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토화 작전” 다큐 영화를 보고 나서

한성민(대구대학교 사회학과)

 

이 영화는 한국 전쟁 직후인 1950년 6월 26일부터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일(북에선 조국해방전쟁 승전 기념일) 직전까지 주되게는 미 공군, 그리고 유엔 연합군 (영국, 캐나다 등등)의 남북한 지역과 중국 동북(만주)지역 국경까지의 무차별적 폭격, 일명 《SCORCHED EARTH: 초토화작전》을 다큐 영화로 다룬 작품입니다.

이 영화의 감독님께선, 이미영 감독님이신데, 한국계 캐나다인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최근에 해제된, 미국의 기밀 해제 문서를 통해 이렇게 역사의 비극을 잘 보여주는 작품을 만들어주신것 아닐까 싶습니다.
또 한국계 캐나다인이라는 제 3자의 시각에서 영화가 제작 되어서 그런지 영화의 내용이 꽤 합리적이면서도, 공감을 이끌어 내는데 좋은 영화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 본론으로 넘어가 영화 내용을 조금 말해 보자면, 제가 여기서 상당히 경악하면서 본 부분이 있습니다.

남쪽으로 피난오는 흰옷 입은 민간인들을 향해 미 공군 조종사들이 기총소사 (기관총 사격)를 하고, 북한군(조선인민군)이나 중공군(중국 인민지원군)과 교전이 없던 민간인 마을에도 네이팜탄(불이 붙으면 다 태울때까지 꺼지지 않는 화염폭탄)을 B-29같은 폭격기로, 끔찍할 폭탄들을 쏟아 붇고, 기관총으로 난사하는 장면인데 너무 잔인해서 소름이 끼칠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한국전쟁 초반에는 인민군에 밀려 낙동강까지 후퇴할 상황이라 주로 대전, 서울, 김천, 동두천 등등 인민군이 점령했던 주요 거점 도시들, 마을들을 중심으로 어마어마한 폭격이 이루어졌고, 이 때문에 죽은 민간인들의 숫자는 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입니다.

피난민들 속에 조선노동당원(공산주의자)들이 숨어 있고 공산주의자들이 민간인으로 위장해 게릴라전을 펼친다는 미군 지휘부의 광적인 의심과 집착이 미 공군의 이런 무차별 폭격 배경이었습니다.

미군은 다음과 같은 명령을 내립니다.

“귀관들은 관할 지역에서 모든 주민들의 이동을 통제할 완벽한 권한을 가진다. 아울러 그들에 대해 발사 및 폭격의 권한을 가진다.”

미8군 사령부의 명령문 ‘CX 10025’ (1951년 1월 3일)을 봐도 그렇고 이남 지역과 폭격을 피해 남쪽으로 내려오는 피난민들을 미 공군이 폭격과 기총소사로 민간인들을 집단 학살한 경우는 수없이 많습니다. 그 중 대표적 사례가 바로 충북 영동지역의 노근리 사건입니다.

50년 9월 15일에 미군의 인천 상륙작전이 성공하고, 유엔군과 국군이 3.8선 이북, 북한 지역으로
진격하고 점령하고 난 뒤에는 유엔군, 국군(지상군)에 의해 북한 지역 주민들, 노동당원, 인민군들에 대한 보복성의, 무차별적인 학살, 민가 약탈, 주민학살, 여성들에 대한 강간, 방화가 일상적으로
일어났습니다. 미군 보고서 및 영국인 종군기자들의 기록 등에도 이러한 상황들이 잘 나와 있습니다.

이런 일들이 후에 북한이 미국을 아주 증오하는 대표적인 원인이기도 합니다.

위와 같은 일만해도 엄청난데, 미군과 유엔군의 공군은 북한의 항구 도시인 원산, 아시아 최대 공업단지로 불리던 함흥시에도 무차별적인 폭격을 가했습니다.

2차 세계대전과 달리 잿더미만 남을 정도로, 건물은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미공군과 유엔군은
폭탄을 쏟아 붇고 기관총을 난사했습니다.

“우리는 한국의 북쪽에서도, 남쪽에서도 모든 도시를 불태웠다. 우리는 100만 이상의 민간인을 죽이고 수백만 이상을 집에서 내쫓았다.”(커티스 르메이)

“미군은 매일 500대에서 1천500대의 폭격기와 전투기 출격시켰고, 개전 후 1953년 4월 말까지 미국은 26만 발의 중·대형 폭탄, 2억여 발의 탄환약 40만 발의 로켓탄 약 150만 발의 네이팜탄 사용하였다.(“미군의 한국전쟁기 무기 사용에 대한 통계”)

이처럼, 미군의 북한지역에 대한 폭격은 51년 겨울 중공군(중국 인민해방군)이 참전하면서 더 심해집니다. 이 때 ”압록강과 두만강(국경지대)부터 남쪽으로 내려가면서 적의 지역을 초토화하라”는 맥아더 명령이 내려 집니다. 미군과 유엔군, 국군이 역으로 공세를 당하고, 후퇴를 하면서 미군의 무차별적 폭격은 더 확대되어갔는데, 북한군이나 중공군의 보급물자나 차량, 수레, 병력은 물론, 적들이 (공산군) 폭격을 피해 숨을 곳을 모두 찾아내어 없애야 한다면서 북의 평양이나 개성, 청진, 신의주같은 도시들을 물론, 북한 지역 곳곳의 건물들과 마을들을 완전히 초토화 시키고 잿더미만 남게끔 만들어 버렸습니다.

이러한 참상은 아래의 글에 잘 나와 있습니다

“서 있었던 것은 남김없이 쓰러졌다. 탈 수 있는 것은 남김없이 타버렸다. 남은 것은 바위와 돌뿐이다. 초가집 한 채 남지 않았다. 북한은 이제 석기시대로 돌아갔다.”(커티스 르메이)

그리고 미육군이 북한지역에서 후퇴하면서 그곳에 살던 주민들을 공산주의자로 간주해 마구잡이로 학살하기도 했지만, 미군이 곧 원자폭탄을 북한지역에 쏠거라면서
겁을 주면서 북한 주민들이 남쪽으로 피난가게끔 유도하기도 했습니다. 이때, 북한 지역에서 공산주의를 반대하는 지주 같은 이들도 남쪽으로 피난했지만, 실제로는 정치성향과는 관계 없이 그저 생존을 위해, 그 동안 북한지역의 주민들이 겪었던 미군의 폭격의 공포 때문에 미군들이 선심 쓰듯 같이 남쪽으로 내려가자고 하니 순순히 따라갈 수밖에 없었던 이들도 많았다고 합니다.

미군이 이 당시에 보여준 양면성은치가 떨립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지인분께 들은 이야기를 조금 적어보면, 흥남철수때도 10만명이나 미군 배를 타고 남쪽으로 내려 왔는데, 이때 남쪽으로 내려온 분들 중엔, 북한 정권에서 준 의사면허증을 남쪽에서도 끝까지 안버리시고 지키다가 나중에 군사독재시절에 고초를 겪으신분들처럼, 북의 사회주의 정부와 노동당이 단순히 싫어서, 내려온 피난민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미군의 협박과 회유, 전쟁당시에 북한 정권의 거의 붕괴 상태 등등의 이유로 민심이 흉흉했기에, 주민들이 미군의 배를 타고 마지
못해 피난했다고 보는게 맞을거라고 봅니다.

그리고, 한국전쟁 막바지에 이르면 전선(오늘날의 휴전선)이 이전의 38도선지역에 제한되면서 전선이 고착화 되는 와중에도, 미공군은 전선 이북지역인 북한 지역의 전쟁 수행능력을 박살내기 위해 북한의 커다란 댐들을 폭격하면서 댐 근방 40km이상의 지역의 마을들과 논과 밭을 수몰시켜서 수많은 민간인들이 죽거나 다치게 됩니다. 이때 임무를 수행했던 한 미군
조종사는 이 상황을 이렇게 말합니다.
“상부에서 지시하고 우리가 수행한 임무들은 전쟁 범죄에 속하는 것들이었다. 그러나 다행히, 우리는 전범재판에 회부되지도 않았고, 병사든, 장교들이든, 장군들이든,
그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었다.”

그리고 이 조종사들에게 주어진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작전(폭격)지역의 단순한 위도와 경도 건물의 이름만 가르쳐줄뿐, 거기 주변에 민간인들이 많이 사는지, 안 사는지는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고 합니다. 게다가 이 임무들은 1953년 정전협정 당일 직전까지도 수행됐다고 합니다.

미군 공군 조종사들도 69년 전 북한과 남한에 살던 우리 선조들을 죽인 가해자이면서도, 어쩔 수 없이 전쟁에 끌려와 임무를 강제로라도 수행하는 피해자들이기도 합니다. 이 또한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할 진실입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본 가장 비극적인 장면 두 가지와 정리로 이 글을 끝내겠습니다.

첫번째로, 대동강 하류와 서해가 서로 만나는 지점에 위치한 남포지역의 ”남포교회 예배당” 폭격 사건인데요. 전쟁 중에 남포교회의 예배당에서 그 지역 마을의 신자(성도)들이 찬송가를 부르며, 예배를 드리고 있는데, 미군 군함에서 함포가 불을 내뿜고, 미군 비행기가 폭탄을 그 교회 근방에 쏟아 부었다는 것입니다. 신자들은 설마, 기독교 국가인 미국에서 우리 기독교인들한테 폭탄을 던지겠나 싶어 실수라고 생각했지만, 미군의 함포에서 쏜 함포와 비행기가 쏟아 부은 폭탄으로 인해 교회 예배당은 산산조각이 나서 잿더미만 남고, 신자들은 피투성이가 되고 몸이 갈기갈기 찢겨나갔다고 합니다.
북한에서 특히 교회가 폭격 당해 그 안에 있던 신자들이 전부 몰살을 당한 경우는 남포 말고도, 평안도 정주 등등 여러 곳이 있었습니다. 해방직후만 해도 평양과 북한
지역은 한반도에서 개신교, 천주교, 성공회 같은 그리스도 교인들이 가장 많던 지역이었지만, 전쟁 중에 기독교 국가인 미국이 교회와 성당을 파괴하고, 신자들을 학살했기 때문에 후에 북한은 가장 반기독교적인 국가가 될 수 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우리 남쪽에 있는 수많은 그리스도인들도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두번째, 충북 단양의 곡계골과 영월지역의 미공군의 폭격과 지상군의 민간인 학살 범죄사건 입니다.

곡계골에서는 미공군 편대가 골짜기에 있던 사람들이 민간인으로 식별됨에도 의심스럽다며 주민들 머리 위를 몇바퀴 돌다가 다시 비행기 몇대가 다시 돌아와 수백명을 기총소사로 쏴 죽였습니다.

강원도 영월의 경우, 미공군이 마을을 폭격해서 마을을 부수도 불태우고 나면, 미육군이 탱크를 끌고
들어와 주민들에게 포를 쏘고 기관총으로 난사를 해서 학살하고, 마을에 방화를 저지르는 등의 만행이
있었습니다.

이상 제가 영화에서 봤던 인상깊은 장면들을 조금 간추려서 여기에 적어 봤습니다. 개인적인 생각들도 중간 중간에 조금씩 더했습니다. 이 영화를 보며 조금 아쉬운 것은 한국전쟁에 대한 주류의 반공적인 시각을 많이 가지고 계신 수많은 대중들께는 이해하기 어렵거나 공감하기 힘들 영화같기도 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후속편으로, 한국 전쟁의 배경에 대해서 주류의 반공
적인 시각을 넘어서서 다각도로 말할 수 있는 다큐영화가 하루 빨리 나왔으면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사실 한국전쟁은 잊혀야만 하는 전쟁이었습니다. 그래서 전쟁의 상처, 분단의 고통들은 오늘날 한국
사회 곳곳에서, 심지어는 각 개인들의 마음 속에 고통과 상처로 깊게 남아 있습니다.

특정 세력과 외세의 이익을 위해 잊혀졌던 역사의 진실을 우리 모두가 걷어내어서, 지금이라도 진실이 무엇인지 밝히고, ”분단과 전쟁의 상처와 그 부산물들이 우리 조상들을 괴롭혔듯이 더이상 우리를 괴롭히지 못하도록 이제, 우리가 나서서 해결해야 되지 않을까요?”

이 기사를 총 202번 보았습니다.

노정협

전국노동자정치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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