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의 학살현장 노근리 평화공원을 들아보며

김남기(《반공주의가 외면하는 미국역사의 진실》 저자)

 

한국전쟁을 바라보는 대다수 한국인들의 시각은 어떨까? 반공주의적 시각에서 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한국전쟁 72주년이던 지난 6월 25일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백선엽 장군님 영전에 삼가 머리 숙여 명복을 빕니다.”라는 백선엽 2주기 추모사를 올렸다. 안철수의 페이스북 글을 보면, 백선엽이 다부동 전투에서 북한군의 총공세를 막아내어 현재 대한민국이 존재할 수 있었다는 말 그대로 궤변에 가까운 내용들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안철수의 ‘백선엽 장군 서거 2기 추모사’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대다수 한국인들이 인식하는 한국전쟁이란 그저 “대한민국과 미국을 위시한 자유우방 국가들이 북한 공산군의 침략으로부터 민주주의를 수호한 전쟁”일 것이다.(안철수, <페이스북 글>, 2022.06.25.) https://www.facebook.com/ahncs111/posts/pfbid02R6e7KgwM3HndWDxJWg5zqjWJDVqZXV682uUtFD3qNDDZV34iJYpYB3BAV7b6UNpel)
일제시절 간도 특설대에 근무하며, 친일매국행위를 했던 백선엽이 한국 사회에서 아직도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는 현실은 한국사회가 아직도 한국전쟁을 바라보는 시각에서 반공주의를 전혀 벗어 던지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한국 사회는 친일파 백선엽 뿐만 아니라 미제국주의자인 더글라스 맥아더도 열렬히 찬양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 시기이던 2016년 현재 국민의힘이라 할 수 있는 새누리당은 역사를 왜곡한 반공영화 <인천상륙작전>을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영화 인천상륙작전은 제국주의자 더글라스 맥아더와 제주4.3항쟁에서 무수히 많은 민간인을 학살한 서북청년단을 미화한 영화다. 그러나 소위 한국의 보수라는 이들에겐 그러한 역사적 사실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무려 2016년에 반공주의 영화가 개봉하여 710만 명에 달하는 한국인이 감상하는 웃지 못 할 비극이 일어난 것이다.
더글라스 맥아더의 아버지는 미서전쟁 이후 벌어진 필리핀 전쟁에 사령관으로 참전한 인물이다. 미국은 필리핀을 식민지화하는 과정에서 대략 100만 명에 달하는 필리핀인을 학살했다. 1900년 중반 무렵 필리핀에는 아서 맥아더 사령관이 이끄는 7만 명의 미군이 주둔하고 있었고, 그의 아들 더글라스 맥아더도 이 인종주의적이고 제국주의적인 전쟁에 참전했다. 소위 한국에서 인천 자유공원에 동상까지 세운 맥아더라는 인물은 바로 이러한 제국주의적 환경에서 자란 미제국주의자였다.(김남기, 《반공주의가 외면하는 미국역사의 진실》, 어깨걸고, 2021, 104~107쪽을 참조)

맥아더 포고령에는 미군이 “점령군”으로 이 땅을 강점했다는 것을 명시하고 있다.

이러한 인물이 1945년 해방 이후 소위 맥아더 포고령을 발포하여 한반도 이남을 점령했고, 한국전쟁 초기 유엔군 총사령관으로 있었으며, 1945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켰다. 이러한 사실을 보더라도 한국전쟁 시기 소위 자유우방이라고 불리던 존재는 구식민주의적 잔재를 신식민주의화 시킨 존재였을 뿐이다.
한국전쟁에서의 미군의 군사개입은 즉각적이었다. 1950년 6월 29일 더글라스 맥아더(Douglas MacArthur)는 일본 도쿄를 떠나 비행기를 통해 전선을 둘러본 뒤, 수원에 도착하여 이승만과 회담했으며, 7월 2일에는 미군을 중심으로 한 첫 유엔군 지상부대가 부산에 상륙했다. 스미스(Charles B. Smith) 중령이 지휘하는 제24 보병 사단 1개 대대가 남하하는 북한군을 저지하기 위해 오산으로 보내졌으며, 이들은 소련제 탱크를 앞세운 인민군과 첫 전투를 치렀다. 놀랍게도 인민군은 이들을 격퇴시켰으며, 1950년 8월 이른바 낙동강 전선이 형성될 때까지, 미군은 인민군의 진격에 밀려 후퇴를 거듭했다.(김남기, <한국전쟁 초기 미국의 전쟁 개입사>, 전국노동자정치협회, 2020.06.25. 기사 참조 http://mlkorea.org/v3/?p=9593&fbclid=IwAR1IEIW_antZGrr4VYPnuSVzun6LPcWTRpV055NBuVxl9r1bpnGR2IpUwDE)
1950년 7월 미군은 후퇴하는 과정에서 민간인을 학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그 학살이 바로 노근리 학살이다. 미군은 1950년 7월 26일 오후 3시부터 29일 새벽까지 무려 60시간 동안 400명의 민간인을 학살했다. 미군은 마을주민들을 피난시킨다고 하며, 철도를 따라 이동 중이던 피난민들에게 전투기 폭격 및 기총소사를 자행했다. 도망친 민간인들은 쌍굴다리 밑으로 숨게 되었는데, 미군들은 사방에서 50구경 기관총을 갈겨 민간인을 학살했다. 학살당한 대다수의 민간인은 여성과 노인 그리고 아이들이었다.

노근리 주민들이 학살현장에서 희생자 위령제를 지내고 있다.

1999년 MBC에서 방영했던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노근리 편을 보면, 당시 참전했던 미군 참전용사들은 “인민군의 탱크 진격이 얼마 남지 않았고, 또 그런 소식을 들었다.”고 증언했고, “인민군이 있다는 정보를 들었다.”고 증언했는데, 이는 궤변이었다. 당시 학살에서 살아남은 피해자들은 “인민군은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노근리 학살은 미군의 명백한 의도적인 학살인 것이다.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군은 죄 없는 민간인들을 베트콩으로 몰아 학살하는 만행을 일상적으로 저질렀다. 1968년 3월 16일 미군 30명이 베트남 민간인 504명을 학살했던 미라이 학살은 공론화된 학살이었을 뿐, 베트남 전쟁 내내 크고 작은 미라이 학살은 남베트남 전역에서 일어났다. 실제로 미라이 학살을 은폐한 죄목으로 기소당한 오렌 핸더슨 대령은 1971년 초 기자들에게 “여단 정도 크기의 모든 미군 부대는 어딘가에 각자의 미라이를 숨겨두고 있다”고 고백했다. 물론 미군 측은 그때까지 미라이 학살 같이 분명한 증거가 없는 사살은 ‘게릴라에 협조한 민간인을 처벌했다’고 궤변을 늘어놓았지만 말이다.(송필경, 《왜 호찌민인가?》, 에녹스, 2013, 16쪽)
비슷한 현장이 과거 한국전쟁에서도 일어났다. 한국전쟁 당시 전투에 투입된 미군들은 “하얀 옷을 입은 민간인은 인민군이다.”라는 말을 들었으며, 실제로 당시 미군 안에는 인종주의에 기반한 오리엔탈리즘이 있었다. 따라서 인종주의적인 이데올로기가 퍼져있는 미군들이 한국전쟁 당시 민간인들을 어떻게 대했을지는 분명하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미군에 의한 학살이 벌어졌던 것이고, 노근리 학살도 그러한 비극 중 일부이다. 사실 나는 한국전쟁 72주년을 맞았던 지난 25일 노근리를 처음 방문한 것은 아니었다. 2021년 2월과 9월에 방문했었다.
첫 방문할 당시, 친구인 미국 녹색당 당원 오스틴 배쇼어(Austin Bashore, 한국 이름 배진태)와 함께 방문했지만, 이번 방문에도 배쇼어와 함께 했다. 항상 남북의 통일문제와 미군 문제 등에 관심을 가진 친구라, 노근리 방문은 여러모로 의미가 있었다. 이번 방문에서는 배쇼어가 관련 동영상을 만들 수 있도록 영상 촬영을 도와줬다. 여름이라 정말 더웠지만, 나도 친구도 의미 있는 일을 한 것이기에 큰 보람을 느꼈다. 같은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는 동지가 노근리 학살 관련 영어 영상을 만들어 포스팅 해주니 나로서는 정말 기쁘고 감사하다. 미국인이 이러한 역사를 알고자 하며, 조명하려는 것이 나로써는 같은 뜻을 가진 동지로써 항상 응원할 따름이다.(Green Party, <페이스북 동영상>, 2022.06.26. https://www.facebook.com/GreenPartyUS/videos/3260315227515908/)
또한 이번에는 지난 코로나 시국으로 들어가지 못했던 노근리 박물관에 들어가 볼 수 있었다. 제법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전시된 것들 중에는 당시 노근리의 상황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 있었다. 그림에는 미군의 전투기가 기총소사와 폭탄을 투하하여, 민간인들이 어떻게 희생됐는지를 아주 적나라하게 표현했고, 쌍굴다리에서의 비극적인 죽음도 보다보면 가슴이 아플 정도로 아주 직설적으로 표현했다.

노근리 학살 현장을 방문하면, 가장 가슴이 아픈 사실이 있다. 그것은 바로 이 피해자들이 반공주의 사회에서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전 사회의 극단적 반공주의화는 과거 한국이나 미국이 남한에서 자행한 과오나 만행에 대해 입을 다물게 만들었다. 제주 4.3이나 여순사건 그리고 보도연맹 학살 사건 피해자들의 유족들이 유족회를 결성하여 활동했듯이, 1960년 4.19 혁명 이후 노근리의 유족들은 미군에게 이러한 사건의 조사와 진상규명을 요청하는 활동을 전개했다. 그러나 1961년 5.16쿠데타로 박정희 정부가 들어서면서 노근리 학살 피해자들은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사회에서 미군에 의한 학살을 얘기하는 것은 빨갱이고 공산당이었기 때문이다. 노근리 학살의 유족들처럼 한국의 극단적인 반공주의는 수많은 피해자들을 침묵하게 만들었다. 나는 이것을 ‘반공주의의 침묵’이라 표현하고 싶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이 전 사회 영역에 뿌리를 심어놓은 극단적 반공주의의 망령은 아직도 한국사회 전체를 지배하고 있다. 특히 한국전쟁이라는 영역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앞에서 언급한 안철수처럼 한국 사회나 정치인들은 친일을 하고 수많은 민간인을 학살한 백선엽이나 제국주의자 맥아더는 찬양하기 바쁘지만, 정작 미제국주의가 저지른 노근리 학살에 대해선 침묵하거나 외면하려는 태도를 보인다. 이러한 반공주의의 영역은 2022년 6월 25일 노근리 평화공원에서도 직감할 수 있었다. 정부와 언론에서는 6.25전쟁 참전용사들과 유엔군의 희생을 언급하고 있고,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언급하고 있지만, 정작 제국주의자들이 자행한 학살은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날 노근리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관람객으로는 사실상 나와 미국인 친구 배쇼어 뿐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그리고 우리 사회는 한국전쟁에 대한 기억을 과연 올바르게 하고 있는 것일까? 이번에 노근리 평화공원을 들리며, 이러한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얘기하자면, 노근리 학살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미국은 한국전쟁에서 적잖은 민간인을 학살했다. 노근리 학살뿐만 아니라 한국전쟁 기간 동안 미군에 의해 자행된 크고 작은 학살과 범죄가 일어났다. 특히나 미국의 폭격학살은 상상을 초월하는 민간인 대학살이었다. 따라서 한국전쟁 당시 미국이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싸웠다는 것은 허구일 뿐이며, 노근리 학살은 이를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건인 것이다. 앞으로는 노근리 학살과 같은 미국의 만행을 알고 공부해야 한다. 노/정/협

《민족과 계급》

알라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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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이런 역사적 과정에서 맑스-레닌주의자가 변혁과 통일운동에 복무하는 모든 이들에게 던지는 화두와 같은 책이다. 형식에서는 특정 인물과 단체에서 세상에 내놓은 논평과 입장에 대한 비판을 취하고 있으나, 내용에서는 기간 한국사회 진보진영 내에서 갈등과 분열을 낳았던 계급문제와 민족문제, 현실사회주의에 대한 관점과 입장, 그 가운데 북에 대한 관점과 입장을 날카롭게 분석하고 올바른 방향이 무엇인지 제시한다. 변혁과 통일운동에 있어서 일면적 정세 인식을 극복하고 좌·우경적 편향을 극복할 것을 주문한다.

제국주의가 전 세계 도처에서 벌여놓은 야만적 행위에 대해 맑스-레닌주의의 원칙에 입각하고, 사건의 본질과 역사성을 염두에 두어 파악하지 않는다면, 결국 제국주의가 조성한 악선전에 동조 또는 놀아나게 될 뿐이라는 것을 경고한다. 또한, 현실사회주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정세관점이 도달하는 종착역은 [제국주의자들의 이해에 복무], [제국주의의 벗] 이라는 점을 강조한다.(추천사 중에서)

예스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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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종횡무진 혁명을 향해 전진하는 기관차입니다. ‘진리’의 깃발을 펄럭이며 사방팔방 펼쳐진 논쟁의 난바다를 거침없이 항해하는 논객을 마주하는 기쁨이 큽니다. 그의 글은 마치 꽁꽁 언 북극해를 자유자재로 가로지르는 쇄빙선(碎氷船)처럼 강력한 엔진을 장착했습니다. 함께 탑승한 맑스, 엥겔스, 레닌 등 위대한 사회주의 창시자들이 가리키는 혁명의 나침반이, 자본주의 체제를 넘어서는 합법칙적 경로와 필연이 글 속에 혁명적 낙관주의를 생산합니다.

저자의 노동자계급으로서의 탐구와 새로운 시각은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창을 제공합니다. 유물론과 과학적 사회주의를 향한 저자의 ‘개방적 성취’가 우리에게 엄중한 시각 교정을 요청하고 있으며, 그의 정치경제학이 새로운 세상의 자장 안에서 자유롭게 춤을 춥니다.(추천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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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협

전국노동자정치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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