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센터 파업 및 직고용문제, 제대로 보지 못한다면 우리의 미래는 암울할 것이다(현장노동자회)

* 사진은 민중의소리

<공정성 요구가 사회적 쟁점이 되고 있다. 이는 이 사회에 불공정과 사회부조리가 만연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현상들이다. 그런데 이것이 급기야 직고용을 요구하며 투쟁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요구와 권리를 부정하는 공정성의 논리로까지 나아가며 노동자 내부를 분열시키는 사태를 초래하고 있다. 인천공항에서, 철도에서, 교사들 내부에서, 서울교통공사 등 사업장에서 이러한 갈등이 벌어지고 있다. 그런데 공정성의 문제는 사실은 계급 불평등의 문제가 본질이다. 나의 공정성이 타인의 불공정성이 되는 주관적인 잣대와 계급분열의 논리가 아니라 자본이 조장하는 계급불평등에 맞서 노동자단결과 평등의 기치로 투쟁해야 한다.

건강보험 현장노동자회 동지들의 허락을 얻어 이 성명을 싣는다.>

 

고객센터 파업에 대한 찬반 의견으로 우리 노조 게시판의 주장들이 극적으로 대립되어 있다.

고객센터 노동자들의 파업 주장에 찬성하는 쪽은 노동자 대단결과 평등의 원칙을 말하고, 반대하는 쪽은 현실과 공정한 절차를 이야기하여 논쟁은 쉽사리 결론에 도달할 수 있을 것 같지 않고, 우리 노조는 현재 그저 산술적 다수의 즉자적인 의견에 따라 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와중에, 고객센터의 파업은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각 연대 단위 및 시민사회단체 등 민주노조운동의 지지를 받고 있으며 고객센터 노동자 직고용에 대한 우리 노조의 매우 모호한 태도는 노조원들이 기득권을 확보한 정규직의 이기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한 결과라는 사회적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물론, 중요한 것은 외부의 평가가 아니라 우리의 권익이며, 우리 노동자들의 미래이다. 그리고 우리가 현실의 상황 속에 매몰되어 눈 앞에 보이는 작은 이해관계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 흐름을 이해하고 전체 숲을 보는 관점으로 노동자의 득실을 판단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이 미로를 결코 빠져나오지 못할 것이다.

그럼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부분부터 찬찬히 흐름을 짚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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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법이 된 불법

노무현 정권의 근로자파견법 등 비정규악법이 입법되기 전만 해도, 용역회사를 이용하여 간접고용으로 일을 시키는 것은 법에 단서화된 특수한 몇몇 직종을 제외하고는 “중간착취”로, 법적 처벌대상이었다. 그러나 정권과 자본은 단지 노동자들의 힘을 약화시켜 “비용”을 최소화하고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이를 합법화하는 법안을 만들어냈다.

민주노조들은 그래서 비정규악법이 국회에 통과되던 그 시간, 끝까지 국회앞에서 경찰과 대치하며 그 법의 통과를 막기 위해 싸웠지만 법은 만들어졌고 시행되었다.

이 법 통과후, 건강보험공단은 한동안 정규직을 신규채용하지 않았거나 극히 소수의 인원만 채용했다.
그동안 건강보험은 전화민원이 폭증하여 각 지사에서 전화방을 운영하였지만 직원의 부족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업무강도에 시달렸으며, 해마다 우리 노조의 주요한 요구는 인력확충이었다.

이러한 와중에 지난 2006년 직원 180명에 외주 하청인력 420명으로 고객센터가 만들어졌다.
정규직원의 증원 대신 업무 외주화가 이루어진 것이다. 처음 노조는 외주를 강력히 반대했으나 정부의 강력한 압박에 밀렸고, 나름대로 격심한 노동강도는 완화되지 않을까 하는 일부 기대속에 이 고객센터는 시행되었다.

한마디로, 고객센터의 업무는 공단의 업무이며, 공단 노동자들이 맡아야 할 업무가 외주화된 것이다.
당초 노조가 이 외주화를 반대했던 것은 이 외주화 비정규직화로 한 사업장의 노동자들이 분화된다면 이는 필연적으로 노동자의 힘의 약화, 또 이로 인해 전반적인 권익의 축소, 사회적 지위의 하락으로 귀결되고, 종국에는 외주, 비정규직의 끊임없는 확대 재생산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점을 간파했기 때문이었다.

단순히 생각해보자.

한 사업장에 내 임금의 절반만 받고 일하는 외주 인력이 들어와 같이 일을 하고 있다면, 그와 나는 단결할 수 있을까? 이전처럼 내 임금과 노동조건, 사회적 지위 향상을 요구할 수 있을까? 정부와 사측은 과연 이후 정규직과 외주.비정규직중 어느쪽을 채용하고 싶어할까?

아니나 다를까, 이후 노조의 임단협은 후퇴의 연속이었다.
2000년대 초반까지 노조가 수없는 투쟁으로 피로 쟁취했던 권익들을 2000년대 중후반 이후로는 하나하나 도로 내주었고, 정규직 인력의 확충은 매우 더뎠던데 반해서, 외주인력은 당초의 400여명에서 1600여명으로 4배나 확장되었다.

물론 이것은 비단, 우리 사업장만의 현상은 아니다.

비정규악법의 통과 이후 사회 전반으로 정규직은 축소되고 외주, 임시, 계약직 등 비정규직이 폭발적으로 증가했으며, 불과 10여년만에 이제는 사회 전체에 만연한 현상이 되었다.
청년의 새로운 일자리에서는 정규직을 찾기가 하늘의 별따기가 되었고, 그나마 노조의 힘으로 정규직 일터를 유지하고 있는 곳은 “신의 직장”으로 치부되며 살벌한 경쟁을 뚫어야 입사할 수 있는 곳이 되었다.

그리고 그 살벌한 경쟁을 뚫고 들어온 사람들은 당연히 주장한다.
이 경쟁을 통과하기 위해 나는 엄청난 댓가를 지불했노라고. 어느 누가 이 댓가를 지불하지 않고 상대적으로 쉽게 내가 선 자리까지 올라올 수 있다면 이것은 공정하지 못한 것이라고.
그리고 자본과 정권의 압박에 밀려 이미 이러한 상황이 만연하게 된 현실에서, 이들의 논리도 섣불리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현실을 충분히 인정한다 해도, 우리의 미래를 이러한 자본과 정권이 몰고 가는대로 둘 수는 없다.
그들의 입맛대로 미래를 버려둔다면, 정규직의 비율은 점점 더 축소될 것이고, 비정규직의 열악한 노동조건과 저임금에 발목잡혀 정규직의 지위는 더욱 하락할 것이며, 어떠한 불만도 표출하지 못하고 단지 그래도 상대적으로 비정규직보다는 낫다는 것만을 다행으로 여기며 그저 순응해야 하는 영원한 임금노예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이제 고객센터 노동자들의 파업에 직면한 공단의 현실을 보자.

사회에 만연된 열악한 비정규직, 제대로된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대다수 청년들의 절망, 몇년에 걸친 임금동결, 위험하고 어려운 일의 외주화로 빚어진 구의역, 태안화력 등 여러 절망적인 산재사건들.. 최저임금을 밑도는 저임금으로 인한 전사회적 빈곤… 이러한 것들은 정권에 대한 전반적인 분노를 일으켰고, 급기야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전사회적인 화두가 되었고, 이를 공약으로 선언한 후보가 대통령에 선출되기에 이르렀다.

또한 정부가 이를 추진한다면 우선 공공부문의 비정규직부터 정규직화하라는 요구에 직면하며 국민연금공단과 근로복지공단의 고객센터 상담사들은 원청에 직고용되었다.

자, 우리가 고객센터 노동자들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직고용으로 용역회사의 중간착취를 노동자들에게 돌릴 수 있다면 추가 재원 없이 이미 그것만으로도 15%의 임금인상이 가능하다고 그들은 말하고 있다.
공공기관이 취급하여야 할 피보험자들의 주요한 정보들을 민간업체가 처리하는 것은 잘못되었다고 그들은 말한다.
그들은 이렇게 민감정보를 다루며 공단의 일을 하고 있으므로 실질적 사용자인 공단이 책임있게 나서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4대보험의 다른 공단의 고객센터 노동자들은 이미 직고용으로 전환되었다.
그들의 요구가 과연 잘못된 것이 있으며, 우리가 그들이라면 이러한 요구를 내걸지 않을 것인가?

과거 노조의 임단투는 노조원들의 기대가 증폭되는 과정이었다.
해마다 임단협의 마무리시기에는 노조원들이 광장에 모여 임단협 결과발표를 기다렸다. 임금인상률에 박수를 치고, 근속승진 쟁취, 학자금 쟁취 등 노동조건의 개선 소식에 환호를 올렸다. 그리고 이것은 노조원들의 노조에 대한 관심과 기대, 사랑의 원천이었다.

그러나 우리 공단에 외주.용역이 도입되어 400%이상 확대되는 동안, 정규직의 임단투는 완전히 망가졌다.
해마다 수많은 권익들을 자진반납하고, 더이상 후퇴하지 않는 것만도 다행으로 여기며 울며 겨자먹는 단협체결을 되풀이해왔다.

앞서 이미 언급하였지만,
외주.용역.하청 비정규직의 처우가 악화되는 것은 원청 정규직에게 도움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정규직 처우의 악화를 가져온다.
반대로 비정규직의 처우 개선이 정규직의 악화로 귀결되는 것이 아니다.
내 옆의 반값 노동자가 계속 온존하는 한, 나의 처우와 임금은 결코 개선되지 않는다.

비정규직이 만연하는 한, 노동자들의 단결된 대응은 더욱 어렵고,
이는 자본과 그들을 대변하는 정권이 지향하는 방향이다. 노동자들의 대응은 그 반대여야 한다.

노동자는 노동자다!
우리가 투쟁할 때 자주 부르는 단결투쟁가의 한 구절이다.

고객센터 노동자들이 직고용을 쟁취한다고 해서 우리의 권익은 결코 침해받지 않으며 침해받을 이유가 어디에도 없다.
만에 하나 그것을 이유로 어느 누가 우리 권익을 침해한다면, 우리 노조가 가만히 있어서도 안된다.
고객센터 노동자들의 임금이 오른다 해서 우리의 임금이 내려가지 않으며, 우리가 그것을 허용하지도 않을 것이다.

비정규직, 외주용역직 노동자들이 정당한 임금과 처우를 받는다면, 자본과 권력은 비정규직을 더이상 양산하지 못할 것이며,
그들의 열악한 처우를 들먹이며 정규직을 귀족노동자로 몰아가는 짓도 더이상 할 수 없을 것이며,
바로 그것이 우리 노동자들이 원하는 것이다

물론, 고객센터 노동자들을 비롯한 이땅의 외주.용역.비정규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이 너무도 열악하여 노동자들이 하나로 단결하여 투쟁한다 해도 이를 개선시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문제이지만, 이는 우리가 반드시 이루어내야 할 사회적 문제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우리 노조는 다음을 천명하여야 한다.

– 고객센터 노조 동지들의 투쟁은 정당하다.
– 공단은 건강보험노조를 핑계대지 말고 고객센터 노조의 교섭요구에 적극적으로 응하라!
– 건강보험노조는 고객센터 동지들의 파업 효과를 줄이기 위한 어떠한 불법적 대체업무 지시도 거부한다!
– 고객센터 노동자들의 저임금과 열악한 처우를 시급히 개선하라!
– 건강보험노조는 고객센터 동지들의 투쟁을 지지한다!

적어도, 오늘 그들과 똑같이 투쟁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우리는 적어도 이러한 것들을 주장할 수 있고 마땅히 해야 한다.

2021.2.8

건강보험 현장노동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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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협

전국노동자정치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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