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과 계급1 민족문제의 역사적 특수성은 무엇인가?

* 이 글은 세 번 나누어 실을 예정이다. 이번 글은 ‘민족주의’에 대한 이해와 특수성에 대한 논의이다. 다음에는 남북 관계를 대외관계 일반(국제주의)으로 보고 민족문제를 간과하는 것에 대한 비판이다. 마지막으로는 맑스주의 철학과 북(조선)의 철학 및 체제의 관계 문제를 다룰 것이다.

 

노동사회과학연구소 이론지 [노동사회과학]에 박문석 연구위원의 “민족문제에 대한 계급적 접근을 위하여”(2020년 12월 5일)라는 글이 실렸다.

박문석 연구위원 글의 가장 큰 미덕은 혁명적 열정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이다. 또한 근본적인 시각으로 한국사회를 분석하려 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른바 한국사회의 ‘좌파’ 내부에 만연한 반북반공주의에 빠져 있지 않다는 것이다.

조합주의가 만연하고 경제주의가 판치는 한국 운동에서 이 사회를 강령적으로 분석하고 변혁을 모색하는 이러한 글을 환영한다. 지금 한국 노동운동 내에는 너무 지엽적이고 근시안적이고 단편적이고 현상추수적인 논란들이 많은데, 이런 식의 진지하고 혁명적 글들이 자주 발표되고 여기에 맞게 충실한 검토와 토론, 논쟁이 이루어져야지만 우리 운동의 정치적 수준도 높아지게 될 것이다.

이러한 논쟁은 궁극적으로 한국운동의 분열상을 극복하고 변혁의 구체적 수단과 길을 모색하여 강령적 통일과 통일단결된 당건설을 통해 한국사회를 해방시키기 위한 것이다. 이 글이 여기에 조금이나마 복무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

박문석 연구위원의 글은 근본적으로 문제를 다루려 하고 있고 진지한 만큼 일말의 꾸밈과 거짓이 없고 솔직하기 때문에 이 글의 근본적 한계와 오류도 꾸밈없이 선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또한 이 글이 노사과연의 입장에 충실하기 때문에 연구소 입장의 의의와 한계와 오류도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박문석 연구위원의 글을 보면서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서양속담이 있는데 그것은 “목욕물을 버리려다가 아이까지 버린다”는 것이다. 굳이 서양속담까지 예로 들지 않더라도, 소의 뿔을 자르려다가 소까지 죽인다는 교각살우(矯角殺牛)라는 한자성어도 이와 똑같은 경우에 해당된다.

박문석 연구위원은 자주파 일각, 더 나아가 자주파 내에 만연한 우경화에 대해 비판하고 있다. 그리고 임기를 끝내지 못하고 사퇴한 민주노총 김명환 집행부를 지지했던 노사정 사회적 대화 노선에 대해서도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이러한 비판에 충분하게 공감한다. 김대중 정권에 의해 도입된 노사정위원회에서 정리해고제와 근로자파견제가 합의되고 이 악법이 입법화 되어 오늘날 자본에 의한 대량해고가 마음껏 자행되고 1천만이 넘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생겨난 계기가 되었다. 한국사회의 대량해고와 불안정노동과 저임금과 빈곤은 상당부분 여기에서 비롯된다.

김대중 정권은 IMF 경제위기, 즉 과잉생산 공황을 극복하기 위해 노동자에 대한 공세를 강화했는데, 노동운동 상층부의 관료주의자들을 노사정위 틀로 포섭하여 이들과 반노동자적 합의를 함으로써 동의와 합의의 모양새를 취하여 내부를 분열시키고 저항을 하지 못하게 하였다. 이것이 이른바 사회적 합의주의라는 코포라티즘(corporatism)이다. 물론 그 전에도 한국노총 어용들을 내세워 노경총 임금담합 같은 야합이 있었는데, 이러한 야합으로 한국노총의 어용성이 폭로되고 이 야합에 반대하는 투쟁들이 전국적으로 일어나며 이 임금담합은 무산됐다. 노동해방의 전망을 가지고 있었던 전노협(전국노동조합협의회) 시절에는 심지어 선파업 후교섭 관행도 있었는데, 이는 노동자들이 얼마나 투쟁을 중심에 두고 노자 간의 문제를 해결했는지 좋은 사례다. 실제 제3 국제당인 코민테른에서는 노사 간의 단체협상을 ‘휴전협정’에 다름 아니라고 규정했는데, 이는 노동자와 자본가의 이해대립에 대한 근본적 성찰을 하고 있었고, 노동조합을 자본주의 내 관료기구가 아니라 해방을 위한 전투기관으로 사고하고 있었다는 반증이다.

그런데 혁명적 노동운동이 무너진 이후 노동운동 내에 팽배한 사회적 합의주의 공세는 이후 역대 정권마다 기구 명칭을 바꿔 이루어졌는데, 김명환 집행부는 노사정신(新)8인회의를 공약으로 걸고 나오고 이름만 바뀐 노사정위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 직권으로 참여했다. 결국 코로나19원포인트 사회적 대화기구에서의 노사정합의에 대한 민주노총 내 반발로 사실상 불신임으로 중도 사퇴했다.

김명환 집행부를 지지한 자주파들은 이러한 김명환 집행부의 우경적 타협노선에 중대한 책임이 있다. 자주파 내에 팽배한 민주당에 대한 그릇된 태도도 자주파 노선이 유독 국내 자본과 권력의 문제 앞에서 자주적이지 못하고 종속적으로 끊임없이 동요하도록 하고 있다. 통일전선의 기본이 운동의 독자성과 자주성, 당파성인데 이를 우경적으로 해석한 결과이기도 하다.

그런데 박문석 연구위원은 자주파 내에 팽배한 우경적 경향을 비판하면서 민족문제의 역사적 특수성과 고유성을 외면하고 계급문제 일반으로 해소해버린다. 또한 일반적 수준에서 변혁을 말하되 한국이라는 구체적 상황 속에서 변혁을 실현하기 위해 필요한 조건들, 변혁의 특수성을 외면하고 있다.

 

민족주의에 대한 혼란과 일면적 접근

 

박문석 연구위원은 민족주의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민족주의란 일반적으로 민족의 생활・전통・문화를 보존하여 자결이 가능한 국민국가를 형성하고, 성립 후에는 그 독립성・통일성을 유지 발전시킬 것을 추구하는 사상이나 움직임으로서, 역사적으로 배외주의와 국수주의, 종족갈등, 대량학살과 전쟁, 파시즘 등의 현상이 나타나는 부르주아 계급의 이데올로기이다. 국내 민족주의 운동은 제국주의에 대한 저항을 특징으로 하면서 한(조선)반도 통일국가의 형성을 목표로 삼는다. 이들은 민족모순을 과학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취급한다.

혼란스럽다. 박문석 연구위원은 “일반적”으로와 “역사적”으로, “국내 민족주의 운동”, 즉 “특수적” 상황을 뒤섞어 놓고 있다. 가령 민족문제의 일반적인 특성은 보편적인 특성을 말하는 것일진대, “민족의 생활・전통・문화를 보존하여 자결이 가능한 국민국가를 형성하고, 성립 후에는 그 독립성・통일성을 유지 발전시킬 것을 추구하는 사상이나 움직임”이 “역사적으로 배외주의와 국수주의, 종족갈등, 대량학살과 전쟁, 파시즘 등의 현상이 나타나는 부르주아 계급의 이데올로기”로 나타났다는 것인지 그 연관이 분명하지 않다. 후자는 바로 전자의 민족자결을 파괴하고 들어선 가장 반동적인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이기 때문이다. 또한 역사적으로 반동적인 “부르주아 계급의 이데올로기”가 유독 “국내에서는 제국주의에 대한 저항을 특징으로 하면서 한(조선)반도 통일국가의 형성을 목표로 삼는다”는 것인지도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민족주의가 “민족의 생활・전통・문화를 보존하여 자결이 가능한 국민국가를 형성하고, 성립 후에는 그 독립성・통일성을 유지 발전시킬 것을 추구하는 사상이나 움직임”이라면 그러한 민족주의 일반은 민족자결의 문제고 이는 식민지·반식민지 피억압 민족의 감정과 요구를 반영하고 있기도 하며, 사회주의 국가에서의 민족문제의 근간이기도 하다.

이러한 민족주의는 식민지·반식민지에서의 애국주의로 배타적 국가주의라기보다는 나라 잃은 민중의 설움과 열망을 반영하고 있다. 사회주의에서는 제국주의로부터 사회주의 조국을 지키려는 자주권의 열망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박문석 연구위원은 “부르주아 민족주의와 대립하는 개념은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이다”라고 주장하는데, 이는 배타적, 침략적 부르주아 민족주의와 직접적으로 대립하는 개념으로서의 ‘저항적 민족주의’를 빠뜨리고 있으며,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와 이 저항적 민족주의의 관련에 대해서도 생략하고 있는 한계가 있다.

“민족의 생활・전통・문화를 보존하”려는 요구와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는 충분하게 하나가 될 수 있다. 다민족 국가가 사회주의 국가를 구성했을 때 각 “민족의 생활・전통・문화를 보존하”려는 요구는 충분하게 보장받고 꽃피울 수 있게 해야 한다. 단일민족의 사회주의에서도 “민족의 생활・전통・문화를 보존하”려는 요구와 프롤레타리아 국가의 새로운 문화혁명은 하나로 통일되어 사회주의 민족을 풍부하고 다채롭게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심지어 “민족의 생활・전통・문화를 보존하”려는 요구와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도 대립적이지 않고 굳건하게 통일될 수 있는 문제이다.

프롤레타리아 국가 간에는 대국주의가 아니라 각 “민족의 생활・전통・문화를 보존하”려는 태도와 이를 존중하는 호혜평등이 굳건하게 자리 잡아야 하며, “민족의 생활・전통・문화를” 침해하는 부르주아와 부르주아 국가에 맞서 국제주의적 단결을 강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박문석 연구위원은 “국내 민족주의 운동은 제국주의에 대한 저항을 특징으로 하면서 한(조선)반도 통일국가의 형성을 목표로 삼는다”며 진보적 운동으로 간주하면서도 “민족모순을 과학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취급한다”며 저항적 ‘민족주의’ 일반에 대해서 부정하는 모순적 태도를 취하고 있다.

“제국주의에 대한 저항을 특징으로 하면서 한(조선)반도 통일국가의 형성을 목표로 삼는” 민족주의 운동을 배척한다면 그것은 “공산주의자는 모든 곳에서 기존의 사회 · 정치적 질서를 반대하는 모든 혁명운동을 지지한다”는 《공산당선언》에서의 맑스주의 원칙에서 벗어나 협소하고 배타적인 길로 빠지는 것이다. 또한 식민지·반식민지에서의 외세, 즉 제국주의를 반대하고 민족자결을 적극 지지하고 지원한 레닌주의 원칙에도 부합하는 것이 아니다.

물론 국내 민족주의 운동이 “제국주의에 대한 저항을 특징으로 하면서 한(조선)반도 통일국가의 형성을 목표로 삼는”데, 그것이 부르주아적 흡수통일을 추구하는 것이라면 그런 몰계급성은 비판 받아 마땅한데 대다수 자주파들은 ‘친북’, 심지어 악의적이게도 ‘종북’으로 비난 받고 있으니 극소수를 제외하면 그것도 적절한 비판이 아니다.

게다가 제국주의의 지배와 보호막 하에서 국내 자본과 권력이 성장해 오고 지배계급으로 군림하는 상황에서 “제국주의에 대한 저항을 특징으로 하”는 민족주의 운동이 최소한 논리적으로나 현실적으로 부르주아 흡수통일 노선에 경도될 수는 없는 것이다.

문제가 있다면 “제국주의에 대한 저항” 노선에 충실하지 못하거나 벗어나거나 투항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상황이 있을 텐데 그것은 별도로 비판해야 할 문제다.(가령 자주파 일각에서 남과 북이 통일되면 남쪽의 자본과 북쪽의 자원, 양질의 숙련된 노동력이 하나 되어 민족이 번영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을 본 적이 있었는데, 남쪽 자본의 운영자들은 바로 제국주의 자본과 자본가들일 텐데 이러한 인식은 심각하게 낭만적이며 또 몰계급적인 것이다.)

그런데 박문석 연구위원뿐만 아니라 노사과연에서는 “우리민족끼리 반미자주”하자는 주장 자체를 “계급협조”니 심지어 “범죄”라고까지 비난하기도 한다.(이에 대해서는 “‘우리민족끼리’를 계급화해라 비난하는 노사과연의 ‘좌익적’ 인식에 대하여”, 전국노동자정치협회, 2019년 10월 15일 글을 참고하기 바란다.)

이는 “제국주의에 대한 저항을 특징으로 하”는 국내 민족주의 운동 자체를 부정할뿐더러 그 한 축인 북과 해외동포의 진보적 반제통일 운동 자체를 부정하고 통일전선을 부정하는 배타주의적 태도에 빠지는 것이다. 박문석 연구위원이 이러한 정치적 혼란에 빠지게 된 것은 민족주의 자체에 대한 왜곡과 일면적 입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민족주의는 크게 봐서 부르주아 민족주의와 저항적 민족주의로 나눌 수 있다. 이를 구별하지 않으면 정치적 혼란과 배타주의, 종파주의에 빠지게 될 수 있다.

보통 서구에서 민족주의는 발전한 자본주의 국가에서 나타났다. 초기 이러한 민족주의는 독일의 통일, 이탈리아 통일처럼 봉건적 분할과 억압 같은 경제적, 정치적 질곡에 반대하는 부르주아의 통일운동으로 나타났다. 이때 부르주아는 진보적 계급으로서 민족 구성원 전체의 대표자로서 역사적으로 진보적 역할을 수행했다. 프롤레타리아는 아직 반봉건 투쟁의 주도 계급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후 부르주아가 새 사회의 지배자가 되고 자본주의 발전과 더불어 계급모순이 첨예해지면서 부르주아는 국민전체의 대변자에서 자신의 계급적 이해에만 배타적으로 몰두하는 반민중적, 반사회적 세력으로 변모해 갔다.

자본은 국민국가의 성립과 함께 점점 더 국제적으로 변해 갔는데 부르주아는 해외에서도 침략자의 면모를 보이기 시작했다. 대외적으로 부르주아의 다른 민족에 대한 억압과 침략, 학살과 약탈, 지배가 노골화 되었는데, 이는 제국주의 시대에 가장 두드러졌다. 이 제국주의 침략과 억압, 민족 주권을 유린하는 식민지 지배에 저항하는 진보적 민족주의가 나타났다.

그런데 식민지·반식민지에서 민족해방을 위해 투쟁하던 부르주아 민족주의자들은 제국주의 억압의 근본원인을 과학적으로 인식하지 못했으며, 식민지 지배자들과 손잡은 현지 협력자들인 지주들의 이해를 대변하기도 했다. 이들은 식민지 해방 이후에 부르주아 공화국을 세우려는 목표를 내세우면서 민중의 해방 열망과 대립되기도 했다.

오직 공산주의자들과 식민지·반식민지에서 가장 억압 받고 있었던 노동자, 농민 등 기층 피억압 계급들만이 식민지 지배에 철저하게 저항하고 민족의 이해와 요구에 가장 부합하며 싸워 나갔다. 1930년대부터는 만주와 백두산 일대의 공산주의자들이 반일 무장투쟁의 중심에 있었다.

주지하듯 해방 이후에는 일제를 대신해 미제가 주둔했다. 미제는 노동자 민중의 자주적 해방 기구인 인민위원회를 폭력으로 해산했다. 미제는 반도 이남을 반공주의 전초 기지로 삼기 위해 이승만 주구를 내세워 인민의 통일정부 수립 열망을 방해하며 1948년에는 이남만의 단독선거로 단독정부를 구성했다. 남북의 분단에 반대하고 통일 정부 수립을 요구하는 제주 4.3항쟁과 여순항쟁을 진압하며 민중을 잔혹하게 대량학살했다.

당시 민중의 항쟁은 반미반제 통일운동이었는데, 이는 자주적 해방을 열망하며 외세 침략자들에 맞서는 저항적 민족운동의 일환이기도 했다. 이것이 이남에서 반미운동의 역사적 기원이다. 이 민족적 저항운동은 미제가 오월광주에서 전두환 신군부 학살자들의 배후였다는 사실을 인식하고서는 격렬한 반미운동으로 타올랐다.

이북은 “민족의 생활・전통・문화를 보존하여 자결이 가능한 국민국가를 형성하고, 성립 후에는 그 독립성・통일성을 유지 발전시킬 것을 추구”하는 경제적, 정치적, 문화적 자주성을 생명으로 하고 있다. 이에 따라 제국주의와 파쇼권력에 맞서 민족의 자주성을 열망하는 저항적 민족주의 운동은 북과의 민족 통일운동으로도 나타났다.

역사는 과거의 축적물이다. 특히 현대사는 오늘날까지 한국사회의 본질적 성격을 규정하는데 중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리하여 4.3을 비롯한 단정단선에 맞서 싸우고 분단을 획책하는 외세와 싸워 통일조국을 건설하려는 투쟁은 오늘날 미제국주의를 이 땅에서 내쫓고 우리민족끼리 평화적으로 통일하자는 역사적 요구로 그대로 남아 있다.

박문석 연구위원의 입장은 이처럼 역사적으로 형성된 저항적 민족주의의 특수한 성격을 외면하고 부르주아 민족주의 일반으로 간주해 부정하기 때문에 일면적이고 근본한계가 있기도 한 것이다.

 

민족문제의 특수성과 민족문제 해결의 주도자

 

박문석 연구위원은 민족문제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의하는데 이는 스탈린의 정의다.

일반적으로 민족이란 동일한 언어, 일정한 영토, 일정한 경제생활 및 문화의 공통성과 전통적 심리 등 다섯 가지 모두를 포함시켜 구성된 집단으로서 자본주의 발전의 산물로 형성된 것이다.(같은 글)

자본주의 발전의 산물로 ‘현대’민족을 보는 스탈린의 정식화는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러한 정의는 “일반적으로” 서구유럽의 민족을 정의한 것으로 우리 민족형성에 대해서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는지는 별도로 논의해봐야 한다.

북(조선)에서는 스탈린의 민족문제에 대한 정의를 기본적으로 인정하면서도 거기에 더해 혈연적(핏줄) 관계의 통일성을 가장 중요한 것으로 여긴다. 더불어 언어의 통일성을 주요한 민족형성의 계기로 본다. 여기서 혈연은 씨족, 종족의 협소한 혈통적 의미를 벗어나 지역적, 국가적 범위에서 사회 역사적으로 형성된 혈연적 관계를 의미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이북(조선)에서는 우리 민족의 역사를 중앙집중적 권력이 형성됐던 고조선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물론 국가가 곧 민족은 아니지만 단일민족의 경우에는 합치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북에서 우리 민족의 역사가 고조선 이래 5천년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할 때, 이때 형성된 민족이 오늘날과 같은 민족주의 의식을 가지고 있었을지는 의문이다. 또한 가족, 친족의 범위에서 자연적으로 형성된 혈연과 구별된 사회역사적으로 형성된 혈연이라는 개념이 성립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고조선 시대에 경제적으로 분할된 조건에서 경제생활의 통합 없이 단일한 민족이 형성될 수 있었는지도 의문이다.

아직은 가정이지만, 북에서 말하는 초기 우리민족의 형성은 맑스·엥겔스가 말한 고대의 준민족에 가까운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럼에도 남는 문제는 우리민족의 형성이 자본주의 발전의 산물이냐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민족의 형성이 유럽처럼 자본주의 발전의 산물이라면 조선에서 일본 식민지 이전에는 민족, 민족감정, 민족의식이 없다가 일제 식민지 시대에 접어들어서야 형성되었다고 주장해야 한다. 이에 대해서는 부정적이다. 또한 스탈린은 유태인의 예를 들어 단일한 지역적 구심이 없다면 민족은 유지될 수 없다고 했는데 이것이 해외에 퍼져 있는 해외 동포들에게도 적용될 수 있는지가 논란이 될 수 있다.

어떠한 정의에 대한 논란은 그것이 현실과 부합하는지와 그에 따르는 이론이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의미가 있는지 여부로 그것이 올바른지 아닌지 판단할 수 있다. 여기서는 유럽에서 민족과 우리민족의 형성에 대해 더 깊이 논의할 준비도 부족한데다가 이 글의 주제상 더 이상 언급하지 않겠다.

다만 민족문제 해결의 대상이 남과 북, 해외동포까지 망라하는데, 현재 5백만에 달한다는 해외 동포의 문제를 지역적 단일성의 문제로만 보면 이들을 배제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특히 여전히 일본 내에서는 재일조선인 차별 문제가 심각한 문제인데 이러한 해외의 민족문제를 소홀히 다루는 문제도 발생하게 된다. 남과 북은 분단이 되면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라는 상반되는 생산양식을 이어가고 있는데 지역적 단일성과 경제생활의 공통점만을 놓고 본다면 이 또한 민족문제에서 배제하는 문제가 발생하게 될 것이다.

남과 북은 분단되어 있지만 단일한 언어와 풍습, 심리적, 기질적 공통성, 여전히 상당 부분의 공통문화, 공통의 역사적 경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같은 민족적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식민지 경험을 가지고 있고 미국에 종속되어 있는 한국에서 여전히 저항적 민족주의가 진보적이지만 한국에서 자본주의의 고도의 발전과 재벌 같은 거대자본의 성장으로 인해 이 민족주의는 지배계급의 애국주의, 국가주의와 착종(錯綜)해서 나타나고 있다. 특히 민주당과 문재인 정권은 일본의 수출규제와 역사왜곡에 대해 “총선은 한일전”이니 하며 애국주의를 조장하면서 이것이 식민지 역사적 경험을 가지고 대중들 사이에서 일본상품 불매운동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되었다. 그런데 이처럼 지배계급은 앞에서는 일본에 맞서 애국주의를 조장하지만 뒤로는 한미일 동맹을 추종하고 한미군사정보협정을 연장하며 일본 제국주의에 동조, 협력하고 있다. 반일 애국주의를 인민통치에 적극 활용하는 교활한 위선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저항적 민족주의는 이러한 부르주아 애국주의와 국가주의에 포섭될 여지가 생겼다. 특히 한국 재벌은 해외자본과 부분적으로 대립, 경쟁하면서도 국내 노동자들을 착취하는 데서는 공동의 이해를 가진 착취의 동반자들이다. 그런데 자주파 상당수가 이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애국주의에 부화뇌동해 정권과 국내자본의 협조세력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빈번하다.

또한 외국인에 대한 혐오나 멸시, 특히 이주노동자에 대한 차별과 억압도 심각하다. 물론 이는 자본이 조장한 것이다. 동남아 등 국내자본이 진출한 나라에서의 배타주의나 타민족에 대한 멸시나 우월감도 팽배하다. 특히 중국에 대한 한국인들의 우월감과 적대감은 반공주의와 어우러지면서 심각하다.

1871년 프랑스에서 최초의 민중권력이었던 파리코뮌에서도 지배자들은 프로이센 침략자들과 손을 잡고 민족을 배신했으며 심지어 무참하게 학살했다. 오직 민중만이 프랑스의 민족적 이익에 가장 충실했고 이것이 가장 진보적인 계급적 조치를 가능하게 한 원동력이었다.

1894년 조선에서 농민들은 반외세 반봉건의 기치를 내걸고 투쟁했던 것에 반해 지배계급은 외세와 손잡고 민중을 무참하게 학살했다.

부르주아는 외세 제국주의에 종속, 결탁해 북(조선)을 적대시하고 분단을 영속화 하는 민족의 배반자들이다. 반대로 노동자들은 분단을 이유로 정치적 억압을 당하고 해방의 전망을 박탈당해 왔기 때문에 민중과 함께 분단된 민족의 단결과 통일을 끝까지 추구할 수 있는 진보적 계급이다. “노동자의 운명과 민족의 운명은 하나”라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선진적 노동자계급과 진보적 활동가들은 자본과 권력에 대해 자주성을 가지고 전체 민족적 과제, 반제와 분단과 통일, 평화의 실현 같은 민족문제 해결의 참다운 대변자가 되어야 한다. 노/정/협

 

《한국사회와 변혁의 길》(소책자)

《맑스주의와 무정부주의》(49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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