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8.15전국노동자대회>에 대한 비열한 종북몰이 중상모략에 대해 – 노동자들은 경제적 요구를 넘어 정치투쟁과 원대한 정치적 해방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취임 100일 만에 20%대 지지로 추락한 정권이 위기를 극복해보고자 민주노총 <8.15전국노동자대회>를 가지고 비열한 종북몰이 중상모략에 나서고 있다. 저들이 악랄하게 지껄이는 모략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노동자들은 경제적 요구에 한정해야 한다.

정치투쟁에 나서서는 안 된다.

전쟁반대 평화실현을 내거는 것은 친북 노동당 식 구호다.

한미동맹 반대는 시대착오적이다

재해로 희생된 민중의 고통을 한낱 구경거리, 웃음거리로 삼았던 냉담한 자들이 이제는 눈에 핏발이 서서 노동자들에게 비열한 공세를 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애초 대우조선 노동자들의 강탈한 임금 30% 요구와 고용보장 요구, 손배 가압류, 화물연대 노동자들의 진로 자본에 대한 손배·가압류 등 탄압금지 투쟁은 명백한 경제적 요구, 생존권적 요구를 내걸고 있다. 저들은 민주노총이 정치적 요구를 내걸었다고 핏발이 서서 악선전을 하면서도 정작 노동자들이 충실하게 자신의 경제적, 생존권적 요구를 내걸고 투쟁했을 때는 공권력을 투입하여 잔인하게 탄압을 가한다.

그리하여 애초에 노동자들의 경제투쟁은 정부의 개입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정권과의 투쟁에 나서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파렴치한 저들도 대놓고 부정하지 못하는 사실이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조는 자주적 기구라는 명제다. 저들이 아무리 뻔뻔하고 파렴치해도, 노조를 자본과 정권에 종속된 노조로 만들려 기도한다 하더라도 공개적, 공식적으로 대놓고 노조는 정권과 자본의 관제기구, 어용노조갸 되어야 한다고는 주장하지 못한다.

노조가 정권과 자본으로부터 자주적 기구라는 보편타당한 명제로부터 당연하게 노조는 사상 이념적으로도 자주적이어야 한다는 명제가 나오게 된다. 정신적 노예가 물질적으로 자주적이고 자유로울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로써 노조와 노동운동의 이념과 사상은 그 누구의 일방적인 규정과 제한이 아니라 노동자들이 자주적으로 만들어가는 것이 타당하게 된다.

근자에는 많이 퇴색하기도 하고 간혹 일각에서는 정반대의 행태를 벌이기도 하지만 민주노조운동은 ‘자주성’, ‘연대성’, ‘변혁성’을 노조의 기본적 원칙, 원리로 삼았다.

노조는 자본과 정권으로부터 자주적이어야 한다.

노조는 부르주아 사회가 강요하는 이기주의와 경쟁에 맞서 가장 열악하고 힘든 노동자들, 그리고 노동자들 뿐만 아니라 이 사회의 억압 받고 소외당하고 차별 받는 모든 이들과 같이 손잡고 싸우는 연대성을 가져야 한다. 이 연대성의 최고 표현은 노동자 국제주의이다.

노조는 자본주의 내에서 노동자에 대한 억압과 착취가 철폐될 수 없기 때문에 변혁성을 생명으로 하고 운동의 궁극적 목표로 삼아야 한다.

노조가 자주적이라는 것이 노조가 정치문제에서 기권해서 중립적인 기구여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노조가 자주적인 것은 자본과 정권의 지배와 개입으로부터 자주적이어야 한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노조가 정치문제에서 기권해야 한다는 주장은 언론과 경찰력과 각종 악법으로 지배개입을 일삼고 있는 부르주아의 영향 하에 노조와 노동자들을 방치하는 것에 불과하다. 노조 중립성은 자본가들과 권력의 이데올로기다.

노동운동의 위대한 선생인 맑스는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그 원래의 목적과는 별도로, 이후의 노동조합은 노동자계급의 완전한 해방이라는 원대한 목적을 위하여, 노동자계급의 조직화의 중심으로서 의식적으로 행동하는 것을 배우지 않으면 안된다. 노동조합이 이 목표를 향해 전진하는 모든 사회적·정치적 운동을 지지하고, 자신을 모든 계급의 전위적 투사이자 대변자로 간주하려고 한다면 반드시 조합 외부에 있는 사람들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지 않으면 안 된다. 가장 열악한 임금을 받고 있는 직업, 예를 들어 예외적으로 불리한 사정으로 말미암아 여태껏 저항력을 빼앗긴 채로 있는 농업노동자의 이익에 대해 주의 깊게 대처해야만 한다. 노동조합은 그 목표가 결코 좁디좁은 이기적인 것이 아니라 억눌리고 있는 수백만의 사람의 전반적인 해방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라는 확신을 전세계 사람들의 마음속 깊이 새겨주지 않으면 안된다.(마르크스, 노동조합 – 그 과거, 현재, 미래)

노동조합의 원래의 목적은 조합원들의 자기 이해와 당면한 경제적, 생존의 요구에 충실하게 몰두하는 것이었다. 이것이 노조의 애초 목적이고 출발이었다. 그러나 이것에만 머물러 있는 것은 출발 당시 노조의 협소한 과거였다. 노조의 현재와 미래는 이 기본요구에 충실할 것은 물론이고 원대한 이상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노동자계급의 완전한 해방이라는 원대한 목적을 위하여 싸워야 한다.

노조는 경제적 운동만이 아니라 이러한 목표를 향해 전진하는 모든 사회적. 정치적 운동을 지지, 지원해야 한다.

노조와 노동자들은 조합 내부 노동자들뿐만 아니라 비조합원, 미조직 노동자들, 이주노동자들의 충직한 대변자가 되어야 한다. 더 나아가 모든 피억압 피착취 계급, 심지어 국제주의 원칙에 따라 피억압 민족의 해방을 지지, 지원해야 한다. 노조와 노동자들은 노동자뿐만 아니라 “모든 계급”의 전위적 투사이자 대변자가 되어야 한다.

노조, 노동자들의 이러한 요구는 폭넓고 고귀한 것이다. 비천하고 천박하고 탐욕적인 노조와 노동자들이 이러한 요구를 자신들의 목표로 삼을 수는 없는 법이다. 노조와 노동자들의 요구와 목표를 원대하게 두는 것은 노동자들이라는 계급적 존재가 숭고하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은 다른 이들을 착취하고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땀 흘려 일하며 이 사회의 생산과 서비스를 책임지고 있다. 노동자들이 노동자들의 무기인 파업이라는 수단을 사용하여 생산과 서비스를 멈출 때, 이 사회는 멈춘다. 파업에 대한 자본가들의 악선전을 통해 역설적으로 노동자들이 이 사회를 유지, 발전시키는데 얼마나 중대한 역할을 수행해 왔는지 알 수 있다.

노동자들은 수적으로도 이 사회의 압도적 다수이다.

노동자들은 집단적 노동으로 집단주의, 공동체주의에 익숙하다.

자본가들은 이 사회 전체의 이해보다는 자신들의 이기적인 탐욕과 이윤에만 골몰한다. 이것이 자본의 본성이다. 반면 노동자들은 무엇보다 자신들에 대한 착취와 억압을 없애기 위해서는 이 사회 전체의 모순을 제거해야 하기 때문에 노동자들의 투쟁은 이 사회 전체의 이해와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이러한 본성적 특성이 있었기 때문에 실제 노동자들은 이 사회의 발전과 진보에 지대한 역할을 해왔다. 진보적 역사를 만들어왔다. 진보적 지식인들과 청년들 역시 역사의 발전에 복무해 왔으나 이들이 그러한 것은 계급성을 가지고 노동자계급의 편에 서 있을 때뿐이었다. 자본과 권력의 편 지식인들은 노동자 민중을 억압하고 기존 계급질서의 수호자에 불과했다.

청년들 역시 젊은 시절의 진보성을 상실하고 기존 계급지배 질서에 편입한 자들은 노동자 민중의 배반자가 되었을 따름이다.

 

노동자들은 더 대담하고 확고하게 정치투쟁에 나서야 한다

 

* 사진은 민주노총 [노동과 세계]

노동자들이 정치적이고 역사적인 관점에 투철해야 하는 것은 당위인데 이는 객관적 현실에서 비롯되는 것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경제와 정치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긴밀한 관계로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화물연대의 경유가 국가 보조금 제도 개선 요구도 그렇고, 대우조선과 화물연대, 쌍용자동차 노조처럼 투쟁에 나섰던 모든 노동자들에게 가혹하게 가해졌던 손배·가압류만 보더라도 악법을 철폐하지 않으면 노동자들이 이 멍에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하다.

근로자파견법, 기간제법, 정리해고제 같은 악법들, 파업권을 박탈하는 각종 악법들만 보더라도 노동자들은 정치투쟁이 필수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경제적 투쟁, 대정부 투쟁에 나설 때마다 노동자들에게 가해지는 국가보안법 탄압, 비열한 종북몰이 악선전을 보더라도 노동자들이 국가보안법을 분쇄하고 저들 지배계급의 모략적 이데올로기와 정면으로 맞서 싸워야 노동자들이 전진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더욱이 국가보안법은 노동자들이 이 사회를 변혁하고 새로운 세상을 향해 정치적으로 전진하는 것을 가로막는다.

노동자들의 정치투쟁을 반대하는 주장이 정당하기 위해서는 경제와 정치와 따로 떨어져 있다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 권력과 자본, 자본의 나팔수 언론들이 물리적으로, 이데올로기적으로 지배 개입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입증해야 한다. 민주노총의 전국노동자대회에 대한 정권과 언론의 지배개입과 중상모략은 노조가 더욱 더 정치적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웅변해준다. 노동자들의 정당한 투쟁에 대해 언제나 종북몰이 공세로 정당성을 찾으려 하는 정권과 자본의 나팔수들의 모습을 볼 때, 노동자들은 분단 이데올로기, 반공반북주의 이데올로기와 싸워야 한다는 것을 확고하게 보여준다.

민주노총이 이번 전국노동자대회에서 내건 전쟁반대 요구는 노동자뿐만 아니라 이 땅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의 평화와 삶을 위해 가장 절박한 요구들이다. 이 요구가 과연 경제적, 생존권적 요구와 무관하다고 할 수 있는가? 더욱이 민주노총은 개별 노조들의 총연합체이다.

윤석열 정권은 위험천만하게 북에 대한 선제타격 공언, 한미군사 훈련으로 한반도를 제2의 우크라이나 같은 격전장으로 만들려고 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에 이어 대만에서 일촉즉발의 전쟁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대만에서의 전쟁 발발은 곧바로 한반도를 전쟁의 참화로 만든다.

한반도에서 전쟁은 이제 언제 터져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 되었다. 전쟁 반대 요구는 이제 명목적인 요구가 아니라 그 어느 때보다도 절박한 요구가 되었다. 미제국주의는 우크라이나에서뿐만 아니라 대만과 한반도에서 위기 고조와 전쟁책동의 원흉이다. 역사적 사실을 어떻게 은폐하고 누구에게 전가하든 상관없이, 미제는 언제, 어디서나 평화를 파괴하는 도발자였고 침략자였다.

저들의 비열하고 전도된 말들을 사실에 부합하게 되돌려주자.

노동의 가치는 한미동맹을 반대해야만 찾을 수 있다!

윤석열 정권과 국민의힘이 죽어야 이 나라가 살고 청년들이 산다!

노동자들은 더 높은 계급의식과 역사의식으로 무장해야 한다.

더 대담하고 확고하게 정치투쟁에 나서야 한다.

노동자들이 더 치열하게 반미투쟁에 나서야 한다. 반미를 내걸고 총파업을 전개하는 수준으로 더 나아가야 한다.

비열하고 파렴치한 권력을 분쇄해야 한다.

이 체제의 모순을 척결하고 “노동자계급의 완전한 해방이라는 원대한 목적”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노/정/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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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노동자정치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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