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스주의 고전읽기] 《루이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 – 부르주아의 “자유 평등 박애”는 “보병 기병 포병”으로 화하였다!

일시: 2022년 11월 22일(화) 19시

범위: 4장-5장

* 세미나는 격주 화요일에 합니다.

* 직접 참여하기 어려운 동지들을 위해 영상으로도 세미나를 같이 합니다. 영상으로 참여하실 분들은 안내 전화로 참여 의사를 밝히면 온라인 세미나 링크를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참가 문의: 010-3398-0248

 

1848년 2월 혁명은 부르주아의 반동화와 노동자계급의 6월 봉기와 유혈진압, 봉건 왕조파인 질서당의 재등장, 보통선거권의 폐지와 루이 보나파르트의 쿠데타와 황제등극으로 끝나게 됩니다.

이번 프랑스혁명사는 1851년 12월 2일 루이 보나파르트의 쿠데타의 기원, 배경 등을 추적하는 글입니다. 이를 브뤼메르 18일이라고 하는 것은 나폴레옹 1세의 브뤼메르 18일(1799년 11월 9일, 프랑스 혁명력 8년 브뤼메르 18일)의 ‘소극笑劇’적인 재판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이 글은 《공산당선언》에 이어 맑스주의 국가론의 발전이라고 흔히들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글은 부르주아, 왕조파 양대 분파, 농민을 위시로 한 소부르주아 대표자들, 노동자계급 및 그 대표자들의 바탕이 되는 계급적 본질과 행태에 대해서도 깊이 있게 분석하며 맑스주의 계급분석을 풍부하게 하고 있는 글이기도 합니다.

《루이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 은 못 읽어봤어도 “역사는 두 번 반복된다 한 번은 비극으로 또 한 번으로 소극으로”라는 문장은 한 번쯤 들어본 사람들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맑스의 이 문장은 정확히는 “헤겔은 어느 부분에선가 세계사에서 막대한 중요성을 지닌 모든 사건과 인물들은 되풀이된다고 지적하였다. 그러나 그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첨가하는 것을 잊었다. 즉 첫 번째는 비극으로, 두 번째는 소극(笑劇)으로 끝난다는 사실이다.”라는 유명한 문장으로 시작합니다.

맑스는 당똥과 꼬시디에르, 17893년-1795년 산악당(쟈꼬뱅)과 1848년-1851년 산악당, 로베스삐에르와 루이 블랑, 나폴레옹 1세에 대한 루이 보나빠르뜨 나폴레옹 3세를 비교하며 전자를 역사의 격동 속에서 비극으로 끝난 영웅이나 영웅적 세력들, 후자를 전자를 흉내 내다 역사의 소극으로 끝난 인물, 세력으로 조소하고 있습니다. 맑스의 이 비유는 부르주아 역사학의 저급한 인물론, 세력론과 비교해서 그 문장력은 물론이고 역사적 분석에서도 아주 탁월하고 역동적일뿐더러 깊이가 다릅니다. 이 책을 읽게 되면 능수능란한 비유를 통해 역사를 분석해 들어가는 맑스의 솜씨에 감탄할 수밖에 없습니다.

맑스의 경탄할만한 문장력도 그렇지만, 그것이 단지 미문(美文)으로 끝나지 않았던 것은 역사적 유물론의 관점에 확고하게 서 있기 때문입니다.

맑스는 1869년 6월 23일 제2판 서문에서 빅또르 위고의 《소 나폴레옹》과 프루동의 《쿠데타》의 사례를 드는데, 위고는 쿠데타 주도자에 대한 매섭고 재치 있는 독설을 했으나 그 사건 자체를 청천벽력 우연으로만 보고 오직 한 개인의 폭력적인 행위만을 보았을 뿐이라고 비판합니다. 맑스는 세계사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그러한 독창적인 개인 권력의 출현이 보나빠르뜨에게서 유래한 것처럼 묘사함으로써 위고는 그를 소 나폴레옹이 아니라 대 나폴레옹으로 만들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였다고 비판합니다.

반면 프루동은 자신의 입장에서 꾸데따를 선행된 역사발전의 산물로서 묘사하려 하였지만 꾸데따에 대한 그의 역사적 서술은 꾸데따의 주인공을 위한 역사적 변명이 되었고, 이렇게 함으로써 프루동은 소위 객관적인 역사가의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비판합니다.

맑스는 이와는 대조적으로 나의 저서는 어떻게 프랑스에 있어서 계급투쟁이 우스꽝스러운 보통 사람으로 하여금 영웅으로 행세할 수 있는 그러한 환경과 제 관계를 만들어 내었는가를 보여주고 있다고 합니다.

엥겔스는 이 역사적 유물론의 발견을 맑스의 공적으로 돌리면서 그것을 이렇게 정의합니다.

위대한 역사의 운동법칙을 최초로 발견한 사람은 바로 마르크스였다. 이 법칙에 따르면 역사상의 모든 투쟁은, 그것이 정치·종교·철학 혹은 기타 이데올로기 등 어떤 영역에서 전개되었든지 간에 사실상 사회 제 계급 사이의 투쟁이 다소 분명히 표현된 것일 뿐이며, 이와 같은 사회계급의 존재와 그로 인한 계급 간의 충돌은 역시 차례로 계급의 경제적 지위의 발전정도, 생산양식 그리고 생산양식에 의해 결정되는 교환양식에 의해 조건 지워진다는 것이다.

맑스주의의 역사적 유물론은 역사관계를 물질관계 중심으로만 살펴보는 속류적인 경제 결정론이 아닙니다. 이는 단순하게 경제주의, 객관주의가 아니고 객관적인 물질관계의 수동적인 반영으로 역사를 그리는 것도 아닙니다. 엥겔스는 “계급 간의 충돌은 역시 차례로 계급의 경제적 지위의 발전정도, 생산양식 그리고 생산양식에 의해 결정되는 교환양식에 의해 조건지워”지지만, “사회 제계급 사이의 투쟁이 다소 분명히 표현된 것”이기도 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맑스는 부르주아 계급 분파인 왕정 복고파들에 대해 다음과 같은 분석으로 이들을 계급적 본질을 통찰력 있게 살펴보고 있습니다.

이 분파들을 반목케 한 것은 이른바 원리가 아니라, 각 분파의 물질적 존재 조건들, 두 개의 다른 종류의 소유, 도시와 농촌 사이의 낡은 대립, 자본과 토지 소유 사이의 겨룸이었다. 동시에 지난 날의 기억, 개인적 적의, 공포와 희망, 편견과 환상, 공감과 반감, 신념, 신조, 주의가 이 분파들을 혹은 이쪽의 혹은 저쪽의 왕가에 결합시켰다는 사실을 누가 부인하겠는가? 상이한 소유 형태들 위에, 사회의 생활 조건들 위에, 특유한 형태를 띤 상이한 감각, 환상, 사유 방식, 인생관 등의 상부 구조 전체가 세워진다. 계급 전체는 이 상부 구조를 자기 계급의 물질적 기초와 이에 조응하는 사회관계들로부터 만들어 내어 형태를 만든다. 이러한 상부 구조를 전통과 교육을 통해 받아들이는 개개인은 그러한 상부 구조가 자기 행위의 진정한 동기이자 출발점이라고 그르게 상상할 여지가 있다. 

자연과학 법칙을 부정하면 미신이나 우상숭배, 비과학에 불과하듯, 역사발전 법칙, 필연성을 부정하면 과학이 아닙니다. 그러나 맑스주의는 이와 동시에 역사에서 인간(집단), 계급이 수행하는 능동성과 실천성, 개조성을 누구보다도 강조하기도 합니다.

맑스는 인간이 만들어가는 역사의 제한성과 과거로부터의 영향, 이를 자기들 현실적 이해대로 차용해 가는 것에 대해 이렇게 주장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역사를 만들어가지만, 그들이 바라는 꼭 그대로 역사를 형성시키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스스로 선택한 환경 하에서가 아니라 과거로부터 곧바로 맞닥뜨리게 되거나 그로부터 조건 지워지고, 넘겨받는 환경에서 역사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모든 죽은 세대들의 전통은 악몽과도 같이 살아 있는 세대의 머리를 짓누르고 있다. 현 세대가 스스로의 만물을 혁명화하고 이제까지 존재한 적이 없는 무엇인가를 창출해 내려고 하는 것처럼 보이는 바로 그 시기에, 정확하게 그와 같은 혁명적 위기의 시기에, 그들은 자신의 목적에 봉사할 수 있도록 노심초사 과거의 망령들을 주술로 불러내며, 이러한 유서 깊은 분장과 차용한 언어로 세계사의 새로운 모습을 제시하기 위하여 과거의 망령들로부터 이름과 구호와 의상을 빌려온다.

맑스는 “부르주아 혁명을 비롯해 이전의 혁명은 자신의 혁명적 내용에 눈을 감기 위하여 지나가 버린 세계사의 추억을 필요로 하였다.”라고 비판합니다. 그러나 19세기 사회혁명(인민혁명과 프롤레타리아 혁명)은 그와 반대로 “과거와 관련되어 있는 모든 미신을 벗어 버리고서야 비로소 시작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특히 부르주아 혁명과 프롤레타리아 혁명은 이렇게 다르다고 주장합니다.

부르조아 혁명은 18세기의 여러 혁명과 마찬가지로 폭풍우 치듯 연속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혁명은 교대로 극적인 효과를 다투고, 인간과 사물은 찬연히 빛나는 것 같다. 매일 매일의 정신상태를 황홀경에 빠져 있다. 그러나 부르조아 혁명의 수명은 짧다. 혁명이 절정에 도달하자마자 그 질풍노도의 시기가 가져다 준 여러 결과들은 사회가 그 자체 내에서 융화시키는 방법을 맑은 정신으로 알아차리기도 전에 장기간의 몽롱한 침체가 사회를 덮어 버린다. 반면에 프롤레타리아 혁명은 19세기의 여러 혁명과 마찬가지로 스스로를 끊임없이 비판하고 혁명의 진행과정에서 부단히 자발적으로 그 진행에 제동을 걸고 혁명을 새롭게 시작하기 위하여 외견상 성취된 것을 재검토하며, 비정할 정도의 철저한 태도로 그 최초의 시도에서 드러난 부적합성, 약점, 그리고 무가치를 비웃는다. 뿐만 아니라 프롤레타리아 혁명은 오로지 그 적대세력이 밑바닥에서부터 새로운 힘을 끌어내고 좀 더 대단한 기세로 혁명을 앞에 두고 재차 봉기하여, 프롤레타리아 혁명 나름의 목표가 지니고 있는 무한한 경이로움에 대하여 때때로 반발할 수 있게끔 하기 위해서만 혁명의 적대세력을 타도하는 것 같다.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이상과 같은 노력은 모든 퇴행적 변화를 불가능하게 하는 상황이 만들어지고 제반 여건이 스스로 다음과 같이 부르짖을 때까지 계속된다.
이곳이 로도스 섬이다. 여기서 뛰어 보라!

맑스는 부르주아 혁명의 휘발성과 퇴행성, 반동성에 비해 19세기뿐만 아니라 20세기, 21세기에도 계속되고 있는 진보적인 투쟁, 혁명이 보여주는 지난한 과정과 난관, 일시적 후퇴들, 곡절들, 그 곡절에도 불구하고 그 곡절들을 통해 앞으로 더 공고하게 나아가는 투쟁과 혁명의 진리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혁명의 법칙과 원리, 현실을 보더라도 맑스주의 철학과 사상에 투철하였다면 쏘비에트권의 해체와 현실 사회주의에 조성된 난관에도 불구하고 청산주의와 패배주의에 빠져 동요하거나 투항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맑스는 질서당(정통 왕조파와 입헌 왕조파의 연합)은 복고왕정을 주장하나 과거 봉건왕조로 돌아가지 못하고 “부르조아 공화국에서 그들은 부르봉이나 오를레앙의 이름이 아닌 자본의 이름을 가지고 자신들이 공동으로 지배할 수 있는 국가형태를 찾아내었다.”고 있습니다. 부르주아는 부르주아의 안정적 발전, 착취를 염원하고, 자신들이 직접 권력 장악으로 계급지배가 공멸하길 원하지 않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레닌은 《국가와 혁명》에서 “사회로부터 출발해 사회 보다 상부에 위치한다”고 맑스주의 국가의 또 다른 본질에 대해 분석합니다. 국가권력의 본질은 지배계급의 정치적, 경제적 등 이해관계를 보장하는 착취와 억압을 위해 존재하지만, 사회, 즉 자본과 자본의 물질적 이해관계를 영속적으로, 안정적으로 대변하기 위해 겉으로는 중립적 독립적 권력, 국민적 권력으로 위장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이 책은 부르주아 혁명으로 탄생한 헌법의 본질과 위선과 근본한계에 대해서도 분석합니다. 맑스는 인신의 자유, 출판, 언론, 결사, 집회의 자유, 교육과 종교의 자유 등이 헌법에 보장되고 있으나, 부르주아에게 유리한 유보조항으로 이를 번복, 무화하여 명목적인 것으로 만들고 있다고 비판합니다.

맑스는 루이보나파르트가 권력을 잡을 수 있었던 역사적 조건에 대해 부르주아와 반동화와 지배계급 내 안정화 갈망 및 구 봉건세력들과의 공통이해, 봉건 왕조 두 분파가 갈등·대립하면서도 공화제라는 공동지배 형식의 희구 및 갈등, 소부르주아의 동요와 위선성, 나약성, 농민의 진보성과 보수성 중에서 보수적 측면의 이용, 프롤레타리아트의 정치적 미성숙 등을 예로 들고 있습니다.

루이 보나파르트는 이러한 역사적 조건 속에서 제 계급 위에 존재하는 독특한 계급 초월적인 권력으로 보여 집니다. 이를 근거로 이탈리아에서 파시즘이 등장했을 때인 1920년대 초반 코민테른 내에서 보나파르티즘과 동일한 소부르주아 권력이라고 인식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파시즘이 발전한 자본주의 독점자본가들의 가장 배외적이고 반동적인 권력이듯이, 루이 보나파르트는 분산되고 보수적 측면의 농민들을 계급기반으로 삼고 있으나 실제로는 부르주아를 포함한 지배계급의 이해를 대변하는 반인민적 반동권력입니다.

다음 문장을 보면 맑스 계급분석을 단순하고 형식적으로 빌려와서는 안 된다는 점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쁘띠부르조아지는 원칙적으로 이기적인 계급이해를 관철시키고자 원한다는 식의 협소한 개념을 가져서는 안 된다. 오히려 쁘띠부르조아지는 자신들의 해방을 위한 특수한 제조건이 바로 근대사회를 구원하고 계급투쟁을 회피할 수 있는 일반적인 제조건이라고 믿었다. 또한 민주파 대변자들 모두가 소상점주이거나 소상점주의 열성적인 대표자라고 생각해서도 안 된다. 그들은 교육과 지위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그들을 쁘띠부르조아지의 대변자로 만드는 것은 다음과 같은 사실에 있다. 즉 쁘띠부르조아지가 생활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여러 한계를 이들도 또한 마음속으로는 초월하지 못한다는 것이며, 따라서 이론적으로 그들은 쁘띠부르조아지가 물질적 이해와 사회적 지위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따라야 하는 바로 그러한 문제와 해결책으로 이끌려 간다는 것이다. 대체로 이것이 한 계급을 정치적이며 이론적으로 대표한다는 것과 그것이 대변하고 있는 계급과의 관계다.

마지막으로 오늘날 부르주아 체제가 민주주의를 유린하고 제국주의가 “자유와 인권, 인도주의”의 이름으로 전쟁과 파괴, 약탈, 자주권 침해를 보노라면, 프랑스대혁명으로부터 부르주아의 정치적 요구가 된 “자유·평등·박애”의 모토가 “보병·기병·포병”으로 변했다고 신랄하게 비판한 맑스의 분석이 더욱 더 선명한 현실성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노/정/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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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협

전국노동자정치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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