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도 베이징도 아니다? 1 중국 ‘제국주의론’에 대한 전면 비판

저자: 카를로스 마르티네즈(Carlos Martinez)
2021년 2월 21일
출처:
https://invent-the-future.org/2021/02/neither-washington-nor-beijing/#more-815

* 원 글에는 111개의 방대한 주가 있는데, 분량이 많아 이 번역에서는 제외했다. 원 글에서 주를 직접 참고하기 바란다. 우리는 세 차례에 걸쳐 이 글을 소개할 것이다.(역주)

전에도 “워싱턴도 모스크바도 아니다” 구호가 있었다
중국은 제국주의인가?
중국은 경계를 넘어 언제 제국주의가 되었는가?

중국과 아프리카
중국과 라틴아메리카
일대일로(一帶一路)

남중국해
다극성은 사회주의 전진의 전제조건이다
‘워싱턴도 베이징도 아니다’는 사실상 ‘워싱턴 지지’를 의미

 

정치 초심자들은 전 세계 좌파가 중화인민공화국을 지지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중국은 결국 맑스주의를 지도 이데올로기로 하는 공산당이 이끌고 있다. 1949년 중국공산당(CPC)이 집권한 이후 중국인민은 생활수준과 인간발전에서 유례없는 향상을 경험했다. 기대 수명은 36세1)에서 77세2)로 늘어났다. 읽고 쓰는 능력은 약 20퍼센트3)에서 97퍼센트4)로 증가했다. 여성의 사회적, 경제적 지위는 인정할 수 없을 정도로 향상되었다(예를 들어, 혁명 이전에는 대다수의 여성이 정규 교육을 전혀 받지 못했지만 지금은 고등 교육 기관에 다니는 학생 대다수가 여성이다). 극심한 빈곤이 해소되었다. 중국은 기후 변화에 대처하는 데 있어서 탁월한 세계적 지도국이 되고 있다.
이러한 진보는 명백히 전통적인 좌파 가치와 일치한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을 맑스주의로 끌어들이는 것은 자본주의가 만족스럽게 해결할 수 없는 인간 발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틀을 제시한다는 것이다. 자본주의는 과학과 기술의 역사적인 혁신을 주도하여 공동 번영의 미래를 위한 토대를 마련했다. 그러나 모순은 필연적으로 부와 함께 빈곤을 낳는 것과 같다. 자본주의는 분열, 기만, 강압을 강요할 수밖에 없다. 모든 곳에서 주변화 시키고, 소외시키고, 지배하고, 착취한다. 한편 중국 사회주의 70년은 부와 빈곤 사이의 상반된 관계를 깨뜨렸다. 중국이 높은 수준의 불평등을 겪고 있고 아주 부유한 사람들이 있지만, 일반 노동자 농민의 생활은 지속적으로, 현저하게 높은 비율로, 장기간에 걸쳐 개선돼 왔다.

그러나 영국과 미국 같은 나라의 좌파 내부에서 중국을 지지하는 세력들은 사실 극소수다. 이들 국가의 대부분의 맑스주의 단체들은 중국이 사회주의 국가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은 중국이 “자국민에 대한 착취를 감시하고 수출을 위한 원자재와 판로를 찾기 위해 점점 더 제3세계 국가를 착취하는 세계 체제에서 떠오르는 제국주의 세력”이라고 믿고 있다.8) 일각에서는 중국이 주도한 일대일로 사업을 “열광적인 글로벌 확장주의”의 사례로 간주한다.9) 노동자해방동맹(The Alliance for Worker’s Liberty)은 중국이 “기능적으로 파시스트 정권과 거의 다르지 않으며 어떤 경우에도 나을 것이 없다”며 미국만큼 제국주의적이고 정치적으로 훨씬 더 나쁘다고 묘사한다.10)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미국과 중국 사이의 고조되는 대결은 사회주의나 자주적인 개발도상국에 대한 제국주의 세력의 공격이 아니라 오히려 “제국주의 노선에 따른 고전적인 대결”이다.11) “미중 경쟁의 역학은 자본주의 간 경쟁에 의해 주도되는 제국주의 간 경쟁이다.”12) 여기서의 가정은 중국이 “미국의 기존 제국주의 세력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자신을 옹호하려는 떠오르는 제국주의 세력”이라는 것이다.13) 그렇다면 반제국주의 정치를 하는 사람들은 미국도 중국도 지지하지 말아야 한다. 오히려 그들은 “국경을 넘어 연결과 연대를 만드는 ‘제3의 진영’을 건설”하고 “워싱턴도 베이징도 아닌 국제 사회주의” 슬로건을 채택해야 한다.
흥미 있는 사상이다. 우리는 어디에서도 압제자에게 동조하지 않는다. 우리는 오로지 국제 노동계급에 복무한다. 엘리 프리드먼(Eli Friedman)은 인기 있는 좌파 잡지인 자코뱅(Jacobin) 에서 이 원대한 비전을 다음과 같이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우리의 과업은 지속적으로 강력하게 국제주의 가치를 재확인하는 것이다. 우리는 가난하고 노동자 계급과 모든 나라의 억압당하는 인민들 편에 선다. 그것은 미국이나 중국 어디든 지지하거나 협력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15)

 

전에도 “워싱턴도 모스크바도 아니다” 구호가 있었다
냉전에서 양측을 반대한다는 개념(두 주요 경쟁 세력 중 하나에 편입하는 것을 거부하고 대신 독립적인 ‘제3 진영’을 형성하는 것)은 뿌리가 깊다. 미국의 저명한 트로츠키주의자 막스 샤흐트만(Max Shachtman)은 1940년 제3 진영을 “프롤레타리아트 국제주의 진영, 사회주의 혁명 진영, 모든 억압받는 자의 해방을 위한 투쟁 진영”이라고 묘사했다.16) 최초의 냉전 기간 동안, 특히 영국에서 사회주의 운동의 상당 세력이 “워싱턴도 모스크바도 아니다”라는 슬로건 아래 집결했으며, 그들이 국가자본주의이며/또는 제국주의라고 간주한 소련에 대한 지지를 철회했다.
그때도 지금과 마찬가지로 제3 진영 입장은 제1차 세계 대전과 관련하여 레닌과 볼셰비키가 추진한 전략으로부터 이론적 정당성을 도출했다. 1910년대 초 공산주의 운동이 두개의 주요 경쟁하는 제국주의 블록(한 편은 독일, 다른 한편은 영국과 프랑스) 사이의 전쟁이라고 규정한 것은 대체로 당연한 것이었다. 1912년 바젤에서 열린 제2 인터내셔널 회의에 모인 조직들은 전쟁에 반대하고 국제 자본가 계급의 어떤 구성 요소와도 제휴하는 것을 거부하며 “전쟁으로 야기된 경제적, 정치적 위기를 이용하여 자본가 계급 지배의 몰락을 재촉한다.”17), 노동자들은 독일, 영국, 프랑스나 러시아 지배계급의 뒤에 서기 보다는 “프롤레타리아트 국제적 연대의 힘으로 자본주의 제국주의에 반대”하도록 요구받았다.
결국 1914년 7월 전쟁이 발발했을 때 볼셰비키는 이러한 국제주의적 입장을 고수했다. 레닌은 교전 중인 제국주의 블록에 대해 이렇게 썼다.

“독일 부르주아지가 주도하고 있는 한 교전국들은 이들은 조국과 자유, 문명을 수호하고 짜르에 의해 억압받는 인민들을 해방시키기 위한 전쟁이라고 주장함으로써 노동계급과 근로 대중을 현혹하고 있다… 프랑스와 영국 부르주아가 주도하고 있는 다른 교전국들은 조국 수호, 자유와 문명, 독일 군국주의와 전제주의에 맞서 전쟁을 벌이고 있다고 주장함으로써 노동계급과 근로 대중을 현혹하고 있다.”18)

더 나아가서: “전쟁의 약탈, 잔혹 행위, 끝없는 잔혹성에서 어느 쪽의 교전 집단도 다른 집단보다 부족하지 않다. 그러나 프롤레타리아트를 속이기 위해 … 각국의 부르주아지는 애국심에 대한 거짓 문구의 도움으로, 이 전쟁은 영토 점령이나 약탈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제외한 다른 모든 민족의 ‘해방’을 위해 적을 패배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자국’ 전쟁의 중요성을 미화하려 한다.”

그러나 불과 2년 전에 바젤 선언에 서명했던 조직 대다수는 이제 압력에 직면하여 ‘자신의’ 지배계급의 전쟁 기도를 지원하기로 결정하면서 무너졌다. 레닌은 독일, 오스트리아, 프랑스의 저명한 맑스주의 지도자들이 “사회배외주의자들, 부르주아, 자유주의적이며 결코 사회주의적이지 않은” 견해를 갖고 있다고 비난했다.19) 이 쓰라린 전략적 논쟁은 세계 노동계급 운동의 분열에 촉매제 역할을 했다. 제2인터내셔널은 1916년에 해산되었고, 제3인터내셔널(일반적으로 코민테른으로 알려짐)은 1919년 모스크바에 본부를 두고 창립되었다. 1세기 후 이 정치적 차이는 – 레닌이 그의 유명한 기사 《제국주의와 사회주의의 분열》에서 묘사했던- 20)국제 좌파의 근본적인 구분선으로 남아 있다. 대체로 말해서, 한쪽은 의회주의와 자본가 계급과의 협력을 지향하는 개량주의 좌파로 구성된다. 다른 쪽은 독립적이고 국제주의적인 노동계급 노선을 지향하는 혁명적 좌파로 구성된다.
1940년대 워싱턴도 모스크바도 아닌 구호를 제창하는 이론가들은 냉전이 1910년대 유럽 제국주의 간 갈등과 유사하다고 주장했다. 미국이 주도하는 블록과 소련이 주도하는 블록은 서로 경쟁하는 제국주의 세력이며 사회주의자들이 어느 쪽과도 동맹을 맺는 것은 용납될 수 없다는 것이다. 소비에트 연방을 제국주의로 규정하는 것은 당시 세계 좌파 내에서 큰 논란이 되었지만, 사회주의리뷰그룹(사회주의 노동자당의 전신)의 토니 클리프가 이끄는 유명한 사회주의 사상가들은 “축적과 팽창의 논리”는 소련 지도부가 “외부적 국제 군사경쟁”에 참여하도록 강제하고21) 소비에트 제국주의와 국가 자본주의를 감안할 때 “노동계급이 이끄는 사회주의 혁명 외에는 아무것도 이 상황을 변화시킬 수 없을 것”이라고 강하게 주장했다.22)
제3 진영은 소련 붕괴로 발생한 폭풍에서 살아남은 것으로 보이며 남동쪽으로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진영을 형성했다. “워싱턴도 모스크바도 아니다”라는 구호는 “워싱턴도 베이징도 아니다”로 다시 등장했다. 다시 한 번 볼셰비키의 정신을 불러일으키며 몇몇 저명한 좌파 조직들은 모든 형태의 제국주의와 싸우고, 자본주의를 무너뜨리기 위해 싸우는 모든 노동자들의 투쟁을 지원하기 위해 미국과 중국 모두에 반대할 것을 서구 노동계급에게 촉구했다.
그들의 가정이 맞는다면, 즉 신냉전이 제1차 세계대전 이전 유럽에서 만연한 상황과 정말로 유사하다면, 중국이 제국주의 국가이고 중국 노동계급이 국제 혁명적 사회주의 동맹에 동원될 준비가 되어 있다면, 아마도 그들의 결론도 맞을 것이다. 나는 이 기사에서 그들의 가정이 틀렸다고 주장한다. 중국은 제국주의 국가가 아니며, 중국은 실제로는 제국주의 세계체제에 대한 위협이다. 신냉전과 관련하여 좌파가 취해야 할 올바른 입장은 단호히 미국에 반대하고 중국을 지지하는 것이다.

 

중국은 제국주의인가?
미국과 중국 모두에 반대하는 입장은 주로 중국이 제국주의이며 신냉전은 제국주의 간 전쟁, 즉 “양 교전 진영이 외국이나 국민을 억압하기 위해 싸우는” 전쟁이라는 전제에 주로 의존한다.23) 중국이 제국주의 강국이 아니라는 것이 증명되고 신냉전이 제국주의 간 투쟁이 아니라는 것이 증명된다면 “워싱턴도 베이징도 아니다”라는 구호는 거부되어야 한다.
제국주의란 무엇인가? 한 가지 정의는 “제국이나 국가의 통치나 권위를 외국에까지 확장하거나 식민지와 속국을 획득하고 유지하는 정책”이다.24) 모호하긴 하지만, 이것은 단어의 어원에서 암시하는 제국의 핵심 개념을 포함하고 있다.
맑스주의적 관점에서 이 현상에 대한 최초의 중대한 고전적 저작인 《제국주의: 자본주의의 최고 단계》에서 레닌은 “가장 간결한 정의”는 제국주의를 간단히 “자본주의의 독점 단계”로 간주할 수 있다고 말한다.25) 레닌은 그러한 간결한 정의가 부득이 부적당하며 다섯 가지 “기본 특징”의 존재를 암시하는 정도까지만 유용하다고 지적한다.

1. 자본주의는 생산의 주요 영역에서 유일하게 생존 가능한 기업이 거대 자본을 집중시켜 독점을 형성할 수 있는 수준으로 발전했다.
2. 경제의 원동력으로서 “금융 과두제” – 기본적으로 은행- 의 형성
(역주: 은행자본과 산업자본의 결합으로써 금융과두제의 형성. 레닌은 여기서는 은행이 주도하여 금융과두제를 형성하는 독일 사례를 들고 있다. 은행이 주도하느냐 산업자본이 주도하느냐는 본질이 아니라 국가마다 다르다.)
3. 중요한 성장 동력으로서의 자본 수출(외국인 투자)
4. 현대 다국적 기업에 해당하는 “세계를 자기들 사이에서 나눠 갖는 국제독점자본단체”의 형성
5. 자본주의 열강 사이에 철저한 세계 영토의 분할. 전 세계의 시장과 자원은 자본주의 세계 체제에 통합

한 세기가 지난 후에도 레닌의 정의는 자본주의 세계에 대한 유용하고 적절한 설명으로 남아 있다. 실제로 몇 가지 중요한 면에서 그것은 자본의 집중과 “글로벌 자본주의 주변부의 생산 체제에 대한 통제권을 행사하는 … 일반화된 독점”의 지배를 고려할 때 그 어느 때보다 더 적합하다.26)
그러나 《제국주의: 자본주의의 최고 단계》 출간 몇 달 후 ‘사회주의 진영’이라는 새 변수가 세계정치에 등장했다. 사회주의 국가들(그 정점에 유라시아 대륙의 대부분을 구성)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제국주의 체제를 혼란에 빠뜨렸다. 식민지 및 반제국주의 해방 운동을 지원하여 승리를 가속화했다. 그리고 그것은 신식민지 억압에 굴복하는 길밖에 없었던 이전 식민지 국가들을 원조하고 유리한 무역 관계를 제공했다. 따라서 유럽과 아시아에서 사회주의 국가 권력의 도래는 전 세계 국가 주권의 대의에 전례 없는 혜택이었다. 동시에 그것은 제국주의 세계 체제의 후퇴였다.
더 이상 세계는 1917년 이전처럼 제국주의와 피억압 국가로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는다. 이와 같이 레닌의 제국주의의 다섯 가지 특징은 특정 국가가 제국주의인지 여부에 대한 질문에 답하기 위한 점검 수단으로만 사용될 수는 없다. 캐나다의 정치 분석가인 스티븐 고완스(Stephen Gowans)는 다음과 같은 광범위한 정의를 제안했다. “제국주의는 경제적 이익에 의해 이끌리는 지배 과정이다.”27) 이 지배는 “선언되고 공식적이거나, 선언되지 않고 비공식적이거나, 둘 다일 수 있다.” 이것은 중국이 제국주의인지 여부를 판단하는 데 유용한 틀을 제공한다. 중국은 경제적 이익에 따라 지배 과정에 참여하고 있는가? 사미르 아민(Samir Amin)의 말을 빌리자면, 지구를 지배하고 이 지배를 방해할 수 있는 부상하는 국가나 운동의 출현을 막기 위해 “기술 개발, 천연 자원 접근, 국제 금융체제, 정보 보급, 대량 살상 무기”를 활용하는가?28)
중국이 외국 시장과 자원을 지배하려 하고, 가난한 나라의 정치결정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성장하는 경제력을 사용하고 자국의 이익을 확보하기 위해 (명백하게 또는 은밀하게) 전쟁에 참여하는 것이 입증될 수 있다면 중국이 정말로 제국주의 국가라고 결론짓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중국은 경계를 넘어 언제 제국주의가 되었는가?
중국이 제국주의 세력이라면 언제 제국주의가 되었는가? 레닌이 글을 쓰고 있을 당시 중국은 지난 80년 동안 식민 세력에 의해 주권의 상당 부분을 박탈당한 피억압 국가 그룹에 속해 있었다. 중국 혁명의 세계사적 승리 중 하나는 그 지배를 끝내고 중국 인민의 자주권을 확립한 것이다.
중화인민공화국은 자본주의 모델을 거부하고 공산주의를 향한 여정에 착수했다. 공산주의는 맑스가 구상한 경제 체제로 “공유된 생산 수단으로 노동하고 하나의 단일한 사회적 노동력으로서 충실한 자각 속에서 다양한 형태의 노동력을 소비하는 자유인들의 연합체”이다.29) 혁명 이전 중국에 존재했던 반(半)봉건적 조건에서 공산주의 생산관계로 직접 도약하는 것은 실현 불가능하며, 1950년대 중국에서 확립된 것은 혼합경제였는데, 그것의 주요 특징은 공유 산업과 대대적인 토지 개혁이었다. 또 다른 역사적 진전으로 봉건제는 철저하게 해체되었으며, 이는 남반구의 대부분의 다른 지역에서 불완전한 상태로 남아 있다. ‘좌파'(집산화의 가속화와 도덕적 유인을 강조)와 ‘우파'(시장 메커니즘의 제한된 사용)가 진동하는 이 혼합 경제는 결코 제국주의적이지 않았다. 어떠한 합리적인 측정 기준으로도 중국은 독점 자본주의의 사례가 아니었다. 중국의 “자본 수출”은 주로 아프리카의 해외 원조 프로젝트로 제한되었으며, 가장 유명한 것은 탄자니아와 잠비아를 연결하는 타자라(Tazara) 철도로, 지역 개발을 가능하게 하는 것 외에도 아파르트헤이트 통치 지역(로디지아, 남아프리카, 모잠비크)에 대한 잠비아의 의존성을 깨뜨렸다.30)
1976년 마오쩌둥이 사망한 후 혁명 지도부의 경제 개혁가들은 혁명을 어떻게 추진할 것인가에 대한 논쟁에서 승리했다. 중국은 시장 메커니즘, 이윤 동기, 생산력을 빠르게 발전시키고 수억 명의 중국인에게 더 나은 삶의 질을 제공하기 위해 외국인 투자(중앙 계획 및 엄격한 규제의 맥락 내에서)를 활용하는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노선을 확립했다. 개인 기업은 점점 더 중요해졌고 경제의 일부는 본질적으로 자본주의적 성격을 띠게 되었다. 그러나 다시 말하지만, 가장 강경한 제3진영주의자조차도 1980년대와 1990년대의 중국을 제국주의 국가로 간주할 수 없었다. 중국은 극히 적은 양의 자본을 수출했다. 오히려 일본, 대만, 홍콩, 미국과 유럽에서 막대한 양의 외국자본을 받아들였다. 통제되고 제한적이며 전략적인 방식으로 중국은 기술 능력을 개발하고 국제 가치 사슬에 편입되기 위해 제국주의 열강의 착취에 문호를 개방했다.
중국을 제국주의라 말하는 것은 최근 20년간의 현상 때문임은 틀림없다. 그 기간 동안 중국의 지속적인 국내총생산(GDP)은 중국을 세계에서 가장 큰 경제(PPP 기준)이자 기술 강국으로 만드는 결과를 낳았다. 확실히 중국은 막대한 양의 자본을 투입하는 상당한 독점권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알리바바와 텐센트는 모두 시가총액 기준으로 세계 10대 기업에 속한다.31) 전 세계에서 활동하는 중국 기업의 수는 비록 아주 작은 기반에서 시작했지만 자본 수출은 10배 증가했다.
2010년 이후 매년 약 16% 증가했다.32) 중국의 해외 직접 투자 유출액은 약 1170억 달러로 독일보다 약간 많고 네덜란드보다 약간 적다. 국내총생산 대비 외국인직접투자(FDI) 유출 비율(즉, 국가 경제 전체에 대한 자본 수출의 중요성) 측면에서 중국의 가치는 0.8%로 브라질과 비슷한 수준이며 아일랜드, 일본, 스웨덴, 네덜란드 그리고 아랍에미리트보다 훨씬 낮다. 외국 투자만을 근거로 중국을 제국주의로 낙인찍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카운터파이어(Counterfire)에서의 긴 글에서 드라간 플라브시치(Dragan Plavšić)는 중국이 선의의 사회주의 세력인지 아니면 형성 중인 제국주의적 초강국인지에 대해 묻는다. 후자라고 결론내리면서 그는 중국의 국제적 확장은 “영국, 독일, 미국과 같은 다른 주요 경제국들이 국제무역과 투자기회에서 경쟁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국가적 한계를 넘어 확장하면서 선행자들이 깔아 놓은 길을 따르는* 가장 최근 사례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더욱이 “그들을 자극한 경쟁 논리는 오늘날 중국을 자극한 것과 질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33)

* a road well-travelled는 길이 잘 뚫린 도로, 탄탄대로의 의미인데, 여기서는 선행자들이 닦은 길을 따라 후발자들이 누리는 효과를 의미한다. 영국은 ‘상업무역’의 시대에 네덜란드, 스페인, 포르투갈 등 선행 식민지 지배 국가들이 깔아 놓은 식민지 약탈과 교살의 길을 따라 식민지를 개척하고 산업자본의 시대, 즉 자본주의 발전을 가속화 했다.(역주)

경쟁은 끊임없는 혁신을 요구하며, 이는 필연적으로 생산 과정에서 인간 노동의 역할을 감소시킨다. 그것은 주어진 화폐량(노동 비용)을 더 큰 화폐량(노동에 의해 추가된 가치)으로 전환할 수 있는 마법의 속성으로 ‘가변 자본’ 구성 요소를 감소시킨다. 계속 감소하는 가변 자본의 비율은 계속해서 감소하는 이윤율을 의미하며, 자본가는 맹렬한 확장, 새로운 시장 확보 및 생산 비용 절감을 통해서만 이를 보상할 수 있다. 이것은 제국주의의 핵심적인 경제적 동력이다.
플라브시치 분석의 문제는 영국, 독일, 미국이 택한 “선행자들이 깔아 놓은 길을 따르는” 것이 더 이상 열려 있지 않다는 것이다. 100년 전 레닌이 글을 쓸 당시 세계는 이미 “완전히 분할되어 미래에는 재분할만이 가능할 것”이었다. 즉, A 국가는 C 국가를 대체해야만 B 국가를 지배할 수 있다. 이 과정의 수단은 전쟁과 군사적 정복이다. 중국의 이력은 놀라울 정도로 평화로웠기 때문에 중국이 제국주의 세력이 될 수 있는 길을 가지고 “선행자들이 깔아 놓은 길을 따르는” 것이 결코 아니라는 것은 분명하다.
결코 중국공산당의 이데올로기 지지자가 아닌 노엄 촘스키(Noam Chomsky)는 “800개의 해외 군사 기지를 가지고, 다른 나라를 침략하고 정부를 전복시키거나, 테러 행위를 저지르는… 이러한 일들은 중국에서 일어나지 않을 것이고 일어날 수도 없다고 생각한다… 중국은 거대한 군사예산 등을 가진 침략자 역할을 하지 않는다.”며 중국이 미국과 비슷한 침략적인 군사 강국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조소했다.34)
더욱이 중국 경제의 구조는 자유 시장 자본주의와 같은 방식으로 해외 시장, 영토, 자원과 노동자의 지배를 강요하지 않는 구조이다. 자본이 사용되는 방식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주요 은행은 대다수가 주로 주주가 아닌 중국 인민에게 책임을 지는 국가 소유이다. 기간산업은 국영기업이 지배하고 있으며 사적 이윤극대화를 1차 목표로 삼지 않는 엄격한 규제를 받고 있다. 중국 경제 체제의 전문가인 아서 크뢰버(Arthur Kroeber)는 “국가가 ‘기간산업’인 국영 기업에 대한 확고한 통제력을 유지하면서도 효율성을 개선하기 위해 시장 도구를 사용하는 경제”라고 설명한다.35) 요약하면, 중국 경제는 1953년 마오쩌둥이 “주로 자본가를 위해 이익을 창출하는 것이 아니라 인민과 국가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존재한다고 설명했을 때와 거의 동일한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36)
이종진(Li Zhongjin)과 데이비트 코츠(David Kotz)는 “중국의 자본가들은 모든 곳에서 자본가의 제국주의에 대한 동일한 추진력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그러한 추진력은 “경제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제국주의 지배를 목표로 할 필요가 없는” 중국 공산당 정부에 의해 제한된다는 점에 더욱 주목한다. 자본가들이 중국 공산당 내에서 나타나고 있지만 “자본가들이 현재 중국 공산당을 통제하거나 국가 정책을 지시할 수 있다는 어떠한 증거도 없다.”고 따라서 “중국 자본가 계급은 공산당이 제국의 지배를 추구하도록 강요할 힘이 없다.”37)고 주장한다.
이와 같이, 외국 지배의 전망은 영국, 미국, 일본 등의 경제가 그러했고/그러고 있는 것처럼 중국 경제에 대한 동일한 중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 중국이 기존 제국주의 열강과의 직접적인 군사적 대결 없이 비공식적 제국을 건설할 객관적 조건도 존재하지 않는다. 중국공산당은 2007년 17차 당 대회에서 중국은 “결코 패권이나 제국 확장에 관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엄숙하게 선언했다.38) 중국 정부는 개발도상국과 연대하는 사회주의 국가로서 남반구에 적극적으로 입지를 다지고 있으며 이러한 전망이 중국의 외교 정책을 구성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특히 아프리카와의 경제적 관계, 라틴 아메리카와의 경제적 관계, 방대한 일대일로(一帶一路 기반) 사업구상, 남중국해에서의 행위 등 여러 지점에서 제국주의적 행동으로 비난받고 있다. 나는 이들 각각에 대해 검토할 것이다. 노/정/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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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협

전국노동자정치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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