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전쟁 패전의 의미

김남기(학생)

 

광복절 76주년이던 8월 15일 세상을 놀라게 할 사건이 일어났다. 2001년에 미국의 침공으로 시작된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미국에 저항하던 아프간 탈레반의 승리로 끝났기 때문이다. 8월 15일 탈레반은 아프가니스탄의 수도 카불(Kabul)에 입성했고, 이에 따라 현 아프가니스탄 정부는 탈레반에게 항복을 선언했다. 아프가니스탄 대통령이었던 아슈라프 가니는 타자키스탄을 거쳐 오만으로 망명했다. 대다수의 미군이 철수한 시점에서 탈레반은 신속하게 아프가니스탄 정부군의 거점에 대대적인 공격을 가했고,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물론 베트남 전쟁 때와는 달리 탈레반이 수도 카불을 접수했음에도 불구하고 소수의 미군이 아프가니스탄에 있는 상태지만, 금괴 2톤을 들고 대만을 거쳐 미국으로 망명했던 응우옌반티에우(Nguyễn Văn Thiệu)의 사례나, 베트콩과 북베트남군이 남베트남의 수도 사이공을 접수하여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던 역사나, 패망한 아프가니스탄 정부가 부정부패가 극에 달했던 정권이었던 사실을 생각하면, 과거 미국이 치렀던 베트남 전쟁(Vietnam War)과 오버랩 되는 측면이 분명 존재한다.

많은 사람들이 잘 모르는 사실이지만,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전쟁 개입은 엄밀히 따지자면 1970년대 후반에서 198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할 수 있다. 1979년 이른바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을 당시 미국은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환영했다. 이에 따라 1980년대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 정권은 CIA를 통해 스팅어 미사일이나 RPG(휴대용 대전차 로켓) 그리고 AK-47과 같은 소총을 탈레반의 전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무자헤딘에게 지원했다. 1979년 소련이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나섰던 이유 중 하나는 아프가니스탄에 사회주의 정권이 들어선 이후 극단적인 이슬람 세력이 반발하자 좌파세력을 지지하기 위해 군대를 보낸 것이었다. 아이러니 하게도 이 전쟁의 양상은 미국이 베트남 전쟁에서 치렀던 게릴라전의 양상이 되면서 소련군 또한 고전을 면치 못하며 적잖은 사상자와 전쟁비용을 낸 채 침공 10년 만인 1989년에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 당시 미국의 레이건 정부는 무자헤딘들에게 막강한 무장력을 제공했었는데, 이 무자헤딘 세력들 중에는 타국에서 온 이슬람 세력이나 단체들도 있었고, 이 중 하나가 바로 9.11 테러의 주범 오사마 빈라덴(Osama Bin Laden)이었다는 사실은 생각보다 알려져 있지 않다. 소련군이 철군한 이후 아프가니스탄은 이른바 내전에 휩싸였고, 여기서 등장한 것이 이번에 아프가니스탄에서 정권을 잡은 탈레반(Taliban)이었다. 냉전이 끝난 이후 이들은 세계 유일의 패권국가로 등극한 미국에 반발했으며, 2001년 9.11테러 이후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면서 완전히 적으로 변모했다.

미국은 9.11테러 3주후인 2001년 10월 7일에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다. 당시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을 침략할 때, 내세운 명분은 크게 나눠 두 가지다. 첫 번째는 9.11 테러를 일으킨 알카에다가 아프가니스탄에 있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여성 억압적이고 비민주적인 국가라는 것이었다. 물론 이것은 미국이 표면적으로 내세운 명분이었지, 아프가니스탄에 개입한 진정한 목적은 아니었다.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 개입한 진정한 이유는 중국과 러시아 그리고 중동 사이의 패권경쟁에서 헤게모니를 장악하기 위함이었다는 것이 보다 현실적인 시각일 것이다. 미국의 초기 아프가니스탄 침공은 성공적이었고, 미국이 승리하는 것처럼 비추어졌다.

아프가니스탄 전쟁 초기의 전황은 미국에게 유리하게 전개되는 것 같았지만, 과거 베트남 전쟁처럼 미국은 다시 한 번 아프가니스탄이라는 전쟁의 수렁에 깊은 발을 담게 됐다. 특히나 2003년 이라크를 침공하면서, 대다수의 병력이 이라크 침공에 동원됐다. 미국은 이라크를 침공하여 후세인을 처형시키는 과정에서 아프가니스탄 문제를 등한시했다. 거기다 부시 정부와 오바마 정부 때는 이른바 알카에다나 탈레반을 소탕한다는 목적으로 드론 공격을 실행하게 되면서 다수의 민간인 사상자가 발생했다. 물론 아프가니스탄 전쟁 발발 몇 개월 동안 2만 명의 아프가니스탄 민간인이 사망했지만, 이 드론 공격 또한 최소 수천 명에서 수만 명에 달하는 민간인들이 죽거나 부상당하게 만들었다.

당시 오바마 정부는 2014년까지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을 철군시키겠다고 주장했으나, 결코 실천하지 않았다. 오히려 2010년에는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 병력이 더 증가했다. 2010년에만 10만 명에 달하는 미군이 주둔했고, 최소 500명의 미군이 2010년에 전사했다. 오바마는 아프가니스탄에서 철군하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한 채 8,400명의 미군을 주둔시켜 놓고, 아프가니스탄 문제를 2017년 집권한 트럼프 행정부에게 넘겼다. 트럼프 행정부는 중간에 몇 천 명을 더 파병하여 아프가니스탄에 1만 3,000명을 주둔시키기도 했지만, 2020년 초에 이른바 ‘도하합의’를 성사시켜, 대다수의 미군 병력을 철수시켰다. 철군은 COVID-19가 창궐하는 동안 진행되었으며,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섰을 땐, 미군 병력은 대략 3,000명 정도까지 축소되어 있었다.

이런 시점에서 미군이 철군 수순을 밟게 되자 올해 6월부터 탈레반은 아프가니스탄 지역에서 공격을 가했고, 아프가니스탄 영토의 70%를 접수했다.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으로 탄생한 아프가니스탄 정부의 군대는 과거 남베트남군이 그랬던 것처럼, 속수무책으로 패주하고 무너져 내렸다. 이를 시점으로 탈레반은 공세를 강화하여 아프가니스탄에 있는 여러 지역들을 접수하고 8월에는 대도시를 포함하여 아프가니스탄 대다수 지역을 접수했고, 8월 13일에 수도 카불 50km 반경까지 진격했다. 이 과정에서 탈레반이 많은 사상자를 낸 것으로 추정하지만,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갔다는 점에서 역사적인 장면이었다. 이에 따라 2일 뒤인 15일에는 카불에 진입하여 현 아프가니스탄 정부로부터 공식적인 항복을 받아냈다. 이로써 20년간 전개된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이 끝이 났고, 아프가니스탄 40년 전쟁(소련 침공까지 포함한 숫자)도 끝난 것으로 보인다.

 사진 설명: 미군의 급작스러운 아프간 철군과 탈레반의 권력 탈환으로 미국에 협력했던 아프칸 현지 협력자들이 보복에 대한 공포심으로 카불 공항에서 철수하는 미국 수송기에  탑승하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미군은 이들 일부에게 총질을 하고, 심지어 고도를 높이며 비행하는 수송기에 매달려 있다가 추락사한 이들도 있었다.

이번의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탈레반의 승리로 끝난 점은 당연히 역사적인 일이며,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무엇보다 미국의 침략에 맞서 싸워 승리를 쟁취했다는 점에서 새로운 역사를 쓴 것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전쟁사적인 측면에서 미국의 군사력이 다소 언론에 의해 과장된 측면이 있었음이 드러났다. 물론 이러한 점에 있어서 큰 의의가 있고 높게 평가해야 한다. 미제국주의 축출이라는 점에서 좌파들은 환영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세력이 좌파 세력인 것처럼 착각해서는 안 될 것이다. 탈레반의 전신인 무자헤딘은 소련과 사회주의 세력의 진보성에 반발하여 분쟁을 일으켰던 주체다. 거기다 이들은 과거 소련에 맞서 레이건의 제국주의적인 지원을 받았던 세력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전근대적인 여성관과 세계관을 가지고 있기에, 과거 진보적인 강령을 내세웠던 베트콩과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 과거 베트남 전쟁 시기 미국에 맞서 투쟁했던 베트콩은 엄밀히 좌파세력이었지만, 탈레반의 조직적 성격은 반소주의를 이어 반미주의 그리고 극단적 이슬람주의까지 포함한 반공주의의 틀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즉 이런 점에서 작년에 이란 사태 때 생겼던 딜레마가 좌파들 입장에서는 아프가니스탄에서도 있을 수밖에 없다.

이러한 지점들을 당연히 경계해야 하며, 그 이후에 좌파들이 어떻게 활동을 해야 할지 고민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물론 이번의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미국의 제국주의 침략을 무찌르고 전쟁을 승리로 이끈 것은 당연히 역사적인 일로써 분명 긍정적으로 평가해야 할 것이다. 일각에서는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접수하는 과정에서 잔혹행위를 저지른 것에 대해 얘기할 것이다. 그러한 주장에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탈레반 내부에서 보복이나 학살 폭력행위가 있는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본질적으로 핵심을 빼놓을 수 있는 경향이 있다. 그 핵심은 바로 폭력의 측정에 있어 과거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저지른 행위가 훨씬 더 심각하다는 점과 그러한 서방이나 국내의 언론 보도가 다소 편향적이라는 점이다. 예를 들면 탈레반이 반격하여 아프가니스탄 전역을 접수하는 기간 동안 서방과 국내 언론은 탈레반의 잔혹성이나 이를 피해 도망치는 난민들의 모습만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역으로 자신들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저지른 실수에 대해선, 되도록 언급을 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앞서 말한 것과 같이 전쟁 초기부터 지금까지 민간인 대다수의 희생은 미군의 막강한 화력에 의한 것이었다. 탈레반이 아프간 정부군을 상대로 공세를 가하던 시점에서 미군은 아프간 정부군에게 공중에서 화력지원을 했다. 이러한 화력지원은 필연적으로 민간인 희생자가 나오기 십상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의 민간인 희생에 대해선 별로 보도가 없다. 따라서 이러한 측면을 보았을 때, 탈레반의 일정부분 한계가 전쟁에서 승리하여 미국을 축출하였다는 점을 우위에 두어서는 안 된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과 베트남의 베트콩은 성질적으로 너무나도 다른 세력이다. 그러나 미국이 제국주의적으로 개입하여, 기만과 거짓 속에서 패배의 길을 걷게 되었다는 사실은 너무나도 유사하다. 1971년 대니얼 엘스버그가 자신의 상관인 로버트 맥나마라와 미국 정부의 반복되는 거짓말에 분노하여 폭로한 7,000페이지짜리 ‘펜타곤 페이퍼(The Pentagon Papers)’는 1945년부터 1967년까지 미국이 어떻게 베트남 전쟁을 일으켰는지, 그리고 그 전쟁이 미국의 승리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 다 담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2019년 말에 워싱턴 포스트에 의해 폭로된 2,000쪽짜리 ‘아프가니스탄 페이퍼(The Afghanistan Papers)’도 펜타곤 페이퍼와 같은 사실을 담고 있었다. 이러한 사실에서 미국의 침략전쟁이 얼마나 추악했는지를 보여주는 또 다른 이면일 것이다.

20년간 지속된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탈레반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이는 역사적인 일로써 깊이 환영한다. 이와 동시에 좌파들은 이 반공주의자들의 집권을 경계해야 한다. 그 이유는 이들이 집권한 이후 진보의 꿈이 무너질 것도 확실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한계점이 있다하더라도 지금은 이 승리에 대해 높게 평가하고 역사적인 사건으로 평가해야 할 것이다. 이번에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국이 패전하면서, 미국은 46년 전 베트남 전쟁 때의 기억을 오버랩했을 것이다. 비록 탈레반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패전은 전 세계적인 반미국가들이나 미국에 저항하는 세력에게 반미투쟁의 기치를 높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특히나 미국의 침략과 폭력행위로 반미정서가 심한 리비아나 이라크 그리고 시리아와 이란 등과 같은 나라에서도 미국의 제국주의적 개입을 더욱 파탄시키게 될 것이다.

아프가니스탄에서의 미제의 패배를 환영한다!

아프가니스탄에 평화가 찾아오기를 바라며! 노/정/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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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협

전국노동자정치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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