 위배된다는 점을 상기하며, 따라서 우크라이나 의회(Verkhovna Rada) [우크라이나 입법부] 내 친민주 정당들이 이러한 극우정당에 대한 연관, 지지 또는 연합을 형성하지 말 것을 호소한다.”

스보보다당의 지도자 올레 타흐니보크

반데라주의에 대한 그러한 주류 보도는 푸틴이 “비나치화”를 침공 목표로 삼자 서방 언론에서 우크라이나 신파시스트의 역할 관련 기사를 못 내게 하면서 중단되었다.

쿠데타 중에 발생한 아조프 대대(Azov Battalion)는 쿠데타에 저항하는 러시아어를 사용하는 돈바스(Donbass)인들과의 전쟁에서 중요한 세력이 되었다. 그 사령관 안드리 빌레츠키(Andriy Biletsky)는 우크라이나의 임무가 “셈족(유대인)이 이끄는 열등인종에 맞서 생존을 위한 최후의 성전에서 세계의 백인 종족을 이끄는 것”이라고 악명 높게 말했다.

아조프 사령관 안드리 빌레츠키(가운데)

2014년 현재의 아조프 연대는 내무부의 통제 하에 공식적으로 우크라이나 방위군에 편입되었다. 아조프연대는 우크라이나 정보국(SBU)과 긴밀히 협력하여 국가에 더욱 통합된다. 아조프는 전 세계 국가의 군대 중 유일하게 신파시스트 성분으로 알려져 있다.

우크라이나 군대의 일원으로서 아조프 성원들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나치 친위대(SS)가 착용했던 볼프상겔(Wolfsangel)과 함께 (이번 주까지) 여전히 노란색 완장을 착용하고 있다. 계속 저지른 잔학 행위를 포함하여 아조프는 국가로의 통합이 그들을 비나치화 시키지 않았다는 것을 세계에 보여준다. 오히려 국가에 대한 영향력이 커졌을 수도 있다.

버락 오바마가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원조를 거부한 이후에도 미국과 나토는 아조프를 훈련시키고 무장시켰다. 오바마가 우크라이나에 무기 공급을 거부한 한 가지 이유는 무기가 이 우익 극단주의자들의 손에 넘어가는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오바마 대통령은 의구심을 가지고 계속 문제를 제기했다. ‘그럼, 장비를 보내면 그 다음에는 교관을 보내야 하는가?’ 한 사람이 익명을 조건으로 토론을 부연설명하며 말했다. ’만약 그것이 깡패들의 손에 넘어가게 된다면? 푸틴이 강화되면 어떻게 되는가?”

 

뉴스가드(NewsGuard)의 이의 제기

 

뉴스가드(NewsGuard)는 신파시스트 정당이 여론 조사에서 지지가 미미하다는 사실을 가지고 우크라이나에서 신나치 단체의 중대한 영향력을 반대하고 있다. 이는 이 신나치 단체들이 대신 의회 밖의 극단주의에 관여한다는 엄연한 사실을 무시한다.

뉴스가드의 잭 피시먼(Zack Fishman)은 우크라이나의 신파시스트에 대해 “가짜 뉴스”를 게시했다며 컨소시엄 뉴스를 비난하는 다음 기사를 썼다.

“나치즘이 우크라이나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는 증거는 없다. 2018년 프리덤 하우스 보고서에 따르면 우크라이나의 급진 극우 단체는 ‘우크라이나의 민주적 발전에 대한 위협’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극우 극단주의자들이 우크라이나에서 정치적 대표성이 부족하고 권력에 대한 믿을만한 경로가 없다고 밝혔다. 류스란 코슈린스키(Ruslan Koshulynskyy)는 대통령 선거에서 단 1.6%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그러나 선거 결과에 초점을 맞추는 이러한 주장은 많은 주류 소식통에 의해 기각되었다. 세계에서 가장 반러시아적인 싱크 탱크인 아틀란틱 카운실(Atlantic Council)은 그 중 하나다. 2019년 기사에서 아틀란틱 카운실의 한 기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분명히 말하면, 스보보다와 같은 극우 정당은 우크라이나의 여론 조사와 선거에서 저조한 성과를 거두고 있으며 우크라이나인들은 그들에 의해 통치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주장은 ‘주의를 다른 데로 돌리는’ 것이다. 우크라이나의 벗들과 관련된 것은 극단주의자들의 선거 전망이 아니라 오히려 국가가 폭력 집단에 맞서고 그들을 처벌하려는 의지 부족이나 무능력이다. 이것이 이들 극우단체 일부가 러시아와 싸운 것에 대한 지속적인 부채감 때문이든, 그들이 국가 자체를 공격할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든 심각한 문제이다. 우리는 우크라이나의 실상을 감춰서 우크라이나에 봉사하지 않는다.[강조 추가됨.]”

“그들이 국가 자체에 등을 돌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은 이러한 극우 단체가 정부에 대해 가지는 강력한 영향력을 인정한다. 아틀란틱 카운실은 이러한 그룹이 얼마나 영향력이 있는지 강조한다.

“크렘린의 선전처럼 들리지만 그렇지 않다. 지난 주 흐로마드스케(Hromadske) 라디오는 우크라이나의 청소년 체육부가 국가에서 ‘국가 애국교육 프로젝트’를 홍보하기 위해 신나치 단체 C14에 자금을 지원하고 있다고 밝혔다. 6월 8일 교육부는 어린이 캠프를 위해 C14에게 17,000달러에 조금 못미치는 금액을 수여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또한 극우와 연결되어 있는 홀로시예프(Holosiyiv) 아지트 및 교육기관에 기금을 수여했다. 이 폭로는 법 집행기관이 혐오자들에게 폭력을 가하려는 극우 단체의 불법 행위를 암묵적으로 수용하거나 심지어 조장하는 위험한 사례를 보여준다.

2018년 초부터 C14와 아조프 계열 민병대, 우익 섹터, 카르파츠카 시치(Karpatska Sich) 등 극우 단체는 반파시스트 시위, 시의회 회의, 국제앰네스티가 주최하는 행사, 미술 전시회, 엘지비티(LGBT) 행사와 환경운동가들뿐만 아니라 로마 그룹을 여러 차례 공격했다. 3월 8일, 폭력 단체들은 우크라이나 전역의 도시에서 세계 여성의 날 행진자들을 공격했다. 이 중 소수의 경우에만 경찰이 공격을 막기 위해 조치를 취했고 일부에서는 실제 가해자가 아닌 평화로운 시위대를 체포하기도 했다.”

반러시아 단체들 중 아틀란트 카운실만이 우크라이나 신파시스트 단체들이 위험한 세력이라고 인정하는 것은 아니다. 벨링캣(Bellingcat)은 2018년에 “우크라이나의 극우 전사, 거대 유럽 보안 회사에서 훈련받은 백인 우월주의자”라는 제목의 놀라운 기사를 게시했다.

나토는 또한 미국과 직접 연계하여 극우 우크라이나 극단주의자들과 직접 연결하는 아조프 연대를 훈련시켰다.

더 힐(The Hill)은 2017년에 “우크라이나의 신나치의 현실은 단지 크렘린 선전이 아니다”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일부 서방 관측통은 우크라이나에 신나치적 요소가 없다고 주장하며, 이는 모스크바의 선전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불행히도 그들은 안타깝게도 착각하고 있다.

실제로 우크라이나에는 신나치 조직이 있다. 이것은 거의 모든 주요 서방 매체에서 압도적으로 확인되었다. 분석가들이 그것을 모스크바가 퍼뜨린 선전으로 일축할 수 있다는 사실은 아주 충격적이다.

아조프의 로고는 반명예훼손연맹(Anti-Defamation League)에 의해 네오나치 상징으로 식별된 두 개의 엠블럼(볼프상겔wolfsangel과 소넨라드Sonnenrad)으로 구성되어 있다. 볼프상겔은 미국의 증오 단체 아리안 네이션(Aryan Nations)에서 사용하는 반면 소넨라드는 올 여름 샬롯빌(Charlottesville)의 극단적인 행진에서 신나치 상징 중 하나였다.

아조프의 신나치 캐릭터는 뉴욕타임스, 가디언, 비비씨, 텔레그레프 및 로이터 등에서 다루었다. 기존 서구 언론 매체의 현장 기자들은 나치 친위대(SS) 룬 문자, 만(卍)자(swastikas), 횃불 행진, 나치 경례를 목격했다고 썼다. 그들은 네오나치임을 순순히 인정하는 아조프 병사들을 인터뷰했다. 이들은 ‘미국이 우크라이나에서 지원하는 신나치는 몇 명인가’, ‘우크라이나 의용군에는 나치가 포함돼 있다.’는 식의 노골적인 제목으로 이 보고서들을 기록하여 남겼다.

어떻게 이것이 러시아 선전일 수 있는가?

유엔과 국제인권감시단(휴먼라이츠워치Human Rights Watch)는 아조프와 다른 키예프 부대를 수많은 인권 유린 혐의로 고발했다.”

나치의 상징인 볼프상겔과 소넨라드

신파시즘은 우크라이나 대중문화에도 영향을 미쳤다. 2019년 나치 독일이 소련을 침공한 날을 기념하기 위해 6개의 신나치 음악 그룹이 콘서트를 열었다.

2019년 국제앰네스티는 “우크라이나는 과격 단체들이 가하는 통제되지 않은 폭력과 그들의 완전한 면책의 혼돈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사실상 이 나라의 어느 누구도 이러한 상황에서 안전하다고 느낄 수 없다.”라고 경고했다.

 

젤렌스키와 신나치

 

1990년대 초 우크라이나의 가장 강력한 과두정치 중 하나인 이호르 콜로모이스키(Ihor Kolomoisky)는 신나치주의 아조프 대대의 초기 재정 후원자였다. 2015년 로이터는 다음과 같은 보도를 했다.

“이들 준군사 조직 중 다수는 그들이 보호해야 할 시민을 학대한 혐의를 받고 있다. 국제앰네스티는 콜로모이스키가 부분적으로 자금을 지원한 아이다(Aidar) 대대가 불법 납치, 불법 구금, 강도, 강탈, 심지어 처형 가능성까지 포함한 전쟁 범죄를 저질렀다고 보고했다.

국제앰네스티 보고서에 따르면 다른 친키예프 민간 대대는 전쟁의 한 형태로 구호 수송대가 우크라이나 동부의 분리주의 통제 지역에 도달하는 것을 막아서 민간인을 굶주리게 했다.

우크라이나의 일부 사병 대대는 극단주의적 견해로 우크라이나의 국제적 명성을 더럽혔다. 타루타(Taruta)와 콜로모이스키(Kolomoisky)가 부분적으로 자금을 지원하는 아조프연대는 나치 볼프상켈(Wolfsangel) 기호를 로고로 사용하며 많은 대원이 신나치, 반유대주의 견해를 공공연하게 옹호한다. 부대원들은 ‘키예프에 전쟁을 일으키는 것’에 대해 이야기했으며 우크라이나는 ‘많은 피를 흘릴 수 있지만 그 과정에서 국가를 통합할 수 있는 강력한 독재자가 집권해야 한다.’고 말했다.”

2019년 4월 미연방수사국(F.B.I.)은 웨스트버지니아와 북오하이오에서 그의 철강지주회사와 관련하여 금융범죄 혐의로 콜로모이스키를 조사하기 시작했다. 2020년 8월 미국 법무부는 그와 사업파트너를 상대로 민사 몰수 소송을 제기했다.

“고소장은 우크라이나에서 가장 큰 은행 중 하나인 프라이뱃뱅크(PrivatBank)를 소유한 이호르 콜로모이스키와 겐나디 보호리우보프(Gennadiy Boholiubov)가 수십억 달러의 은행자금을 횡령하고 사취했다고 주장한다. 두 사람은 약 2008년부터 2016년까지 사기성 대출과 신용 한도를 얻었는데 그 때 계획이 밝혀졌다. 은행은 우크라이나 국립은행에 의해 국유화되었다. 고소장은 자금을 미국으로 이체하기 전에 주로 프라이뱃뱅크의 키프로스 지점에 있는 일련의 페이퍼 컴퍼니 은행 계좌를 사용하여 범죄 수익의 일부를 세탁했다고 주장한다. 고소장에서 주장한 바와 같이, 사기로 얻은 대출금을 제외하고는 대출금이 거의 상환되지 않았다.”

한편, 아조프 지지자의 텔레비전 채널은 이때까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가 명성을 얻고 궁극적으로 새 인민당 하에서 대통령 직에 오르게 한 히트를 친 티브이 쇼 인민의 종복(2015-2019)을 방영했다. 자유라디오유럽(등급 없음)의 이 보고서를 포함하여 여러 보고서에 따르면 콜로모이스티가 전 배우이자 코미디언의 대선 캠페인 자금을 지원했다고 한다.

2019년 9월 10일 젤렌스키(가운데)와 이호르 콜로모이스키(오른쪽)

대선 시기에 폴리티코(Politico)는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콜로모이스키의 언론 매체는 또한 코미디언의 선거 운동을 위한 보안 및 물류 지원을 제공하며 최근 젤렌스키 법률 고문 안드레이 보흐단(Andrii Bohdan)이 과두세력의 개인 변호사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탐사 기자들은 또한 젤렌스키가 지난 2년 동안 콜로모이스키가 망명 중인 제네바와 텔아비브로 14번이나 다녀갔다고 보도했다.”

결선 투표 전에 페트로 포로쉔코(Petro Poroshenko)는 젤렌스키를 “콜로모이스키의 꼭두각시”라고 불렀다. 판도라 신문(Pandora Papers)에 따르면 젤렌스키는 콜로모이스키로부터 받은 자금을 해외에 숨겼다.

선거운동 기간 동안 젤렌스키는 반데라에 대해 질문을 받았다. 그는 많은 우크라이나인들이 반데라를 영웅으로 여기는 것이 “멋지다”고 말했다.

https://twitter.com/i/status/1517014472291872768

# 대통령 역을 맡은 배우 젤렌스키:

“스테판 반데라는 우크라이나인들 일부에게 영웅이고, 그게 정상이고 멋지다.”

젤렌스키는 돈바스 전쟁을 끝내겠다는 공약으로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임기 약 7개월 후 그는 돈바스 최전선으로 가서 아조프로 잘 대표되는 우크라이나 군대에게 무기를 내려놓으라고 말했다. 반대로 그는 길들여져서 돌아 왔다. 케예프 포스트(Kyiv Post)는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퇴역 군인인 데니스 얀타르(Denys Yantar)가 무기가 없다고 말하면서 대신 우크라이나 전역에서 벌어지고 있었던 계획된 철수에 반대하는 시위에 대해 논의하고 싶다고 말하자 젤렌스키는 분노했다.

‘이 보시오, 데니스, 나는 이 나라의 대통령이요. 내 나이 41세요. 나는 패자가 아니란 말이오. 나는 당신에게 와서 무기를 제거하라고 말했소. 일부 시위로 화제를 전환하지 마시오.’ 대담쇼 영상에서 이렇게 말하면서 젤렌스키는 미콜라이프 시에 있는 극우 아조프 의용군의 정치적 분파인 국민군단을 이끄는 얀타르에게 바짝 다가갔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에 대해 논의했습니다.’라고 얀타르가 말했다.

‘나는 당신이 이해하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 대신 얀타르 앞에서 내가 패자가 되기를 결심했다.’라고 젤렌스키는 말했다.”

민선 대통령에 대해 아조프 연대를 비롯한 군부의 힘을 과시한 것이었다.

러시아의 침공 후 젤렌스키는 4월 폭스 뉴스(Fox News)에서 나중에 마리우폴(Mariupol)에서 패배 한 아조프에 대해 질문을 받았다. “그들은 그대로이다.” 그가 대답했다. “그들은 우리나라를 지키고 있었다.” 그런 다음 그는 아조프가 군대의 일원이기 때문에 더 이상 신나치가 아니지만 (화요일까지) 여전히 나치 휘장을 착용하고 있다고 말하려고 한다.(폭스의 유튜브 게시물은 인터뷰에서 해당 질문을 삭제했지만 여기에 이 장면이 남아 있다.)

 

분노한 그리스 관리들

 

또한 4월에 젤렌스키는 아조프 연대의 일원을 그리스 의회에서 연설하도록 초청함으로써 두 명의 전 그리스 총리와 다른 관리들을 분노하게 했다. 제1야당인 급진좌파연합-진보동맹(시리자SYRIZA-Progressive Alliance)의 전 총리이자 지도자인 알렉시스 치프라스(Alexis Tsipras)는 의회에서 아조프 전사들의 모습을 맹비난했다.

“우크라이나 국민과의 연대는 자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의회에서 나치 발언은 허용할 수 없다.”라고 치프라스가 소셜 미디어에서 말했다. “이 연설은 도발이었다.” 그는 키리아코스 미초타키스(Kyriakos Mitsotakis) 그리스 총리가 “이에 대한 전적인 책임이 있다…그는 역사적 날이라고 하지만 역사적으로 수치스런 날이다.”라고 말했다.

안토니스 사마라스(Antonis Samaras) 전 그리스 총리는 의회에서 아조프 영상이 재생되는 것을 “큰 과오”라고 말했다. 니코스 코드지아스(Nikos Kotzias) 전 외무장관은 이렇게 말했다.

“그리스 정부는 무책임하게 나치에게 자리를 깔아줌으로써 우크라이나 국민의 투쟁을 훼손했다. 책임이 무겁다. 정부는 그 행사 준비와 접촉 관련한 상세한 보고를 제출해야 한다.”

야니스 바루파키스(Yanis Varoufakis) 전 재무장관의 유럽현실불복종전선(MeRA25, The European Realistic Disobedience Front)당은 젤렌키의 출현으로 ‘나치 축제’로 변했다고 말했다.

젤렌스키는 또한 뮌헨에 있는 반데라의 무덤을 방문한 독일 주재 우크라이나 대사 안드리 멜니크(Andrij Melnyk)를 질책하지 않았다. 그에 대해 독일 의회 의원은 다음과 같은 반응을 보였다.

“나치 협력자 반데라를 ‘우리의 영웅’으로 묘사하고 그의 무덤을 순례하거나 우익 아조프 대대를 ‘용감하다’고 옹호하는 멜니크 같은 이는 실제로 여전히 ‘나치 동조자’쯤으로 관대하게 묘사된다.”

젤렌스키는 언론 매체를 폐쇄하고 가장 큰 정당인 생명을위한야권연단(OPZZh, Eurosceptic Opposition Platform for Life)을 포함하여 11개의 정당을 불법화하고 그 지도자를 체포했다. 폐쇄된 11개 정당 중 극우 정당은 없다.

도널드 트럼프는 샬롯빌(Charlottesville)빌에서 백인 우월주의자들에 대해 발언한 것에 대해 당연하게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과두세력 후원자가 아조프에 자금을 지원하고 유럽 의회에서 연설하기 위해 신나치를 데려온 젤렌스키는 우크라이나의 신파시즘이라는 훨씬 더 나쁜 문제를 용인하는데도 민주당 정부와 미국 언론의 승인을 받았다. 노/정/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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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노동자정치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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