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사 2] 민족과 계급이라는 그 절절한 언어들…

은 영 지(사드 저지 평화활동가)

 

성주 소성리 주민들은 미국이 배치한 사드 때문에 7년째 고통받고 있다. 헌법이 보장하는 인간다운 삶과 행복추구권을 빼앗긴 채 미제국주의의 지시를 받은 이 나라 국방부와 경찰들이 일상적으로 침탈을 하며 사드 기지 완성과 미군의 육상통행을 위한 군사작전을 벌이고 있다. 지난해에 이어 수백에서 수천 명의 경찰이 일주일에 세 번씩 밀고 들어와 100번도 넘는 침탈을 하여, 주민들은 극심한 불안과 두려움에 떨고 있다.

사드 철거와 반미투쟁을 하기 전에는 내게 보내는 민족주의자라는 프레임이 썩 달갑지 않았다. 우리민족을 유구한 역사를 가진 단일민족이라고 떠벌리면서 국가주의, 애국주의를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세뇌당한 나로서는 민족과 민족주의라는 표현이 민족이기주의나 국수주의로 인식될 때가 많았다. ‘민족’보다는 착취당하는 노동자계급이 해방되는 사회주의 혁명이 우선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77년이라는 기나긴 세월을 분단의 아픔을 간직한 채 곳곳이 미군 부대로 점령당하고 있고, 전시작전권도 없는 데다 위정자라는 한심한 작자들은 미제 총독 노릇에 급급한 이 나라 정치판을 보면서 누구나 그렇듯 식민지 백성의 서러움이 오늘날의 고통으로 와 닿았다. 세계 패권 놀음을 위해 미국이 소성리에서 자행하는 폭압적인 사드 기지 완성 작업은 주권을 빼앗긴 이 땅의 민족문제가 고스란히 들어있었다.

“민족이 우선인가?” “계급이 우선인가?” “민족운동, 민족주의, 그리고 계급모순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 것인가?” “민족운동이 변증법적 역사 발전 법칙에 맞는 투쟁인가?” 고민하는 내게 《민족과 계급》은 명쾌한 답변을 주었다. 부르주아 민족주의와 저항적 민족주의에 대한 역사도 꼼꼼하게 정리돼 있어 민족주의에 대한 분명한 방향성을 알 수 있었다.

이 책에서 공감하며 읽은 내용이 셀 수 없이 많았다. 한국의 재벌은 해외자본과 대립·경쟁하면서도 국내 노동자들을 착취하는 데서는 공동의 이해를 가진 착취의 동반자였다. 1871년 파리 코뮌과 1894년 갑오농민운동, 그리고 부르주아들이 외세 제국주의에 종속·결탁해 이북(조선)을 적대시하고 분단을 영속화하고 민족을 배반한 반동을 예로 들며 “노동자의 운명과 민족의 운명은 하나”라는 저자의 주장에 동의했다.

한국사회 내 운동의 심각한 문제는 두 가지 대척점이었다. 내부의 계급모순을 타파하는 문제가 더 시급한 과제가 되면서 민족문제를 무시하는 쪽이 있는가 하면, 분단문제의 해결이 우선이라며 자본가계급과 권력에 대한 투쟁을 소홀히 하는 부류(자주파)도 있다. “우리사회 좌파는 계급을 중시하되 민족을 경시하고, 자주파는 민족을 중시하되 계급을 경시한다. 이 편향을 극복해야 한다.”라고 하는 목소리가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정말 어이가 없는 건 보수든 자유주의 세력이든 누가 권력을 잡더라도 반공·반북주의법인 국가보안법을 신줏단지처럼 지키며 북을 악마화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남한 노동자와 민중계급을 통제·억압하고 자본주의 지배와 착취를 공고히 하는 수단으로 악용하고 있는 현실이다. 그럼에도 한국의 진보운동은 90년대 전후 동유럽과 소련 사회주의가 무너지고, 남아있는 사회주의 국가들이 미제국주의의 야비한 술책으로 겪는 어려움을 외면하고, 맑스주의 위기 운운하며 청산주의가 지배적 조류가 되었다.

우익청산주의 대물결이 휩쓸고 간 뒤 트로츠키주의라는 좌익청산주의의 소물결이 밀려왔다고 했다. 트로츠키주의는 소련과 조선, 쿠바와 같은 현실사회주의를 타도해야 할 국가자본주의나 타락한 노동자국가로 인식하고 전면 부정하여 범무정부주의에 동조하는 소아병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좌익청산주의는 “현실사회주의는 이상에 불과하고 실현 불가능하다.”라는 인식으로 자본주의와 제국주의에 동조하는 우를 범하고 있었다.

미국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천박한 모습을 보이는 남한의 자본주의 체제에서 착취와 소외, 부의 양극화, 산재사고, 비정규직 확산 등 노동 지옥의 모습은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들 정도이다. 맑스-레닌주의를 투쟁의 교과서로 삼는 계급투쟁이 아니고선 이 질곡을 깨기 힘들다고 본다. 엥겔스는 경제투쟁, 정치투쟁과 더불어 이데올로기 투쟁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레닌은 이를 바탕으로 “혁명적 이론 없이 혁명적 운동도 없다.”라고 강조했다. 이 책은 그들의 빛나는 주장과 선언을 만나는 즐거움도 주었다.

이 책은 맑스주의와 조선의 주체사상 등 사상 분석도 돋보였고, 미국이 전 세계에서 벌이는 제국주의 침략의 실상들; 예를 들어 아프가니스탄 사태, 쿠바 반혁명 시위를 배후 조종하는 행태들, 우크라이나 사태 등 미국이 저지른 과거와 현재의 진실들과 마주하게 되었다. 분노를 안고 바쁘게 현장을 뛰어다닐 줄만 알았지, 과학적인 이론과 전망이 부족한 ‘나’였다. 맑스주의의 해박한 이론을 기반으로 자본주의 이남과 미제국주의 문제를 분석한 이 책은 투쟁과 실천의 지침서가 되기에 손색이 없었다. 무엇보다 민족과 계급문제에 대한 나의 표피적인 사고를 바로잡는 계기가 되었다. 곁에 두고 읽을 스승 같은 책이다. 다들 읽어보시길 권한다! 노/정/협

이 기사를 총 110번 보았습니다.

노정협

전국노동자정치협회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