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전쟁 박물관을 방문하며

김남기(《반공주의가 외면하는 미국역사의 진실》 저자)

 

수많은 서양 관광객들이 들리는 베트남 전쟁 박물관을 들렸다. 베트남 관광 코스로 호치민시를 들리게 된다면, 이곳 또한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사실 베트남 전쟁은 미국 내에서도 널리 알려진 전쟁이다. 무엇보다 매우 비판적인 입장에서 해석되는 전쟁이라고 해도 될 것이다. 예를 들면 미국 헐리우드 영화 중에 유명한 작품인 <플래툰>이나 <7월 4일생> 그리고 <지옥의 묵시록>이나 <풀 메탈 자켓>등은 철저히 반전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무엇보다 이 전쟁은 미국이 완벽히 패배한 전쟁이었다. 정치적으로나 명분에서도 미국은 이 전쟁에서 정당성을 완벽히 잃어버렸다. 미국 네오콘으로서 이라크 침공에 기여한 콜린 파월은 본인이 베트남 전쟁 참전용사임에도 불구하고, 베트남 전쟁이 명분이 없다고 지적했다. 존 F. 케네디 정부 하에서 이 전쟁을 계획했던 로버트 맥나마라 또한 마찬가지다. 맥나마라 또한 이 전쟁이 미국의 실수였음을 인정했다.

미국이 이 전쟁에서 명분을 잃은 데에는 아마 미국이 자행한 수많은 잔혹행위들과 정통성 없는 세력을 지원했기 때문일 것이다. 1971년 대니얼 엘스버그에 의해 공개된 펜타곤 페이퍼에 따르면 미국은 1945년부터 베트남 문제에 개입했다. 미국은 베트남의 독립운동가 호치민이 이끄는 베트민이 대중적 지지를 확보했음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미노 이론에 따라 식민지를 유지하려고 했던 프랑스와 그들의 하수인을 지원했다.

1946년에 일어난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에서 미국은 프랑스의 전쟁 비용 80%를 대신 부담했다. 사실상 군대만 보내지 않았을 뿐, 미국이 전쟁을 치른 셈이다. 1954년 디엔비엔푸 전투에서 프랑스군이 패배할 기미가 보이자, 미국은 진지하게 원자폭탄 사용을 고려했었고, 실제로 CIA 요원들을 민간업자로 위장시켜 프랑스에게 물자를 지원했다.

1954년 제네바 협정 이후 미국은 남베트남에 응오딘지엠이라는 친미 반공주의자를 내세워 분단을 획책했고, 응오딘지엠 정부가 과거 독립운동하던 베트민을 소탕하고 학살하도록 도왔다. 존 F. 케네디가 지원한 미군사고문단은 그러한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이렇게도 해결이 되지 않자, 미국은 1964년 통킹만 사건을 조작하여 베트남 전쟁에 적극적으로 개입했다.

1964년부터 1972년까지 대략 8년간 북베트남을 무차별 폭격했고, 라오스와 캄보디아도 폭격했으며, 남베트남에서도 베트콩으로 의심되는 민간인들을 폭격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더 나아가 인체에 심각하게 해로운 맹독성 고엽제를 남베트남 밀림에 마구잡이로 뿌려 천인공노할 전쟁범죄를 자행했다. 나는 미국의 이러한 행위가 나치의 학살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며, 노엄 촘스키의 말대로 뉘른베르크법을 적용한다면 미국의 정치 지도부는 전범으로 규정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오늘 베트남 전쟁 박물관에서 내가 본 사진들은 두 눈을 뜨고 보기 힘들 정도로 참혹한 것들이었다. 누군가의 상상으로 인해서 작위적으로 만들어진 그림이 아닌, 사실상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사진 자료들이 대다수였다.

1968년 3월 16일 30명의 미군은 4시간 동안 꽝응아이성에 손미와 미케에서 504명의 민간인을 M-16 소총과 M-60 기관총으로 무차별 학살했다. 이런 끔찍한 학살은 사실 베트남 전쟁 당시 남베트남 전역에서 미군이 자행하던 짓이다. 심지어 미라이 학살을 은폐했던 미군의 한 인사는 대부분의 미군이 “크고 작은 미라이를 숨겨놓고 있다”고 언급했을 정도다.

따라서 미라이 학살은 단순히 미군의 유일한 학살이라고 볼 수 없다. 소위 자유사격지대에서는 이러한 학살들이 빈번히 일어났다. 살아있는 생명체는 죄다 베트콩으로 간주하고 학살했을 정도다. 이러한 학살은 한국군이나 남베트남군 또한 적잖게 자행했으며, 미국을 위시한 연합국 세력들은 민간인에게 테러를 가해놓고도 전부다 북베트남과 베트콩 탓으로 돌리기 바빴다.

고엽제로 인한 피해와 폭격으로 인한 피해는 상상을 초월한다. 베트남 전쟁으로 300~500만 명이 죽었는데, 이들 중 200~400만 명은 민간인이고 100~150만 명은 군인이다. 거기다 민간인과 베트콩의 구분같은 건 전혀 없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미군은 베트콩으로 의심되는 민간인이 보이면 헬기와 전투기로 기총소사를 해도 됐고, 미사일이나 폭탄을 민간인에게 사용해도 문제가 되질 않았다.

폭격으로 화상을 입거나 사지가 찢겨나간 이들의 사진은 너무나 참혹했다. 닿기만 해도 불태우는 네이팜탄은 민간인의 피해가 급격히 증가한 결정적인 이유이기도 했다. 고엽제의 피해는 아군과 적군을 가리지 않았다. 고엽제로 인해 베트남에선 무수히 많은 기형아가 태어났고, 또 사망했다. 대략 500만 명의 베트남 민간인이 고엽제에 피폭됐고, 이 중 수십만 명이 사망했다. 고엽제 피폭으로 태어난 아이들은 몸의 어딘가가 기형인 애들이 대다수였다. 이런 짓을 한 미국에게 전쟁의 정당성을 찾기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 만큼 힘들 것이다.

전쟁 박물관을 둘러보며 느낀 것이지만, 전쟁 박물관 관광객 대다수는 서양인들이었다. 나 또한 베트남 친구와 이 곳을 들리며 적잖은 서양인들이 미라이 학살의 참상을 보고 눈물 흘리는 모습을 직접 봤다. 호치민시에 있는 전쟁 박물관을 적잖은 서양인들이 찾는다는 것은 “서구사회가 베트남 전쟁을 어떻게 인식하는지 잘 보여주는 척도”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점들이 좋게 보이지만은 않는다. 왜냐하면 베트남 전쟁과 비슷한 일이 벌어졌던 한국전쟁에 대해선 이러한 태도를 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한국전쟁에서 미국과 한국이 자행한 학살과 잔혹행위는 베트남 전쟁과 크게 차이가 나질 않는다. 아니 전쟁 3년 동안 저지른 행위기 때문에 어쩌면 베트남 전쟁보다 더 잔인한 전쟁이었다는 평가도 가능하다. 아무튼 호치민시에 있는 베트남 전쟁 박물관은 나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베트남 호치민시에 방문한다면 이곳을 방문하길 추천한다. 노/정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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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협

전국노동자정치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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